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69
“아니, 그럼 바람을 따라다닌다는 말입니까?”
“…….”
한 젊은 사내가 있었다.
빡빡 밀었던 머리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였는지 밤송이처럼 나 있었고, 한 손에는 붓과 다른 한 손에는 죽간을 들고 있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한 번 입이 터지면 쉴 새가 없다 보니 단우현은 없는 사람 취급한 적이 더 많았다.
이놈이 언제부터 따라다녔던가?
기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없는 놈 취급을 하고 다니다 보니 정말로 없는 놈 같아, 가끔 놈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여, 단우현에게 있어선 공기와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천무광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던데…… 어찌 알게 된 사이입니까? 아-! 혹시 보자마자 두들겨 팼다던가?”
“…….”
“살아 있는 것을 보니 꽤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단우현은 앞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닫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반짝거렸다. 그 별빛 사이로 둥근 달이 참 야무지게 떠 있다.
“저…… 괜찮겠어요? 쫓아 버릴까요?”
“누구를 말이냐?”
“아니, 저 인간…… 말이에요.”
남주련이 쓴웃음을 지으며 힐끗 한쪽을 쳐다봤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무언가를 적어 가고 있는 그를 보는 시선이 못마땅했다. 여정에 아무런 도움조차 되지 않는 이가, 끝없이 따라다니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남주련과 같은 곳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다.”
“아니…… 저기 사람 있잖아요…… 사람……. 벌써 몇 달을 쫓아다니고 있는데…….”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이상한 소리 할 시간에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거라.”
“…….”
“…….”
그때 남주련의 표정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단우현을 바라보며 재미가 있다는 듯 살짝 웃음을 짓고 있었던 걸로 기억했다.
“…….”
그렇게 옛 꿈에서 눈을 뜬 단우현이,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한 젊은 놈이 붓과 죽편을 손에 쥐고 있기는 하나, 얼굴이 어찌 생겼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지워 낸 것인지.
어느 쪽이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 하여 떠오른 기억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여, 곰곰이 생각을 하던 단우현은 그제야 아! 하며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이제야 생각이 났구나.”
이내, 저도 모르게 피식하며 웃음을 지었다.
있었다.
곁을 쫓아다니며 중얼거리던 패기 넘치는 젊은 놈 하나가 말이다. 워낙 말이 많고 촐랑거리는 탓에 없는 놈 취급을 하던 것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까지 와 버렸다.
하여, 남궁천이나 사도학의 질문에도 모른다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머릿속에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도, 그 얼굴과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남주련이 그놈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 보면 남궁소혜와 장삼태의 관계라 할까?
“깨셨어요?”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힐끗 문 쪽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남궁소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씻을 물과 그것을 닦을 천을 들고 들어왔는데, 누가 봐도 시녀와 주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단우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점소이로 취직했나?”
“아뇨, 지금 시간이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남궁소혜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슬슬 동이 터 올 시간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 시간에 일어나니 만큼 자연스레 준비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행동은 마치, 단우현이 어떤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
“……왜요?”
“혹…… 내가 자는 시간도 아나?”
“음…… 축시(丑時) 초 아니었던가요.”
“……명상을 하는 시간은?”
“사시(巳時)죠. 밥 먹고 바로 하잖아요.”
“…….”
“뭐예요, 대체?”
남궁소혜는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일같이 보는 사이이니 어떤 시간에 뭘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아는 것이 보통이지 않은가.
“혹…… 남궁 노인이 몇 시에 일어나는 줄은 아나?”
“알 게 뭐예요.”
단우현이 질끈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한 번 떠올랐던 기억 때문인지 과거 기억이 물밀 듯 쏟아져 올라온 탓이다.
– 변소는 매일 이 시간에 가네요?
– 하하하! 그러고 보니 이제 연무하실 시간입니다!
– 슬슬 배고프지 않습니까? 딱 지금인데……?
“……그렇군. 예전에도 있었다.”
“네?”
“너와 같은 아이가 말이다. 소름이 돋는군.”
“뭐…… 뭐라고요?!”
남궁소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쌍심지를 치켜떴다.
기껏 생각해서 가지고 왔더니 누군가와 비교나 하고, 심지어 소름이 돋는다 하지 않는가? 그것이 여자에게 할 소리던가.
어이가 없어 매섭게 노려보며 물과 천을 내려놓았다.
“그럼 가 볼게요.”
“다른 건 어찌 되었지?”
“아-! 마교에서 와야 할 정보 말인가? 딱히 도움 되는 건 없고…… 하오문에서 온 게 조금 확실하네요.”
“하오문 일 처리가 빠르군.”
“누가 시킨 일이라고 천천히 할까요. 목이 한 열 개나 되면 또 모를까.”
남궁소혜는 하오문주를 떠올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호남단가의 이름으로 들어온 의뢰를 보며 얼마나 기겁했겠는가?
잘못했다간 단우현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자세히 알아본다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여, 심하게 고생을 했을 것이다.
“사 어르신은 벌써 가셨어요.”
“그렇군…….”
사도학은 마형단의 정보를 얻은 것과 동시에 움직였다. 마교의 일이다 보니 다른 이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컸다.
