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42
제 3 장 장건에게 불어온 봄바람(?)
우내십존 중 쾌검의 달인인 풍진의 검을 막아낸 아이가 소림에서 나왔다!
당가에서 일부러 소문을 더 퍼뜨린 덕에 소문은 엄청난 속도로 사해를 진동시켰다.
물론 풍진과의 비무에서 이긴 것은 아니라고 하나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풍진을 상대했다는 것만으로도 강호인들을 경악케 하기는 충분했다.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소문이 사실이니 거짓이니부터 시작해서 소림에서 비밀리에 인재를 양성했다느니, 소림과 당가의 공동 전인이라느니.
그러나 아이가 소림의 정식 제자가 아니라 속가 제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강호는 더욱 혼란스러워진 상태였다.
이 믿을 수 없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강호의 온 이목이 소림에 집중되었다.
환자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수시로 구호물자가 드나드는 통에 정보원들은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아예 소문을 확인하고자 직접 소림으로 찾아오는 이도 생겨났다.
내원을 제외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소림 내의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도 중원 전역으로 낱낱이 퍼지고 있었다. 소림 인근의 마을에서는 그 비싼 전서구가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날아오른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남궁세가였다.
정통 무림문파로 구파일방이 있다면 무가(武家)쪽에서는 팔대세가가 있고, 남궁세가는 그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전통 가문이다.
더구나 검왕(劍王) 남궁호가 가전 검법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을 대성하며 우내십존의 반열에 들어 당대의 남궁가는 가장 주목받는 무림세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현 가주인 남궁운은 급히 뒷뜰의 정원으로 갔다.
“백부님. 저 왔습니다.”
남궁호는 새벽부터 급하게 남궁운을 호출한 것치고는 여유롭게 새로 난 매화 가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작년에 미수연(米壽宴)을 지내 아흔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도 백부인 남궁호는 아직도 정정하다. 눈에는 맑은 정광까지 어려 있다.
다른 우내십존이 그러하듯 남궁호 역시 나이를 초월한 무인인 것이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역시나 그 일 때문이다.
“예. 일단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소림의 속가 제자 한 명이 당가의 여식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합니다.”
“그렇군.”
남궁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독선의 진전을 이었다 하더니, 이제야 독공을 가르친다라……. 그러면서는 강호에 이미 다 끝난 얘기처럼 소문을 퍼뜨렸겠다? 역시나 소문이 급작스럽게 퍼진 것은 당가의 수작이었구나.”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렴 소림에서 그런 인재를 놓아주려 하겠습니까. 당가에서 혼인을 빌미로 아이를 데려가려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 소림은 아이를 지킬 힘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모든 것이 네가 말한 대로구나.”
“그러합니다. 처음부터 독선이 아이를 탐내어 벌어진 일이니, 명확히 따지자면 당가에는 정당성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남궁가에서는 소림에 벌어진 사건의 전모를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남궁호가 빙긋 웃었다.
“천운(天運)이다. 이러한 기회가 제 발로 본가에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화산의 검성께서도 눈여겨 본 아이라 합니다. 상인의 자제라 하니 본가에서 검공을 익히는 데에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남궁운도 조금은 들뜬 기색이다.
청성의 검을 막아내고 그에게 항복을 받아낸 아이.
그런 아이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남궁가의 십 년 후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흥할 터였다. 거대 문파인 구파일방과도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남궁호가 말했다.
“천간을 보니 향후 십 년 간 소림에는 정(丁)이 들고 당가는 계(癸)를 향해 있더구나. 그 같은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면 소길(小吉)이나 대길(大吉)의 운이 들어야 마땅하거늘 어찌 흉이 끼어 있겠느냐. 더구나 그 아이의 운 역시 양쪽 문파에 닿아 있지 않다.”
“그 말씀은…….”
남궁호는 제왕검형을 대성한 이후 천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천기란 변할 수도 있으니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나, 현재로써는 소림이나 당가에서 그 아이를 취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남궁운은 가주라는 직책도 잊고 아이처럼 기뻐할 뻔했다. 그래도 아직은 조심스럽다.
“하나 명색이 아이는 독선의 진전을 잇고 있는 중입니다. 본가에서 끼어든다면 남의 이목도 이목이지만, 당가에서 가만히 두고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천운이 닿았다 한 것이다.”
