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마차가 깔끔하게 이어진 관도를 나아갔다. 적당한 거리를 둔 순찰대에 빙 둘러싸인 채였다. 그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씩, 마차에 앉은 이안의 모습을 곁눈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건 길을 지나다 마주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찰대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행인들이, 이곳이 제국임을 증명하듯 드물지 않게 오갔다.
다들 순찰대가 호위 중인 마차의 정체가 궁금한 눈치였다.
‘더럽게 부담스럽네….’
이 정도로 눈에 띌 줄이야.
생각과 달리 심드렁한 얼굴로, 이안은 육포만 우물댔다.
어쨌건, 제국에 발을 들였다는 실감이 났다. 게임에서보다 빠른 시기였고, 날치기일지언정 적법한 절차까지 거쳤다.
게임에서 시작부터 제국이나 북부에 발을 들일 수 없는 건, 그럴 자격이 없어서였다.
무작정 들어왔다간 순찰대나 검문병에게 죽임을 당했다.
제국을 거쳐야만 이동할 수 있는 남부나 검은 벽 인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제국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됐다는 건, 다음 챕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진행 순서가 바뀌면서 아직 2 챕터의 주요 퀘스트들이 남아있긴 했지만.
“아까 이안이 표정 관리 좀 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샬롯이 나지막이 내뱉은 건 그때였다. 이안을 뚫어질 듯 응시하던 필립이 시선을 돌렸다.
“제가 또 그랬습니까…? 저도 모르게 그만.”
모르긴 개뿔.
이안은 짧게 콧방귀만 뀌었다.
저래놓고 몇 분이면 다시 그를 돌아볼 터였다. 계속 그랬듯이.
아직은 근처에 병사들이 있어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저들과 작별한 순간 야단법석을 떨어댈 게 분명했다.
반면 여전히 안면 가리개를 눌러쓴 메브는, 그저 묵묵히 마차 옆을 따랐다. 이안 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저곳이 버브룩입니다.”
마차 근처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그레고리가 말했다. 이안은 고개만 끄덕이며, 관도 너머에 펼쳐진 도시를 눈에 담았다.
적당히 높고 견고해 보이는 성벽이 넓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크고 작은 건물들의 지붕이 삐죽삐죽 이어져 있었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고, 행인들이 별다른 제지 없이 그 사이를 오갔다.
변방의 국경과 불과 며칠 거리밖에 되지 않건만. 전쟁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북부의 대도시들과도 전혀 달랐다. 하긴. 북부는 설원 지대와 검은 벽을 끼고 있어, 상시 전시 태세에 가까운 지역이긴 했다.
여긴 제국에서도 변경이며, 검은 벽이나 전쟁과도 관련이 없었다. 거기다 국경 수비대의 순찰까지 강화된 상태이니 특히 더 안전하리라. 남쪽으로 농작지도 여럿 보였으니, 평소에도 아예 방치되진 않았을 터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일대도 침식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은데….’
가까워지는 도시를 눈에 담던 이안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레고리 경.”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음에도, 저만치의 그레고리가 재빨리 간격을 좁혔다.
“말씀하십시오, 이안 경.”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소. 도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좀 피곤해질 것 같은데.”
“그러시군요. 그럼 나머지는 이쯤에서 멈추고, 저와 부하 하나만 근처까지 모시겠습니다.”
이 다소 완고한 인상의 중년 남자는 보기보다 눈치가 빨랐다.
그가 신호하자 병사들이 멈춰 섰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뭔가 한마디 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안은 헛웃음을 삼켰다.
그가 싸우는 걸 실제로 본 것도 아닐 텐데 이런 반응들이라니.
하긴.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당장 북부에서도 살아 있는 기적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여기선 그보다 더할지도 몰랐다.
어쨌건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 한마디 못 할 것도 없었다.
“고마웠소. 앞으로도 수고하시오.”
이안의 덤덤한 말에, 병사들이 손을 모아 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대놓고 성자 취급이군.’
마차가 앞서 나아갔다. 일행을 따르는 건 그레고리와 부관뿐이었다.
“부디 성스러운 사명을 무사히 완수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경. 그리고 혹여 교단에 보고를 올려야 할 일이 생긴다면-”
“내가 그대들의 도움에 감사를 표했다 하시오.”
