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거리는 어제 본 활기가 거짓말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온갖 가재도구가 굴러다니고, 길과 벽 곳곳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반쯤 허물어진 건물들. 여기저기서 연기가 치솟고, 저 멀리 흐릿한 비명과 고함이 메아리쳤다.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쨌건 여럿 구출하긴 했나 보네.’
그렇다고 망자들이 전부 몰려간 건 아닌 모양이었다.
굽이진 대로와 곳곳에 마구잡이로 이어진 골목. 반파된 건물 사이 사이에서 명백하게 인간은 아닌 것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개중에는 아주 선명하게 오염된 마력을 뿜어내는 것들도 있었다.
‘역병으로 죽은 자들도 되살아난 거군.’
성벽 안쪽에도 그들을 파묻었던 것이리라. 애초에 이 난장판의 시작이 그것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저 멀리 보이는 교회의 첨탑을 이정표 삼아 골목으로 들어선 이안의 눈빛이, 이내 서늘해졌다.
“그… 으으….”
“그륵….”
비척대는 발소리와 가래 섞인 숨소리가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골목으로 드리운 그림자들을 눈에 담은 필립이 방패를 눈 아래까지 치켜들며 속삭였다.
“저, 나리. 저것들을 마주치기 전에 기도라도 한 번 올리지 않으시겠습니까? 투쟁의 신께서 축복을 내리신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흘린 이안이 내뱉었다.
“기도를 한다고 들어줄 작자가 아니야.”
겁쟁이라고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이안이 흑검을 고쳐 쥐며 앞장섰다.
“그러니까 그냥 싸울 준비나 해라. 교회까지 멈추지 않고 갈 거니까.”
그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골목 너머에서 부패의 망자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전신에 새카만 종양이 뒤덮인 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종양 한복판마다 기다란 촉수가 혓바닥처럼 꿈틀대는 끔찍한 몰골이었다.
저놈 역시, 게임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역병에 걸려 죽은 자가 되살아나면 저렇게 되는 거였나.’
이름이 부패의 숙주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타타탓-
속으로 뇌까린 이안이 돌진했다.
“제기랄… 루 솔라여… 저 몰골로 되살아나느니 차라리 죽게 해 주소서….”
한숨을 내쉬며 읊조린 필립도, 그의 뒤를 따라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
콰직! 서걱-
이안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부패의 망자들은 골목 어딘가에서 계속 기어 나와 앞을 가로막았지만, 단 한 번도 멈춰서지 않았다. 굳이 놈들을 죽이려 애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해서 걷어차 버리기만 해도 충분했다. 때때로 촉수를 꿈틀대며 다가오는 부패의 숙주는 가까워지기 전에 화염구와 화염 방사로 태워 버렸다.
빠각! 콰득!
뒤따르는 필립도 이안의 방식에 금새 적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턴, 토사물을 막을 때 외엔 성물의 신성력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검으로는 이안처럼 단칼에 망자들을 반 토막 내지 못했지만. 대신 팔이나 머리, 다리를 사정없이 날리고는 방패로 후려쳐 떨쳐 냈다.
새끼, 진짜 많이 크긴 했네.
때때로 뒤를 확인하던 이안의 입가에도 흐릿한 헛웃음이 스쳤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카드득-! 뻐억!
“……!”
베어낸 망자의 몸을 발로 걷어찬 이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길이 열렸다. 대로로 이어지는 골목 끝. 한쪽에 높다란 첨탑이 솟은 교회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필립!”
“예, 나리!”
다리가 잘린 채 기어오는 망자의 머리를 날려 버리던 필립이, 잽싸게 그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둘은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오고 나서야 다시 속도를 줄였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필립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지나온 골목에는 토막 나거나 몸 일부가 잘려나간 망자들로 가득했다. 골목 전체가 꿈틀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숫자가 유독 많아 보이는 건, 하나가 둘이나 셋으로 토막 난 덕분이리라.