남궁호가 소매에서 작은 옥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남궁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겠느냐.”
“그것은!”
당가비패!
당가에서는 반드시 이 패를 지닌 자의 부탁을 한 가지는 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찌 백부님의 손에…….”
“오래전 일이다. 내 아무것도 모르던 젊은 시절에 못된 중과 너구리같은 놈, 그 두 놈에게 속아 크게 가산을 탕진했다. 당시의 남궁가는 집과 땅문서를 모두 남에게 저당 잡힌 채 곤궁한 생활을 해야 했다.”
남궁운은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남궁호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구나. 어린 네게 젖을 먹여야 하는데 제수씨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았던 그 가난하던 때가…….”
사실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던 전통의 가문이 그렇게 쉽게 가난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러나 남궁호가 말한 것처럼 그때의 남궁세가는 그렇게나 궁핍했다. 너무 가난해서 하루 한 끼를 먹는 것도 겨우였다.
남궁호는 무공 수련을 하느라 거의 집안을 돌보지 않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동생이 돈을 벌어 살림을 꾸려왔다. 몇 년도 더 지난 뒤 문각이 찾아와 남궁가의 집문서와 땅문서를 돌려줄 때까지 남궁가는 극도의 빈곤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남궁호가 가주 자리를 동생에게 넘겨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집안을 위태롭게 한 그 일이 부끄러워 이제껏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해서 이 패를 쓸 일도 없었지. 한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오는구나! 이것이 있다면 당사등, 놈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남궁운은 남궁호가 말한 못된 중과 너구리같은 놈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남의 이목은 신경 쓸 것 없다. 강호에서는 강한 자가 승자가 아니요,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소문은 십 년을 못 가지만 인재는 백 년을 가는 게다.”
“백부님 말씀이 백 번 옳습니다.”
때마침 당가에서 방법까지 일러주지 않았는가.
혼인.
대대로 남궁가의 자손들은 외모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남아들은 영준하고 여아들은 미색이 곱다. 당가의 여아도 미모가 뛰어나다 하나 남궁가의 여식들도 그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평소였다면 여자아이를 소림으로 데려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나, 지금 소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의 손길을 뻗고 있다. 큰 사고를 겪은 소림을 돕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는 일이니 명분도 충분하다.
“너는 남들 보기 그럴싸하게 물품들을 준비하거라. 그래도 겉보기로는 소림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하면……, 생각해 두신 아이가 있는지요.”
“내 볼 땐 지아라면 좋을 것 같으나, 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예?”
남궁호가 생각한 아이치고는 뜻밖이다.
“왜? 지아로는 부족할 것 같으냐.”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만…….”
나이가 어려 그렇지, 단순히 외모로만 따져도 남궁지는 장차 절색으로 불릴 만한 아이다. 다만 장건을 포섭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남궁호가 껄껄 웃었다.
“걱정 말거라. 지아의 천기가 거성에 닿아 있느니라. 장건이란 아이의 기운이 너무 강해 지아의 기운이 아니면 아이를 다스릴 수 없다.”
장건이란 아이가 그 정도까지였던가!
하나 반대로 남궁운은 기분이 좋아진다. 천하를 종횡할 고수가 되려면 그 정도의 기운은 가지고 있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제가 백부님의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분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남궁운이 곧 자리를 떠났다.
남궁호는 매화 가지 손질을 끝내고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츠츳.
갑자기 따스한 기운이 사방을 맴돈다. 그것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무거운 기운이다. 주위를 감싸고 있으나 압박하지는 않는 그런 묘한 기운이다.
제왕검형!
주변의 모든 사물을 다스리는 제왕의 검!
정원에 가득한 풀과 나무들이 푸르륵 몸을 떠는 듯하다. 남궁호의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다.
홍오의 얼굴이 떠오르고 당사등의 얼굴이 떠오른다.
남궁호는 소매 단에 오랫동안 넣어둔 당가비패를 만지작거렸다. 옥패 끝에 달린 수실이 만져질 때마다 분노가 날실처럼 펼쳐진다.
이것을 받을 당시만 해도 단박에 으스러뜨릴까 하고 몇 번을 고민하던 일이 생각난다. 하나 지금 같은 상황이 오니 그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남궁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남궁가로 서한을 보낸 자는 분명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남궁호는 더욱 이것이 기회라 생각했다.
