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35
외전 185화. 흩어진 편린 (2)
살형방벽이 찢어지고, 일순간 시야가 활짝 열렸다.
선두에서 걱정을 가득 안고 다급히 달려오던 도헌의 눈이 커졌다.
이천상의 등 뒤에서 심장에 검을 박은 한 마인.
“이천상!!”
삽시간에 치솟은 분노가 마기의 흐름을 열탕처럼 바꿔 놓았다.
파아아앙!
머리끝까지 화가 난 도헌의 신법 속도가 순간 두 배로 빨라졌다.
변조가 외쳤다.
“죽여!”
순식간에 벽을 만드는 마인들.
하지만 그들 정도로는 도헌을 막을 수 없었다. 실력과 공적만으로 내전 전투 부대의 수장이 된 그는,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시진의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 반쪽이나마 사령단을 취하기까지 한 그의 무공은 육대주 중 최강이라 할 만했다.
번쩍!
도헌의 허리춤에서 빛살과도 같은 쾌도(快刀)가 터져 나왔다. 광마대원이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일류의 무공, 참영도법(斬影刀法)이었다.
하지만 대원들이 구사하는 참영도와 도헌이 구사하는 참영도는 완전히 달랐다. 그림자를 벤다는 이름처럼 빠르고, 빠른 만큼 단호하고 강력했다.
푸화악!
단 일도(一刀)에 앞을 막은 마인 셋의 몸이 사선으로 쪼개졌다.
인정사정없는 일격이었다. 극에 이른 분노 때문에 예리함은 떨어졌지만, 뿜어져 나오는 경력만큼은 도헌 인생 최강의 일격이라 할 만했다.
화아악!
마인 셋을 베고 지나간 도기는 그 뒤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마인 하나의 팔까지 날리고 사라졌다.
뒤이어 도헌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회전하는데도 마인들의 눈에는 눈곱만큼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한 바퀴 돌아 사선으로 휘두르는 칼에 단호한 칼바람이 일었다.
서걱!
강력한 일도에 또 다른 마인 둘의 몸이 잘려 나가고, 그 뒤에서 돌진하던 마인이 도헌의 빈틈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쩌엉! 퍼억!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투명한 도기가 검을 든 마인의 검과 가슴을 뚫어 버렸다.
황무석이 이천상과 대무했을 때 보여 준 적 있던 일참월영(一斬月影)이었다. 하지만 황무석이 구사했던 초식과는 위력도, 교묘함도, 속도도 달랐다.
적 개개가 육대주 부관급보다도 한 수 쳐진다고는 하나, 폭발적인 내공 소모 이후의 초식 한 번으로 고수 셋을 죽였다. 찰나지간 눈이 돌아 버릴 정도로 화가 났음에도 적을 상대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파아아악!
마인들의 수장, 변조는 수하들에게 맡겨 두지만은 않았다.
가장 믿는 좌우의 두 마인과 함께 쌍검을 뽑아 달려든다. 상대는 내전 정예 부대의 수장이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하루하루 목숨 걸고 살아온 인생들이다. 이기느냐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장 합리적인 길을 걸을 뿐이다.
“모두 빠져라!”
변조의 쌍검이 교차하며 나아갔다. 거대한 전도(剪刀)가 된 쌍검은 단숨에 도헌의 목을 잘라 버릴 것 같았다.
도헌의 반응은 단순하고도 합리적이었다.
쩌어어어엉!
참영도법의 일격, 일참파랑(一斬波浪)이었다.
몰아치는 파도도 일격으로 베어 끊어 낸다는, 한없이 강력한 일격.변조는 도헌의 목을 자르기는커녕, 그 한 번의 참격을 막아 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를 악문 그의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단 일도로 자신의 우위를 증명한 도헌.
죽음의 두려움은 없지만, 변조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육대주와 부딪쳐 손색이 없는 무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초 만에 밀려 버린 것이다.
티이잉!
변조의 좌우에서 그를 받쳐 주던 마인들이 도검을 휘둘렀다.
막강한 힘으로 한차례 변조를 밀어붙인 도헌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기 전이었다.
그러나 도헌에게도 사람은 있었다.