이안의 말에 그레고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어쩌면 그가 이렇게 발 벗고 나선 건, 교단이 신경 쓰여서인지도 몰랐다. 교단이 제국에 가진 영향력은, 변방이나 북부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다각- 다각-
마차가 성문으로 나아갔다.
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대체 뭐 하는 자들인가 하는 눈빛으로 쳐다만 볼 뿐, 일행을 막아서지 않았다.
거리의 전경을 눈에 담던 샬롯이, 이윽고 내뱉었다.
“여긴 여전하군.”
“와 본 적 있는 도시냐?”
이안이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로 물었다.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벨 론데와 루 사드에 모두 인접한, 일종의 갈림길이다. 변방으로 향하는 상인들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도시기도 하지. 그래서 아까도 저들이 이곳으로 안내하리란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내뱉은 그녀가 슬쩍 이안을 돌아보았다.
“예전 아겔 란으로 향하던 때에도, 여길 지나서 벨 론데로 향했었지.”
처음 만났던 때를 말하는 거군.
짧게 피식댄 이안이 말했다.
“괜찮겠냐? 천칭 상단이라도 마주치면, 꽤 껄끄러워질 텐데.”
“상관없다.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마주쳐도 나한텐 별 관심이 없을 거야. 하비에르가 해 먹던 부분은 다른 단주들이 나눠 가졌을 테니. 넌 모르겠지만 그때의 상행이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군…. 어쨌든 잘 됐네. 안내는 네게 맡겨도 되겠어.”
“물론이지. 일단 마차부터 맡기겠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이안의 미간이, 이내 설핏 좁아졌다. 다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가 내뱉었다.
“눈을 왜 자꾸 그렇게 뜨냐?”
이안과 샬롯을 번갈아 바라보던 필립이 오히려 더 눈을 치켜떴다.
“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두 분이야말로,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말을 맡기고 숙소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설명이 있지요. 아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내내 함께한 나리가 바로 소문의 그 대전사이며 용살자였다는데요. 게다가 백금룡의 대행자는 또 뭐랍니까?”
“좀 더 크게 떠들어라. 버브룩의 모두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게.”
“…죄송합니다. 흥분해서 그만. 어쨌든 제 말의 요는, 어떻게 이런 걸 비밀로 하셨냐는 겁니다.”
“비밀로 한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안 한 거다. 이럴 게 귀찮아서.”
“허….”
필립이 탄식하는 그때, 마차가 마구간 앞에 멈췄다. 시장 저잣거리가 이어진 길목 끄트머리였다. 보관 중인 말과 마차가 이미 여럿이었다. 마구간지기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마부석에서 내린 샬롯이 말했다.
“내일 떠날 거다. 마차를 청소하고, 말은 최대한 좋은 걸 먹이고 푹 쉬게 해라.”
“앞선 손님들이 계십니… 예, 바로 그리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던 마구간지기가, 손바닥에 놓인 금화를 보고는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샬롯도 이안과 다니면서 돈을 적재적소에 낭비하는 법을 착실히 몸에 익힌 상태였다.
“가지.”
일행을 돌아본 샬롯이 몸을 돌렸다. 그녀의 뒤를 따르면서, 이안은 번화가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현대인인 그의 관점에선 여전히 지저분하고 칙칙한 거리였지만. 어쨌거나 오가는 행인도 많고 행색도 가지각색이었다.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도시의 상인들에게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이 정도면 변방 왕국들의 도읍만큼은 번화한 것 같은데….’
이젠 놀랍지도 않은 격차였다.
그리고 이 격차는 제도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지리라.
어쨌든 여긴 하늘의 먹구름도 그리 두텁지 않았다. 해가 기울고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면 내일쯤엔 태양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곧 샬롯의 걸음이 느려졌다. 어느새 번화가의 뒷골목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2층 건물이, 그들이 묵을 주점 겸 여관이었다.
“내 기억엔, 그나마 여기가 가장 괜찮더군.”
내뱉은 샬롯이 문을 열었다. 제국의 주점이라 해도 음식 냄새가 섞인 퀴퀴한 공기는 다르지 않았다.
