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고개를 갸웃한 이안의 미간이 이내 좁아졌다.
“중앙으로 간다는 게, 꼭 제도를 들른다는 뜻은 아니었소만….”
“아, 그랬니? 그렇다면 이참에 제도에도 들르면 되겠구나.”
아직 거기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는데.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이안은 게임의 제도를 떠올렸다.
제국과 대륙의 중심. 황제궁과 본교단이 위치한,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게임에서도 제도는 맵을 따로 사용할 정도로 크고 번성한 도시였다. 물론, 그만큼 도시에 드리운 그림자도 짙었다.
잔을 내려놓은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 육체는, 귀하의 막내딸이라 하지 않으셨소?”
“그래. 엘리야 마이어. 예쁜 이름이지? 나는 엘리라고 부른단다. 너도 그렇게 불러 주면 좋아할 거야.”
아르케아스가 미소 지었다.
짧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덧붙였다.
“이름을 물은 게 아니오. 용의 아이는 평생을 둥지에서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말이오. 그런데 맞이도 아니고 막내를, 왜.”
“간단하단다. 전설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지.”
아르케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필립이 그를 돌아보았다.
“전설이, 잘못된 이야기라고요…?”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을 어찌, 평생 내 시중만 들며 살게 할까.”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은 아르케아스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내 아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준비가 되면 세상으로 떠난단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게 되지. 내 아이라는 사실은 평생 밝히지 않은 채로. 사실, 아주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일이란다. 기록되거나, 밝혀지지 않았을 뿐.”
그가 필립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알려진 전설은 그런 진실을 감추기 위해 각색된 것이지. 나의 아이라는 게 알려지면, 자신의 삶을 살기 어렵지 않겠니?”
“그건… 그렇겠군요.”
필립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나 역시 독립한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단다. 설사 그 아이가 그릇된 선택을 할지라도. 나는 그저 가끔 멀리서 지켜보거나,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지. 때로는 기뻐하며, 때로는 슬퍼하면서….”
아르케아스의 눈에 맺힌 황금빛 안광이 일렁였다. 수많은 기억을 헤집듯 아련한 눈.
그가 자신의 팔을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조금 더 내 곁에 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렇게 모든 조건이 부합하는 순간이, 다시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아르케아스의 시선이 이안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 이안. 이 아이를 제도까지 무사히 데려가 주렴.”
동시에 이안의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백금의 막내딸. 선택 퀘스트였다. 완료 조건은 간단했다. 엘리야 마이어를 제도까지 무사히 데려가는 것. 시간제한도 없었다. 보상은 경험치와 스킬 포인트 하나. 그리고 하나의 물음표.
이안은 일단 창을 닫으면서,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소.”
“말하렴. 너는 의문점이 많은 의뢰는 좋아하지 않잖니.”
“나랑 같이 다니는 건 위험할 거요. 이미 앞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니, 이유를 또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도 굳이 왜 지금 이런 의뢰를 하시는 거요?”
“내 곁에 남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일 거란다. 내가 무얼 준비하려는지 너는 알잖니. 게다가 너는 어떤 상황이라도 이 아이를 끝까지 지켜 줄 거잖니. 그게 의뢰니까. 그렇지?”
아르케아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게다가, 그런 순간들을 조금은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단다. 그저 책이나 이야기로만 접했을 뿐, 세상이 정말 얼마나 위험한지는 전혀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물론 그렇다 해서….”
그가 슬며시 이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 아이가 마냥 짐이 되지는 않을 거란다. 아마도 네 시종을 자처할 거야. 나를 섬기던 아이이니, 그 능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 그건, 이 아이가 가진 역량의 일부에 불과하단다.”
“무슨 능력이 더 있소?”
“여러 재능을 타고났지. 기본적으로 아주 똑똑하고 박식하단다. 책을 읽는 걸 특히 좋아하거든. 알잖니. 난쟁이들은 기본적으로 외골수 기질을 타고난다는 걸. 심지어, 마법적인 재주도 부릴 줄 알지.”
이안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졌다.
“주문쟁이란 말씀이시오?”
“특정한 색의 마법을 익히지는 않았단다. 내가 하지 못하게 했거든. 대신, 여러 비전들을 익혔지.”
“…….”
비전 스킬들을 떠올린 이안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공격 마법 하나 쓸 줄 모르는 난쟁이 주문쟁이라.
대충 생각해도, 그다지 쓸모 있을 것 같은 조합은 아니었다. 아르케아스의 확언과는 달리.
“그래서, 제도로 보내 마탑에 들여보내시려는 생각이시오?”
“딸 아이가 원한 적도 있었지. 하지만 내가 만류했단다. 지금의 마탑들은, 과거와는 다르잖니.”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는 거의 모든 마탑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변질되었으니까.
아르케아스의 말이 이어졌다.
