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20
“아빠는 도대체 어딜 간 걸까요?”
마차를 타고 사천으로 들어선 단소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장삼태와 따로 움직이니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단우현을 붙잡지 못한 것은, 그의 눈빛에 단호함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단소미는 눈치가 빨랐다.
특히 단우현의 일이라면 누구보다 더 말이다.
분명 무언가 큰일이 있는 것 같았다.
“글쎄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지옥 불에 던져 놓아도 너를 생각해서 살아 돌아올 놈이니.”
단소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지옥 불에 떨어진 단우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오싹한 나머지 시퍼런 안색으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할아버지! 애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놀래잖아요.”
남궁소혜가 조심스레 단소미를 토닥이며 한숨을 쉬었다. 당장이라도 흘릴 것 같은 눈물을 닦아 주며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이상하기는 하네요. 소미를 놓고 따로 가다니…….”
“주군도 주군 나름대로 일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파헤치려 하지 마라.”
마부석에 앉아 있는 권무진이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단우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또한 단우현이 움직이는 것에는 언제나 의미가 있고, 그것은 호남단가라는 이름에 결코 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사천 성도에 가면 또 지약이를 볼 수 있을까요?”
그때 단소미가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매일같이 어른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면, 아무리 가족 같은 사이라 한들 재미없기 마련이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단소미를 보며 남궁소혜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약이는 벌써 호남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으음…… 그렇겠죠?”
단소미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아무런 말이 없더니, 돌연 번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남궁천을 바라봤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허허, 어디더냐?”
“집이요!”
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에 남궁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집에 가는 길이거늘 집에 가 보고 싶다니?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뜻인가?
하지만 어린아이의 생각과 어른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가만 소미의 눈을 주시하며 되물었다.
“집에 가고 있는 길이다만……?”
아니나 다를까 단소미가 붕붕 고개를 저었다.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은 듯, 몇 번이고 입술을 들썩이더니 이내 호흡을 고르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소미의 원래 집이요! 거기 가 보고 싶어요.”
그 한마디에 남궁천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그러나 곧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그래, 가 보자꾸나. 허허허.”
남궁천 또한 보고 싶기는 했다.
도대체 그곳에서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 * *
신강에서 감숙으로 이동하여 섬서로 빠져나온 단우현은 느긋하게 대로를 걸으며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유람을 나온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는데, 반대로 뒤따르고 있는 장삼태는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신음을 삼켰다.
신강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손가락만 세 번이 부러졌다. 손가락의 살이 터져 나가고 이제는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
무신의 무공이니 뭐니 하며 혹해 넘어간 것이 실책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늦구나.”
“아파서 그럽니다요!”
장삼태가 입술을 쭉 내밀며 불만을 표했다.
손가락은 아파 죽겠는데 걸음은 계속 빨라졌다.
단우현은 나름대로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몸이 아픈 장삼태에겐 이보다 빠를 수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와서 더욱 그랬다.
“사람의 몸이란 건 참으로 신기하지. 부러진 다음 제대로 붙이면 더욱 단단해지니까. 지금 네 고통도 그러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해라.”
장삼태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단단해지긴 뭘 단단해져?’
맨손으로 나무를 꿰뚫으려 하고, 바위를 부수려 하면 어느 손이 안 부러지겠는가?
외공을 익힌 절정 고수라도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장삼태는 외공 따위 익혀 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손가락이 아작 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눈물을 머금고 말을 건넸다.
“대체 이게 수련입니까? 고문입니까?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 심지어 손가락 부러진 사람한테 산적 잡으라고 시키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온갖 경험이…….”
“아! 또 그 소리!”
장삼태가 씩씩거렸다. 부러진 손가락으로 산적을 때려잡으려 하니 그만큼 더 힘들었다.
더욱이 각법만 펼쳐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공수(攻守)의 전환이 늦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느리니 몸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산적들을 토벌하면 뭐하나?
철전 한 푼 손에 쥐지 못했다.
“얻은 것도 있지 않으냐?”
“크큼…….”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장삼태를 돌아봤다. 산적들을 토벌하여 그가 얻은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별호라는 것을 얻었던 것이다.
녹림은 물론이고 이곳까지 오는 길에 보이는 산적들을 전부 쓸어 버렸으니, 그 활약을 지켜본 이들과 도움을 받은 자들의 입을 통해 장삼태의 이름이 퍼져 나간 것이다.
“섬전각(閃電脚)이라…… 번개처럼 빠른 각법을…….”
“아아아악! 하지 마십시오! 정말 하지 마십시오!”
장삼태가 아픈 손가락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얼굴을 붉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장삼태는 울상을 지었다.
검황이니, 소쌍도니 낭왕이니 하는 멋진 별호들도 있는데, 왜 하필 그런 별호가 붙었단 말인가?
심지어 장삼태의 무공은 각법이 아닌 권장지각이었다.
