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34
제134화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마유현과 여민서가 가브리엘과 만난 것은, 축사를 뒤질 무렵이었다.
축사에는 마수가 득시글했다. 동물들이 흑마법에 의해 마수가 된 것이었다. 악마종도 한 마리 있었다. 그들은 연회를 벌이는 원을 그리며 기괴한 소릴 내지르면서 둥글게 춤을 추었고, 그 중심에 가브리엘이 쓰러져 있었다.
“……저걸 굳이 봐야 하냐? 누가 봐도 박제는 아닌 것 같은데?”
마유현은 신성력을 눈가에 그려 축복을 사용하다 말았다. 여민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악마종과 마수의 중앙에 있는 가브리엘은 누가 봐도 박제가 아닌 본인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하반신은 검은 불꽃에 잡아먹히듯 타오르고 있었다.
여민서는 적의 수를 셌다. 마수는 어림잡아 10마리 정도 됐고, 악마종은 하나였다. 대충 생각해도 승산은 없었다.
마유현, 이놈이 관건인데…….
여민서는 이 상황에도 헤헤 웃고만 있는 마유현을 날카로운 눈매로 응시했다.
“……야, 너 싸움 좀 하냐?”
“어? 맞는 건 잘하지.”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다.
파악!
“어, 어어─?”
여민서는 마유현의 등을 발로 차서, 마수 쪽으로 밀었다.
마유현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소리에 이끌려 마수와 악마종이 고개를 돌아보았다. 마수의 붉은 눈과 침을 뚝뚝 흘리는 거대한 송곳니는 전부 마유현을 향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컹! 컹!
“오우, 얘들아. 이러지 마. 우리 친구였잖아…….”
마유현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며 마수들을 설득하려 들었다. 설득이 통할 리가 없었다. 애당초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악마종도 마찬가지였다. 악마종은 마유현에게 적개심만을 드러낼 뿐, 그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는 않았다.
“여민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마유현이 고개를 돌리며 여민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여민서는 이미 마유현 곁에 없었다. 그녀는 눈 깜짝할 새 사라져 있었다. 마유현이 헛웃음을 흘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허, 허허. 와, 이런 인성 터진 새낄 봤나…….”
마유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늘을 보았다.
지금 불러야 하나? 아니, 겨우 이런 일로 부르기에는 아깝지 않나?
하지만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도 살아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죽고 나서 후회해봐야 늦다. 아직 마수들과 거리도, 시간도 남아 있었다.
마유현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보며 손을 모았다. 모아진 엄지가 십자로 교차했다.
“하늘에 계신…… 어?”
기도의 서문을 읊던 마유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를 향해 다가오던 마수와 악마종들을 향해, 빛이 쏘아지고 있었다. 빛은 뭉치면서 일그러졌다. 여민서의 축복진이었다.
퍼어엉!
빛이 폭발했다. 마수들이 폭발에 산개하며 흩어졌다.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마수들의 버둥거림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폭발은 마수의 몸을 날리기에는 충분했으나, 악마종을 제압하기에는 약했다. 악마종은 걸음을 절면서 마유현에게 다가갔다.
빠악─!
그리고, 악마종을 향해 여민서의 몸이 날아들었다. 여민서는 그대로 몸을 틀어, 악마종의 턱에 무릎차기를 꽂았다.
비틀, 중심을 잃은 악마종의 몸이 기울어졌다. 여민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성력을 쏘아내듯 사출하여, 악마종의 몸에 축복진을 그렸다.
“야, 너…….”
보고 있던 마유현이 뒤늦게 여민서를 말리려 들었다. 여민서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마유현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악마종의 몸 내부에서 축복진을 충돌시켜, 악마종을 완전히 터트려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여민서와 악마종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 거리에서 축복진을 충돌시키면, 여민서 본인도 크게 다칠 것이다. 아니, 다치는 게 아니라 죽을 것이다.
