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97
94. 에스타른 (1) >
94. 에스타른.
헤르삭과 만남 이후 컨트롤 센터로 돌아온 이한은 시에라를 만나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은 건가?”
“예. 덕분에 거의 모두 회복된 것 같아요.”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이한 옆에 앉아 있던 시에라는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명상에 잠겨 있었지만, 당신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않아요. 어쩌면 그래서 더 깊게 알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이한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턱을 살짝 잡은 뒤 짧게 키스한 뒤 입을 열었다.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도망치자 마을 주민이 화를 당하셨군요 라며 위로했다더군. 그러나 노인은 그걸 어찌 알겠소? 라고 대답하며 개의치 않았지. 얼마 후 도망갔던 말은 암말과 함께 돌아왔어. 그러자 이번에는 마을 주민이 복이 찾아왔군요. 라고 말했지. 그러나 노인은 역시나 그걸 어찌 알겠소 라고 대답했어. 그 후 노인이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징집대상에서 제외되어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았을 때도 노인은 화인지 복인지 그걸 어찌 알겠냐고 말했다더군.”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일화였다.
“워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 4차원 그 이상의 존재라면 과거와 미래, 처음과 끝을 한눈에 보듯 단번에 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 말이야. 하지만 그게 우리는 아니고 나는 더더욱 아니지.”
이한은 잠시 말을 끊은 뒤 입을 열었다.
“설혹 내가 예지한 것이 있다 한들 내 삶 전체에 비해도 극히 일부분일 뿐이며 세계로 확장하면 티끌만큼도 모르는 수준이지.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들? 그게 내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어찌 알 수 있을까?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은 지극히 현명한 말이야. 몰라. 이 일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본질적으로 알 수 없어.”
시에라는 어떤 대답도 없이 묵묵히 이한의 말을 경청했다. 그 가운데 이한이 다시 말했다.
“에스타른족은 다르포스라는 강대한 외계종족과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그런 저들과 협력하는 것이 복인지 화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시점에서 내게 선택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군.”
시에라는 손을 들어 이한의 뺨을 쓰다듬었다.
“뜻대로 하세요.”
이한은 그런 시에라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초인공지능 장치를 분리했다.
퓨슈웃!
그러자 컨트롤 센터의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 매우 간소화되고 축소되긴 했으나 컨트롤 센터를 건설해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건설한 컨트롤 센터가 이젠 별 의미가 없어졌다. 쓸모가 없었던 건 아니다. 컨트롤 센터가 바로 에스타른 종족의 마음에 쐐기를 박아 넣었을 테니 말이다.
이한이 초인공지능 장치를 들고 밖으로 나서자 먼저는 슈퍼솔져들이 컨트롤 센터 주변을 사수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건 그야말로 찰나였을 뿐이다.
어느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에스타른족이 컨트롤 센터 주변을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한이 걸음을 옮기자 마치 썰물 빠지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길이 형성되었다. 수많은 에스타른족 사이에 난 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그 끝에는 헤르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한은 아무말없이 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한과 가까운 에스타른부터 차례차례 가슴에 손을 얹고 무릎을 꿇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 그 가운데 부산스러운 소음은 울려 퍼지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순간 걸음이 늦춰질 뻔했으나 말그대로 순간이었을 뿐 이한은 헤르삭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이한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잔잔한 파동에 물결이 밀려가듯 에스타른족이 차례차례 가슴에 손을 얹고 무릎을 꿇었다.
이한이 헤르삭 앞에 다다르자 헤르삭은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내리치며 크게 소리쳤다.
콰앙!
【선조의 희생을 토대로! 선조의 염원을 뿌리로 삼고! 선조의 예지를 줄기 삼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섰도다!】
그와 동시에 구역을 나누고 있던 모든 막이 일제히 사라졌다.
투명해진 것인지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슈퍼솔져 등은 그런 것을 헤아리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지금 이곳 격납고에 자리한 에스타른족도 엄청난 숫자였지만 정말 끝도 없이 많은 에스타른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선조의 안배 가운데 우리를 미래로 이끌 존재가 나타났으니! 그는 우리의 사령관이 될 것이오. 우리는 그의 전사가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쓸어버릴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한 이드라실! 위대한 에스타른의 후예들이여. 그에게 경의를 표하라!】
헤르삭은 그 말과 함께 창을 한 손에 든 채로 이한에게 무릎을 꿇었다.
쿠우우우웅!
에스타른 종족 전체가 창을 바닥에 찍으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슈퍼솔져나 시에라는 물론 이한조차 엄숙한 광경에 압도되어 함부로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이한은 주변을 살펴봤다. 전장이 50km라고? 마름모꼴 형태였기에 모함의 폭도 50km는 되는 엄청나게 거대한 모함이었다.
유니온에서 가장 거대한 함선 전장 5km 우주모함 디카르마타에 탑승한 인원이 5만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50만이 넘는 인원이 탑승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200만도 더 되는 인원이 탑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들을 이끌고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 무거움에 양어깨가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멸망하거나 노예가 되어버릴 테니까. 어쩌면 모든 테라인이 전 우주에 뿔뿔이 팔려가 그 흔적도 찾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이한은 마음을 강하게 먹고 머리 위에서 환하게 빛나는 장치를 바라봤다. 아마 저곳이 이 함선의 통제실이리라.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건만 이한은 본능적으로 초인공지능 장치를 들어 올린 뒤 손에서 놓았다.
