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nience Store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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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의심에 의심을 더해
옷이며 머리카락이며 피부까지 미지근한 마물의 피가 들러붙는 만큼 몸이 무거워진다.
검만해도 벌써 몇 자루를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마물을 베어냈지만 남은 놈들은 그 이상이었다.
“…도박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성태와 대현자의 말대로 정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창때의 자신이라도 장담할 수 없는 마물 앞에서 근호가 결정한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하를 무너뜨려 잔해 속에서 살아남는 다면 그의 승리이고, 그게 아니라면 패배이다.
“좀 가만히 있어봐,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 아냐!”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건 마음을 먹건 마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덤벼드는 놈들을 베고 걷어차며 근호는 겨우 결정을 내렸다.
“까짓것 한 번 하는 거지, 뭐 있겠냐!”
손에 쥔 펄션과 라운드 실드를 버리고는 양손검을 크게 휘둘러 공간을 확보한다.
거리가 생긴 마물이 다시 달려들기 까지는 몇 초의 여유가 있다. 광기어린 미소와 함께 근호는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게이볼….”
하지만 그의 시도는 제지당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제 1진, 돌격!”
우렁차게 울린 그 목소리는 지하의 벽에 부딪쳐 크게 메아리친다. 이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함성은 마물로부터 곡소리를 자아내게 했다.
원군이 왔는데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 사기가 오른다는 것은 없던 체력도 솟아나게 했기에 근호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굉장한데.”
평화로운 세상이었지만 그들이 받은 훈련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선봉에 선 병사들은 한창때의 그들 못지않게 전투에 능숙했다.
한명 한명이 마물과 싸울 수 있는 실력은 갖춘 것은 물론 서로가 연계하여 사각을 메운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장소의 전투임에도 부상자가 생기는 즉시 빈틈을 메우며 감싸고 후방으로 이송한다.
“잠깐 지나갈게.”
그 와중에 높이 뛰어오르는 그림자는 그런 병사들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 마물을 발판삼아 근호에게 향했다.
가벼운 몸놀림은 마치 깃털 같았고, 전장 한복판으로 향하는 아나시아는 숙련된 전사였다.
“살아있어?”
“나이스 타이밍.”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상황에 원군과 함께 파트너가 도착했다. 등을 맞댄 아나시아는 단검 두 자루로 마물을 유린했고 그 모습에 근호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쪽은 한창때 그 이상이다. 그리 말하듯 아나시아가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마물은 그에 맞춰 쓰러졌다.
“이 정도로 빌빌거리는 거야?”
“야, 이거보다 배는 더 있어 거든!”
각자의 주변에 있는 마물을 베어내고 다시 등을 맞대는 두 사람. 근호는 아나시아 쪽으로 눈길을 살짝 돌렸다.
“와준 건 고맙긴 한데.”
“뭐야 그 말투. 정말로 고마운 거 맞아?”
“그게 아니라 어떻게 벌써 온 거냐고.”
“무슨 소리야?”
아르티니아 왕국의 원군과 아나시아가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래 걸린다고 했던 출진 준비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채 도착한 것에 대해 근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라니. 네가 마계로 가고 두 달이 지났다고.”
“두 달?!”
무언가가 이상하다. 근호에게는 정신을 잃었다거나 이곳에서 잠을 잤다거나 하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설마 시간축이 다른 건가?”
믿을 수는 없지만 아나시아의 말이 맞는다면 마계와 아르티니아 대륙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 네가 안 오니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거야.”
오지 인근에서 근호를 기다리던 앙리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근호에 어쩔 수 없이 수도로 돌아왔고, 이에 이상함을 느낀 레오날은 준비된 군대를 출진시켰다.
그것이 마르티니아 왕국에서 생긴 일이지만 근호가 느낀 그 시간은 고작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어쨌든 빨리 정리하자고, 할 일이 많아졌으니까.”
“용사님이 그리 말씀한다면 받들어야죠.”
흐르는 시간이 다르다면 이곳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다. 그 동안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근호는 지친 몸이었지만 더욱 힘차게 움직였다.
마물의 숫자를 줄일수록 병사들이 진입할 공간이 넓어졌기에 전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속도를 더해갔다.
그렇게 지하 공터가 마물의 시체로 가득 차오르고 전투는 끝이 났지만 근호는 무릎조차 굽히지 않았다.
“쉬고 있을 틈이 없어.”
우선 시스템이라는 것을 파괴해야한다. 그리고 희생된 사람들을 고이 보내드려야 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이미 한계를 맞이했기에 근호의 다리는 크게 휘청거렸고 그런 그를 아나시아가 붙잡았다.
“말했잖아. 혼자서 하지 말라고.”
“그래, 그랬지.”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마계에서 보았던 것, 들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호의 말을 들은 부대장과 아나시아는 곧바로 병사들에게 조사 지시를 내렸다.
“움직일 수 있겠어?”
“조금만 쉬면 돼.”