하여,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던 남궁천마저 놓고 가지 않았는가.
“그럼 우리도 가지.”
“네?”
“보고 싶구나. 그 경전이라는 거 말이다.”
“……정말로 그거 때문에 움직인다고요?”
“그래, 뭐 잘못되었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남궁소혜가 다소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단우현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신의 경전이라 하였으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도학이 이미 움직인 상황에서, 따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누구든 한 명만 있어도 어찌 되었든 일은 처리가 될 것이니 말이다.
결국, 사도학이 경전을 손에 넣을 것이고, 단우현이 그것을 보게 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선수범하여 찾으러 간다?
“무슨 일…… 있어요?”
“잠시 옛 꿈을 꾸었다.”
“아, 네…… 그러세요?”
남궁소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결하게 답했다. 옛날 꿈을 꾸었다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더욱이 조금 전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면 옛날 여자 꿈이라도 꾼 모양이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해서, 그것을 가져와야겠다.”
“네에?!”
단우현은 잠시 잊힌 기억을 억지로 끌어 올렸다.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그의 뇌리를 자극했다.
– 오늘…… 무신이 똥을 쌌다. 인간을 벗어난 자도 똥을 싸나 보다. 똥방귀 소리가 격렬한 게 뭘 잘못 머, 컥?!
– 쓸데없는 건 쓰지 말거라.
“하아…….”
단우현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분명, 그러한 것 외에도 알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많이 써 놨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코,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해야 하는 금서인 셈이다.
“반드시 찾는다.”
“하아……?”
웬일로 의지가 굳다.
십 년을 넘게 보아 왔지만 이처럼 굳은 의지를 보이는 것은 또 처음이다. 하여, 다른 때보다 색다르게 보이지 않은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 그래요. 그런데 소미랑 장 씨는 어쩌려고요?”
“남궁 늙은이가 남아 있으니 괜찮겠지. 백호도 곁에 있고 말이다.”
“알겠어요…… 서둘러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되도록 빨리 준비하거라. 시간이 없으니.”
왠지 모르게 조급함이 묻어나는 말이다.
남궁소혜는 그것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재촉하는 시선에 저도 모르게 발 빠르게 움직이며 방으로 향했다.
* * *
“하아, 하아……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구자곡은 숨을 헐떡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천지교 교주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물건을 손에 넣고, 그곳을 향해 가는 도중 설마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잃어버리다니……!”
허탈함이라는 것이 이러할까?
어렵게 포달랍궁 경계를 뚫고 들어가, 난해하기 짝이 없는 진식을 파훼하고 손에 넣은 물건이다. 이것만 있으면 교주의 곁에서 날개를 펴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교를 빠져나와 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데, 이 무슨 뜻하지 않은 일인가.
분명 품에 넣어 놨던 그것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품에서 떼어 놓은 적이 없었고, 어느 누구와 가까이 닿은 적도 없다. 수하들과도 항상 거리를 두었기에 물건이 누군가에게 도둑맞을 일은 절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망할! 찾지 못하면 우린 끝장이다! 어서 찾아!”
“차, 찾고는 있으나 워낙 범위가 넓어…… 서……!”
수하의 볼멘소리에 구자곡은 인상을 썼다.
그러나 수하의 말 중 틀린 것은 하나 없다. 포달랍궁에서 경전을 훔쳐, 다시금 천산으로 이동했다. 이는 마교의 짓이라는 것을 놈들에게 흘리기 위함이다.
그것은 완벽하게 성공을 하였고, 결국 마교와 포달랍궁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모든 이들의 눈이 그들에게서 떠나 다른 곳을 향했으니 도망을 치는 것도 수월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마교로 돌아갔을 때만 해도 분명 경전이 존재하였으니, 그곳에서부터 지금 이곳까지가 수색해야 하는 범위가 되는 셈이다.
사람이라면 보통 포기를 해야 할 정도의 넓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교주에게 직접 받은 임무이며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천지교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단주! 그만 포기합시다! 벌써 며칠 째입니까?”
“포기라니?! 교주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이거늘!”
“교주도 다 같은 교주입니까? 마교의 교주도 아니고…… 고작, 암약이나 하는 광종(狂宗) 따…… 컥?!”
순간, 구자곡의 주먹이 수하의 안면을 강하게 가격했다. 강한 힘에 날아간 그가 게거품을 물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며 긴장한 눈빛을 보냈다.
“광종이라니?! 사 교주가 없는 천산마교보다 몇 배는 더 이로운 곳이며! 감춘보다 더욱 대단한 분이시다! 말조심하거라!”
구자곡은, 이제 자신의 주군이 된 육철완의 욕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도학이라는 거대한 우상이 곁을 떠나며 나타난 그분.
수만의 신도들을 다스리는 그 근엄함은, 마치 사도학을 보는 것 같지 않았던가?
그런 이를 따는 것이 구자곡의 무도(武道)다.
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포달랍궁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분께 인정받을 수 있음이야!”
“예!”
마형단 단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동료가 눈앞에서 목이 잘려 날아갔다. 그 공포가 뇌리 깊이 각인되었으니 어찌 싫다 말할 수 있겠는가.
하여, 그들은 필사적으로 잃어버린 경전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