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76
173. 추격 (2) >
173.
이한은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저 멀리 넘실거리는 바다를 바라봤다. 그런 이한을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던 흑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십니까?”
빌리였다.
“바다.”
빌리는 이한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봤다. 에메랄드 빛이랄까? 여러 빛이 한데 어우러진 바다는 무섭기보다는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저게 바다는 맞답니까?”
“뭐든 간에 알게 뭐냐?”
빌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뭐. 그것도 그렇군요.”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이한이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중증 우울증인지 의심 중인데 더 심해지겠군.”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갑자기는 썩을!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만 계속 보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 말입니다.”
“미치거나 우울증 걸리는 거야.”
“이미 중증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빌리는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뭔 걱정입니까? 이미 내성이든 면역이든 뭐든 생겼을 거 같은데.”
“이젠 나를 중증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냐?”
“사령관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리고 이왕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바다 보고 있다가 우울증 걸려서 뒈질 것 같으면 크락투 봤을 때 이미 뒈졌어야죠. 안 그렇습니까?”
“팩트로 후려치니 어떻게 반박하기도 어렵네. 제길.”
“예. 예. 그러니 되도 않는 감상따위는 그만 집어치우시고 명령이나 내려주십시오.”
“명령이나? 이 새끼가! 명령 내리는 건 뭐 쉬운 줄 아나?”
“어허 왜 이러십니까? 저도 명령 많이 내려봤습니다.”
빌리의 과장된 태도에 이한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술을 잔에 따라 빌리에게 건넸다.
“위스키지?”
“가리지 않습니다. 독하면 독한대로 순하면 순한대로 마시는 거죠. 크으.”
입가를 타고 흘러내린 위스키를 팔뚝으로 닦아낸 빌리가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임무 중에 지휘관이 술을 권해도 되는 겁니까?”
“냉큼 받아 처먹어놓고 이제 와 무슨 헛소리냐?”
서로 눈이 마주친 빌리와 이한은 실실 쪼개다가 이내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리던 이한은 역시 위스키를 한 잔 가득 따라 단번에 들이켰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내려가는 것은 같은 화끈한 감각을 선사했다. 뭐 나쁘지 않았다.
빌리는 고요한 시선으로 그런 이한을 바라보다가 이한에게 말했다.
“사선에 사선을 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
“돌아갈 길 따위는 없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령관님께서 후퇴하시면 테라가 끝장나는 겁니다.”
“이 새끼. 허튼소리나 지껄일거면 사색 방해하지 말고 나가!”
“어허! 왜 이러십니까? 중증 우울증 환자 케어해주려 명의께서 친히 왕림해주셨는데.”
“응. 아니야.”
장난스럽게 말을 받는 이한을 바라보던 빌리는 얼굴에 서린 장난을 모두 지우고 입을 열었다.
“총사령관님.”
“왜 갑자기 쓸데없이 무게 잡고 그래. 네가 무게를 더한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겠다만.”
“총사령관님.”
이한은 슬쩍 짜증을 부리며 빌리에게 말했다.
“왜? 이미 듣고 있잖아.”
“후회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뭔 헛소리야.”
이한의 퉁명스러운 어조에도 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총사령관님을 따라 전장에 선 사실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군인은 명에 살고 명에 죽습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고백은 썩을.”
다시 욕설과 함께 대답한 이한은 깊은 심연을 바라보던 눈으로 빌리를 바라봤다. 이한은 그제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
“해저탐사를 진행한다.”
임시거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병력은 이한의 명령에 의해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송선을 비롯한 여러 기갑 병기에 탑승하기 시작했고 수중에서 필요한 도구를 챙긴 병사들은 지휘관의 안내에 따라 바다에 입수했다.
첨벙! 첨벙!
위이이잉!
올리펀트와 트리탄도 거침없이 바다에 들어갔다. 우주에서도 가동하는 기갑병기이니 수중이라고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한이 주저했던 것은 바다에서 매우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는 한 종족 때문이었다. 바로 12종족 중 하나인 스타로쉬 말이다.
