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72
제 72 화
“엑?!”
유림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춰 땅을 굴렀다. 그리고 그러기 무섭게 휙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무너트린 벽의 잔해가 온몸에 덕지덕지 묻었고 벌어진 입을 통해 먼지가 들어와 목구멍이 칼칼했다.
그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안에 있는 돌가루를 뱉어낸 유림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공격한 이를 바라봤다.
깃발의 정반대 쪽. 그곳에 아주 투박한 무늬의 목각 인형이 유림을 향해 자세를 잡고 있었다.
“으힉?!”
뭐야! 넌 또 왜 등장해?!
일이 좀 쉽게 풀리려는 순간 다시 등장한 목각 인형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목각 인형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찍었기 때문이었다.
쉬익!
“으히이익?!”
유림은 머리 위에서 강하게 내려치는 목각 인형의 주먹질을 몸을 굴려 피한 후, 재빠르게 일어나 그 딱딱한 팔을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그대로 뒤집어엎었다.
“으아아압!”
쿠웅!!
목각 인형이 바닥에 부딪히며 관절이 분리됐다.
산산조각 낼 힘은 없었지만, 수년간 나무 인형들의 감독관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인형의 관절을 무너트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실력을 보여주듯 인형은 깔끔하게 분해되었다.
“으아…… 어깨 더럽게 아프네.”
유림은 아픈 어깨를 풀며 바닥에 떨어진 인형 조각을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분리된 목각 인형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관절이 부르르 움직이더니, 마치 퍼즐을 맞추듯 떨어진 위치에 가서 붙기 시작했다. 자석의 양극이 서로를 잡아당기듯 말이다.
“…….”
어깨에 달라붙은 팔과 무릎에 붙은 다리. 그리고 흩어졌던 손가락과 발가락이 이어지는 것을 끝으로 목각 인형은 처음의 그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아…….”
젠장…….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끼익 끼익.
나무가 어긋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미로를 울렸다. 약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늘 들어왔던 마찰음. 그러나 그때와 달리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기분 나쁜 소리였다.
‘아니, 이걸 어떻게 잡아? 다시 붙잖아. 이거 사기 아니야?’
산 넘어 산이란 게 이런 상황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제 좀 편하게 가보려 했더니 갑자기 이런 변수가 등장한다.
더 짜증이 나는 건, 유림의 팔찌는 이미 노란색이었고 만들어놓았던 나무 채는 쇠구슬을 치느라 갈라져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단 점이었다.
집어 던지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아니, 우선적으로 자신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남아 있는 시간도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두 시간이 지나면 출발점으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미로의 구조가 바뀌어 저 뚫린 길이 사라질 게 안 봐도 뻔했으니 말이다.
아나, 미치겠네. 이렇게 된 거 정말 도박을 해야 하나?
어차피 이대로 가면 저 목각 인형은 자신의 행보를 계속 방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복원되지 못하게 때려 부수고 재빨리 뛰어가는 것이 빨랐다. 그리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 목각 인형을 만져야만 했다.
기회는 딱 한 번.
유림은 몸을 낮춰 방어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리고 그에 응하듯 목각 인형이 유림을 향해 달려왔다.
두두두두!
나무가 땅을 박차는 소리가 미로를 울렸다.
유림은 입꼬리를 비틀며 공격을 기다리던 그 순간, 목각 인형이 유림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팔을 휘둘렀다.
“으윽!”
가까스로 몸을 낮춰 그 공격을 피한 유림은 그대로 인형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통증이 다리에 느껴졌다. 분명 자신이 공격하는 것임에도 도리어 맞은 것만 같은 느낌에 절로 이가 악물렸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에 목각 인형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유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먹을 꽉 쥔 후 인형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쳤다.
휘익!
쿠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 인형이 유림의 밑에 깔리고 말았다.
아…… 뼈가 아리다. 나 지금 마법 수업 시간 아닌가? 왜 여기서 체력 시간에 배운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거지?
눈물이 날 정도로 손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마냥 이렇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림은 낑낑거리며 목각 인형에 늄을 부여했다.
인형의 주위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그녀는 늄의 배열을 이용해 나무의 재질을 푹신하고도 가벼운 솜으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어차피 분리하고 부숴도 또 합체될 거, 맞아도 아프지 않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놈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편할 거라 여겼기에 한 행동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푹신해지는 나무 인형, 아니, 솜 인형의 촉감에 뻐근했던 몸이 편해지는 것만 같았다.
유림은 푹신한 솜 인형 위에 무거운 몸뚱어리를 뉘었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젖혔다. 시야에 들어오는 뻥 뚫린 길과 깃발의 꼬랑지.
“아, 시간 없는데 몸이 안 움직이네. 빨리 뛰어가야지 이 고생을 안 하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녀는 뻣뻣하게 굳은 팔을 들어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비녀가 풀려서 그런지 정신없이 흩어진 머릿결이 땅에 닿았다.
오늘은 진짜 목욕해야겠구나.
바로 잘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삼킨 유림은 이제 일어나야겠다 생각하며 두 팔을 쭈욱 뻗었다. 그때, 그녀의 두 눈동자 위로 손에 차고 있던 팔찌가 들어왔다.