크게 숨을 들이 내쉰 근호의 몸에서 붉은 선이 사라진다. 그렇게 그는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나도 찾아봐야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내딛는 근호였지만 아나시아는 그런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왜 때려?!”
“그런 건 병사들한테 좀 맡겨.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할 거야?”
각자가 할 일. 근호가 해야 할 일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나시아는 그를 끌고 지하를 빠져나왔다.
“대현자랑 만났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하잖아.”
마계에 머무르는 동안 바깥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곳에 지체할 여유는 없다.
아나시아에 설득에 고개를 끄덕인 근호는 그녀와 함께 마계를 빠져나왔고 앙리가 준비한 마차에 올라 수도로 향했다.
“으어- 피곤해. 이러다 죽겠어.”
“우는 소리 하기는. 빨리 와.”
쉬지도 못한 채 이동해 수도로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레오날에게로 향했다.
수도의 광경은 군대의 출진에 평소에 비해 날이 선 듯했고, 이는 아르티니아 국왕인 레오날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게, 벗이여. 바로 얘기를 들어보지.”
“숨 정도는 돌리게 해 줘라.”
한숨을 내쉬지만 근호의 생각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곧바로 그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대현자가 성태랑 한 몸이 되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진실을 알게 된 레오날과 아나시아는 근호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본인은 그렇게 말 했어. 나도 잠깐 본 것뿐이라 확신하진 않아.”
그리고 대현자가 하려는 것. 그것은 바로 모든 세상의 지배이다. 이를 위해 마물을 다스리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우월주의 사상을 퍼뜨리려 한다.
“저쪽은 어때? 실비아한테 뭐 들은 거 없어?”
“특별하다고 할 정도는 없더군. 마법사들이 TV라는 것에 나왔다나 뭐라나.”
다행히 예상한대로 빠르게 진행 될 일은 아니다. 애당초 실현이 되기나 할지 의심한 일이었기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군.”
그러나 이상함을 느낀 레오날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그것뿐인가?”
“그것뿐이라니?”
계획에 대해서는 알았다. 그러나 레오날이 보기에는 그것을 실행할 수단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것이다.
소얄은 이름만 왕국이었을 뿐 결국 대현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마계로 향한 병사들이 시스템을 찾아내 부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대현자가 그곳에서 지내지 않는 이상 그 시스템이란 것은 결국 부서지겠지.”
“그쪽에서 지내는 것 같진 않던데.”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이곳에는 더 이상 부하가 없는 것 같았고, 지부의 직원들도 엄밀히 말해 완벽한 한통속이라 보기에는 힘들었다.
우월주의 사상에는 공감하나 누구도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뭔가가 더 있을 거라고 말 하는 거지?”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허술하기 짝이 없으니 말일세.”
분명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레오날은 그렇게 말했지만 근호가 알고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네가 보기엔 대현자는 어떤 사람 같았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나시아가 묻는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법사의 정점이라 불리는 대현자지만 실제로 그를 만난 사람은 적다. 근호 또한 실험체로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셋 중에서는 그가 가장 접점이 많았다.
“괴팍한데다 죄의식도 없어. 다른 사람 같았으면 대의를 위해서라고 변명 정도는 할 텐데 그런 소리조차 안 했어.”
그에게서 봐온 것은 마법에 대한 탐구심과 권력에 대한 욕심뿐이다. 연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폭력을 구사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을 신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니까.”
악감정 밖에 남아 있지 않기에 편협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호가 알기에 대현자와 공감하는 것은 성태뿐이다.
애당초 그가 그럴 것이라는 것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흐음, 그래?”
“왜 그래?”
흥분한 채로 말을 쏟아내는 근호의 이야기를 들은 아나시아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보인다.
“문득 든 생각인데 우리가 휘둘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휘둘리고 있다고?”
근호의 평가대로 대현자가 정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면 사태는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다. 아나시아는 검지를 세웠다.
“대현자를 잡으면 모든 게 다 끝나.”
성태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 말은 즉 그가 있는 곳에 대현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그 무엇보다 이슈가 되는 것이 지부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곳의 우두머리인 지부장은 쉽사리 몸을 감출 수가 없다.
“굳이 숨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만약 계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이는 백지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 할 일은 정해졌군.”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다. 레오날은 그렇게 결정짓고는 양피지에 무언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뭐냐 이게?”
눈앞에서 만든 주제에 리본까지 묶어 내미는 양피지를 받아든 근호는 열어보라는 듯 레오날의 턱짓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명장?”
“그렇다네.”
일종의 권한부여라고 할 수 있는 문서였다. 국왕의 직인이 찍힌 그것은 아르티니아 왕국의 병사를 일시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증서였다.
“아무리 숙련된 병사라고 한들 대현자와 견줄 수는 없겠지. 하물며 지금의
대현자와 함께 있는 그를 이길 수 있는 존재라면 그대 밖에 없을 거라 나는 생각하네.”
싸움에 앞서 필요한 것은 모두 지원하겠다. 레오날은 근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