“소림의 계율원주라 했던가? 무슨 의도로 본가를 끌어들이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우 대신 호랑이를 끌어들인 것을 후회하지나 않았으면 좋겠군.”
눈가는 서늘하나 입가에는 미소가 그어진다. 얼마나 이런 기회를, 명분을 기다려 왔었는지 모른다. 소림과 당가에서 서로 탐내는 아이. 그런 아이를 가로챈다면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 ☆ ☆
당예는 당사등의 부름을 받고 달려갔다.
당사등과 당유원이 함께 자리에 있었는데 둘 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당유원이 다짜고짜 물었다.
“건이와는 어찌되었느냐.”
당예는 당유원의 말투가 다급하다는 걸 알고 사실대로 말했다.
“벌써 독을 다루는 기본은 다 익힌 상태예요.”
“뭐? 가르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당유원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당예를 보다가 고개를 털었다.
“아니, 지금 급한 것은 그게 아니다.”
당예는 의문이 담긴 눈으로 당유원을 보며 말했다.
“제가 볼 땐……, 본가로 오는 걸 불만스러워하는 듯했어요. 마치 저뿐 아니라 혼인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본가의 무공을 배우지 않겠다고 하는 걸 제가 겨우 달랬어요. 지금은 자기가 배우는 게 천지원양공인지 모르고 있어요.”
당유원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썼다.
당예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두 분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아요.”
당유원이 인상을 풀지 않고 대답했다.
“남궁가에서 나섰다.”
“예?”
“검왕이 직접 소림행을 준비하고 있다 한다. 소림에 구호물자를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남궁가에서 약재와 생필품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아…….”
당예도 왜 당유원과 당사등의 표정이 좋지 않은지 알았다.
“청성일검 어르신처럼 건이를 노리고 오는 건가요? 여긴 소림이고 게다가 본가에서 와 있는 걸 알면서도요?”
장건이 당가와 관계가 있고, 또 당사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검왕이 움직인 것은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유원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뿐인 줄 아느냐? 남궁지라는 여아까지 소림으로 데려온다 한다. 후기지수도 아니고 그 어린 여자아이를 소림까지 데려오는 이유가 뭐겠느냐?”
“설마…….”
당예가 당사등을 보자 당사등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 생각이 맞다. 남궁가에서 건이를 노리고 있는 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건이는 이미 큰할아버님의 진전을 이었고 반은 본가의 사람이나 마찬가진데…….”
당유원이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이다. 자신들이 끼어들 틈이 있다 결론을 내린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검왕이 직접 움직일 리 있겠느냐.”
“하지만 엄연히 큰할아버님이 여기 계신데 어떻게 대놓고 본가와 척을 지려는 거죠?”
당사등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아니라 남궁가……, 그리고 검왕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검왕 남궁호, 내가 예전에 그 친구에게 몹쓸 짓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크, 큰할아버님께서요?”
“과거에, 남궁호는 홍오에게 크게 골탕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난 홍오에게 빚진 것이 있어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홍오의 계획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더라도 본가의 진전을 이은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잖아요.”
당사등이 고개를 저었다.
“당시 내가 그에게 사죄하며 그에게 비패를 주었다.”
당예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당가비패!
그것을 내놓는다면 당사등은 반드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어야 한다.
“검왕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이미 우리 사정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그럴 수가…….”
당유원이 멍한 당예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이제 알겠느냐? 네가 그놈을 빠른 시일 내에 우리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뻔히 눈 뜨고 그놈을 뺏길지도 모른단 말이다.”
당예는 곤혹스러웠다.
아직까지 장건의 마음을 붙들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당사등이 당예에게 말했다.
“예야.”
“예. 큰할아버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최선은 네가 그 아이를 완전히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 혼인 서약을 받아내는 것이다. 아무리 검왕이라도 가문의 여식을 첩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당예는 결의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꼭 그리 되도록 만들겠어요.”
“그래. 널 믿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명심하렴.”
당사등이 굳은 얼굴로 당예의 어깨를 두드렸다.
당유원이 한마디 했다.
“상당한 재산을 쏟아 부은 만큼 네 손에 본가의 명운이 걸려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도록 해라.”
“물론이에요.”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당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시간은 벌었으나 장건의 태도를 생각하니 갑갑해서다. 그나마 계속 독공을 가르쳐 준다고 둘러대며 붙잡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당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본가의 사람으로 만들고 말겠어. 반드시!’
