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73
제 73 화
“에?”
“뭐?”
예상치 못한 인물의 거론에 디하르와 루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유림이 사혈로 간 뒤, 그곳에서 지금의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있단 이야긴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라 그 이후의 이야긴 듣지 못했다.
직감적으로 유림에게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선생, 즉 유림의 양부라는 사실을 파악한 루아가 은하에게 바짝 다가갔다.
“유림의 양아버지?”
“응.”
“어떤 분이셔?”
루아의 물음에 은하는 유림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선생님을 생각했다.
어떤 분이냐니…… 음…….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자기 멋대로고, 성격 더럽고, 돈 밝히고, 다혈질에, 사람 괴롭히고, 걸핏하면 사기 치고, 뭐 그래.”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뱉는 은하의 말에 디하르와 루아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유림이다.’
‘……유림이네.’
아무리 봐도 좀 더 고약한 유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은하도 두 사람의 생각을 알고 있는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유림이랑 완전 똑같지?”
“응.”
“놀라울 정도로.”
“근데 되게 착해.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고 또 요리도 잘하셔서 밥은 늘 맛있었어.”
“그거 하나는 유림이랑 다르네.”
“그치?”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루아의 속마음에 은하가 동의한다는 듯 격하게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유림과 그녀의 양부는 친부녀로 착각될 만큼 많이 닮았다. 만일 외모마저 닮거나, 나이 차가 좀 더 벌어졌다면 은하를 비롯한 소난의 주민 모두가 ‘사실은 친인척 관계가 아닐까.’ 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응? 누구랑 누구? 나랑 선생님? 아니면 선생님하고 림? 아니면 나랑 림?”
“셋 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은하는 아주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일을 떠올렸다. 향수에 젖은 눈동자가 그리움을 잔뜩 그려내고 있었다.
“음…… 나랑 선생님은 내가 열한 살 때인가? 그때 선생님이 사혈로 이사 오면서 알게 됐어. 처음엔 그냥 가볍게 인사하는 이웃사촌이었는데, 어쩌다 내가 늄을 다루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가르쳐 주셨어. 유림과 만난 건 그로부터 약 두 달 후의 이야기인데…….”
순간 은하가 흠칫하고 떨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책상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한 편으론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약 20초간 침묵을 지키던 은하는 이내 바보같이 헤프게 웃고 이야기를 이었다.
“유림이 심하게 다쳐서, 그걸 내가 치료해 주고, 선생님이 보호 차 데리고 있는 게 처음이었어.”
그리고 그 말에 두 사람이 목소릴 높였다.
“유림이 다쳐?!”
“다쳤다니? 어쩌다?”
과거의 일임에도 마치 지금의 일인 양 두 사람의 표정은 심각하게 경직되었다.
“어딜 다쳤는데?”
“많이 다친 거야?”
“어? 음……. 지금은 괜찮아. 내가 완벽하게 치료해 줬거든. 하하하, 어쨌든 그러다 선생님이랑 유림이랑 아빠, 딸 하기로 하고 잘 지냈어.”
대화를 얼버무리는 모습에 루아와 디하르가 추궁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보다 은하가 책을 잡으며 말한 게 더 빨랐다.
“하하하, 뭐 그런 거지. 자, 이제 옛이야기는 끝! 이제 공부하자. 나 하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이런 은하의 행동에 뒷이야기를 물어보기 뭣해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가볍게 살피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하고 순박한 은하가 이렇게까지 말을 아낀다는 건, 십중팔구 유림이 입막음해서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이어서 공부하자.”
“그래! 그럼 이제 우울한 소리 그만하고 공부하자, 공부!!”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며 손을 들었다.
은하와 루아는 디하르의 요점 정리를 듣기 위해 다시 자세를 고치고 펜을 들었으며, 디하르 또한 설명해 줘야 할 부분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귓가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일정하게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이미 해가 지고 자정에 다다른 시간이었다. 이렇게 늦게 남의 방에 찾아오다니. 흔치 않은 방문에 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림일 리는 없었다. 자기 방에 들어오는 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럼 누구지?
다시금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달려갔다.
“누구세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륜이었다.
하민이도 레이먼도 아닌 륜이라니.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은하가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륜? 여긴 웬일이야?”
그리고 ‘륜’이란 이름에 루아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륜 군?!”
그녀는 잽싸게 달려가 덜 열린 문을 활짝 열더니 륜에게 다가갔다.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륜이 조금 움찔했으나, 몇 번 있었던 일인지 자연스럽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 가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하하……. 루아 씨도 있었네요.”
“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만난 지 한 달 반가량이 지났지만, 아직도 말을 놓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디하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루아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유독 존칭을 사용하는 버릇이 있었다. 거기다 륜의 대답 하나하나에 즉각적으로 보이는 반응.