악몽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을 응시하는 필립의 눈빛이 절로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어 대는 이들로 가득하던 길이건만.
“어딜 보냐?”
이어진 이안의 핀잔에, 필립이 재빨리 그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말한 이안도 교회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좌우로 이어진 대로 너머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여기서는 정문 쪽은 안 보일 텐데요…?”
되물으며 시선을 돌린 필립의 미간이 이내 구겨졌다. 곳곳에서 망자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 해도 열이 넘었다. 되살아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입에서 선지 같은 피를 뚝뚝 토해내는 여자도 있었다.
“대피하는 과정에서도 희생자가 꽤 생기는 모양이군.”
이어진 이안의 말에, 필립도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는 아까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고함이 번지고 있었다. 그르렁대는 숨소리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릴 정도였다.
“꽤 고전하는 모양입니다. 의외군요. 세 분이 함께 가셨는데요. …하긴, 주민들을 대피시키려면 우리처럼 무력화만 시키는 걸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군요. 대열도 지켜야 하겠구요.”
“그냥 고전할 만한 상황인 건지도 모르지.”
“……!?”
이어진 짧은 말에 필립이 홱 고개를 돌려 이안을 바라보았다.
필립과 달리, 그는 이미 숨도 헐떡이지 않고 있었다.
“저쪽으로 합류해야 할까요?”
“아니.”
이안이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우린 그냥 우리가 하려던 일을 하면 돼.”
그제야 높다랗게 솟은 교회 건물을 눈에 담은 필립이, 이윽고 결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재빨리 이안을 지나쳐 앞서가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이 빌어먹을 의식을 끝내 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죠. 이런 미친 짓을 벌이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만….”
정말 그놈들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란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이안은 다시 한번 의문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물론 지금 이건 여러 예상치 못한 변수가 더해져 만들어진 돌발 상황에 가깝겠지만.
게임을 떠올려 보면, 준비가 철저했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교회의 대문을 밀던 필립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돌아본 건 바로 그때였다.
“나리. 안 열리는데요?”
“안에서 잠궜나?”
“글쎄요. 미동도 안 합니다.”
“비켜 봐.”
이 지랄을 펴 놓고, 지들은 문을 잠그고 숨은 건가.
필립이 비켜서기가 무섭게, 이안이 흑검을 내리쳤다. 문과 문 사이의 틈을 정확하게 노린 일격이었다.
카가각-
하지만 흑검은 문틈을 전혀 베어내지 못했다. 그저 표면에 할퀸듯한 흔적만 조금 남겼을 뿐이었다.
이거로도 안 베어진다고…?
미간을 좁힌 이안이 흑검을 아공간에 던져 넣고는 양팔을 힘껏 내뻗었다. 정말 필립의 말대로 미동도 하지 않는지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밖에.
“……!”
그의 눈이 순간 커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손바닥에 대문이 닿은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더니, 뒤이어 눈앞으로 환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자줏빛이 아른거리는 공허의 변방 어딘가. 사방으로 수많은 촉수를 뻗은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댔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나 묘하게 다정한 속삭임이 뇌리를 긁었다.
물론, 실제로는 찰나에 불과한 환영이었다.
문에서 손을 뗀 이안이 자신의 손아귀를 내려다보는 사이.
“왜 힘을 주려다 마십니까…?”
필립이 주위를 힐끔대며 물었다. 이 와중에도 망자들은 꾸준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선두의 망자들과는 고작해야 십여 미터 정도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곧 토사물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지리라.
“이건 못 열어. 의식 때문에 잠긴 거다.”
내뱉은 이안이 몸을 돌렸다.
“따라와라.”
교회 외벽을 올려다보며 나아가던 그가 이내 멈춰 섰다. 교회 측면에 높다랗게 솟은 첨탑 아래였다. 훌쩍 뛰어오른 그가 튀어나온 벽돌을 움켜쥐며 매달렸다.
투쟁의 축복을 받은 상태였더라도 한 번에 뛰어오르지는 못했을 높이였다. 마법으로 몇 번에 나눠 뛰어 올라간다면, 필립이 따라오지 못할 터였다.