☆ ☆ ☆
아침부터 눈이 왔다.
장건은 아침 내내 혼자서 덩그러니 머물던 숙소를 정리하고, 앞마당과 주변의 눈을 쓸었다.
“곧 새해구나. 이제 정말 2년밖에 남지 않았어.”
장건은 다사다난했던 한해의 일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래도 지금은 잘 정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특히 독공을 배우러 당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건 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장건은 후우 하고 입김을 내뱉은 후 즐겁게 눈을 쓸었다.
오늘은 드디어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사실 중독 증상이 많이 완화되어 대면이 가능하다고 한 건 그제부터였다.
하지만 장건은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중독되었다는 걸 알고 너무 미안해서였다.
밤새 고민을 하던 장건은 더더욱 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가야 한다고 결심을 내렸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7년 만에 처음 사귄 친구들이었다.
장건은 주변을 깨끗하게 쓴 후, 준비를 하고 금강법당으로 향했다.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화를 내고 욕을 할까봐 걱정이 된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일일 테지만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외원의 서쪽에 있는 금강법당은 본래 불공을 드리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환자들의 병실로 쓰이고 있었다.
금강법당 안쪽의 불전에는 급조된 병상들이 수십 개나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병상이라고 해봐야 이불을 바닥에 깔아놓은 것뿐이지만, 그것조차 없어 소림의 제자들은 거적이나 짚 위에 누워 있기도 했다.
장건은 조심스럽게 합장을 하며 불전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있지?’
워낙 많은 환자들이 있어서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인 것 같았다. 속가 제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함께 있으니 찾기가 어려웠다.
“어?”
장건이 안법으로 친구들을 찾으려 하는데 거적때기에서 뒹굴던 소왕무가 먼저 장건을 발견했다.
“건이 아냐?”
그 말에 속가 제자 아이들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장건의 바로 곁에서 중독이 된 아이들은 피해도 제일 심했다.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 가장 먼저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속가 아이들은 증세가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아직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어서서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건아!”
아이들이 장건을 불렀다.
장건은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하고 있다가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을 보았다.
아이들이 우르르 장건에게 몰려왔다.
장건은 눈을 꼭 감았다.
장건이 모기만큼 조그마한 소리로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는 찰나.
“우와아.”
“네가 정말 그랬어?”
“정말 너야? 너 맞아?”
아이들은 들뜬 얼굴로 마구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응.”
장건이 놀라서 눈을 떴다.
“비켜비켜.”
소왕무가 아이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와 장건의 움츠린 어깨를 와락 붙들었다. 소왕무는 눈가가 퉁퉁 부어서 두꺼비 같은 얼굴이었다. 장건은 소왕무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파왔다.
미안하단 소리가 절로 나온다.
“미안해.”
소왕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커다란 소리로 장건의 어깨를 흔들었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정말 네가 맞아? 너 맞는 거야?”
“응.”
“독선의 독을 이겨내고 청성일검의 검을 막았다면서?”
“막아낸 건 아니고……, 등에 맞긴 했어.”
“우와아!”
아이들이 입을 쩍 벌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대팔이 소왕무를 밀치며 장건의 앞으로 나왔다.
“어디 좀 보여줘.”
장건은 얼떨결에 상의를 벗고 등을 보여주었다. 긴 칼자국의 흔적이 등에 남아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아이들의 탄성이 불전을 흔들 정도로 크게 울렸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다들 흥분해서 난리가 아니었다. 일부 아이들은 고름을 질질 흘리는 것도 모르고 손뼉을 쳐댔다.
속가 제자 아이들에게 우내십존은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었다. 하다못해 무자배 항렬의 사형들만 해도 하늘처럼 보이고, 원자배는 신처럼 보인다.
그런데 강호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아는 일류 고수도 아니고, 그보다도 더 높은, 상대한다는 것조차 영광인 초고수들을 장건은 맞상대했다. 한 번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정면으로 부딪쳐 멀쩡히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환호는 당연한 일이다.
“얘기 좀 해줘.”
“어떻게 한 거야?”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지자, 다른 병상에 있던 환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에 흰 건을 두르고 환자들을 살피던 원자배의 승려 한 명이 아이들을 꾸짖었다.
