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 fragrance goes ten thousand miles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100. 망측한 소문
“비바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곳이 있습니다.”
송웅이 진천을 데려간 곳은 한단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황하의 지류를 넘을 수 있게 연결한 다리 밑이었다.
덜 습한 곳에 멍석을 깔고 앉은 진천은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 대주를 끌어냈습니까?”
“헤헤, 제가 지백요를 유인한 걸 어찌 아셨습니까?”
“송 장로가 모습을 보이고 뒤이어 대부와 그 무리가 나타났으니까요. 우연이라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적절했습니다.”
“오늘 종일 돌아다니면서 친분을 맺은 한단의 동지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동지들로부터 진천이 수백의 병력과 혈부쌍사에게 포위되었고,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송웅은 지백요의 귀에도 전달될 수 있도록, 거지들과 함께 지씨의 장원 주위에서 병력과 강호인 사이에 싸움이 터졌다고, 만목장 장로와 지한위조연합에 협조하는 개방 방주 사이에 싸움이 났다고 떠들었다고 한다.
“거지들은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퍼트리는 능력도 탁월하답니다. 원래부터 집도 없어 길거리에서 지내니, 통행금지 시간이어도 문제가 되질 않고요. 어쨌든, 다른 대부들이 함께 있고, 예 부사장도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니, 체면을 중시하는 지백요가 한단 내에서 산하의 전력끼리 싸움이 벌어진 상황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죠. 역시나 친위대를 이끌고서 득달같이 전차를 몰고 나오더군요.”
“덕분에 일이 더 커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방주님을 보필하는 것이 저의 소임인데, 무슨 감사씩이나 하십니까.”
“도움을 당연히 여기다 보면 아무리 큰 은혜도 권리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 예까지 잃게 됩니다.”
“하하, 그렇다면 감사를 받겠습니다.”
“그런데 상서(尙書)를 읽었습니까?”
“헉!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송웅은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부분부분 필사한 걸 가지고 다닙니다. 무공이 약하니, 말재주라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상서를 읽는 줄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송 장로가 본래 말을 잘하기는 했으나, 이번처럼 유창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용이 다양하고 다채로웠지만, 말이 쓸데없이 많다는 인상이 더 강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말이 많기는 해도, 군더더기가 덜하면서, 구술의 방식이 분명하고 뚜렷해졌더군요.”
“칭찬이시죠?”
“당연히 칭찬입니다.”
“그런데 어투만 듣고 상서를 읽었다는 걸 아실 수가 있습니까?”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아래에서 시작하라, 라는 말이 상서에 있으니까요.”
“와~ 상서를 모두 외우신 겁니까? 정말 대단하시네요.”
“읽고 외우기만 했을 뿐이니, 대단한 건 아닙니다.”
“에이, 그게 대단한 게 아니면 뭐가 대답한 겁니까. 저는 틈만 나면 상서를 읽고 있는데도 아주 죽을 맛입니다. 아는 글자가 많지 않고, 모르는 글자가 나올 때마다 궁리하여 간신히 열을 읽으면 두 개 정도 이해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이해되고, 남들한테 안다고 당당히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주야장천 반복해 읽을 생각이고, 그러는 중입니다. 그런데 방주님 앞에서 주제도 모르고 잘 아는 것처럼 자랑질했으니. 이거야 원, 참새가 두루미와 똑같이 걸으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꼴이네요.”
“그리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 외우고 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한둘밖에 이해할 수 없어도 송 장로처럼 적절히 응용하여 다툼을 막고, 조용히 해결하는 게 진짜 아는 것이고, 능력입니다.”
“헤헤, 그런가요? 뭐 방주님이 그렇다고 하시니 맞겠지요. 사실 얼마 전까지는 상서에서 말하는 도리와 행위가 고리타분하고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괜히 닭살이 돋고, 이런 걸 어디서 뭐에 써먹나 했습니다.”
“상서는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면서, 합리적인 이유를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요? 어쨌든, 배운 티를 팍팍 내며 잘난 척하는 놈을 깔아뭉개고 보니, 이 맛에 서(書)를 읽고 공부하고 지식을 쌓는구나, 싶어 절로 뿌듯했습니다.”