“……어?”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유림은 두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자신의 손이 분명했다. 눈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팔찌가 노란색을 띠고 있는 거지?
분명 자신의 경험으로 봐선 연노랑, 혹은 백색에 가까운 노란색이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팔찌는 선명한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늄을 얼마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쇠구슬을 치기 위해 썼던 늄보다 나무 인형을 솜 인형으로 바꾸는 데 더 많은 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찌는 아직도 노란색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다 문뜩 넌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는 아슈팔의 말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쿵쿵쿵.
짙은 고동 소리. 그 울림이 어찌나 큰지 마치 온몸이 떨리는 것만 같았다.
늄의 본질을 바꾼다던 히야스, 비녀가 힌트라고 말했던 아슈팔, 몇 번 사용하고 나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던 나무 조각들, 자신이 여태껏 해왔던 늄의 이용,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눈자위가 지끈거렸고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제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고 끝없이 되뇌고 또 되뇌었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하나였다.
유림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밑에서 솜이 되어버린 인형을 바라봤다.
“하…… 하하.”
이제야 제 역할을 한 눈치에 헛웃음만 튀어나왔다.
수업을 시작한 지 이틀, 만으로 치면 하루 만에 알아낸 꼴이 아니던가. 물론 아직 확실친 않았다. 하지만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유림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 * *
“보통 마법사란 건 열 살 이후에도 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해.”
디하르의 차분한 음성에 은하가 열심히 고갤 끄덕였다. 그 옆에서 턱을 괸 채, 앉아 있던 루아는 지루하단 표정으로 책 모퉁이에 끄적끄적 낙서를 하고 있었다.
206-1호. 그 방에 자리한 은하와 루아는 시험 기간을 맞아 디하르에게 늄의 이론과 각종 필기 과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누구나 다 알 법한 이야기였으나 은하는 이런 내용에 무지했다. 그래서 기초의 기초부터 시작하게 된 그들이었다.
“늄이란 건, 사실 하나의 형으로 구분 짓기 힘들어. 클레이즈나 헤르탄 등의 마법 학교에선 세분화해서 수업을 하고 있지만, 실로 마법사들은 형의 구분 없이 사용하지. 루
아처럼 자연을 이용하는 사람이 무기에 능력을 부여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기도 해.”
“그럼 왜 구분해?”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서야.”
“전문성?”
“그래. 쉽게 말해 다양한 능력을 가진 열 명보단 각기의 능력이 뛰어난 열 명이 모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야.”
“헤에-”
“거기다 늄이란 건 촉매의 역할도 해. 자신의 신체나 무기를 강화하는 2형, 3형과 달리 은하, 너처럼 상처를 치료하거나 루아처럼 자연계를 이용하는 경우는 대상의 늄을 자극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볼 수 있어.”
“무슨 소리야?”
“쉽게 말해 풍선이 하나 있어. 그리고 그 안엔 쇳가루가 있고.”
디하르의 설명에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란 건, 이 풍선 밖에 자석을 갖다대는 것과 똑같아. 자석을 어떻게 움직이는 대로 쇳가루가 움직이지? 가까우면 뭉치고 멀면 흩어지고 자석이 위로 가면 쇳가루도 따라가듯 말이야.”
“응.”
“그런 의미야. 마법이란 건 이처럼 밖에서 자극을 주는 것이지, 풍선 안으로 들어가진 않아.”
“아- 그럼 난 정확하게는 상대방을 직접 고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늄을 활성화시켜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자극한다는 거네.”
“그래.”
“그럼 레이 같은 애들은?”
“그런 애들은 소환수나 성물의 힘에 따라 달라져. 어떻게 보면 늄을 이용한다기보다 늄의 색, 혹은 느낌으로 교감하는 유형이지. 가장 지치지 않고,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경우야.”
“흐음- 그렇구나.”
은하는 마치 중요한 사실이라도 알게 된 사람마냥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반응에 디하르는 조금 의아해졌다.
보통의 아이라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듣고 배울 내용인데……. 변두리 마을에 살아서 그런가?
그는 애써 의문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전문 마법 학교가 생긴 거지. 역사 대학이나 공학 대학 뭐 이런 곳들과 같다고 보면 돼.”
“그렇구나~!”
감탄 어린 은하의 모습에 그녀의 옆에서 턱을 괴고 있던 루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은하는 처음 들어?”
“응.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서 이런 이야기 잘 안 해주거든.”
“유림이 안 해줬어? 걔 의외로 이런 쪽에 빠삭한데?”
“림은 늄은 그냥 감각이라 그랬어. 생각이 많아질수록 불편하다고. 애초에 나 같은 성향은 본능 따라 사용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거든.”
맞는 말이었다.
은하나 레이먼처럼 천부적인 유형은 본능적인 감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오히려 이것저것 재기 시작하면 효과가 반감되는 성격이니 말이다.
디하르와 루아는 유림의 명쾌한 대처에 옳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작은 의문 하나가 루아의 뇌리를 스친 것이.
“잠깐, 그럼 여태껏 마법은 어떻게 배웠던 거야?”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
“선생님?”
“응! 선생님.”
선생님이란 단어에 디하르와 루아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게 누군가 싶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은하가 아이처럼 배시시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유림이네 아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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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