스타로쉬는 반투명한 육체를 지녔고 물과 같이 출렁거리는 형태를 지녔다. 육지에서는 저들의 존재를 특정할 수 있지만 물에서 저들의 존재를 특정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이 바다에 스타로쉬가 득실거린다면 함부로 발을 디디는 행동 자체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심지어 어떤 목표 지점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 심해를 계속해서 헤매야 할 테니 여러모로 상당히 위험했다.
이한은 지휘부 안에서 점점 무저갱처럼 새까만 심해를 바라봤다. 미지의 광경은 두려움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비단 스타로쉬족이 아니더라도 암흑 속에서 거대한 아가리를 가진 거대 생명체라도 나타날까 조마조마했다. 이 행성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한은 2, 4 방어군과 함께 대열을 맞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현재 이한의 병력은 수송선과 같은 수송 수단을 이용해 잠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수송선으로 이뤄진 함대를 구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 전투기 등을 개조 생산했지만 당연히 그 숫자가 결코 많지 않았다.
대다수 요격기는 함대에 자리하고 있었고 게이트 행성은 포스 행성과 마찬가지로 공중전을 치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 공중 병력 자체를 생산하지 않았기에 때문이다. 현재 있는 전투기는 임시 거점에서 부랴부랴 생산한 것이 전부였다.
이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아래에서 미약한 파장이 잡힌 것이 맞나?”
『확실합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 파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워의 대답에 이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하다 이젠 심해탐사까지 하고 있다. 황당할 노릇이지만 사실 이젠 뭐 더 황당할 것도 없다.
“그래. 혹 상황이 변화하면.”
이한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워의 다급한 보고가 이어졌다.
『사령관님! 심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빠르게 솟구치고 있습니다.』
“전군 산개!”
워의 보고를 듣자마자 이한은 산개 명령을 하달했다.
보글보글!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거품을 일으킨 이한의 수송 편대는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휘리리릭! 휘리릭!
그 사이를 거대한 몸통을 가진 뭔가가 꿈틀거리며 빠르게 스쳐갔다.
“설마 가물치? 가물치인가?”
『비슷한 종류로 보입니다. 사령관님 다시 짓쳐 듭니다!』
부족하기는 하나 공격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이한은 냉정한 표정으로 워에게 소리쳤다.
“요격 편대 즉시 놈들을 사살하도록!”
*
우주대신 해저를 비행? 중이던 요격 편대의 대장이 빠르게 명령을 하달했다.
“브라보, 델타! 놈들의 후미를 쳐라. 알파 찰리는 놈들의 미끼가 된다.”
요격기는 쏜살같이 날아다니며 가물치처럼 생긴 괴생명체가 수송선을 습격하지 못하도록 유인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놈들의 후미를 잡은 요격기들이 일제히 강력한 플라즈마탄 등으로 놈들의 표피를 뚫어버렸다.
쿠우우우우
놈들이 울부짖는 괴성이 요격기의 동체에 진동으로 여실하게 나타났다. 다만 한두 마리가 아니라 병력 전체를 덮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숫자가 모습을 드러냈기에 이한의 병력은 금세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상식으로 재단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하라.”
“헤라클레스와 자이언트 출격시켜서 에너지 웨폰으로 놈들을 반토막쳐버려라.”
『곧 출격합니다.』
육중한 헤라클레스와 자이언트가 에너지 웨폰을 발현하자 에너지 웨폰이 발현된 곳의 물이 순식간에 기화되었다. 헤라클레스는 지체하지 않고 에너지 웨폰으로 다시 쇄도하는 거대 생명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촤아아악!
크르륵!
가물치 괴물은 아가리를 벌린 채로 반으로 쪼개져 심해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한의 병력을 습격한 가물치 괴물떼가 모조리 살육당했다.
