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01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은 염이라 불리는 사내 또한 마찬가지다.
죽인 이의 이름을 기억하냐고?
그런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그 특정한 대상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면, 딱히 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다.
애초에 우두머리를 죽이러 가는데, 그 밑에 있는 수하들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일 따위는 없으니까.
“……큭!”
염은 이를 갈았다.
단우현은 혈마를 죽이기 위해 온 사방을 뒤지고 있었으며, 목적이 혈마였으니 그 밑에 있는 이들의 모습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름은커녕 어떻게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어찌 죽여 나갔는지 또한 알 리가 없었다.
염은 저도 모르게 바득 이를 갈았다.
생각하는 순간 머리에 피가 올랐다.
“빌어먹을 자식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구나.”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 말을 했던 이가 백은 넘지. 하나같이 먼저 눕더군.”
부들부들-
염은 몸을 떨며 이를 갈았다.
그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을 냈다. 뿜어내는 살기는 더없이 날카로워 마치 피부를 찢고 들어오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누구도 제대로 두 발을 딛고 설 수가 없다.
염은 머리를 쓰다듬어 올렸다.
딱히 단우현의 말에 화가 난 것은 아니다.
다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치욕을 느끼고 있었다.
내뱉는 말 한마디, 눈에 보이는 저 여유. 천하의 염이라는 최강자를 눈앞에 두고도, 벌레만도 보지 않는 저 눈빛.
과거에도 이러했다.
그 당시 중원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던 염을 상대로, 무신이라 불린 이는 그저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렸다.
같은 상황을 또 한 번 겪는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염이 무신도경을 익힌 것이 아닌가?
치솟아 오르는 그의 혈기가 미친 듯이 사방을 장악해 나아갔다.
한순간, 싸움조차 멈출 정도로 그 압박감은 점점 더 부풀어 올라,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빼앗고 그 마음마저 꿇게 하고 짓밟는 것 같았다.
주르륵-
당사휘마저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털썩 주저앉아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세를 느끼며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절대 이기지 못한다.
충격과 공포가 머릿속을 휘감았다.
“죽거라! 죽어 회개하거라! 이 염을 얕보았던 것을! 이 염을 바라보는 그 눈을 뽑아 질근질근 짓밟아 주겠다!”
“놀고 있네.”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명백한 비웃음.
상대의 자신감이 조금도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밀려 들어오는 해일과도 같은 기세를 뚫고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런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기세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가?
혹은 자살을 하기 위해 저러는 것인가?
검황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이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하려 하는가?
하나같이 의문을 품고 단우현을 쳐다보는 순간, 그의 칼이 휘둘러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던 단우현은 어느새 염의 코앞에 서 있었다. 그 움직임은 마치 흐르는 물과도 같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생각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아니다.
단우현과 염 사이의 거리는 십 장.
결코 가깝다 할 수 없는 거리였으며 단우현은 고작해야 몇 걸음 걸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염의 앞에 서 있는가?
모든 이들이 경악성을 터트리며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서걱-!
가볍게 휘둘러진 단우현의 검이 염의 머리를 날렸다.
훌쩍 날아간 머리가 허공을 배회했다.
이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가볍게 땅으로 떨어졌다. 그 표정은 단우현과 자신 사이의 거리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것처럼, 기세를 내뿜고 있었던 그때와 같았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촤아아아악-!
이윽고 주인을 잃어버린 몸뚱이에서 자욱하게 피가 솟구쳤다.
크게 휘청이던 몸뚱이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넘어갔다.
쿵!
그 소리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고작해야 사람의 시신이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겐 천둥보다 더욱 커다랗게 들렸다.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자.
천하의 칠성 중 한 사람인 당사휘조차 어찌하지 못했던 이가, 고작해야 일검을 버티지 못하고 넘어갔다.
본인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죽은 판국이니, 이 놀라움을 어찌 입에 담으랴.
그때, 단우현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누구를 바라보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한곳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또다시 숲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모든 이들이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저 사람은…….”
남궁소혜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염을 제압하는 능력.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졌고 그것은 정사 연합에게 있어서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뭣들 하는 건가요!”
남궁소혜가 앙칼진 소리를 쳤다.
지켜야 할 주인을 잃은 혈천의 무리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어떻게 해서든 이 전세를 다시금 가져와야 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모든 이들의 정신을 깨웠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은 정녕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죽어라!”
“우아아아!”
순식간에 기세를 타며 달려든다.
누구도 지금 정사 연합이 가지고 있는 사기를 꺾을 수 없다.
