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94
191. 대전투의 시작 (2) >
191.
자투, 시구르스, 볼테르안의 함대에서 쏟아져 나온 함재기의 숫자만 290만기에 달한다. 시에라가 지휘 중인 타고르스함은 이에 맞서 60만기에 달하는 함재기를 발출했고 전투에 합류한 두르둔, 라페이드 함대에서 다시 170만기의 발출했기에 모두 520만기에 달하는 함재기가 공허한 우주를 제멋대로 활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함재기의 전술이나 전략을 일일이 통제한다? 불가능하다. 함재기의 움직임은 당연히 함재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의 결정에 달려있다.
설혹 모든 아군의 함재기가 정해진 움직임대로 움직인다고 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아군 함재기는 물론 적 함재기 역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슨 수로 통제할 수 있으랴?
무엇보다 함재기전은 그저 전초전에 불과하다. 함재기전이 조금이라도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면 그때는 근 2만 척에 달하는 함선들이 서로 맞붙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 전투의 승패를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세밀하게 전투를 통제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무수히 많은 빛무리가 점멸하는 것이 시에라의 눈에 들어왔다. 빛이 점멸할 때마다 생명이 그 빛과 산화되어 저 공허한 우주 공간에 흩뿌려졌다. 시에라의 눈동자에는 그렇게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빛들이 반짝이며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 광란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고 어느 한쪽이 멸망해야만 그치게 될 것이다. 인류최강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지닌 시에라지만 이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잠잠히 지켜보는 일밖에 없었다.
*
수천만 광년 이상 떨어진 곳이고 정찰함이 웜홀 게이트를 넘나들지 않는다면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즉각적으로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으나 당연히 초월구조체에 있던 이한에게도 웜홀 게이트 주변의 상황이 전달되었다.
『자투, 시구르스, 볼테르안 함대가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이미 예정된 침공이었기에 이한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워에게 말했다.
“목표는 웜홀 게이트인가?”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웜홀 게이트는 초월구조체의 초자원과 테라 등지의 병력을 초월구조체로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니 이곳을 파괴하거나 봉쇄한다면 향후 전쟁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 종족이 셋이듯 웜홀 게이트도 세 개다. 당연히 그 웜홀 게이트는 테라, 칼가로아, 엘더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테라의 웜홀 게이트만 파괴된다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적의 우선 목표는 웜홀 게이트가 될 것이고 아마 다음이 테라의 기반 시절이 갖춰진 행성 등이 될 것이다.
『행성 방어 등을 위해 대기 중인 테라 함대를 합류시킵니까?』
타고르스함을 제외한 테라의 함대 우주모함은 100척, 순양함 500척, 구축함 1500척, 호위함 3000척은 현재 각 구역을 사수하고 있었다. 100만기에 달하는 함재기 역시 보유하고 있으니 전장에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웜홀 게이트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행성이 파괴되어서야 의미가 없다. 막대한 양의 초자원과 그것을 수송할 통로 역시 멀쩡해도 그것을 활용한 기반 시설과 사람이 사라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웜홀 게이트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
웜홀 게이트를 포기하면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겠지만 웜홀 게이트가 파괴된다고 초월구조체의 아군이 말살되는 건 아니다. 테라나 동맹군의 본거지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아군의 본거지를 잃어버린다면 재기할 발판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을 적들도 인지하고 있기에 웜홀 게이트를 최우선 목표로 놓고 공략하는 것이리라.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라도 무는 법이니 행성 공략보다는 웜홀 게이트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승산이 높다고 판단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행성 방어를 도외시한다면 당연히 적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고 기반 시설과 행성을 초토화할 것이다. 지금도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고 있을 테니 웜홀 게이트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해도 행성 방어를 위한 병력은 반드시 남겨둬야 했다.
이한은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데모스와 스타로쉬가 아군의 편에 섰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적 함대의 규모가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볼 때 데모스와 스타로쉬 함대가 저들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저들이 먼저 동맹을 제안해놓고 바로 파기할 이유는 없으니 데모스, 스타로쉬 함대가 웜홀 게이트 방어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상당한 함대로 압박을 가해 그만큼의 병력이 움직일 수 없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는 상당히 영리한 태도였다. 초월구조체에 입성한 종족과 다르게 두 종족은 막대한 양의 초자원을 얻을 수단이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전력을 잃어버리면 재기하기 어렵다는 뜻이고 승리하더라도 테라에 압박을 가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전략은 전력을 보존하면서도 동맹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니 저들이 적 함대를 압박하고 견제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실을 가지고 추궁할 수는 없다. 저들이 전투에 합류해 전투의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피해도 커지는 셈이니 테라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모스와 스타로쉬의 함대는 나타나지 않고 행성 방어를 위한 테라 함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적의 아군의 상황을 눈치채겠군요. 데모스, 스타로쉬 함대는 아군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적 함대를 상대할 확률이 가장 높으니 말입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저들은 굳이 적 함대와 맞닥뜨릴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다. 뒤통수를 찌를 수 있는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주는 것으로도 충분해. 한데 이 상황에서 아군이 행성을 방어하던 병력까지 웜홀 게이트로 움직인다면 적들 역시 그 치명적인 비수가 어떤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겠지. 물론 적들도 바보가 아니니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확인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 저들이 모든 것을 파악하기 전에 현 상황을 이용해야겠지.”