그러니 기어 올라갈 수밖에.
게다가 교회에는 창문이라 부를 만한 게 없었다. 벽면 윗부분에 중간중간 벽돌을 빼서, 내부에 빛이 원을 그리며 쏟아지도록 만들어 둔 게 전부였다.
‘하여간, 가지가지 하네.’
이안이 거미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사이.
“아니… 그렇게 가시면….”
그를 올려다보며 멍하니 중얼대던 필립이, 이윽고 가까워지는 망자들을 다시 눈에 담았다.
한숨을 내쉰 그가 방패를 등에 걸고는 벽면에 달라붙었다.
“루 솔라여… 죽는다면 제발 그냥 떨어져서 죽게 하소서….”
필립의 중얼대는 목소리에 소리 없이 피식대면서도, 이안은 멈추지 않고 외벽을 타고 올랐다.
건물 내부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이 한층 더 선명하게 와닿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기분 나쁜 불길함 정도로 그치겠지만, 이안은 심상치 않게 일렁이는 혼돈력을 느낄 수 있었다. 혼돈의 파편도 감응하듯 낮게 공명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게 튀어나오긴 했단 거지.’
아마도 그것이, 진짜 실패의 결과물이리라.
이윽고 이안은 첨탑 위의 난간에 팔을 얹었다. 중간에 교회 지붕으로 올라설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문이 저 꼴인 이상 지붕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교회 내부는, 일종의 간이 던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후우….”
저릿한 손을 가볍게 털면서, 이안은 난간 너머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개판이 된 도시. 그리고 저 너머, 성의 정문에 모여 있는 자들의 모습이 비로소 선명해졌다.
문 앞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겁먹은 초식 동물처럼 모여 있고, 그 주위로 대열을 갖춘 병사들이 몰려드는 망자들을 저지하는 중이었다.
샬롯과 테사이아의 모습도 보였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선두에서 이리저리 날뛰며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 전열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건 저들 덕분인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구출한 주민보다 변이되거나 되살아난 자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하긴 저주가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부패의 숙주에게 감염된 망자들도 전파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메브는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나가지 않고 모여 선 걸 보면….
‘…역시, 성 밖에도 잔뜩인 거네.’
활짝 열린 성문 너머에서 때마침 번쩍이는 붉은 빛을 눈에 담은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애초에 그가 본 건 성벽 아래에 제물들을 파묻은 흔적이었다. 그것들도 죄다 되살아난 게 당연했다. 게다가 대로를 중심으로 성벽 밖에도 집이 잔뜩이었으니, 부패의 숙주들에게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으리라.
교회로 합류하는 건 글렀고. 오히려 이쪽에서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도우러 가야 할지도.
이안이 내심 중얼 대던 그때였다.
“나, 나리… 저 좀 잡아 주십시오… 저 이러다 정말… 루 솔라의 곁으로 가게 생겼습니다…!”
발아래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필립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매달려 있었다.
새끼 거의 다 와 놓고 엄살은.
재빨리 몸을 숙인 이안이 그를 힘껏 끌어당겼다.
철푸덕 바닥에 주저앉은 필립이 숨을 헐떡였다.
“루 솔라여….”
“그놈의 신 좀 그만 찾고, 일어나라.”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 일으켜 세운 이안이, 아공간에서 흑검을 꺼내 들며 몸을 돌렸다. 식은땀 가득한 얼굴로 헐떡이던 필립이 다급하게 되물었다.
“아니, 쉴 틈도 안 주십니까?”
대답 대신 칼을 들어 저 너머를 가리킨 이안이, 교회 내부로 이어진 계단으로 발을 들였다.
“……?!”
멍하니 고개를 돌렸던 필립이 그제야 정문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눈을 치켜떴다.
숨을 멈췄던 것도 잠시.
곧 다급하게 다시 방패를 꺼내든 그가, 군말 없이 이안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