안 되겠다 싶은 모양이었는지 살아남은 개체는 급히 공격했을 때와 정반대로 급히 심해로 도망쳤다.
『괴물떼가 도망칩니다. 추격합니까?』
“아니 안전하게 이동한다. 아군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도 못했으니 굳이 그럴 필요는.”
이한은 황당한 표정으로 심해에서 빠르게 솟구치는 생명체들을 바라봤다.
“나가?”
놈들이 신화속의 나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뱀의 형상에 팔다리를 가진 종족이라는 건 명확했다.
『신화 속 나가와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긴 합니다. 임의대로 나가족이라 지칭합니다. 사령관님 나가족이 들고 있는 무기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포착했습니다. 아군 수송선이 위험합니다.』
콰아아앙!
모습을 드러낸 나가족 무리는 창으로 보이는 무기에서 플라즈마를 쏘아내 수송선을 파괴했다. 에스타른족이 사용하는 무기와 상당히 비슷한 형태였다. 다행히 극심한 피해는 아니었고 수송선 내부의 병력이 밖으로 나와야 할 정도의 피해였다.
문제는 그런 나가족이 끊임없이 심해에서 출현한다는 점이었다.
『사령관님. 나가족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집니다.』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이한이 입을 열었다.
“전 병력 수송선 밖으로 나와서 즉시 교전을 실시한다.”
이한은 임시 거점을 방어하고 있는 제4방어군의 스테판 사령관에게 통신했다.
“외부상황은 어떻습니까?”
심해만 이러한지 아니면 임시 거점이 위치한 육상도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심해에서 미확인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아군에게 적대적인 족속이니 혹시 모를 침공에 대비하십시오.”
임시 거점은 해저 탐사대의 지원 부대라고 할 수 있었다.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이곳이 먼저 무너지면 곤란했다. 보아하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말이다.
나가족과의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 강화된 배리어와 실드를 이용해 아직까지 별도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토록 많은 숫자의 적이라면 안심할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놈들의 공격을 방어하되 놈들과 대화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
『대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들은 현재 극도로 분노한 상황입니다. 아군 전체를 말살하려는 의지가 강력합니다.』
“아무래도 데모스 등이 건드린 벌집을 우리가 덤터기쓴 모양이로군.”
『제 판단도 동일합니다. 이미 뭔가 탈취해서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나가족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들의 분노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워의 보고를 들을 때 화면으로 거대 가물치 위에 올라탄 나가족들이 송출되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어떻게 합니까? 사령관님. 이대로 지상으로 후퇴할 것인지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주셔야 그에 따른 전략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건 가정에 불과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럼 해저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어. 나가처럼 보이는 이 괴생명체의 도시가 존재해도 존재하겠지. 이곳의 토착 생명체라면 게이트 행성에 대한 정보가 아군보다는 풍부할 테니 위험을 감수할만 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에 따른 전략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둘째치고 이 나가족부터 어떻게 처리해야겠군.”
『플라즈마를 사용하기는 하나 아군이 크게 위협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스페이스 마린이라면 능히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흠. 그렇다는 건 워리어라면 저들의 공세를 뚫고 필요한 자료를 탈취할 수 있다는 소리도 되겠군.”
『이번에도 직접 이동하실 계획이십니까?』
“뭐든 간에 서둘러 확인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겠지. 게이트 행성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으니 지금 만난 나가족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니 아군은 이곳에서 나가족의 침공을 견제하되 나와 워리어 등은 우회해서 놈들의 출몰지에 침투한다. 놈들 도시를 파괴하든 자료를 추출하든 그게 효율적인 선택으로 보이는군.”
『사령관님의 의중이 그러하시다면 계획을 변경하겠습니다.』
데모스의 흔적을 따라 왔더니 나가와 매우 흡사한 괴생명체 등을 만났다. 뭔가 연관점이 있을 것이다.
이한은 눈을 빛내며 워에게 말했다.
“각 사령관들에게 연결해. 세부 조정을 한 뒤 즉시 이동하겠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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