하긴 이보다 훨씬 큰 도시인 트라벨가에서조차, 주점은 지린내와 잡내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훨씬 따듯하고, 분위기도 여유롭다는 사실이었다. 주점 겸 식당으로 보이는 홀에는 상인 같은 제국인들과 용병, 현지인들이 드문드문 뒤섞여 앉아 있었다. 샬롯은 자연스럽게 가장 사람이 적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시겠어요?”
다가온 여급은, 뜻밖에도 난쟁이였다. 북부에서도 못 본 난쟁이 여급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어쩌면 샬롯이 이곳으로 일행을 인도한 건, 이종족이 일하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이안이 태연하게 말했다.
“고기 섞은 식사 네 개. 술도. 방은 얼마나 여유가 있지?”
“작은 방 네 개, 큰 방 두 개요.”
“그럼 작은 방 네 개로 하지. 식사가 끝나면 목욕도 할 거니까, 준비해 주고.”
“네 분 다요?”
“그래. 넷 다.”
이안이 은화를 넉넉하게 내밀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든 여급이 몸을 돌렸다. 엉덩이를 들썩대던 필립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제발 이제는 말씀해 주십시오, 나리.”
“정확히 뭘.”
이안이 메브를 일별하며 내뱉었다. 홀을 등지고 앉은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여전히 안면 가리개를 내리고 있었다. 손등으로 입을 가린 필립이 힘준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전사! 용살자! 대행자…!”
“잘 아네. 네가 말 한 그대로다. 대부분은.”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내뱉었다. 필립이 눈을 깜빡였다.
“설마, 더 하실 말씀이 없다는 뜻은 아니시겠죠.”
“맞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목소리가 커지려던 필립이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돌아온 여급이 맥주잔을 일행의 앞에 놓고는 사라졌다. 다리는 짧아도 걸음은 빨랐다.
필립이 다시 속삭였다.
“…어쩌다 그렇게 되신 건지 정도는, 말씀해 주셔야지요.”
“그것도 네 말대로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니까.”
이안이 잔을 들자, 필립의 미간이 결국 일그러졌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될 만한 업적들이 아닌 것 같은데요.”
“타락용의 심장을 찌른 건 맞지만 사실상 백금룡이 거의 다 싸웠다. 대전사인 것도 맞지만 딱히 대전사 노릇을 한 적도 많지 않고. 대행자는, 그냥 의뢰를 받아서 명목상 붙은 이름일 뿐이야.”
“…아무래도 나리가 아니라 샬롯에게 물어야겠군요. 샬롯도 너무하십니다. 이걸 다 알고 계셨으면서,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니요.”
필립의 시선을 받은 샬롯이, 태연하게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혀를 날름댔다.
“나도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단지, 아직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건 또 뭔….”
“거래는 거래니까. 그렇지 않느냐, 이안?”
“훌륭한 용병의 자세군.”
선선히 대답하며 이안이 맥주를 입에 가져갔다. 필립이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입을 뻐끔대는 가운데, 비로소 메브가 안면 가리개를 올렸다. 그녀는 다소 굳은 얼굴로, 이안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자꾸 안 어울리는 짓을 하시네.
“경이 주신 검은, 용의 심장을 찌를 때 부러졌소.”
이안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술을 마시던 메브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사레가 들린 듯 낮게 콜록댄 그녀가,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그, 그런 속사정이 있었-”
그때 여급이 돌아왔다. 커다란 쟁반을 한 손에 든 그녀는, 얼핏 보면 테이블이 걸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안은 쟁반에 놓인 수많은 접시를 바라보며 내심 웃음 지었다.
난쟁이들은 여자도 힘이 장사군.
“식사 맛있게 하세요. 방은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 올라가실 때 말씀 주시고요.”
순식간에 접시를 테이블에 펼쳐 놓은 그녀가 몸을 돌렸다. 이안이 포크를 들며 덧붙였다.
“많이 서운하시오?”
“서운이라니…. 가당치도 않… 습니다.”
…습니다?
이안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의 시선을 흘리며, 메브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소문대로라면… 북부의 초인은 북부를 대표하는 영웅이며… 백금룡의 대행자는… 교단의 성자이기도 한 법인데….”