광마대의 일 조장과 이 조장이 벼락처럼 달려와 두 마인의 도검을 쳐 냈다.
지난날의 그들이었다면 그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흑마대주 소공의 조언을 듣고 대원들에게 암살 기법을 응용한 수련을 시킨 도헌 덕분에, 두 조장의 도법은 불과 수십 일 만에 크게 성장했다.
“이천상!”
도헌의 눈은 끝까지 이천상을 좇았다.
어느새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의 이천상. 그 앞에 선 마인이 그때까지도 가슴팍에 꽂힌 채 빠지지 않는 검을 놓고 주먹을 번쩍 드는 게 보였다.
일권으로 머리통을 터트리려 하는 것이다. 도헌이 이를 악물었다.
번쩍!
한 자루 칼이 벼락처럼 날아가 이천상의 머리를 부수려던 마인의 가슴팍을 뚫었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도객이 칼을 던져 적을 죽였다. 심지어 그의 앞에는 아직 멀쩡한 변조도 있었다.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천상을 구해 내는 것이 목적이다. 검이 심장을 뚫었으니 십중팔구 사망했을 텐데도 산 사람을 대하듯 걱정만이 가득했다. 도헌이 이천상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도헌은, 그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놀랐다.
‘왜일까.’
다급한 와중에도 의문이 들었다.
퍼버벅! 쩌엉!
기민한 몸놀림으로 공격하는 마인들의 품으로 들어와 복부를 갈겼다. 물러나면서도 기어이 내리치는 도격을 뱀처럼 움직여 피한 후 도면을 후려쳐 마인의 손목을 탈골시켰다.
눈부신 대응이었다. 이제야 전권에 들어온 조원들이 적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변조가 버럭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후퇴하라고 했잖아!”
적이지만 수장을 향한 걱정 때문에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 듯했다.
분노에 휩싸인 채로도, 도헌은 그들의 행동을 전부 인지했다. 하나하나 잔혹하게 찢어 죽일 생각이었는데, 명예롭게 머리통만 날려 줘도 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생각이 이어졌다.
‘나는 왜 저 녀석을 이렇게까지 위해 주는 거지.’
생각해 보면, 참 의아한 인연이었다.
처음 이천상을 봤을 때, 도헌은 그가 께름직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그때의 이천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처럼 기능’하는 인형이었으니까.
‘소 대주 때문인가.’
그런 도헌을 향해 소공은 말했다, 제대로 키워 보라고.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작정하고 키우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말 때문에 상대에게 진심을 줄 만큼 도헌의 줏대는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정작 도헌은 이천상의 언행에서 신선함을 느꼈다.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움직이지만,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투마장까지 겪었음에도 더더욱 올바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풍부한 감성을 지녔다면 과연 가능했을지가 의문이었다. 이천상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올바름을 잘 지켜 낼 수 있었다.
‘그래, 그랬다.’
도헌은 이천상의 독특하고 신선한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처음은 그러했다.
그러다 그가 투마장을 겪고 다시 광마각으로 돌아왔을 때 보여 준 언행에, 비로소 도헌은 이천상이라는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놈을 제대로 키워 보자는 생각으로 개정단과 사령단까지 주었다.
그때, 감정도 모르고 인형처럼 살던 이천상이 사령단을 나눠 주었다.
마인에게 있어 사령단은 그야말로 무가지보라 할 만한 영약이었다. 소림의 소환단과 비교되고는 하지만, 실제 마인에게는 그 이상의 효력을 주는 보물이었다. 이천상은 그걸 자신에게 나눠 주었다.
그에게 작은 미래 하나를 맡기려 했던 도헌은, 비로소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을 믿었다. 더 이상 이천상은 인형이 아니었다. 적어도 도헌에게만큼은.
마치 재능 넘치고 무뚝뚝한 동생을 대하듯.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그렇게나 각별해진 것이다.
그런 이천상이 적에게 둘러싸여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도헌으로서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더라도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죽었어도 다시 살리겠다.’
이천상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려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뭔가 사고 하나는 제대로 칠 것 같았다. 논리적이지 않은, 그저 직감으로 상상했던 미래였다.