“이곳에는 너희들만 있는 게 아니니 조용히 하거라.”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소왕무는 장건의 등을 떠밀며 승려에게 보란 듯 소리쳤다.
“사백님! 얘가 장건이에요. 장건이라구요!”
“조용히 하라 했지 않으냐!”
“아무도 못 막는다던 청성일검의 일검을 받아냈다는 애가 바로 얘라구요!”
원자배 승려가 인상을 쓰며 언성을 높였다.
“청성일검 어르신이 네 친구냐? 알았으니까 조용히…….”
그러나 승려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뭐? 정말 이 애가?”
“네! 그렇다니까요.”
원자배 승려는 장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워낙 많은 이야기가 따라다녀 어떤 아인가 했더니 의외로 평범한 아이였다.
키도 큰 편이 아니고 소왕무나 대팔보다 덩치도 훨씬 작았다. 전체적으로 말라서 야위어 보인다.
그렇다고 강해 보이지도 않고 어딘가 눈에 띄게 특이한 점도 없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서 있는 게 어딘가 어색하다 하는 정도는 특이했다.
그것만 빼면 그냥 길을 가다 볼 수 있는 그런 아이였다. 호목(虎目)에 용미(龍眉)를 가진 절세의 무골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원자배 승려가 장건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는데, 독 때문에 얼굴이 거무스름해져 곤륜노(崑崙奴)처럼 보이는 대팔이 갑자기 장건의 어깨동무를 하며 외쳤다.
“제 친구예요!”
뒤에 있던 소왕무가 대팔을 발로 밀었다.
“억!”
대팔이 앞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소왕무가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놈이 아니고 제 친구예요.”
벌떡 일어난 대팔이 소왕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빡.
“윽!”
“이 자식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건이와 내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거냐?”
“넌 좀 빠져 있어. 사이는 무슨 사이. 건이 친구는 나밖에 없어. 알겠냐?”
“에이 씨…….”
욕을 하려던 대팔은 원자배와 다른 환자들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보자. 넌 뒈졌어.”
일반 환자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강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우내십존이란 거물과 엮인 장건의 이야기는 유명했다.
소왕무가 장건을 붙들고 물었다.
“너, 그런데 그거 진짜냐?”
“응? 뭐가?”
“당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간다는 거.”
“아니, 안 그러기로 했어.”
“정말?”
대팔이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 같으면 좋아서 가겠다. 독공을 배우는 거잖아. 그것도 천하제일의 고수에게.”
소왕무가 대팔의 목을 휘감았다.
“임마, 건이가 너랑 똑같냐? 건이가 뭐가 아쉬워서 당가로 가. 소림에 남아서 비급을 익히고 소림의 고수가 되어야지.”
“그런가? 하지만 독공을 배웠으면 무조건 당가에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원래는 당가로 들어가지 않으면 독공을 안 가르쳐 주는 거지.”
“그게 그거잖아.”
“좀 달라, 임마. 선후가 엄연히 다른데, 그건 당가에서 막 우기는 거라고. 진짜 왜 사백님들이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눈치 빠른 소왕무는 벌써 앞뒤 정황과 들려온 소문만으로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르는 얼굴이다. 덕분에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몰려서 떠들고만 있자, 원자배 승려가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자, 소란들 피우지 말고 어서 자리로 돌아가라. 독이라는 게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금세 재발하기 마련이다.”
벌써 흥분해서 코피를 줄줄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장건과 더 얘기를 하고 싶었던 아이들은 억지로 다시 자리로 가 누웠다.
승려가 장건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온 거냐? 친구들 보러 온 거냐?”
“아, 저도 뭔가 돕고 싶은데요. 할 일이 없을까요?”
원자배 승려는 잠시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방금 약도 다 나눠 주었고, 딱히 할 일은 없다만……. 그래. 면포나 좀 빨아오고 청소라도 좀 하면 되겠구나. 손이 모자라서 며칠간 청소도 못했어.”
“예.”
장건은 할 일이 생겼다는 게 좋아 기쁘게 대답했지만 소왕무와 속가 아이들은 ‘헉!’하고 기겁을 했다.
“그것만은 제발!”
“청소는 안 돼요!”
원자배 승려가 창피한 얼굴로 아이들을 꾸짖었다.
“이 더러운 녀석들. 다른 분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냐? 소림의 제자가 청결을 마다하다니.”