작아지는 목소리만큼이나, 그녀의 고개도 점점 내려갔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하대를….”
“…….”
이안의 눈썹에 힘이 탁 풀렸다.
이딴 게 마음에 걸렸던 거라니.
하긴. 이 세계 사람의 관점에선 충격받을 만한 부분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그녀는 신의 사도가 아닌가. 자신의 행동이 불경하다 자책하는 것도 아예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어쨌건, 이안이 보기엔 뜻밖의 주접일 뿐이었다.
그는 이윽고 헛웃음을 흘리며 내뱉었다.
“그래, 이젠 내가 좀 서운해지는군.”
“……?!”
“전우이자 친우라더니. 고작 직위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소?”
메브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이 덧붙였다.
“하던 대로 하시오. 공적인 관계가 되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그… 럴 생각은 없다만. 그, 그래. 네… 가 어떤 위업을 이룩하였건, 네가 이안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그야말로 고귀한-”
“내가 한 일들이 경이 변방에서 행한 것들보다 고결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나는 그저 의뢰를 받았고 그걸 해결했을 뿐이지. 나 자신을 위해서. 그뿐이오.”
위인 취급을 받는 건 기분이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건 마음 편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돈에 눈먼 사제나 배에 기름이 잔뜩 낀 귀족이라면 기꺼이 위명을 휘둘러 찍어 눌렀을 터다.
하지만 이들은 이 개 같은 세상을 그나마 살 만하다 여기게 해 주는, 등을 맡길 수 있는 몇 없는 동료였다.
사람들과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고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음에도, 끝내 그렇게 된 이들.
이들에게까지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았다.
술잔을 잠시 어루만지던 메브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너도 내게 말을 편히 해 줄 수는 없겠느냐?”
“난 지금도 편하게 하고 있소만.”
“…그래 준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얼씨구.
코로 웃은 이안이 잔을 들었다.
“올리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소. 편하게. 이 정도면 만족하겠소, 메브?”
그가 잔을 내밀었다. 눈을 깜빡인 메브가 이내 잔을 맞부딪쳤다.
“…그래, 이안.”
어색하고 아주 좋구만.
술을 마신 이안이 포크를 들었다. 식사가 시작됐다.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필립이 입을 연 건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두 분이 진정한 의미의 친우로 거듭나신 건 아주 축복할 일입니다만…. 결국 어찌 된 내막인지는 스리슬쩍 넘어가셨군요.”
거, 새끼. 더럽게 집요하네.
혀를 찬 이안이 덧붙였다.
“샬롯에게 들어라.”
“하… 미구엘이 그립군요, 미구엘이 있었다면 분명 만나자마자-”
“그리고 나한테 닥치란 소릴 들었겠지. 지금처럼.”
“…예.”
비로소 조용한 식사가 이어졌다.
나름대로 향신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은 음식들을, 이안은 충분히 음미했다.
어느새 장내는 주황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모든 초와 등잔에 불이 붙었다.
못 보던 손님들도 늘었다. 식사 시간인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자유민. 보따리상들과 그들의 경호병, 용병까지. 온갖 이들이 저마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쟁은 돈이 된다더니.’
변방에 관심이 없는 건 아무래도 황제뿐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황제도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변방의 힘이 알아서 약해지고, 공짜 인력과 돈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고 있기까지 하니까.
황궁에 처박혀 문자와 말로만 세상을 접하는 존재라면, 충분히 그리하고도 남으리라.
장내가 조금 더 소란스러워진 건 그 직후였다.
일련의 상인 무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듯, 난쟁이 여급이 한쪽에 위치한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들 중 하나가 이안을 바라본 건 그 직후였다.
곧 기척을 느낀 이안도 고개를 들었다.
묘하게 낯이 익은 얼굴의 두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명은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제국인이었고, 또 한 명은 기다란 창을 등에 멘 덩치 큰 북부인이었다.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야만인 전사라 여길법한 인상이었다.
“호오…?”
이안의 눈매가 설핏 가늘어지는 가운데.
“설마 했거늘, 정말 이안 경이셨군…!”
테이블 옆으로 다가온 제국인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