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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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증명하라.
이한의 주변으로 생소하기는 하나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테라의 생태계와 다른 건 확실했지만 아름답다는 것에는 이견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한이 기운을 퍼트리는 순간 이한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종이를 불사르는 불꽃처럼 정말이지 주변 모든 것을 새까맣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주변광경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이한은 퍼트리던 기운을 거뒀으나 그 변화는 이한의 행동과 관계없이 점점 더 퍼져나갔다.
구워어어어어어!
그때 뱃고동소리를 연상케 만드는 육중하고 낮은 괴성이 그 일대를 휩쓸었다. 땅이 진동할 정도로 강력한 음성이었고 실제로 이한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고막이 찢어졌을 정도로 강력한 음성이었다.
쿵! 쿵! 쿵!
괴성에 이어 거대한 진동이 연이어 울려 퍼졌는데 이한이 느끼기엔 무언가 거대한 생명체의 발걸음처럼 느껴졌다. 이한은 자신의 추측을 금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멀리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괴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신장이 100m는 될까? 사족 보행처럼 보이긴 하나 수없이 많은 촉수를 가진 촉수 괴물로 보였다.
피부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여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혼합해야 저토록 난잡한 색상을 형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끔찍했다. 아마도 놈의 외관이 그 느낌에 결정적인 역할을 주도했을 것이다.
쿵! 쿵!
놈의 발걸음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고 놈은 정확하게 이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불길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모든 것을 불사르던 불길은 역시 점점 더 확대되어 가며 괴수가 있는 지점까지 타올랐다. 괴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불길과 맞닥뜨린 놈 역시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워어어어어!
놈은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으나 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놈의 육체 곳곳을 더욱 빠르게 불살랐다.
【불멸자는 우리 세계를 모조리 파괴했다.】
그때 은은하면서도 듣기 좋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전혀 생소한 언어였으나 이한은 자연히 그 뜻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언어가 누구의 것인지도 알아차렸다.
“아훔···.”
지금 말을 건넨 이는 전에 만났던 아훔이라는 엘더가 분명했다. 아훔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불멸자를 상대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희생했다. 하나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그들을 깨운 것은 우리 스스로 한 일이니 우리 스스로 멸망을 불러왔노라.】
“불멸자?”
【고대의 실험체들. 봉인된 실패작들. 엘카힘의 과오로 비롯된 산물들. 정확한 기원은 우리도 알지 못한다. 끔찍한 희생 끝에 놈들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을 뿐.】
이한이 미간을 좁히며 불길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 작은 산이 된 괴수를 바라봤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 불멸자인가?”
이한은 말을 꺼내면서 어찌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칼가로아가 형성한 초공간에서 엘더가 형성한 초공간으로 넘어왔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눈앞의 웅크리고 있는 괴수는 엘더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까운 산물이라는 뜻이었다.
【허상이긴 하나 실제와 맞닿아있는 존재다.】
이한은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곳에서 괴수를 바라보며 엘더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아니 무엇보다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지?”
【우리는 모든 비밀을 알기를 원했다. 비단 우리뿐이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우주를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며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깨닫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멸망에 다다른 그 순간에나 직시하게 될 뿐. 안타깝지만 우리 또한 그러했다.】
그 말과 함께 길죽한 팔다리를 가진 존재가 푸른 불꽃에 휩싸인 채로 이한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이미 강력했으나 더 강력하고 위대했던 엘카힘을 넘어서고 싶었다. 저들 엘카힘조차 두려워한 존재를 우리가 다스리고 나아가 우리 종족이 그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누구도 우리 엘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엘카힘의 봉인을 깨고 우리는 저들을 연구했고 우리 중 일부분은 저들이 되기까지 했다.】
이한이 차분한 시선으로 엘더를 바라보자 엘더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불멸자는 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불멸자가 불멸자인 이유는 이 세계의 법칙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모든 것이. 우리가 깨운 작은 존재마저도 우리의 모든 것을 삼키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는데 만약 엘카힘이 봉인한 모든 존재가 풀려난다면···.】
이한이 침묵을 지키자 아훔의 말이 이어졌다.
【하여 우리는 우리 종족의 미래를 희생했다. 거의 모든 엘더가 불멸자를 봉인하기 위해 서로의 의지를 연결하고 봉인 장치의 구속구 안에 들어갔다.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봉인의 부속물이 되어 놈들을 잠재우게끔. 저들의 의지는 엘더에게 더욱 강한 힘과 능력을 부여했으나 나약한 엘더는 미처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의 숫자는 나날이 줄어들었고 나날이 나약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한은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는 아훔과 불길한 불길에 휩싸여 몸을 웅크리고 있는 괴수가 대조되었다. 그 순간 이한은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아훔에게 질문을 던졌다.
“설마?”
【그렇다. 우리가 저들의 봉인이 되었다. 우리의 의지가 파괴된다면 저들이 곧 우리가 될 것이고 우리가 곧 저들이 될 것이다. 우리 중 온전한 이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이한은 아훔의 말을 통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과 가장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엘더족이 은둔 아닌 은둔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불멸자라···. 너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가? 초월구조체를 얻어서!”
【정화. 모든 것을 정화하려 한다. 이미 표본은 완성해두었다. 너희 테라족의 표본까지도. 어째서 너희 표본을 얻을 당시에 엘카힘의 유적지를 인지하지 못했는지 의문이긴 하나 우주 상의 거의 모든 표본을 확보했다.】
“정화? 우주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뜻이냐?”