포달랍궁의 무공도 있으며, 단우현이 알려 준 태극권 또한 다시금 수련 중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지법까지 수련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데 섬전각이라니?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뭐가 번개보다 빠르단 말인가?
제 눈에 안 보이면 다 번개인가?
장삼태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런데 장주님…….”
“왜 그러느냐?”
“그…… 손가락으로 나무와 바위를 치는 게 무슨 무공입니까? 장주님의 지법은 픽픽 날아다녔잖습니까?”
장삼태가 힐끗 단우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산적을 잡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싸우다 보면 자신의 실력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음? 나는 나무나 바위를 치라고 한 적이 없는데?”
단우현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순간, 장삼태의 표정이 확 변했다.
마치 충격을 받은 것처럼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단우현을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더니 이내 구겨졌다.
“아니, 시벌! 나무를 부수라면서요?!”
“입이 참 걸구나. 손가락으로 나무를 부수라 했지만 직접 치라는 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억……!”
피식 웃음을 짓는 단우현의 표정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물론 그의 말이 맞았지만, 애초에 손가락으로 나무를 부수라고 하면 당연히 직접 때려 부수는 것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한 고생은 뭐야?!’
장삼태는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을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애초에 나무를 치지 않고 어떻게 부숩니까?”
“공력을 이용하는 거다.”
순간 장삼태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탁! 하고 끊어졌다. 두 눈에 불길이 일었으며 단우현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런 걸 할 줄 알았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이 새끼야!?”
천천히 앞서 걷던 단우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슥 하며 뒤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은 마치 악귀나찰을 보는 것처럼 흉악스러웠다.
장삼태의 분노마저 그 눈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씩씩거리던 장삼태의 표정이 천천히 돌아오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 시퍼렇게 안색이 죽었다.
“끅!”
딸꾹질을 하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소리를 내뱉었는지 깨달은 것이다.
부들부들-
그의 눈동자는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떨렸다.
“그…….”
“더 해 봐라.”
“그게…… 말입죠…….”
“해 보라니까?”
살짝 삐딱한 단우현의 말투에 장삼태는 호흡을 골랐다.
그래, 오늘이 제삿날이로구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 새삼 허망함을 느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유유히 흐르는 구름이 보였다. 그 사이로 단소미가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씁쓸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린 장삼태가 단우현을 바라봤다.
“아니, 뭐…… 딱히 장주님한테 한 소리는 아니고…….”
“…….”
“그렇다고요…… 시벌…….”
모든 것을 포기한 장삼태가 툭 하고 욕을 뱉으며 한껏 웃음을 지었다. 무슨 수를 써도 단우현의 손아귀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이윽고 천천히 다가오는 악귀나찰을 보며 부르르 떨었다.
* * *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장삼태는 힐끗 눈을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술과 고기를 먹고 있는 단우현이 보였다.
그 모습에 괜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곳은 섬서였고,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서안이 있었다.
서안은 섬서의 성도인 만큼, 노숙하는 것보다 그곳에 머무는 편이 여러모로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상하단 말이지?’
그는 제대로 얻어맞아 아직까지 아픈 얼굴을 문지르며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 봤다.
대로로 다니기도 하였지만, 주로 이용한 곳은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길이었다.
산적이 있다는 소문이 난 곳들이었으므로, 인적이 없을 법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산적을 잡으려 한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단우현은 이상하게 지금까지 큰 마을에는 되도록 들어가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추적을 피하려는 것처럼.
“저…… 장주님.”
“뭐냐?”
“왜 노숙을 하는 겁니까?”
의문 섞인 물음에 순간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렇지 않게 육포를 씹으며 장삼태를 바라봤다.
“이목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목이요……?”
“그래.”
“혹…… 제가 모르는 사이에 수배라도 되셨습니까?”
툭 하고 내뱉은 말에 단우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장삼태가 황급히 입을 닫았으나,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단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웃었다.
더 이상 때릴 곳도 없을 만큼 전신이 부어 있는 놈이니 괜한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움찔한 장삼태가 손이 날아오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닥불을 뒤적거렸다.
그때였다.
슥슥-!
어디선가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단우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제법 먼 거리에서 들리는 데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이쪽으로 오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이런 늦은 시간에 많은 이들이 움직이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급한 상행이라면 이해할 법도 했으나,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그 또한 아니었다.
“뭐가 있습니까?”
“사람이다. 그것도 제법 많구나.”
“혹…… 산적이나 도적들입니까?”
“아니,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구나.”
장삼태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데 또다시 도적놈들을 상대하려면 괜한 힘을 뺄 것 같았다.
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의 얼굴에는 흥미진진한 느낌이 가득했다.
그걸 본 장삼태는 깨달았다.
‘이건 안 가고는 못 배기겠구나.’
“가 보도록 하자.”
“……예.”
결국, 장삼태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며 노곤한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