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17
비천웅은 다시금 눈을 떴다.
서서히 감각들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곤, 시야에 들어온 풍경을 바라봤다.
지난번과 같은 곳, 부서진 판자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묘하게 그를 괴롭혔다.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나간 것인지 아니면 그를 버리고 도망을 친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라는 생각에 비천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천웅은 조용히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했다.
혹여 있을지 모를 일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다소 위험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운공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미약하게 남아 있는 내공이 몸속을 돌며 일주천을 했다.
그것만으로 몸 상태가 다소 좋아진 것 같았다.
모든 운공을 끝내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몇 시진이 지난 것인지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조금 낫군.”
비천웅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일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수준까지는 회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당장은 만족해야 할 상황이었던지라 비천웅은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허름한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던 아이가 손에 그릇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눈을 뜬 비천웅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주춤 물러섰다.
“…….”
“깨…… 깨셨어요……?”
아이가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못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 고개마저 푹 숙이고 있었다.
지그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비천웅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일 정도로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이곳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할 일이 있었고, 그것을 완수해야 한다.
“아…….”
일어서려던 비천웅이 크게 휘청였다.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상처가 다 낫지 않아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아이가 깜짝 놀라 달려들었다.
손에 쥔 그릇이 툭 바닥으로 떨어져 쏟아졌다.
챙그랑 하는 격한 소리와 함께 아이의 몸이 휘청이는 비천웅을 받아 냈다.
그러다 깜짝 놀랐는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히익…… 죄송합니다…….”
“왜 사과를 하느냐?”
갑작스레 물러서는 이를 보며 비천웅은 인상을 썼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사과를 들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침상에 앉은 그가 가만 아이를 쏘아봤다.
“제…… 제가 만져서…….”
“……그게 사과할 일인가?”
비천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가 쓰러지려는 어른을 부축한 것이 어찌 잘못된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어이없는 실소를 지었다.
이 아이의 모습은 실로 흉측했다.
비천웅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그것은 분명하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오죽할까?
그러니 이런 외진 곳에 숨어 사는 것이다.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며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비천웅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아이를 향해 물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너인가?”
“네.”
아이는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를 회상하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느닷없이 혼절한 비천웅을 어린아이의 힘으로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집과 가까운 곳이었고, 또한 낡아 빠지기는 하였지만, 수레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곳까지 옮기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수레에 올렸고 다시금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비천웅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비천웅 인생 최대의 실수이며 가장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오황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떠받들어지는 존재가 어린아이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다니?
이렇게 자존심 구겨지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웃기는군.”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 사이, 아이가 기묘한 짓을 하고 있었다.
떨어진 그릇을 손에 쥐고 바닥에 엎어진 음식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이미 먼지와 흙으로 인하여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 버렸지만, 그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듯 음식을 챙긴 그릇을 가져와 비천웅에게 내밀었다.
“너나 먹어라.”
“배…… 안 고파요?”
“나는 상관없으니 너나 먹어라.”
비천웅 역시 허기가 지기는 하다.
하지만 저러한 음식을 먹을 만큼 비위가 강하지 않다. 또한 저 음식을 그가 먹어 버리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신의 입 주변에 무언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아이가 칼을 판 돈으로 죽을 만들어 비천웅에게 먹였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이가 배를 채웠는지 채우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는 비천웅의 눈치를 살피다 이내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것을 바라보며 비천웅은 인상을 썼다. 저 행동만 보아도 며칠간 모든 음식을 비천웅 본인이 먹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칼을 되찾아야 할 텐데…….’
아이의 먹는 모습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비천웅은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무제가 하사한 검이다. 그것을 고작 철전 열 푼에 팔았다 하니, 어이없고 실소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비천웅은 고개를 저으며 검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그것을 되찾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먼저 몸을 완치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의 기습이라도 받는 날에는 결코 곱게 끝나지 못할 것이다.
검을 되찾는 것은 몸이 완치된 후라도 상관없다.
그런 생각을 하던 비천웅의 눈앞으로 그릇이 내밀어졌다.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아이는 배를 채웠던 것인지, 남은 것을 그에게 주려 하는 것 같았다.
그 일련의 행동을 바라보며 비천웅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 *
“그 아이 말이냐?”
“네!”
