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 fragrance goes ten thousand miles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138. 좋은 사람이 더 많아
진나라를 떠나 태행산맥의 남쪽으로 내려와 동서를 잇는 길을 걸었다.
희오는 틈만 나면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두고 온 물건이라도 있습니까?”
“처자식과 여동생이 낯선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어서 그렇소.”
송웅을 떠라 허현으로 향한 가족들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남을 부리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삶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족을 염려할 때가 아니었다.
“당신이 지금 가족 걱정할 처지입니까? 앞으로 굶어 죽지 않으려면 구걸해야 하고, 바람을 피해 잠잘 자리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건 가족들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희오의 낯빛이 붉어졌다.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걷고 또 걸어가는데, 이마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침부터 하늘이 우중충하고, 구름이 짙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겠군요.”
희오가 마침 저 멀리 이 층짜리 오두막을 발견하고 안도하며 웃었다.
“객잔이오, 객잔. 저기로 가서 비를 피합시다.”
객잔의 주인이 낙향한 서생인지, 아니면 글솜씨가 있는 손님이 돈을 받고 써준 것인지, 궁벽한 곳에 자리한 객잔답지 않게 이름도 있었다.
“호문객잔(虎門客棧)이라. 뜻이 괴이하지만, 이름까지 내걸고 장사를 한다면, 음식을 만드는 솜씨에 자신이 있는 것이 분명하오.”
무리와 헤어진 후로 물 외에는 먹은 것이 없어서인지, 희오는 군침까지 삼켰다.
하지만 희오는 크게 착각 중이었다.
“당신은 이제 왕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거지입니다.”
희오가 거지로 살아야 다른 가족을 노예 취급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고, 의식주까지 제공하며, 안전을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 거지이니, 저기엔 갈 일이 없습니다.”
희오는 즉시 반박했다.
“거지라고 객잔을 이용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소.”
“맞습니다. 거지라도 객잔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고 싶으면 가세요.”
그러나 희오는 가지 못했다.
“돈이 없소.”
“압니다.”
“진 방주가 돈을 내야, 우리가 저기서 먹고 잘 수 있지 않겠소.”
“나는 안 간다니까요.”
“그럼 나라도 가게 돈 좀 빌려주시오.”
“돈 없습니다.”
“1분도 없소?”
“1문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희오는 황당해하더니.
“중군장이었으니, 연합에서 가장 많은 급료를 받았을 거잖소! 그 전에 지 대부로부터 거액을 챙겼다는 말도 들었소! 게다가 거지들의 방파라고 해도 명색이 방주잖소! 그런데 1문도 없다는 게 말이 되오!”
참았던 분노를 토하듯 따졌다.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었지만.
“말이 됩니다.”
많은 재물이 들어왔지만, 중원전장에 맡기라고, 모두 송웅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말이 되오!”
지치고 배고파서인지, 희오가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려보며 말했다.
“설사 말이 안 된다고 해도, 나한테 돈이라도 맡겨두었습니까? 아니면 나와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희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결국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후두둑!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희오를 무시하고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기세가 더 험해졌고, 희오도 급히 따라와 옆에 섰다.
후두두두둑-
크고 높게 자란 나무였으나, 잎이 가늘어, 비를 거의 막아주지 못했다.
보따리에서 멍석을 꺼내 머리에 썼다.
하지만 희오에겐 멍석이 없었다.
그는 머리와 얼굴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연방 손으로 닦아냈고, 옷이 축축하게 젖어 체온이 떨어진 몸을 덜덜 떨면서 힐끔힐끔 쳐다봤다.
자기 좀 신경 써달라는 표정이었는데, 그렇다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리라.
그래서 말했다.
“가까이 붙어서, 멍석 밑으로 들어와 비를 막도록 해요.”
“허험, 나는 이 정도 비쯤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진 방주가 원한다고 하고,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필요 없으면 굳이 같이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는 없지만, 예의가 아니잖소.”
“그러니까 그만두라고요.”
“나는 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았소.”
희오는 얼른 멍석 한쪽을 붙잡고 머리를 가리더니,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처럼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했다.
그래서.
“먼지 나도록 맞아볼래요?”
희오는 슬며시 당기는 힘을 뺐다.
조언할 필요가 있다 느껴 말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흔할 겁니다. 당신도 멍석 하나쯤은 가지고 다녀야 해요.”
“멍석을 살 돈이 없잖소.”
“재료를 찾아서 만들면 됩니다.”
“만들어 본 적이 없소.”
“내가 가르쳐주겠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진 방주가 만들어주면 안 되오?”
“정말 맞을래요?”
“……가르쳐 주면, 열심히 배워보겠소.”
비가 그쳤다.