【우주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초자원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지워낸다는 뜻이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모든 존재의 기억을 말소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문명과 모든 존재는 말소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멸망을 피할 수 있다. 불멸자는 물질 세계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릴 테니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다 죽인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뭐랴?
“어처구니없군. 설마 그딴 개소리를 내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왜 너희가 싸지른 똥물로 인해 모두가 뒈져야 하는 건데?”
【우리 엘더족에 과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엘카힘의 전승자라면 네게도 책임이 있다. 초자원을 완성한 이들도 엘카힘이고 불멸자를 처음 이 세계에 출현하게 만든 존재도 엘카힘이다. 아울러 엘카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우리 엘더가 아니었더라도 결국 불멸자는 풀려났을 것이고 그렇게 우주는 멸망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합류하라. 우리로 인해 우주는 비로소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헛소리는 여기까지 듣는 걸로 하지.”
이한의 말에 푸른 불꽃에 휩싸인 아훔은 강렬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그럼 너 자신을 증명하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한은 무심한 어조로 연기처럼 흩어지는 아훔을 바라봤다. 그렇게 푸른 연기처럼 변한 아훔은 몸을 웅크리고 있던 괴수에게 스며들었다.
“구어어어어어!”
쩌적! 쩌저적!
그러자 놈을 둘러싸고 있던 딱딱한 껍질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깨어지며 그 안에서 붉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한은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은 고통에 휩싸였다.
실제로 그러했다. 이한의 온몸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한이 기운을 퍼트리자 불꽃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흉하게 일그러진 피부는 순식간에 원상복구 되었다.
그 순간 불꽃에 휩싸인 거인이 울부짖었는데 그 음성이 어찌나 소름 끼치는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소멸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모든 것은!】
허공에 둥둥 떠오른 불꽃 괴수는 타오르는 불꽃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쐐에에엑!
당연히 이한은 몸을 움직여 채찍을 피해냈다.
콰아아아아앙!
그러자 채찍은 이한이 있던 지면을 후려갈겼는데 그 순간 땅이 쩍 갈라지더니 용암이 분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용암이 솟구치는 것은 둘째치고 땅이 얼마나 깊이 갈라졌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건 어떤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채찍질 한 번으로 이곳에 구현된 행성의 핵에 다다를 정도로 땅을 갈라버렸으니 그 위력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불꽃 괴수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공격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채찍 같은 촉수를 휘둘렀고 그럴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산산이 파괴되었다.
이한은 정신없이 몸을 피했으나 놈을 공격하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사이오닉 소드? 그딴 게 놈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타고르스함의 포격은 물론 현존하는 모든 무기를 놈에게 쏟아부어도 놈이 죽을지 의아한 상황에서 사이오닉 소드? 마치 철갑을 입은 기사의 가슴을 이쑤시개로 들쑤시는 것과 다를 게 뭐랴?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격차가 있으리라.
‘이런 존재가 한둘이 아니라고? 끔찍하군. 대체 엘더족은 이런 놈들을 어떻게 봉인시킨 것이지?’
아마도 원래의 봉인구를 이용했을 것이다. 엘카힘이 놈들을 봉인해 두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엘카힘은 놈들을 어떻게 봉인했는지 역시 의문이었으나 엘카힘은 예전부터 규격 외의 존재였으니 일단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엘더가 초월구조체를 얻으려고 한 것은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하나?’
엘더족은 불멸자와 자신들의 의식을 연결시켜 놈들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마도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르면 놈들을 잠재우기 위해 봉인구 장치에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다른 종족과의 전쟁은 무의미했겠지. 아울러 자신들을 막는 존재에게 아량을 보일 리도 없었을 테고. 은둔 종족에 가까우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냉철한 면모를 보여준 엘더족의 행보가 내심 이해가 되는 이한이었다.
물론 이한이 알게 된 엘더의 행보라는 건 동맹을 맺은 에스타른, 두르둔, 라페이드족 등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지만 말이다. 일련의 정보를 통해 이한은 다른 종족이 엘더와의 대립을 극도로 꺼린다는 사실 역시 인지할 수 있었다.
이한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다시 피했다. 불꽃 괴수의 공격은 다시 이한이 있던 자리를 후려쳤고 엄청난 파괴력에 역시나 주변이 산산조각 났다.
아니 이젠 산산조각 날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행성 전체가 파괴될 것처럼 온갖 요란한 지각 활동을 벌이며 폭발할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공간으로 형성된 가상 공간이라고 해도 이곳에서의 죽음은 현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은 초공간이라고 해도 행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한이 행성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생존할 수 없다면 이곳 초공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그 부분에 대해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행성이 폭발한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한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능력이었으나 엘카힘의 유산으로 인한 것이라면 딱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이한은 시원하게 부서지고 있는 행성(아마도 엘더의 모성을 형상화했을 것이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엘더라고 해서 모두 같은 마음을 지녔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엘더가 우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을 기꺼이 희생하진 않을 거란 소리였다. 엘더 사이에서도 뜻이 갈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금 상황을 보면 주류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불꽃 괴수처럼 공중을 부유하고 있던 이한은 엄청난 크기의 파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곤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 파편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파스스스.
“쿠워어어어어어!”
이한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놈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력해진 건 사실이나 저 불꽃 괴수를 죽일 정도로 강력한 건 절대 아니었다. 지금은 간신히 몸을 피하는 게 전부였다.
‘문제는 아훔이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을 거란 점이다.’
실제로 이런 놈들이 활보하기 시작한다면? 게다가 가장 약한 개체에 속한다고 하지 않나? 이한은 자연히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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