그러나 사고를 치는 와중에 목숨을 잃을 거란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동생 같았지만, 형처럼 믿음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피슉!
변조의 쌍검이 도헌의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냈다.
콰드득!
도헌은 죽은 마인이 쥐고 있는 손에서 칼을 뽑았다.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마인의 손가락까지 생으로 뜯겨 그의 손에 잡혔다.
번쩍!
크게 휘며 내려오는 참영도 일격에 변조의 왼팔 하나가 날아갔다.
쌍검을 다루는 자가 팔 하나를 잃었으니, 전투력의 절반을 날려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수라도 팔이 날아가면 일순간 신체의 중심을 잡기 힘들다.
푸욱!
삼 조장의 기습과도 같은 도격이 변조의 복부를 뚫었다.
퍼억!
변조가 반사적으로 삼 조장의 머리통으로 팔꿈치를 휘둘렀다. 삼 조장의 눈이 휙 돌아가며 쓰러졌다. 저 정도 고수의 일격에 관자놀이를 당했으니 목숨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퍼어억!
도헌의 칼이 이 조장과 싸우던 마인 하나의 머리통을 날렸다. 그 즉시 이 조장이 변조에게 달려들어 참영도를 휘둘렀다.
푸화아악!
이 조장의 칼은 막았지만, 상대하던 마인을 밀어 내고 접근한 일 조장의 칼은 막지 못했다. 변조의 허리가 절반 이상 잘려 나가며 대량의 선혈을 뿌렸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도헌이 외쳤다.
“도주하는 적을 쫓아라! 생포가 가능하면 하되, 죽여도 상관없다!”
대원들에게 명을 내린 도헌은 재빨리 이천상에게 다가갔다.
“이천상! 정신 차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도헌이 그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숨을 쉬지 않는다.’
빌어먹을.
심장에 꽂힌 검은 뺄 수 없다. 살았다 해도 뽑는 순간 죽을 것이다. 호흡도 없는 사람의 몸이라면 더더욱 그래선 안 되었다.
도헌이 어쩔 줄 몰라 할 때였다.
티잉!
적들에게 집중한 대원들.
오직 도헌과, 마인 하나를 암습으로 겨우 처치하곤 헐레벌떡 달려온 유상천만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빠졌다?!’
이천상의 가슴팍에 박혔던 검이 제멋대로 뽑혀 땅에 떨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헌은 서둘러 지혈부터 하려 했다.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
상처를 본 도헌의 눈이 흔들렸다.
‘없어.’
심장을 관통한 검상이 사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였다.
“크으으.”
이천상의 입에서 심상치 않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헌과 유상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천상!”
“각주님! 정신이 드십니까?!”
이천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로 곁에서 그의 얼굴을 잡고 있던 도헌은 흠칫했다.
이천상의 눈.
잡티 하나 없이 또렷한, 일체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이천상의 눈이 흰자위까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검게 물든 눈인데도 무시무시한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또한 감정이라면 감정일까. 도헌은 이천상이 이런 눈을 하고 자신을 볼 날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천상의 손이 자연스레 도헌의 목을 향해 올라갔다.
도헌은 그조차 모르고 외쳤다.
“이천상! 정신 차려!”
움찔!
도헌의 목을 졸라 부러트리려던 이천상의 손이 멈추었다.
유상천 또한 도헌처럼 외쳤다.
“각주님!”
부르르르.
이천상의 몸이 떨려 왔다.
사아아아악!
광기를 넘어 살기까지 배어나는 육신.
이천상의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이 살기를 넘어서 마기까지 뛰쳐나오는 순간, 일대가 죽음의 지대로 변할 것이라는 걸.
그의 무의식은, 광기에 젖어 범을 찢어발겼던 그때와 다른 선택을 내렸다.
주르르륵.
코와 입에서 시커먼 피가 흘러내렸다.
부르르 떨던 이천상의 몸이 일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끈 떨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졌다.
무의식은 무의식이기 때문에 인지할 수가 없다. 아마 그가 다시 깨어나도, 지금의 이 일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선택. 그것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앗아 갈 것이고, 동시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이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