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7
17. 그거 거짓말이다 (1)
17. 그거 거짓말이다.
그녀는 바로 시에라였다. 시에라는 어느새 초진동검을 뽑아 들고 대가리를 들이미는 크락투의 머리통을 갈라버렸다.
촤아악!
아주 잠깐. 정신을 놓은 건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찰나의 간극이 생사를 갈랐다. 이한이 아닌 다른 병사가 또다시 목숨을 잃었으니까.
이한은 시에라가 휘두른 초진동검이 크락투의 대가리 뼈를 가르고 핏물과 뇌수를 흩뿌려지는 그때 정신을 다잡고 그 역시 초진동검을 뽑아 들었다.
우우웅!
이한은 시에라의 뒤편에서 대가리를 들이미는 크락투의 아가리에 초진동검을 찔러넣었다.
부우우욱!
놈의 육체가 어찌나 딱딱한지 스틸아머 너머에서 전해진 진동이 손안 가득 느껴졌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한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두려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이렇게는 안 죽는다. 내가 씨발 멍하니 있다가 뜯어 먹히지는 않아!
이한은 악에 받친 얼굴로 초진동검을 뽑아내려다가 또 다른 놈이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것을 확인했다. 검을 뽑고 휘두르면 이미 늦는다. 이한은 그대로 검을 놓고 바닥에 떨어진 레이저건을 집어 들었다.
그 바닥에는 라이플도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주저 없이 레이저건을 선택했다. 근접거리에선 라이플은 레이저건에 비할 무기가 아니다. 물론 쉴드가 없는 적 한정이겠지만 어차피 이 새끼들한테 죽어 나자빠질 텐데 그딴 건 생각해서 뭐에 쓸까?
이한은 레이저건으로 발사해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놈의 안면을 레이저로 꿰뚫었다.
딴에는 생명체라고 꿈틀거리는 것 좀 봐라. 거울이 있으면 좀 처봐라. 이 새끼야. 네놈 면상이 어디 생명체 면상인지. 씨발. 내 인생 참.
세상에 좋은 광경. 아름다운 것들이 없어서 어디 삶의 마지막의 순간을 앞에 두고 이런 쓰레기보다도 못한 면상을 가진 것들과 뒹굴어야 하나?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뒈져! 이 씨발 것들아!”
이한은 뒤편에서 아가리를 짓쳐 드는 크락투에게 또다시 진한 레이저 맛을 보여줬다.
“아아아악!”
“크아악!”
이태껏 살아남은 병사의 노련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지금은 그런 노련함도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지만 남은 병사들마저 결국 빠르게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남은 장갑마저 찢어지면 그땐 정말 모든 게 끝이다. 개떼처럼 달려들어서 팔이든 다리든 모조리 씹어먹겠지.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환장하겠다. 큭큭큭.
퍼억!
뭔가 등 뒤에서 자신을 강타하는 충격에 이한은 쏜살같이 앞으로 날아갔다.
쿵 쿠쿵!
날아간 방향이 장갑이 찢겨나간 곳이라면 상념은 헛웃음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앞에는 아직 부서지지 않은 벽이 있었고 이한은 그곳에 강하게 처박혔다. 다행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사령관님!”
시에라가 초진동검을 휘두르며 자신을 부르는 것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힐끗 바라보니 덩치가 큰 병사 역시 무슨 고대의 전사처럼 크락투를 초진동검으로 베어 넘기고 있었다.
시에라와 빌리였다. 계급을 어디 도박으로 따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잘 싸웠지만 둘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이한은 고개를 흔들며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들의 모습 외로 빠르게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흉물스러운 괴물 역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한은 급히 무기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아아······.”
이한은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
퉁! 투퉁!
그 순간 육중한 총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크락투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퍼어억!
머리를 잃긴 했지만 크락투는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이한에게 짓쳐 들고 있었다. 그래도 생사의 간극을 넘은 사람이라고 이한은 경황 중에도 몸을 움직여 머리 잃은 놈의 한없는 질주를 슬쩍 비켰다. 달리는 놈은 달리게 해줘야지. 심지어 마지막 가는 길이잖아.
쿵! 쿵! 쿵! 쿵!
통신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굉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키에에엑!
키에엑!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 개새끼들의 괴성에 속이 다 시원할 지경이었다.
이한은 주변에 떨어진 라이플 등의 무기를 챙기며 주변을 바라보자 빌리가 입을 열었다.
