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58
“…….”
“…….”
사람의 진심을 파악할 때는 눈을 보면 된다고 했다.
눈빛 속에는 사람의 온갖 감정들이 깃들어져 있는데,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진심인지 혹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흠…….”
천무광은 마당 한쪽에 주저앉아 단소미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소미 또한 마찬가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다가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곧 적응되었는지 아니면 눈싸움을 하자고 생각한 것인지 소녀는 가만히 천무광의 눈을 쳐다봤다.
“……네 이름이 뭐냐?”
“소미예요! 단소미! 예쁘죠?”
배시시 하며 웃음을 지었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천무광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형님 딸이라고?”
“네!”
“그럼 그 인간의 여자는 누구냐?”
천무광은 사실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무신이다.
지금은 전설로 불리고 과거에는 그야말로 사신의 강림이라 생각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로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였던 혈귀.
그런 이가 천 년여 정도 보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딸을 데리고 있다.
물론 이 아이가 친딸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만 보면 단우현과 닮은 구석이 없는 데다, 천살성이 아이를 가지면 보통 그 기질이 자식에게까지 이어지기 마련인데 그러한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도 묻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천무광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세 명의 여인이 보였다.
한 명은 시녀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제법 반반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단우현의 취향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가 단우현 주위를 아무리 돌아다닌다 한들, 단우현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제갈가의 여식이며, 나름대로 강한 후보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듣기로는 최근 함께 호북에도 다녀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이유가 유람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여인이라면 질색하며 곁에 두지 않는 단우현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둘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단 공자, 이건 어때요?”
남궁소혜였다.
매향이나 제갈연보다 입고 있는 옷은 그리 좋지 않다. 이유인즉슨, 꾸미는 것보다 무인으로서 무도(武道)를 중시하고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청초하며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으며, 기실 천무광이 봐도 눈이 호강할 만큼 미모가 출중한 여인이었다.
또한, 남궁소혜를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얼굴은 그렇지 않으나 그 성격이 과거 남주련과 많이 닮은 탓이다.
‘얼굴만 바꿨지 말 그대로 주련이 고년이지.’
여인을 곁에 두지 않았던 단우현이 처음으로 곁에 두었던 여인.
삼천이라는 지위까지 올라왔으며, 여전히 단우현만을 생각하는 여인.
그런 면에서 남궁소혜가 가장 적합해 보였다.
“으음? 아빠는 혼인 같은 거 안 하셨는데요.”
“그건 보면 알지. 하지만 잘 봐라. 누구랑 제일 잘 어울리는지.”
천무광이 단소미의 어깨를 부여잡고 단우현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곁에는 제갈연을 비롯하여 매향과 남궁소혜까지 모여 있었는데, 마치 한 편에 화폭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것을 바라보며 단소미가 끙하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아빠는 소미랑 있을 때가 제일 잘 어울리는데요?”
“엉?”
“……?”
“……진심이냐?”
“네.”
단소미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 행동에 천무광은 기가 막혔다.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가 묻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천무광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물었다.
“그럼 저중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누구냐?”
내뱉는 질문에 단소미가 또다시 끄응 하며 신음을 흘렸다.
자그마한 아이가 보기에는 사실 남궁소혜나 제갈연, 그리고 매향은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이 세 여인을 따라잡을 수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면…….
“소미!”
“응?”
“소미가 제일 예뻐요.”
“…….”
천무광은 잠시 뜸을 들였다.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 이 아이가 결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결국, 저 앞에 있는 여인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욱 예쁘다고 생각을 하는 거다.
그가 피식하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것을 본 단소미가 볼을 부풀렸다.
“왜요! 소미가 제일 예쁜데요!”
“하하하! 그렇지! 네가 한 천 년 정도 더 살면 저만큼 예뻐질 거다.”
“그게 뭐예요…….”
결국, 예쁘다는 소리인지 아니라는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소미가 툴툴거렸다.
단소미의 불만 가득한 시선이 천무광에게 향했다.
“소미는 예쁘거든요!”
“그래그래, 네 나이 때 애들은 다 예쁘지. 한 다섯 살 됐니?”
퍽!
“커억!”
순간 자그마한 주먹이 복부를 후려쳤다. 어린아이의 주먹인지라 방심하고 있었던 천무광은, 새우처럼 등이 굽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뭔 놈의 꼬맹이가…….’
“소미는 열 살이에요! 곧 열한 살이 된다고요!”