객잔에 자리를 잡은 단소미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재빠르게 저잣거리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나 아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고, 사람들은 마치 꺼리는 것처럼 쉽게 그 아이에 대한 것을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노점 주인은 당과를 먹으며 묻는 세 아이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내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그 흉물에 대한 것이라면 어디를 가서도 똑같을 테니까. 다들 아무도 말을 안 해 줄 테니 괜한 것 묻고 다니지 마라.”
“왜요?”
“그런 게 있어, 이 녀석아!”
“왜요?”
“왜죠?”
“…….”
주지약과 단소미가 뚫어지게 노점 주인을 바라보며 묻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골치 아픈 상대다.
‘심지어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 같고…….’
입고 있는 옷만 보면 안다.
주지약은 물론이고 단소미나 홍진랑 역시 보기 드문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으니만큼,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고관대작이나 혹은 그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높으신 분의 아이들로 보였다.
괜히 밉보였다간 웃을 수 없는 사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노점 주인이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과 키를 맞추듯 주저앉았다.
“그 아이는 말이다…… 악마의 자식이다.”
“악마?”
“그래, 마을 사람들이 쉬쉬하는 이유가 있는 거지. 그 흉측한 얼굴을 봐라. 어디 사람의 얼굴이더냐? 분명 저주를 받은 거야.”
“하지만 그냥 병일지도…….”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디에 있어? 그리고 병이라면 더더욱 가까이하지 말아야지!”
노점 주인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저주를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따위는 관심 없었다.
본디 그 아이의 집은 마을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이 저렇게 변하고 난 뒤부터, 그것을 고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탓에 가문은 쇠퇴하고 몰락했다.
결국 얼마 전 그 부모마저 같은 병에 걸려 죽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꺼리는 것은 당연했다.
부모를 잡아먹은 악마다.
그러한 말이 오가고 있으니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고 꺼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려 둔 것만으로도 많이 참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어디서 주워 왔는지 요상한 칼을 팔아 치우기까지 했다고.”
“칼이요?”
“그래, 기이한 문양을 새긴 칼인데 말이지…… 보통 물건이 아니었어.”
노점 주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간에서 그것을 헐값에 가져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어디선가 주웠음이 분명할 테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내 것이라며 대장간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아이가 또 사달을 낸 것이야.”
언제 피가 튈지 모른다.
그 검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듣기론 상당한 보검이라 하지 않던가?
검에 대해 조금 아는 이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거대한 장원을 살 수 있을 만큼 큰돈을 만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떠들고 다녔다.
“헤에…….”
“어쨌든 함부로 그 아이에 대해 캐묻고 다니지 마라. 괜히 눈총만 받을 테니.”
노점 주인은 그런 소리를 하며 서쪽을 바라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장간이 보였다.
그곳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세 아이는 그런 노점 주인을 힐끗 바라보다 다소 떨어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오랜 시간 주위를 돌아다니며 아이에 대한 것을 알아본 탓인지, 한둘씩 상당히 지쳐 있는 것 같았다.
단소미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 힘드네.”
“그러네…… 이제 그만 돌아가는 게 어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주지약이 힐끗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대 해가 지고 있었다.
곧 어두워질 거다. 밤거리를 어린아이들끼리 돌아다니는 것은 좋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객잔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단소미는 그것이 다소 불만스러웠으나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단우현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애초에 말이야. 넌 그 애를 찾아서 뭐 하려는 거야?”
그때, 홍진랑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뭐라고? 얼굴이 왜 그러냐고? 부모님은 어디 있고 어디 사냐고? 쓸쓸하지 않니? 배가 고프니? 이거 하나 먹을래? 그런 소리?”
“…….”
홍진랑의 목소리에는 다소 날이 서 있었다.
그 역시 아이가 불쌍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지만 어른도 아닌 아직도 어린아이인 단소미가 그 아이를 찾아가 무슨 말을 하고, 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함께 살 거냐?”
“아니…….”
“그 얼굴을 고쳐 줄 거냐?”
“그것도…… 아닌데?”
“그럼 도대체 찾아서 뭘 하려는 거야?”
단소미의 착한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나, 정녕 그 아이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면 단소미가 아닌 단우현 같은 어른들이 나서야 했다.
이 마을의 분위기로 보아, 단소미의 도움은 그 어린아이에겐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홍진랑이 한 걸음 단소미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코앞에 그녀의 얼굴을 두고 모진 말을 뱉었다.
“네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지 마.”
그것은 오랫동안 주지약과 홍진랑이 단소미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