초인공지능 장치는 잠시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가 이내 곧 쏜살같이 빛나는 장치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곤 함선의 모든 장치가 셧다운 되듯이 꺼져버렸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에스타른족은 물론 이한의 일행 역시 마찬가지로 말이다.
텅! 텅! 텅! 텅!
이윽고 함선의 모든 장치가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투명화된 벽 등이 다시 원래 상태로 변환되었다. 격납고에 자리한 에스타른족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모함을 장악했는지 워의 보고가 울려 퍼졌다.
『에스타른의 모함 타고르스. 작동을 시작합니다.』
이한은 워의 보고를 받자마자 즉시 명령을 하달했다.
“모함의 상태부터 보고!”
『모함의 상태 자체는 양호합니다. 테라의 기술을 월등히 뛰어넘는 부분도 많습니다만 테라의 기술과 합치면 개선할 여지가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럼 지체하지 말고 시행해!”
『다만 사령관님.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에스타른의 모함 타고르스에 장착된 무기들도 하나같이 강력합니다. 테라의 구축함 급 수백 척은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타고르스의 주요 무기체계는 에너지 특화 형태입니다. 강력한 동력원을 바탕으로 동력원이 고갈될 때까지는 무한히 포격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이한은 워가 무엇을 언급하고자 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동력원이 없군.”
『일반 초자원으로도 어렵습니다. 현재 계속 확인 중이긴 합니다만 고농축 된 초자원 결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초자원은 초자원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자원입니다.』
에스타른족이 초자원을 탐색하러 다니지 않은 또 다른 이유였다. 그 정도로 강력한 초자원이라면 12종족도 발견하기 어려운 자원인데 그런 것을 탐색하고자 외부에서 활동했다면 다르포스족에게 벌써 전에 폭파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에스타른족의 타고르스가 제아무리 강력할지라도 모함 한 척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종족이 아닐 테고 타고르스는 제대로 된 동력원도 없어 전투도 치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기동할 동력원조차 없는 상황이 아닌가?’
기동할 동력원이 있었을 때도 찾기 힘든 고도로 농축된 초자원 결정을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무슨 하늘에서 초자원이 쏟아지지 않는 이상에야.
쿠우우우웅! 쿠우우웅!
그때 묵직한 소음이 함선에 미약하게나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소음이냐?”
『행성 외부에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행성 외부에서? 여긴 지하 500km에 자리한 곳 아닌가? 게다가 모함에 배리어. 음.”
에스타른족이 사용하고 있는 쉴드만 봐도 테라의 쉴드를 넘어서니 함선의 배리어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동할 동력도 없는데 배리어는 무슨 배리어? 따라서 외부의 진동이 고스란히 함선에 전해진 것으로 판단되었다.
『핵폭발을 넘어서는 엄청난 폭발이 행성의 지표면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핵폭발을 넘어서는 강력한 폭발?”
그 순간 이한은 지표면에 있으면 모두 죽게 될 거라는 헤르삭의 말이 떠올랐다. 따라서 이한은 자연스레 자신 앞에 서 있는 헤르삭을 바라봤다. 그렇게 이한과 눈이 마주친 헤르삭이 입을 열었다.
【역시 당신은 선조들이 예지한 존재가 확실했던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초자원. 우리에게 필요한 초자원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초자원이 하늘···. 에서?”
지금 장난해? 이한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헤르삭에게 반문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이것도 무슨 선조의 안배라든지.”
【흘흘흘.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구태여 이 행성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풍부한 초자원은 곧 강력한 병력을 생산할 수 있는 모든 기반이 되고도 남는 데 말이오.】
“그럼?”
【초자원의 출처까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당신과 함께 온 초자원이니 당신이 더 잘 알 것이오.】
“···. 정말 초자원이라면···. 설마 타카스?”
그때 워의 확답이 이어졌다.
『현재 행성을 폭격하고 있는 물질은 초자원이 맞습니다.』
“초자원이 맞다고? 이게 가능한 일이냐?”
『희박하긴 해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워프는 물론 공간 왜곡에 대해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송선이 워프하며 연 공간을 따라 타카스 행성의 잔해가 이동했다면 이곳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공간을 벗어난 정체불명의 차원을 통과했으니 시차나 공간의 오차를 계산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겠지요.』
초자원이 자신들보다 훨씬 뒤늦게 나타난 일과 수송선처럼 우주 공간이 아니라 행성에 떨어진 이유를 말하는 것이리라.
‘허······.’
하늘에서 정말 초자원이 떨어지고 있다고? 미래를 예지했다는 에스타른족의 선조는 이런 것까지 확인했기에 얼음 행성에 머무르라고 한 것일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설혹 이 사실까지 예지했더라도 저들의 예지한 것은 티끌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무시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얽매일 이유도 없다.
“헤르삭.”
【말씀하십시오.】
“폭격이 끝난 후에 초자원을 채집하되 전투에도 대비하도록 하시오.”
【전투 말입니까? 이 행성에 우리 에스타란족을 제외하고는 생명체라고는 전무합니다.】
“타카스에는 크락투라는 포자형 기생체가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생존해봤자 포자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전부겠지만 이젠 정말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군요.”
【하면 한 사령관님의 명령대로 철두철미하게 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지휘통제실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지휘통제실로 사령관님과 나머지 병력 모두 이동시킵니다.』
이윽고 이한과 시에라, 륭샤오핑 예하의 슈퍼솔져들 모두 푸른빛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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