누가 봐도 ‘나 너 좋아해!’라는 티가 팍팍나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륜이 생각보다 눈치가 없어서 루아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레이먼과 루아의 보호자 역할도 겸하고 있는 디하르는 그런 루아의 태도에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륜.”
그제야 륜은 이 방에 루아 말고도 디하르가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아, 디하르도 있었구나. 방해해서 미안.”
“아냐. 그보다 무슨 일이야?”
“은하에게 물어볼 일 있어서 왔는데, 지금 바빠?”
뭐가 그리 궁금해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한번 샛길로 빠지면 날이 새도록 수다 떠느라 공부를 못할 것을 직감한 디하르가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 했다.
“아뇨! 괜찮아요! 문 앞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와요!”
륜의 손을 잡으며 방으로 끌고 들어오는 루아의 행동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순간 디하르는 공부가 물 건너갔음을 짐작하곤 짧게 탄식했다.
“시험공부 하고 있었어요?”
“네, 디하르가 가르쳐 주고 있었어요. 하하하.”
하하하 란 웃음이 참 잘 나오는구나.
루아의 해맑은 웃음에 디하르가 이마를 짚었다. 그는 이렇게 된 거 속 편히 받아들이자는 의미로 편히 어깨를 풀고 유림의 침대에 앉았다.
푹신하게 닿는 이불의 촉감이 느껴졌다. 무거운 이불은 답답하다며 가볍고 폭신폭신한 이불만을 사용하던 유림. 순간 그녀가 여기서 잔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귓가가 화끈거렸다.
“흠…….”
“왜 그래?”
“아니, 그보다 은하한테 물어볼 게 뭔데?”
그 말에 륜이 은하를 빤히 바라봤다.
데몽과 테오와의 회의 중 유림이 어젯밤부터 안 보인다는 이야기에 계속 고민하다 결국, 유림의 행방부터 찾기로 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은하를 만나러 온 거였다.
사실 이런 일이라면 륜보단 말주변이 좋은 데몽이나 친화력이 뛰어난 테오가 오는 것이 더 좋았지만, 정보 쪽은 그가 다 담당하기로 했기에 이리 직접 오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며 은하를 바라봤다.
“아니, 그게 유림이 어제부터 안 보인다 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에?”
은하와 루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늦은 시각에 갑자기 나타나 한다는 소리가 유림이 안 보여서라니. 뜬금없는 걸 넘어, 좀 많이 이상했다.
륜은 두 사람의 표정이 오묘해지자, 제 말이 조금 미묘했음을 짐작하곤 어색하게 웃으
며 넘겼다.
“아, 그게 데몽이 공통 수업 때문에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근데 자기가 가기 귀찮다고 나보고 가달라고 하더라고.”
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메아리처럼 번졌다.
은하는 동그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거면 그냥 연락하지 그랬어.”
“늦었잖아. 하하하, 그래서 날 대신 보내더라고.”
은하가 다시금 동그란 눈을 두어 번 더 깜빡였다. 그때 옆에 있던 루아가 륜의 말에 동의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유림이 좀 많이 늦네. 지금 몇 시지? 자정 넘지 않았어?”
“아니, 아직 11시 48분이야.”
시간을 확인한 륜이 은하를 보며 물었다.
“어제 몇 시에 나갔어?”
“어제? 8시 넘어선 가. 저녁 먹고 좀 놀다 나갔어.”
“그럼 거의 24시간이 다 되도록 오지 않는 거잖아.”
그제야 은하는 정말 그 긴 시간동안 유림이 돌아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네.”
“연락은 해봤어?”
“아니. 해볼까?”
“응.”
륜의 대답에 은하가 통신구를 꺼내 유림의 통신 번호인 1818을 눌렀다.
지이이이잉.
몇 번의 신호음 후, 통신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평소보다 한 톤 높은 유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림!”
[은하?]“림, 어디야?”
[학교. 왜?]어쩐지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아니, 그냥. 언제 오나 해서.”
[곧 가. 나 지금 좀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응? 응.”
뚝.
알았다는 대답에 칼같이 끊어지는 통신. 그 소리에 은하가 륜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륜은 머리가 점점 복잡해졌다. 유림의 목소리는 정말로 바빠 보였다. 대체 이 시간에, 그것도 클레이즈 안에서 그렇게 바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턱을 짚으며 고민하던 륜이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어 은하와 루아, 그리고 디하르를 바라봤다. 세 사람도 유림의 대답이 의아한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로 륜은 이 세 사람도 유림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일 친한 은하에 의심 가는 소꿉친구 무리에게도 사실을 말 하지 않았다.
“…….”
륜은 턱을 쓸며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데몽과 테오한테 이 이야기를 빨리 전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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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