“그게 아니구요.”
아이들의 얼굴에는 공포감 비슷한 것이 어렸다. 처음 장건을 만난 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장건이 청소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밤새 잠을 못 자 뒤척이고 온몸이 답답해지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한 번도 아니고 장건이 수시로 청소를 할 때마다 아이들은 잠을 못 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장건이 청소를 하겠다고 하기 전에 자신들이 나서서 하는 열의를 보였던 것이다.
대팔이 팔을 걷어붙였다.
“차라리 제가 할게요.”
다른 아이들도 부산을 떨었다.
“저도요.”
원자배 승려는 아이들의 태도가 너무 의아했다.
“이 녀석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장건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게. 너희들은 그냥 쉬고 있어.”
“우리도 잘 할 수 있어!”
“아냐. 안정을 취해야 빨리 낫지. 걱정하지 마.”
장건은 기운차게 준비를 했다.
“자, 그럼 일단 붕대랑 면포부터 빨아와 볼까.”
장건은 친구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아이들의 안색은 그와 반대로 회색으로 변해 갔다.
☆ ☆ ☆
당예는 일부러 장건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보통 향객들을 위한 절의 식사는 꽤 좋은 편이다. 고기가 없이 나물들로 이루어진 찬이라 해도 정갈하게 나와 맛이 좋다.
대참사가 난 지금도 워낙 구호물자가 많이 들어와 찬거리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고기 한 점 없는 식사였다. 장건처럼 한참 먹고 클 나이에 풀과 잡곡밥만으로는 허기가 진다.
간혹 장건이 ‘아, 배고파’라고 중얼거리는 걸 들은 당예는 아침부터 눈길을 헤치고 마을에 내려가 여러 가지 찬을 준비해 왔다.
물론 승려들의 눈에 띄지 않게 고기도 준비해 왔다.
‘이 정도면 좋아하겠지?’
스스로도 뿌듯하다. 이런 정성어린 도시락을 받고도 감동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이 도시락이 장건과 한층 더 가까워지는 데 일조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옷도 당가의 무복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었다. 궁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복보다는 훨씬 여성스럽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당예는 점심시간보다 더 빨리 나와 내원의 문 앞에서 장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도시락을 먹고 있는 건 장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 풍진이었다.
풍진은 동글동글 빚은 완자를 낼름 집어 입에 넣었다.
“이것 참 맛있구나. 그러잖아도 절밥이 순 풀떼기라 기름기가 땡기던 중인데. 이게 뭐라는 거냐?”
당예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강남 일대에서 사자두(獅子頭)라고 부르는 고기 완자예요. 야채와 고기를 사다가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물론 소림이 아니라 밖에서요.”
“이제 보니 시집가면 남편에게 듬뿍 사랑을 받겠어. 암기술을 배워서 그런가, 손맛이 제법인걸? 양념으로 독을 넣은 건 아니지?”
“그,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러나 공손한 대답과 당예의 속마음은 달랐다.
‘건이에게 잘 보이려고 미끄러운 눈길에 마을까지 내려가서 사온 건데……. 아이, 씨! 대체 이 노인네는 왜 여기에 버티고 앉아서 남의 반합(飯哈)을 먹는 거야? 어디로 좀 안 가나? 이따 또 내려가서 사와야 되잖아.’
게다가 풍진이 맛있는 것만 쪽쪽 골라 먹고 있으니 더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도사 주제에 야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풍진은 먹을 만큼 먹고 나서 손을 놓았다.
“잘 먹었다. 설마하니 소림에서 고기를 먹을 줄은 몰랐구나. 그럼 난 이만 홍오 놈이나 괴롭히러 가야겠다.”
풍진이 간다는 말에 당예는 뛸 듯이 기뻤다.
‘간식거리로 사온 계단관병(鷄蛋灌餠)은 숨겨놓길 잘했지. 그것마저 먹어치웠으면 어쩔 뻔했어.’
원래 장건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 끝에 준비한 것이 사자두였다.
소림에 오래 있었으니 고기를 먹지 못했을 테니 신경 써서 갈아 만든 요리다.
그리고 장건이 맛있게 사자두를 먹고 나면 숨겨두었던 계단관병을 주어 재차 감동을 줄 계획이었다.