하지만 다시 여정을 이어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죠. 나는 불을 피우고 있을 테니, 당신은 객잔에 가서 볏짚 좀 구해와요. 당장 멍석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지만, 대신 바닥에 깔고 잘 수 있겠죠.”
“돈이 없다고 했잖소.”
“그러니까 구걸을 해야죠. 구걸이란 게 꼭 돈과 먹을 것만 얻는 건 아닙니다.”
“……당장은 필요 없을 거 같소만.”
“입 돌아가고 싶어요?”
“입이 왜 돌아가오?”
“밤새 맨땅에서 찬 이슬 맞으며 자본적 없죠?”
“없소.”
“이런 날씨에 그렇게 자면, 천하에서 손꼽을 정도로 강력한 내가 고수가 아닌 이상에는, 몸에 한기가 들어오고, 그 영향으로 얼굴이 굳어져요. 심하면 이렇게, 이렇게 삐뚤어지기도 하죠. 당신은 내가 고수가 아니니, 삐뚤어질 가능성이 더 큽니다.”
“거짓말 마시오.”
“믿지 못하겠으면 말아요. 하지만 나중에 입 돌아갔다고 나 원망하진 말고요.”
“……기다려 보시오.”
이를 악물며 일어난 희오는 머뭇머뭇 객잔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결국 반도 못 가서 돌아왔다.
“당신 말을 못 믿겠소.”
핑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해했다. 얼마 전까지 왕자였는데, 거지가 되어 구걸하려니, 용기가 생기질 않겠지.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잔가지를 잔뜩 구해와서, 화양공으로 말리고 불을 피웠다.
희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지어졌다.
온기를 얻고, 젖은 옷을 말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잠시라면 모를까, 온통 젖은 땅에서 밤을 보내려면 모닥불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젖은 땅이라 눕기는커녕 궁둥이를 붙일 수도 없으니, 쪼그려 앉아서 쪽잠을 자야만 했다.
익숙하지 않다면 그마저도 쉽지 않으리라.
“저기…….”
결국,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한 희오가 말을 걸었으나, 대꾸하지 않았다.
멍석은 둘이 같이 누울 크기도 아니었지만,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려움 없이 편한 여정이 되도록 살뜰하게 챙기고, 보살필 생각으로 데려온 건 아니었으니까.
희오는 망설이다가 조용히 호문객잔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객잔 주인의 마음이 좋아, 안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된 걸까?
그러나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런 주인이었다면 희오만 챙기진 않았으리라.
그렇다고 소란이 생긴 것도 아니고, 이렇고 조용하기만 한 게 이상했다.
일어나 객잔으로 걸어갔다.
객잔의 불은 모두 꺼져 안이 캄캄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리는 건 냄새였다.
‘피 냄새가 진해.’
객잔에서 직접 짐승을 잡는 걸까?
하지만 객잔 주변에 소 돼지는 물론이고, 닭을 키우는 우리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피 냄새가 신선하지도 않고, 오래 묵혀진 냄새에 가까웠다.
닫힌 문을 당겼다.
끼이이-
가늘게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간단히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휘릭- 휘리릭-
채찍이 좌우에서 날아왔다.
하나는 몸통을, 하나는 목을 휘감았다.
“하하, 두 마리째!”
한 사내의 웃음소리에 이어 내부가 밝아졌으니.
“오지 않으면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두 마리 다 알아서 찾아오니, 오늘은 운수가 트이는 날인 모양이구나.”
2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던 늙은 여자가 들고 있던 홰에 불을 붙인 것.
여자 옆에는 포박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입도 막혀 소리도 낼 수 없어 눈만 부릅뜨고 있는 희오가 있었다.
살아 있음을 알았으니, 다른 걸 확인할 차례였다.
“노파, 여기가 사람을 양각양(兩脚羊·다리 두 개 달린 양, 즉 인육)이라 부르며 고기 취급하는 흑점이냐? 우리를 붙잡은 것도 잡아먹기 위해서인 거고? ”
여자는 엉성하게 자라난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못난 놈들, 저 고깃덩이가 말을 하잖니. 목을 제대로 조이고 있긴 한 게야?”
“그러게요. 이상하네. 하여튼, 더 조여보겠습니다.”
“됐다. 그러다 죽으면 질 떨어진다. 어린 것들은 고기가 야들야들해서 이가 부실한 늙은이들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데, 미리 죽였다가 신선하지 않아서 질겨지면, 제값을 못 받아.”
노파가 대답한 건 아니었지만, 답이 나온 것과 다름없었다.
“누님, 팔 하나만 잘라서 한 접시 하시죠? 이미 손도 하나 없는데, 팔 하나 더 없다고 차이랄 게 있겠습니까?”