흥이 오른 송웅은 자기가 상서를 읽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 읽지 못한 글자와 이해가 가지 않던 문장에 관해서 묻고 듣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더 할 말이 없게 되자, 지한위조연합을 구성하는 대부들에 관해 뒷조사한 결과를 설명한 후에, 내전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조가현에도 들려 귀동냥으로 정보를 수집했고, 오늘 한단을 돌아다니며 동지들에게도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솔직히 지한위조연합에 대의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본래 중행씨와 범씨, 지씨는 함께 손을 잡고 진나라를 좌지우지할 만큼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지백요가 중행씨를 제치고 자기 아들을 하나 남은 주나라 공주와…….”
“하나? 공주는 둘일 텐데요?”
“희하 이공주는 천도하는 와중에 병이 들어 죽고, 희홍 일공주만 살아 있습니다.”
약혼자를 잃은 희홍과 달리 딱히 자신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표독스럽게 노려보던 희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후련하거나, 잘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예 무덤덤한 것도 아닌 이 기분은 무엇일까.
“여하튼, 지백요가 아들을 공주와 결혼시켜 부마로 만들려고 하다가 중행씨에게 발각되어 다툼이 일었고, 동후의 친정 가문인 범씨와도 틀어지면서 내전까지 일어난 거 아닙니까.”
“어차피 중행씨 쪽은 공주와 혼인할 아들이 없는데, 범씨가 중행씨의 편을 들은 겁니까?”
“대부 중행열과 요 부인 사이에 아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노인네가 정력도 좋은지, 늦둥이를 얻은 거죠. 그 늦둥이에 관한 망측한 소문도 있습니다. 중행열이 요 부인의 시녀를 강제로 품었는데, 시녀가 임신을 하자 이를 숨기고 자신이 임신한 것처럼 행세한 다음에, 시녀가 아들을 낳자 시녀를 죽이고 자신이 낳은 아기처럼 꾸몄다는 거죠.”
“확실히 망측하군요.”
“입에 올리면 제 입만 더러워질까 말씀드릴 수가 없을 뿐, 요 부인에 관해 떠도는 망측한 소문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쨌든, 늦둥이가 이제 5살에 불과한데, 희홍 공주와 혼인시켰습니다. 지금 공주는 죽을 맛일 겁니다. 신혼의 단꿈도 못 꾸고, 시댁에 갇혀 어린놈의 유모 노릇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요.”
“공주가 중행가에 있습니까?”
“모르셨군요. 이미 몇 달 전부터 일왕자 부부와 함께 중행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일왕자도 조가현에 있다고요?”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졌다.
뜨거운 감정이 울컥 올라오기도 했고.
‘이것이 복수심에 불탄다고 하는 걸까?’
내막이야 어찌 되었든, 동후와 이복형제들은 유일각의 평화를 깨고, 희호소 사부와 진 상궁을 죽게 만든 원수와 마찬가지라서, 아무리 진천이라도 그들이 가까이 있다는데 담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표정에 변화가 없어서 송웅은 아무것도 눈치 못 채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물론, 지한위조연합이 제후 유공(柳公)의 지지를 받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유공은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여인네만 탐하며 음란한 짓거리나 저질러 민심이 그를 버린 지 오래입니다. 더구나 중행씨와 범씨, 지씨, 이렇게 경의 직을 겸한 상대부들이 진작 국정을 손에 쥐고 제멋대로 좌지우지해서 유공의 지지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방주님은 지한위조연합을 도와 내전에 개입할 생각이십니까?”
사실 송웅은 진천이 이곳에 왜 왔고, 중행범씨를 적대하는 내막을 몰라 의아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득 분노에 찬 상념에서 빠져나온 진천은 자신이 삼왕자였다는 건 드러내지 않고, 희호소 사부와의 관계, 시신을 정상적으로 회수할 길이 없으니, 중행씨에게 죄를 물으려는 계획을 밝혔다.
이야기를 들은 송웅은 수긍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방주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대장부라면 은원이 확실해야 하고, 10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고 복수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가 수집한 정보로는 이번 내전이 중행범연합의 승리가 확실해서, 참으로 걱정입니다.”
“전력에서 밀리기는 하지요.”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그마치 1군의 차이가 있습니다. 훈련이라고는 받아본 적도 없는 야인들을 무리해서 징집하고, 1군을 급조한 것도 병력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한위조연합의 숫자가 적은 것보다 중행범연합 쪽의 병력이 전투력과 사기, 무기 등의 질이 뛰어나다는 게 더 문제입니다. 심지어 이쪽이 야인들로 군을 조직할 때 쓸 병기가 절반도 확보되지 않아서, 야인들에게 삽과 곡괭이를 챙겨오게 했답니다.”
“좋지 않군요.”