『데모스, 스타로쉬를 신뢰하십니까?』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돈을 빌려줬어. 한데 갑자기 어려움이 그에게 닥쳐서 그 집 아이가 끼니도 먹지 못하고 굶게 되었다. 이런 상황인데 평소에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니 반드시 돈을 갚을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저들은 처음부터 신뢰할 수 없는 족속이었다.”
이한은 초월구조체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주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신뢰할 수 없다. 종족이 멸망으로 치닫는데도 동맹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 보는 건 순진한 것을 떠나서 어리석은 거다. 하나 현 상황에선 신뢰할 만한 하다.”
애초에 저들을 신뢰하기에 저들과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다. 아군에게 보다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그것을 이용해 승리하기 위해 잠시 곁을 빌려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확한 상황파악을 위해 데모스, 스타로쉬 함대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12종족이라 불리는 자투, 시구르스, 볼테르안도 놈들 병력의 위치를 찾지 못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상황에 여유도 없는 아군이 무슨 수로 저들을 찾아낼까?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곳의 상황이다. 이곳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만 있으면 나머지는 자연히 해결된다. 물론 그때까지 남은 지역이 버텨줘야 하겠지만 말이야.”
이한이 워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초월구조체 위에서는 극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웜홀 게이트는 물론이고 행성 방어를 위해 남은 함대 역시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한은 주먹을 움켜쥐며 강하게 염원하듯 다짐했다.
‘승리한다. 반드시!’
패배한다면 인류라는 족속 자체가 공허와 허무의 이름 아래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이한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한 단어를 뱉었다.
“엘카힘.”
수차례 느낀 것이지만 이곳은 무슨 ‘스페이스 워’의 게임 속 같은 것이 아니다. ‘스페이스 워’라는 게임을 매개체 삼아 미래든 과거든 평행우주든 어디든 간에 도달한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 생각 자체가 합리적인 생각이라 볼 수 없지만 어쨌든 나를 이곳에 오게 한 존재가 있다면 당연히 ‘엘카힘’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불가해한 기술력을 가진 존재들이니 저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저들이 왜 나를 이곳에 오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시에라와 함께하며 그 과정이라는 건 내게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너희가 내게 무엇을 원했든 나는···.”
그 대가가 내 목숨이라도···. 지키겠다. 차라리 그게 나을 테니까.
그런 이한의 눈빛에는 강철보다 단단한 결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
플라즈마건을 든 스페이스 마린과 스펙터들이 자투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슈슈슝!
콰아앙!
플라즈마 포화에 의해 땅과 바위가 녹아내리고 주변에는 새까만 재들이 가득했다. 플라즈마에 노출된 아군의 시체였다. 암석질 피부를 지닌 자투족 역시 치열하게 대항했으니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는 테라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초인공지능 마스터이자 현재 초월구조체에 기지를 건설한 사령관 중 하나인 헤르만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르둔, 라페이드족은?”
『라페이드족은 볼테르안의 기지 건설을 저지하는 중이고 두르둔족은 시구르스족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아군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지만, 저들의 병력 유입이 타란트라족의 침공으로 멈춘 까닭에 이대로라면 곧 기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토 사령관에게 연결해.”
『알겠습니다.』
헤르만은 곧 오토 사령관과 통신했다.
“상황이 순조롭긴 하나 오히려 이렇게 쉽게 밀려나다니 그 점이 의아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헤르만이 통신을 끊은 뒤 상황판을 바라봤다. 오토 사령관의 말대로 조금 의심스럽긴 해도 엘더 연맹 소속인 타란트라와 저들의 알력 때문이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때 컨트롤 센터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지하에서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사령관님! 타란트라입니다!』
“총사령관께서 철저히 격멸하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병력을 뒤로 물리셔서 타란트라의 침공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둘러싸인다면 전멸을 면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헤르만은 다급한 어조로 초인공지능의 조언대로 명령을 내렸다.
*
당연히 이 소식은 이한에게도 전달되었다.
『사령관님! 아군기지 지하로 타란트라족의 침공이 관측되었습니다.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계속된 포화로 인해 타란트라는 지하에 기지를 건설할 만한 여력을 갖추지 못했을 텐데?”
피해가 누적되긴 했으나 이대로 전투가 진행되면 아군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아군이 불리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다시 발생했다. 이어지는 워의 보고를 들으니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령관님! 엔두카함 내부로 이상 에너지가 관측됩니다.』
“이상 에너지?”
타란트라족이 지하에서 침투한다는 사실도 의아한데 엔두카함은 코스모스라는 강력한 동력원으로 보호받고 있다. 대체 무슨 수로 함내로 침투했단 말인가?
『정체불명의 존재를 인지합니다.』
이윽고 워는 이상 에너지와 함께 출현한 존재를 화면에 띄웠다. 여러 개의 눈이 얼굴에 달린 존재가 언뜻 비췄는데 이내 곧 화면이 먹통이 되었다.
하지만 이한이 정체불명의 존재가 누구인지 인지하는 것으로는 충분한 광경이었다.
“모베르단!”
모베르단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이한은 등골이 서늘하게 얼어붙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한은 즉시 워에게 명령을 내렸다.
“워!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고 기지를 방어하도록 명령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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