“존버하면 살 수 있다더니······. 사령관님 말씀대로 되었군요.”
바이저 안으로 비친 빌리의 표정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같은 통신 체계를 사용하는 것을 봐선 바로 유니온이 보낸 지원군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초인공지능은 초인공지능인가 보다. 가망없어 보이던 지원군이 온 걸 보니······.
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살아남은 병사들부터 바라봤다.
시에라와 빌리, 이름 모를 병사 2명. 심지어 그중에 한 명은 팔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자신까지 고작 5명이다. 고작 5명.
처절하다 못해 슬플 지경이다. 그래 이 감정은 슬픔이 맞다.
이한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빌리에게 말했다.
“그거······. 거짓말이다.”
빌리는 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툭 말을 뱉었다.
“다 죽었을 겁니다. 저 역시도.”
이한은 빌리를 힐끗 바라봤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이한은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쳐가는 알 수 없는 별들을 무심히 바라봤다.
“우주······.”
원래 자신은 한 이드라실인데 기억이상으로 인해 이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아니란 걸 안다.
단지 눈앞의 모든 광경이 너무나 확연한 현실인 것에 반해 지난 기억은 빛바랜 사진마냥 흐릿하니 묘한 감정에 휩싸였을 뿐이다.
이한이 머물던 방 안에 중성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는 다시 한번 창밖을 일별한 뒤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창가에 비친 그의 두 눈에는 혼란한 감정이 깊숙이 내려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서자 가볍게 무장한 병사 두 명과 그 앞으로는 승무원 복장을 한 사내가 대기하고 있었다.
“윌마르 중위입니다.”
그의 인사에 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지?”
“스티븐 함장님께서 이미 간략한 전문을 보냈습니다만 상부에서는 사령관님의 직접보고를 요청했습니다. 곧 통신 가능지역에 들어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부적인 사항은 다르지만, 튜토리얼과 비슷한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유니온의 함대에게 구출 당했다는 점 말이다.
이한의 구출 경위는 이러했다.
엠파이어 함대는 유니온 함대에게 승전했지만 유니온의 지원함대 매복에 걸려 결국 전멸했다. 유니온이 지원군을 보냈다면 엠파이어 역시 가능한 일.
따라서 지원함대는 최초 교전 지역 탐사를 위해 가장 빠른 이동속도를 지닌 초계함을 보냈는데 초계함이 행성 주변에 도달하자마자 때마침 송신된 워의 구조요청을 수신했고 이에 즉시 특수부대를 급파했다.
N슈트를 걸친 스펙터들은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이라 크락투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한의 구조와 더불어 초인공지능 장치까지 회수할 수 있었다.
물론 적절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한이 확인한 바로도 스펙터의 전투력은 마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참고로 BN슈트를 사용하는 슈퍼솔져는 이러한 스펙터보다도 강한 전투력을 보유했다. 대개 기본으로 지급되는 병사 계급도 마린, 스펙터, 슈퍼솔져 순으로 더 높았다.
구조 당시를 상기하던 이한은 윌마르 중위에게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익숙한데? 혹 저번에 구조를 지휘했던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특전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당시 직접 구조에 나서진 않았고 수송기에서 병력을 지휘했습니다.”
이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하겠습니다. 이대로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따라오라는데 별수 있나? 가야지. 이한은 윌마르의 뒤를 따라 둥그런 형태의 회의실 비슷한 곳에 다다랐다. 윌마르는 안쪽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윌마르는 절도있게 경례를 표했고 이한은 무심결에 그 경례를 받았다. 윌마르는 몸을 돌려 이한을 떠났지만 그를 따라온 두 병사는 문의 양옆에 시립했다.
잠시 윌마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한은 회의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지이잉! 쿵!
그가 회의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문이 닫혔고 곧 현란한 빛과 함께 홀로그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둥근 테이블 주변으로 몇몇 사람의 형상을 구현했다.
이한은 그 모든 광경을 숨죽여 바라봤다.
흰머리에 흰수염, 강직한 얼굴에 구불구불한 주름이 새겨진 노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딱 봐도 한 이드라실의 상급자였다.
“감사합니다.”
이한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가 바로 대답했다. 거짓을 말할 이유도, 거짓을 말하고 수습할 능력도 없었다.
“송구하게도 제가 기억하는 내용은 한 이드라실이라는 이름이 전부입니다.”
이에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다른 사내들이 헛기침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먼저 말을 꺼냈던 노년의 지휘관은 아랑곳하지 않은 기색으로 다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