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155)
EP.1161 #276_서막(9)
#1155
1.
제 절반을 잘라내면서까지 진리를 위해 나아갔다.
무릇 다른 마녀들이 그렇듯, 위대한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많은 것을 희생하고 초개처럼 내던졌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수도자들이 그렇듯 가시밭길을 자처해 걸었다.
그러나 드높은 위치에 도달한 케테르가 발견한 건 다음 계단이 아니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이 세계의 법칙은 게임과 비슷해. 에너지나 입자는 더는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있고 속력의 최댓값은 빛의 속도이며 명확한 한계가 상숫값으로 존재하잖아? 이런 신의 설정놀음이 곧 세계의 법칙인 거지.”
마녀는 이를 수정하고 개변한다.
최소 단위 입자보다 더 작은 입자를 만들 수도 있으며, 빛보다 빠른 빛을 구현할 수도 있다.
세계의 설정을 수정하는 것이야말로 마녀가 초월자로 분류되는 이유이니.
그러나 케테르는 발견하고 만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건드릴 수 없는, 마도의 계단을 끊어내는, 세계의 기저에 깔린 절대적 법칙을.
“난 그걸 ‘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였어.”
존재를 관측하고 이름을 붙였을 뿐 정확한 정체를 파악할 도리가 없었다.
막연히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가장 밑바탕에 깔린 법칙이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관리자라고 추측할 뿐.
어쩌면 인간이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창조의 마녀가 도망쳐 온 이 세계는 본디 마녀가 없는 세계선.
세계는 새로이 탄생한 마녀의 존재를 묵인하고 어머니가 32 위계에 도달하는 것을 방관했다.
그건 관대함이나 자비로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관찰 행위였다고 추정한다.
시스템은 선인지 악인지, 의식이 있는 지 없는지도 분간할 수 없는, 이름 그대로의 시스템일 뿐이니까.
하지만 창조의 마녀를 충분히 지켜본 까닭일까?
본디 세계에 허락되어선 안 될 힘이 생겨나는 모습을 관측한 이후 ‘시스템’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을 뛰어넘어 31 위계에 도착한 순간 케테르는 산산이 조각나는 영육(靈肉)을 느꼈다.
마법적인 작용은 아니다.
하물며 물리적인 무언가도 아니다.
신비에 개척자인 마녀에게조차 형용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힘이었다.
원초적이고도 압도적인 힘이 날아오르려던 케테르를 움켜쥐고 내팽개쳤다.
‘시스템’이 제재를 가한 것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였다.
다소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여겼다.
마녀란 존재는 신의 위업을 따라잡고자 하는 어리석은 종자들.
그들의 왕은 겁을 집어먹지도 의욕이 꺾이지도 않을 만큼 가장 우둔한 자였다.
불태우고 불태우고 불태웠다.
덤벼들고 덤벼들고 덤벼들었다.
끝없이 탐구하다 보면 찬란한 금자탑의 끝에, 초월에 닿을 계단이 놓여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된 건 시스템의 절대성뿐.
이는 마녀조차 개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세계의 설정이 켠켠이 쌓인 레이어라면 이 시스템은 가장 낮은 층위에서 다른 모든 레이어를 떠 받치고 있는 세계 자체다.
그걸 깨달았을 무렵엔 시스템이 케테르를 향해 가한 제재도 영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고준위 방사능에 피폭된 환자가 처음 며칠 가량은 겉보기에 멀쩡하듯 당시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제재에 어느덧 케테르의 정신과 육체는 모두 갉아 먹혀 있었다.
“드높은 지혜와 초월자의 마법으로도 지연시키는 것이 고작인 필연적인 마모였지.”
“…….”
에렐림은 케테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참으로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저 착란을 일으킨 케테르의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에렐림 역시 느끼고 있었다.
25 위계에 올라선 뒤 눈앞에 펼쳐진 아득함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는 걸.
케테르의 말대로 조금도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어쩐지 골계미마저 느껴지는 비유지만 마치 ‘시스템상 한계’로 느껴지는 막막함이었다는 걸.
결국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권태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마법에 모든 것을 바쳐왔던 삶은….
에렐림이 인지하지도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해 비루한 결말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신시우는? 신시우는 다르다는 건가요?”
에렐림은 텅 비어버린 목소리로 묻는다.
빼어난 이성이 일련의 대화에서 실마리를 찾아 관성적으로 이어나갔을 뿐인 질문.
망자의 넋두리만큼이나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케테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 역시도 나에게서 기원한 존재이니까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어.”
까마득한 절망 속에서 케테르는 끝없이 우회로를 찾았다.
시스템의 저지를 속일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의 아이는 다르지.”
모든 마녀는 어머니가 뿌려둔 마녀 인자와 운명의 실낱에 기워져 탄생한 존재.
그것이 이계의 것이기에 시스템에 의해 부정된다면, 처음부터 시스템에 근거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면 된다.