“아 글쎄,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지한위조연합의 상황이 심각한 건 지난번에 융족을 이끌고 개선군처럼 들어온 주나라의 전 대부 통술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자를 적대한 역적입니다. 연나라에서도 처음엔 신분을 속여 활약하고, 융족과 손을 잡고 세를 키운다고 비난을 받던 중에 정체가 밝혀져서 연나라에서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자 도망쳐 나왔다더군요. 지백요는 그런 자를 같은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식읍을 주고, 진나라의 대부로 앉히겠다고 약속까지 했답니다.”
“지백요가 이번 싸움에 모든 걸 걸었군요.”
“그런데 기이한 말도 들리더군요. 통술이 지백요의 제안을 받아들여 손을 잡은 게 단순히 욕심 때문인 게 아니랍니다.”
“……?”
“검후가 두려웠던 통술이 지한위조연합에 붙어서 살길을 도모하고, 한편으로 검후를 제거할 속셈인 거 같다는 겁니다.”
“검후요?”
“모르십니까?”
“처음 듣습니다.”
“하긴, 최근에 유명해진 고수니까요. 검후는 제나라와 연나라의 고수들을 연파하면서, 근래 강호에서 가장 큰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고수입니다. 오죽하면 강호인의 별호에 후(后)가 붙었겠습니까.”
“기이하군요.”
“사실 초반만 해도 무공보다 미모 때문에 유명했습니다. 내공이 깊은 고수들도 뚫어볼 수 없는 면사를 쓰고 다녔는데, 그녀의 싸움을 관전하던 중에 면사가 날려 우연히 얼굴까지 보게 된 이들을 통해 천하의 절색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완전히 유명해졌죠. 게다가 몸매까지도…….”
“송 장로.”
“죄송합니다. 여하튼, 소문을 듣고 접근했던 강호의 고수들이 족족 개박살이 나고, 무림영웅록 십괴(十怪)의 일인으로 올라 있던 옥면음마(玉面淫魔) 탕난도 수작을 부리다가 그녀에게 목이 잘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검후라는 별호가 생겼습니다.”
“강호인도 아닌 통술이 그런 검후를 왜 두려워합니까? 혹시 그도 검후에게 수작을 부렸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검후가 오래전부터 통술을 찾아다녔다고 하니까, 다른 원한이 있다는 게 세간의 추측입니다. 가문이 무너지고, 부모 혹은 약혼자가 통술에게 목숨을 잃어 복수할 의도로 쫓는다는 거죠. 그래서 검후가 주나라 귀족가 출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통술이 낙읍 도성을 함락하는 데 앞장섰고, 이후 온갖 횡포를 부리다가 불까지 지르고 도망갔으니까요. 어쨌든, 통술이 검후의 공격을 받아서 죽을 뻔하다가 이릉과 조을이 합공을 하고서야 간신히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검후가 대단한 고수인 건 분명하군요.”
“제 말이 그겁니다. 통술의 병력이 강력하고, 지한위조연합의 중요한 전력이 되었다지만, 그런 검후가 통술을 노리는 만큼, 오히려 더 위험한 적을 추가로 얻은 격입니다. 방주님이 중행씨에게 복수할 방법은 또 있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지한위조연합과 결별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시죠.”
일리 있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진천은 송웅의 말을 들으며 길거리에서 지켜본 한단의 백성들을 떠올렸고, 특히 강제 징집되고 훈련받는 야인들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한단의 백성들을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영웅주의적인 고집이 아니었다.
불리하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꾸는 것도 옳지 않다 생각했고, 목표가 명확하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 방주, 식사는 하셨소? 이것 좀 잡숴보시오.”
다음날에 길거리에 앉아 구걸하던 진천에게 예양이 찾아왔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또 뵙겠소, 진 방주. 그때의 일은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소이다.”
지백요의 책사 윤갈도 함께였다
“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진 방주를 찾아온 것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함이오. 급히 처리할 사안이라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진 방주께서 검후를 처리해 주시오.”
그리고 뒤따라온 병사가 상자 하나를 내려놓고 덮개를 열자, 안에 은덩이가 가득했다.
“은 100냥입니다. 이건 선수금이고, 검후가 처리되면 이만큼을 더 드리겠습니다.”
평범한 백성은 죽을 때까지도 만져보지 못할 거금이었고, 윤갈은 당연히 수락할 거로 믿는 얼굴이었다.
상자를 한 번 보고 윤갈과 시선을 마주한 진천은 말했다.
“내가 왜요?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