머리를 잃어버린 자들은 불길한 마음을 떨쳐 낼 수 없었으며, 곧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히 형세가 기울어져 갔다.
혈천 무리들이 강하게 저항을 하고 있으나, 최전선에 있는 남궁소혜의 실력은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버거웠다.
심지어 다소 숨을 고른 마장강 역시 합류하였으니, 순식간에 전장 상황을 뒤집고 승기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모든 상황을 이끌어 갔어야 했던 사천당가, 특히 당중악과 당사휘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호남단가의 저력이 무섭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섯 사내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염을 상대로 고작해야 일검.
천하의 검황조차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당사휘는 부들부들 손이 떨렸다.
만약 자신과 단우현이 붙는다면?
손아귀에 맺힌 땀이 좀처럼 식지 않았다.
* * *
콰다당-!
“커억!”
장력을 얻어맞은 무천풍이 날아가 바위에 부딪쳤다. 한 움큼 피를 토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몰골은 심히 나빠 보였다.
축 널브러진 채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다.
그 실낱같은 숨 역시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수(水)라 불린 사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무천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당하게 나서며 자신들을 도발했던 네 명의 사내들.
호남단가의 최고수들이라 하던가?
그러나 실상 손을 부딪치는 순간 깨달아 버렸다.
무천풍은 그의 적이 아니다.
경험은 틀림없이 많은 것 같으나 공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지 않았으며, 무공을 펼치는 몸 역시 민첩하지 못하고 어딘가 굳어 있는 느낌이었다.
나름 강자라 생각했던 사내는 자신의 생각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닫고 혀를 찼다.
“멍청했군. 차라리 풍이 고른 놈이 좋았을 텐데.”
“쿨럭……!”
무천풍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지근거리에 있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죽은 생선을 보는 듯 피폐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으며, 동공 역시 서서히 풀려 가고 있었다.
무천풍이 손을 뻗으려 했다.
사내가 그것을 가만 바라봤다.
이미 가망이 없음을 깨달은 탓인지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죽어 가는 이의 모습을 눈에 새기며 곧 혀를 찼다.
툭.
무천풍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 눈이 감기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재미없게…….”
사내는 또다시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살아 있는 것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체를 가지고 노는 취미는 없었다.
다음 사냥감을 찾으러 가는 것인가?
수라 불린 사내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정사 연합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보았다.
눈앞에 한 인영이 있는 것 같았다.
밤이긴 하여도 이미 밤낮을 구분 짓는 경지를 아득히 초월하였기에, 누군가 있다 한다면 그 모습을 눈에 새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그림자인 듯 그렇지 않은 듯, 이해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 번 눈을 깜빡였다.
그 흐릿함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착각이었나 싶은 순간.
서걱!
머리가 날아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날아오른 머리는 아직 의식을 잇고 있는 것인지 뒤바꾼 풍경 속에서 한 사내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가?
그림자는 우두커니 무천풍의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사내가 본 이승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바보 같구나.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하다니.”
단우현은 널브러져 있는 무천풍을 바라봤다. 숨이 멎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덤덤하여, 슬픈 것인지 아니면 그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뱉는 말투 역시 고요했다.
“아니…… 뭐,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때,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던 무천풍이 번쩍 눈을 떴다.
시체가 되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법 멀쩡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툭툭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는 그 모습은 제법 피를 흘리기는 했으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귀식대법인가?”
“……그래.”
“잘도 그런 걸 익히고 있구나.”
“아니, 뭐…… 여러모로 쓸 데가 많아.”
단우현의 시선에 무천풍은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어렵게 상대하고 있었던 사내를 한순간에 베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신위를 목격했다.
젊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무예가 하늘에 닿았음이다.
‘사도학보다 강한 거 아냐?’
그리 생각을 하면 사도학이 단우현 앞에서 쩔쩔매는 것이 나름 이해가 되었다.
“그것으로 황실에서 빠져나왔나?”
“그렇지…… 쓸모가 많다니까.”
“자랑이구나.”
단우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으로 살아남은 이가 장삼태가 아닌 무천풍이란 점에서 다소 기가 찬 모양이다.
“나중에 삼태 녀석에게도 알려 주거라. 그 녀석은 네놈보다 잘 쓸 거 같거든.”
“그…… 그렇게 하겠네.”
비꼬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말에 무천풍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어렵게 익힌 무공인데, 천대받는 것 같아 그리 기분이 내키지 않기도 했다.
“자네도 배워 볼 텐가? 제법 어…… 려운 무공일세.”
“흥미가 없군.”
“……고…… 고절한 무공인데도?”
“필요 없다.”
말을 자른 단우현이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무천풍이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