비록 사자두는 풍진이 먹어치웠지만 계단관병은 따스한 품 안에 고이 품어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데 풍진은 가려다 말고 깡마른 얼굴에 주름살을 잔뜩 만들며 코를 벌름거렸다.
“간만에 기름진 걸 먹었더니 느끼하구나. 이럴 때 매콤한 거라도 먹으면 좋을 텐데. 아아……, 그러고 보니 하남에도 명물 소흘(小吃; 간식)이 있다던데 먹어본 적이 없어. 납작한 전병에 푼 계란과 양념을 얹은 그…….”
당예는 애써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무공이 높아지면 개코가 되나! 무슨 도사가 개방 거지보다도 뻔뻔하게 식탐이 많담? 매콤한 거? 계단관병에 함랄장(咸辣醬) 양념을 해온 건 또 어떻게 알았어!’
기가 막혀서 몸이 다 부르르 떨렸다. 할 일 없는 풍진이 장건과 당예의 일거수일투족을 어지간하면 다 꿰고 있다는 걸 모르는 당예였다.
당예는 울상을 지었다.
그것마저 풍진을 줘 버리면 장건과 하루라도 빨리 친해져야 하는 자신의 계획은 첫날부터 물거품이다.
게다가 얇은 한지(漢紙)로 켜켜이 싼 계단관병을 일부러 품에 넣어 두었다.
장건도 아니고 이런 망할 돼지 같은 노도사에게 속살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킁킁.”
풍진은 냄새를 맡다가 당예를 물끄러미 보았다. 계단관병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안 까닭이다.
풍진이 인상을 썼다.
“에잉, 됐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먹으면 필히 탈이 나겠구나.”
“네?”
“그것만큼은 내가 먹을 게 아닌가 보다.”
“…….”
풍진은 ‘흘흘’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도 이만 가봐라.”
“가라니요?”
“네 서방은 아까 점심도 되기 전에 내원에서 나오더구나? 여기서 백날 지키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단 말이다.”
당예는 기가 막혔다.
‘이 노인네가 다 알면서 그랬던 거야?’
풍진은 ‘어험, 잘 먹었다’라고 배를 내밀면서 가 버렸다.
“어휴! 내가 진짜 미쳐.”
당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섬살야차라 불리던 풍진이 무서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능구렁이 같은 노인이었던 것이다.
☆ ☆ ☆
“그나저나 어디로 간 거야.”
당예는 투덜거리면서 장건을 찾아 나섰다.
도시락은 풍진이 다 먹어치웠지만 간식이라도 전해 줘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예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다가 장건이 금강법당으로 갔다는 걸 알고 그쪽으로 향했다. 금강법당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외원을 쭉 질러가야 한다.
소림의 외원에는 누워 있는 환자들의 가족과 약재를 실은 수레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번잡한 시장골목을 연상케 할 정도다.
그곳에서 당예는 유독 조그만 여자아이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또래,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는 아이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더러운데다 얼굴도 흙먼지가 잔뜩 묻어 언뜻 거지아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옷감이 고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행색이 구차함에도 외모를 숨길 수 없다. 예쁘장하니 귀여운 아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은근히 끌고 있다.
여자아이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뜨기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당예와 눈이 마주쳤다.
‘저런 아이가 혼자 다니다니. 가족이라도 찾아온 건가?’
당예는 그냥 가고 싶었는데 여자아이가 당예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당예가 무복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고 있는데다 근처에 여자라고는 당예밖에 없으니 아무래도 묻기가 편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남자들 눈초리가 이상한 까닭이다.
“무슨 일이죠?”
여자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여기 속가 제자 중에 장건이라고, 걔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당예의 머리에는 그 짧은 시간에 수십 가지의 생각이 교차했다.
곧 정신을 차린 당예가 물었다.
“어디 있는지는 아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아이가 반색했다.
“정말요? 우와아! 다행이다아.”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것과는 반대로 당예는 불안해졌다.
당예는 여자아이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물었다.
“그런데 무슨 관계죠?”
“아차차.”
당예의 물음에 여자아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는 건 오라버니의 첫 번째 부인되는 사람이에요.”
여자아이는 ‘첫 번째’라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당예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남궁가에서 검왕이 여자아이를 데려온다 들었던 게 어제였다. 그런데 무슨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아이가 돌연 나타난 것이다.
당예는 소리치고 싶었다.
‘넌 또 뭐야!’
그 여자아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제갈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