기습적으로 얻어맞은 천무광은 인상을 찌푸렸다. 공력을 돌리고 있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아이의 힘이 바위마저 때려 부술 정도라니?
역시, 단우현의 딸은 딸인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열 살이라고?’
천무광이 힐끗 단소미를 바라봤다.
자그마한 키와 아담한 생김새는 아무리 봐도 열 살로는 보이지 않았다. 많이 쳐줘야 일곱이며 적게 잡으면 다섯 살이다.
“자…… 작구나…….”
“으……!”
단소미가 그렁그렁 눈물 맺힌 시선을 보냈다. 당장이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누구보다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거침없이 언급하는 천무광의 행태가 여린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눈물을 쏟아 내려 하는 그 순간.
“뭐하는 것이냐?”
느닷없이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천무광이 다급하게 등을 돌리며 저도 모르게 물러섰다. 누구도 자신의 뒤를 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을 해 왔는데, 단우현은 여전히 가볍게 뒤를 잡았다.
그것을 깨달으며 천무광은 인상을 썼다.
“아무것도…….”
“…….”
단우현이 지그시 천무광을 내려다봤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 시선을 받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은 압박감에 천무광이 땅을 짚으며 단우현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는 반항하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이는 무인으로서 그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네놈…… 이곳에는 무엇하러 온 거냐?”
지그시 시선을 준 단우현이 물었다.
천무광은 평범한 자가 아니었다.
등선한 뒤, 천무제를 몰아내고 팔선의 자리를 새로 꿰찬 현 팔선 중 한 명.
그런 중요한 이가 아무런 단순히 지나가다 단소미를 발견하고 찾아왔다는 것은 결코 말이 되지 않았다.
천기를 읽는 팔선이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단가에 머물러 있는 천무광의 의중이 궁금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힘을 써서라도 알아내겠다.
단우현의 표정에는 그런 의지가 보였다.
순간 천무광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깃들었다.
그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으면 했던 것을 기어이 드러내려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타인의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이였기에 침묵하고 있었는데, 천 년이라는 시간이, 아니 이 단소미라는 아이와의 만남이 단우현을 바꿔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천무광이 한숨을 내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단소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바닥에 앉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른들은 괜찮은가 보네.’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쪼르르 남궁소혜를 향해 달려갔다. 보아하니 단우현과 천무광 사이에 어려운 이야기가 오갈 것 같은데, 괜히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어린아이치고는 참으로 영특했다.
“누구를 쫓고 있었습니다.”
“쫓아?”
“염황무제(炎皇武帝).”
염황무제라는 말에 단우현의 슥 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흥미가 인 듯 반짝 눈을 빛냈다.
그것은 바로 놈이 무신을 가두었던 팔선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놈이 악양에 있나?”
“아…… 악양에 있는 것은 아니고…… 근처 어딘가에? 저도 기척만 읽었고 어디에 있는지는 잘…….”
“그걸 믿으라고?”
단우현의 싸늘한 물음에 천무광이 애써 웃음을 지었다.
팔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변한 눈빛.
이미 잊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단우현의 마음속 어딘가에 당시 팔선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심지어 천무제의 움직임을 읽지 못한 이도 아닐 테고…….’
이미 천무제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단우현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혈마를 죽였음에도 아직까지 그 잔당은 사라지지 않고, 단우현 주변에 기이한 바람이 몰아치니 그것을 모를 사람이 아니다.
‘그 여우 년이 입을 터는 바람에…… 쯧쯧.’
단우현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었던 일이다.
그가 나서기 시작한다면 결코 피 한두 방울 보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이 중원 전체가 크게 흔들릴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태였다.
그때, 단우현이 주저앉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천무광의 머리를 매만졌다.
“네 의중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놈이 정녕 그런 생각을 했다면……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오싹-!
단우현의 말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단우현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앞뒤 가리지 않고 나타난 것이 잘못되었다.
단우현을 만나는 순간부터 감출 수 없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저도 아직 먼 것 같습니다.”
“굳이 다 아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마라.”
천무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상을 썼다.
예전과는 다르다.
천 년 전과는 명백히 다른 상황임에도 여전히 단우현은 천무광을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곧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염황무제라면…… 류화군이었던가?”
“커컴! 어, 어쨌든 그놈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그것참 재미있는 이야기야.”
단우현 또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류화군이라?
아주 오랜 기억 속 그놈의 얼굴이 똑똑히 머릿속에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