여민서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악마종의 몸에 축복진 두 개를 새겨, 충돌시켰다. 그녀는 일찍이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출세가 눈앞에 있었다.
뻐엉─!
빛이 폭발한다.
악마종의 몸이 조각났고, 조각 난 악마종의 살점에 여민서가 맞았다. 여민서의 배에 크고 작은 구멍이 몇 개나 생겼다. 폭발에 휩쓸린 그녀의 뺨은 반쯤 사라져 있었다.
이걸 산다고?
이를 본 마유현이 경악했다. 여민서의 전투 스타일은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위험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마유현, 왜 그러고…… 있냐? 나한테 뭐 잘못했냐?”
“너, 너. 얼굴…….”
“가서……. 치유 사제나, 누구든 좀. 불러와, 이 개새끼야. 얼 타지 말고…….”
마유현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평소와 달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치유 사제든, 사제 출신 선생님이든 도움이 될 만한 누군가를 찾으러 나섰다.
광기에 물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리던 여민서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선연했다.
한편, 여민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기어코 살아서, 가브리엘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당장의 출혈은 치유를 통해 멎게 했다.
자가 치유의 부작용이 뒤늦게 몰려올 테지만, 알 바는 아니다. 그녀는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걸었다.
여민서가 가브리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아, 하. 하하하. 가브리엘, 님. 보셨죠.”
“…….”
가브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할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브리엘은 대답 대신 눈을 몇 번 깜빡이거나,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가브리엘의 하반신은 타오르고 있었지만, 역겨울 정도로 목숨 줄 질긴 이 노인네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가브리엘은 장로다. 이 나라에서, 아니 로마니카교에서 장로라는 직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장로의 눈에 들면 무너져 가는 집안 하나를 일으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장로라는 직위가 가볍지 않은 만큼, 장로를 구한 공로 또한 가볍지 않을 것이다.
“……장로님. 당신을 구한 건…… 나예요.”
“…….”
“그, 거는. 정말로 알아두셔야 돼…… 어? 알겠어요?”
가브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민서는 그런 가브리엘의 하얀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여민서가 웃었다.
“그래, 알고 계시다니 다행이네……. 갑시다…….”
여민서는 가브리엘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그를 바닥에 질질 끌며 걸었다.
여민서는 실종자를 찾던 도중, 뒤늦게 도착한 성기사들이 일제히 아이덴 동산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녀의 목적지는 아이덴 동산이었다. 성기사들에게 가면 어떻게든 일이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장로님…… 이거, 하반신이 다 불타고 계셔서…… 차마 업을 수가 없네. 무례를 용서하세요…… 흐흐.”
“…….”
“어쩔 수 없어요, 이거는……. 알겠죠? 흐, 흐흐…….”
악마종의 살점에 배에 구멍이 뚫리고, 폭발에 뺨이 날아간 고통은 컸다.
여민서는 대답하지 않는 가브리엘을 향해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며 동산으로 향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고통으로 혼절하여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가브리엘 님……. 절대 죽으면 안, 돼요. 죽으면, 죽여 버리겠습니다…….”
“……으.”
“그렇죠……. 그렇게,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세요. 그래야 살지……. 안 그래요? 흐으, 흐…….”
가브리엘의 머리채를 당기며 여민서는 꿋꿋이 걸었다. 입가에 서린 미소가 섬뜩했다.
* * *
“…….”
소도진은 도선우의 상태를 보았다. 배는 검에 찔려 구멍이 뚫려 있었다. 도선우의 배를 꿰뚫은 것은 다름 아닌 대련용 검이었다.
오른쪽 반신은 검은 불꽃에 의해 타오르고 있다. 저건 ‘침식’이었다. 대상의 몸을 천천히 갉아먹는 저주의 불꽃이자, 악마의 불꽃.
달그락.
소도진은 품 안에 내내 간직하고 있던 약병을 꺼내 들었다. 김창원이 주었던 약이었다. 이것을 도선우에게 먹이면, 그의 몸에 붙은 불은 꺼질 것이었다. 저 불은 진짜 불이 아니라 흑마법에 의한 불꽃이었으니.