“너희도 그 핑계로 한 입씩 하려고?”
“맛만 보는 거죠.”
“영악한 것들. 그래,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우리도 좋은 것 좀 먹어보자.”
좌우의 두 사내가 채찍을 팽팽하게 당기고 감기를 반복하며 다가왔다.
“누님, 저놈은 지하창고에 넣어놓겠습니다.”
다른 세 사내는 희오를 데려가려고 계단으로 움직였고.
“읍! 읍!”
희오가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 말했다.
“금방 데리러 갈 테니, 보채지 말아요.”
다가오던 두 사내가 웃었다.
“이 새끼가 자꾸 뭐라는 거야.”
“확 혀를 뽑아버릴까? 누님, 혀도 구워 드실래요?”
“멍청한 놈아, 그건 안 돼. 출혈이 심해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입이나 잘 막아두고 있어.”
“아쉽네. 이 새끼야, 너 운이 좋은 줄 알아.”
사내가 우악스럽게 멱살을 잡았다.
그래서 말했다.
“당신들은 운이 안 좋네.”
공력으로 근력을 키우며 힘을 주자.
뚝!
몸을 감은 채찍이 간단히 끊어졌다.
“어?”
이곳에서 요리를 담당하는지, 사내가 허리에 차고 있던 식칼을 빼앗아 좌우로 휘둘렀다.
투툭!
목이 잘린 두 개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사이, 바닥을 차고 계단 이르러 급히 소매에 숨긴 비수와 단도를 꺼내는 사내들의 목을 베고, 가슴을 걷어차고, 장력을 뿌려 머리를 부수었다.
그리고 돌아서니 노파가 희오의 목에 비수를 겨누며 협박했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놈을 죽일 테다!”
“싫어.”
동시에 식칼을 던졌다.
푹!
머리에 식칼이 박힌 노파는 뒤로 넘어갔다.
희오에게 가서 입을 틀어막은 나무토막을 빼주고, 밧줄도 풀어주었다.
“가요.”
그러나 희오는 일어나질 못했다.
점혈이 되었나, 해서 몸을 살펴보았으나, 멀쩡했다.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고,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지린내를 풍기는 걸 보니, 너무 놀라고 두려웠던 충격의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다.
물었다.
“여기서 잘 생각이에요?”
희오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일어나요.”
“못 일어나겠소. 도와주시오.”
부축해서 일으켰고, 노파가 놓친 횃불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계단을 내려오며 화양공을 일으키고, 화기를 내뿜어서 벽에 불을 붙였다.
화르르-
호문객잔을 나왔다.
“혼, 혼자 걸을 수 있소.”
“그래요, 그럼.”
희오는 잠시 비틀거렸으나, 곧 균형을 잡으며 제대로 걸었다.
그리고 불타는 객잔을 돌아보고 말했다.
“사람을 죽여, 고기를 팔다니. 어찌 저런 천인공노할 자들이 있소.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오.”
“왜 세상을 탓합니까. 어느 때든 나쁜 사람은 늘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제때 알아보고, 미리 없애지 못해서 문제인 거죠. 그리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하지만 좋은 사람들은 남을 믿는 마음이 더 크기에, 남을 이용할 생각뿐인 저런 흑점의 무리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인민은 저런 자들이 좋은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똑똑하고, 강한 자들에게 권력을 주었고, 나라가 생겨나며 공경대부가 있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공경대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혜택만 누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해서 문제일 뿐.
‘그래서 세상에는 순수하게 의를 추구하고, 죽기를 각오하여 협을 행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새삼 각오를 세웠다.
‘그런 이들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자.’
* * *
북진에서 서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마을.
혁련미림과 탕난은 그 마을의 한 음식점에 들어가 소면을 시켰다.
“음식 나왔습니다!”
점소이는 평소보다 더 힘찬 걸음으로 다가와, 살가운 음성으로 말하며, 소면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주위의 다른 손님들은 자기들보다 더 많은 양의 소면을 만들고 문틈으로 내부를 힐끔거리는 숙수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점소이가 자기들을 대하던 때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음에도 이해했다.
면사 때문에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매혹적인 몸매의 혁련미림 앞에서 그 어떤 사내가 즐겁고, 힘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보통은 눈요기한 것만으로 만족하는데, 꼭 그 선을 넘으려는 자들이 있었으니, 음식점에 보호비를 받으러 왔다가 혁련미림을 발견한 흑도의 사내들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그런데.
탕!
흑도 사내들이 점소이를 밀쳐내고, 탁자를 둘러싸며 수작을 걸려는데, 혁련미림이 탁자를 내리쳤다.
그리고.
탕!
탕난도 탁자를 내리쳤다.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면박을 받은 흑도 사내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