창조의 마녀가 뿌려두었던 마녀 인자를 계승 받아 탄생한 마녀가 아니라 처음부터 이 세계에 속하는 태초의 마녀를.
그걸 위해 낙인을 잘게 쪼개어 나누어주었다.
의식을 개변하여 더욱 적절한 상태의 신시우가 되게 만들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예언기관에 직접 개입해 모체가 되기 최적인 상대를 물색했다.
모든 행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케테르의 몸 상태를 망가뜨렸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케테르에겐 그것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가상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신시우가 용케도 의식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건 의외였지만, 그는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진정한 초월을 위한 기틀이 되어주었다.
거기에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할 일은 조금도 없었다.
“난 내 사명을 이루었어.”
확고부동하게 단언하는 케테르 앞에서, 에렐림은 자신을 구성하던 모든 것이 오래되어 바스러진 껍데기처럼 덧없이 흩날림을 느꼈다.
마도의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허나 그 끝은 실로 불합리한 이유로 끝이 정해진 나락에 불과했다.
마녀를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허나 애증으로 붙들고 있던 케테르의 질서는 망집에 사로잡힌 기계장치의 자기만족이었으며, 인간의 악성은 에렐림의 예상대로였다.
마지막과 마지막에 이르러 케테르를 찾아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묻고자 했다.
허나 길을 제시해주리라 믿었던 케테르조차 같은 처지의 미아에 불과했다.
단지 에렐림보다 조금 더 일찍 길을 잃었을 뿐.
어쩌면 그녀는 이런 결말을 알고 있었기에 ‘인간과 마녀의 공존’ 따위를 속 편하게 늘어놓고 다녔겠지.
그렇다면 이 텅 빈 두 손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에렐림은 케테르를 보았다.
망가진 케테르를 보았다.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웃고 있었다.
조금 전처럼 허망하고 허탈한 웃음이 아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저 혼자만이 빛을 발견한 이의 표정이다.
그녀가 멀어져 간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흐릿한 금빛의 눈동자는 에렐림을 담지 않는다.
암흑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낸 구도자, 케테르에게 남겨지는 이는 안중에도 없다.
케테르가 뭉뚱그려 표현했듯이 모든 마녀는 실패자이니.
에렐림 역시 무수한 실패작 중 가장 뛰어난 하나에 불과하다.
돌이켜보자면 고작 그 정도로 얄팍한 관계였던 것이다.
“…….”
바보처럼 느껴졌다.
여태 무수한 고뇌를 홀로 곱씹으며 왜 지켜야 하는지도 모를 규칙을 지켰던 나날이.
케테르의 유산과 관심이 마땅한 설명도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한 남자에게 향한 것을 가까스로 이해했던 나날이.
점점 원망과 미움으로 얼룩지는 애정을 과거의 추억으로 닦아내며 소중한 것이라 착각하던 나날이.
끓어오른다.
기나긴 세월조차 빛바래게 할 수 없는, 권태로 변이하지 않는 또 하나의 감정이.
무지로 끝났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에렐림의 애탄 기도가 묵살로 끝맺음을 맺었다면 차라리 자비로웠을 것이다.
그녀가 미웠다.
하지만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욱 깊은 동경과 존경, 사랑이 있었다.
케테르는 에렐림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고, 언니와 같은 존재였으며, 동시에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 이 시간까지는.
새로이 떠오른 증오는 그간의 사랑만큼이나 깊고 무겁다.
에렐림의 입술이 달싹였다.
“경외하라.”
마법을 정의하는 마녀의 심상.
그걸 한 단어로 나타낸 것이 영창.
케테르가 보여준 모든 것이 에렐림에겐 마법 그 자체였며, 그렇기에 삶이었다.
그러므로 에렐림의 영창은 케테르의 것과 같았다.
에렐림의 눈가에 순백의 마력반사광이 눈물처럼 너울거렸다.
물방울이 흩어지는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촬영한 듯 농밀한 마력입자가 널따란 공방을 빼곡하게 채웠다.
고색창연한 달빛 아래 소우주를 구현해 낸 듯 조화롭게 흩어지는 마력 입자의 군무(群舞)는 숨이 막힐 듯 몽환적이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별개로 마녀 하나를 죽이기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케테르는 마력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한창때의 그녀가 보기엔 한참 열화판일 마법 앞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앉아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비웃는 것도 좌절한 것도 아니다.
“블랑쉬.”
대신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여전히 의미를 모를, 그러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세상을 떠났던 친구와 같은 미소다.
케테르는 말했다.
“우리는 정답을 찾을 수 없대.”
에렐림은 답했다.
“저는…. 찾았어요.”
-두둑
마른 장작을 꺾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방을 넘실거리던 마력이 에렐림에게 갈무리 되었다.
고목처럼 의자와 함께 넘어진 육신이 차디찬 대리석을 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