“……선생님, 그거, 약……!”
소도진의 손에 들린 약병을 본 김진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로 약병과 도선우를 번갈아 응시했다.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떨리고 있었다.
김진서는 저 약이 무슨 약인지 모른다. 그러나 필시 도선우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일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저게 만병통치약이 아니면 도선우는 죽는다.
“흑마법의 진행을 멈추는…… 약이야.”
“먹는, 아니. 붓는 약인가요? 뭐든 빨리!”
“…….”
약을 먹이면 도선우의 몸에 붙은 불씨를 끌 수 있다. 저주의 불꽃이 도선우의 몸을 갉아먹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은?
“크…… 크흐…….”
도선우의 숨소리는 가늘었다. 희미했고, 동시에 거칠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장기 어디가 파손된 게 분명했다. 폐에 구멍이 뚫려 죽었던 소도진의 동료도 죽기 직전 저런 숨소리를 냈다.
아무리 봐도…… 살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이미 죽은 몸에 마지막 숨결만 간신히 붙어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도선우의 오른쪽 반신은 이미 거의 썩어 있었다. 불꽃을 멈춘다고 한들, 이미 썩어 들어간 몸은 재생되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살아나도 도선우는 반신불수다. 성직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일상생활은 가능할까. 확신이 없다.
“뭐,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예요! 빨리! 먹이든, 붓든!!”
김진서는 도선우의 죽어버린 몸에 축복과 치유를 퍼부었다.
왈칵, 코피가 쏟아졌다. 개의치 않고 그녀는 신성력을 끊임없이 사출했다. 소도진이 들고 있는 저 약, 그리고 치유와 축복이면 도선우는 살아날 수 있다.
“개, 새끼야. 왜 맨날 혼자……!”
김진서는 목구멍에 치미는 피 구토를 삼키며 욕지거리를 했다.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입에서, 아니 머리에서 이상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아팠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 미안해. 욕해서 미안. 놀랐지. 놀랐겠다…….”
김진서는 제 입에서 나온 말을 주워 담듯이 사과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돌아올 것이다. 죽을 것도 아닌데, 마지막인 것처럼 그에게 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웃으며 평소처럼 농담을 건넬 것이었다. 설령 그가 장애를 떠안고 살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괜찮았다.
그는 병상에 누워 나를 보고, 나는 병상에 누운 그를 보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상태로든 돌아오기만 하면, 그녀는 그의 모든 미래를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아니, 반대였다. 살아 돌아오는 것만으로 그는 그녀의 삶을 책임지는 셈이었다.
“선, 생님. 그거, 들고만 있을 거면. 그냥 나 줘요. 이러다, 이러다 죽으면, 아니. 아무튼, 빨리!”
“……그래. 내가 하겠다…….”
소도진은 김진서를 보았다. 그녀는 도선우의 생환을 원하고 있었다. 김진서가 원하는 건 그의 아버지인 김창원 이사장님도 원할 것이었다.
이 약을 내게 준 것은 이사장님이다. 그러므로 이 약은 도선우에게 사용하는 것이 맞다.
무엇보다, 소도진도 그가 죽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도선우가 멀쩡히 살아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멀쩡하지 않더라도 살리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퐁.
뚜껑을 따고, 약병을 도선우의 입에 가져다 댔다. 약은 걸쭉해서 잘 나오지 않았다. 약을 주고 나면, 남은 건 기도. 도선우가 살아날 수 있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흐, 흐으……. 여기, 다 있네.”
그때, 여민서가 왔다. 진흙으로 온몸이 범벅이 된 남자의 머리채를 이끌고. 그녀가 데려온 남자는 가브리엘 장로였다. 장로회의 주축에 가까운 남자이며, 피렌체의 실권자. 가브리엘의 하반신은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가브리엘에게도, ‘침식’이 걸려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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