“다행히 마음을 돌려주더구나. 이 아이는 제도의 대학에 입학하게 될 거란다. 거기서 고등 교육을 받고, 본인이 연구하고자 하는 학문을 연구하게 되겠지. 이 아이가 가장 몰두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겠니?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의 주제 중에 답이 있단다.”
“…혹시, 검은 벽이오?”
“그래. 이 아이는 검은 벽을 연구하게 될 거야. 그 기원과 구성. 그것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과 사라진 후의 여파. 이미 대륙 곳곳에 남은 광기의 흔적들을 피해 없이 지우는 방법까지….”
아르케아스가 의도한 걸까, 아니면 정말 이 막내딸이 원한 것일까.
내심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짧게 웃음 지었다.
“뭐, 어쨌든 마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나아 보이는군.”
“그래.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탐구심과 학구열이란 건 막고 싶다고 다 막을 수는 없는 거잖니.”
“아무리 그래도, 하필 이 시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시다니. 대륙과 제국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시잖소.”
“그러니 더더욱 제국으로 보내는 거란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제도는 오히려 점점 더 밝아질 테니까. 제국의 중심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거야.”
거참 생각도 깊으시군.
이안은 짧게 혀를 찼다. 물론, 퀘스트를 거절할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 이건 원하는 정보들을 손에 넣고,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덕분에 적어도 아르케아스의 속내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회복을 끝내면, 홀로 곧바로 검은 벽을 무너뜨릴 준비에 들어가려는 것이리라.
그게 뭐건, 안전한 방식은 아닐 터였다. 그러니 자신의 딸을 미리 가장 안전한 곳으로 떠나보내려는 것이겠지. 자신이 가장 믿는 대행자의 경호 아래에서.
어쩌면 이안 역시 제도에 남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윽고 다시 술잔을 든 이안이, 술로 목을 축이고는 입을 열었다.
“곧바로 제도로 직행하지는 않을 거요. 또 어떤 꼬리가 붙을지 모른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이곳에서의 일로 한동안 시끄러울 테니까. 그 개판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갈 생각은 없소.”
“그러렴. 오히려 잘됐구나. 이 아이에게 넓은 세상과 다양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겠어. 어쩌면, 덕분에 다시는 제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지.”
아르케아스가 미소 지었다. 이안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덧붙였다.
“혹시 제도에 발을 들였다가 귀찮은 상황이 벌어지면, 귀하가 나서서 수습해 주시오. 직접.”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만. 그 또한 약속하마.”
“그리고 이번 의뢰의 보수는, 내 마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으로 받겠소.”
아르케아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꼼꼼하기도 하지…. 역시 내 대행자로구나. 하지만 이번만큼 큰 상을 내릴 수는 없을 거란다. 그건 감안해 주렴.”
“그건 알고 있소. 이미, 꽤 무리하셨잖소.”
“이해해 주어 고맙구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니?”
“없소.”
“그렇다면… 잡아 주겠니?”
아르케아스가 손을 내밀었다. 짧게 한숨 쉰 이안이 일어섰다. 이어 퀘스트를 수락한 그가, 몸을 기울여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의뢰는 성립되었소.”
“참으로 기분 좋은 말이로군.”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든 아르케아스가, 이내 손을 놓으며 덧붙였다.
“잠깐만 기다리렴.”
그의 양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사이로 진언이 피어올랐다.
그 한복판에 팔을 깊이 집어넣은 아르케아스가, 뒤이어 그 안에서 잘 말린 채 밀봉된 양피지와 작은 부적을 꺼냈다.
진언이 빛무리와 함께 흩어지는 가운데, 아르케아스가 손에 든 것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 편지는 대학의 총장에게 보내는 추천서란다. 제도에 도착하면 엘리에게 주렴. 나머지는 아이가 알아서 할 거란다. 이걸 전해 주는 순간이, 네 의뢰가 완료되는 시점일 거야. 그리고 이 부적은, 뭔지 알려 줄 필요 없겠지?”
“다음번엔 어떻게 오실 거요? 휴식 중이시잖소.”
“다시 깊이 잠드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괜찮단다. 제도에서 귀찮은 일이 생기면 즉시 태우렴. 그게 아니라면, 제도가 아닌 곳에서 태우고. 사실 나도, 제도에 발을 들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거긴 너무 부산스럽거든.”
실소를 흘리며 양피지와 부적을 아공간에 던져 넣은 이안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는데….”
아르케아스의 옆에 앉은 메브를 일별한 그가, 그녀의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덧붙였다.
“너도 같이 가야지? 필립.”
“물론이죠. 나리.”
필립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주섬주섬 자리에 앉은 아르케아스가 필립을 돌아보았다.
“내 대행자만으로도 든든한데. 이토록 훌륭한 성기사까지 동행해 주다니. 덕분에 마음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겠구나. 고맙다.”
“이안 나리만으로도 걱정 없으시겠지만, 저 역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영애께선, 무사히 제도에 발을 들이시게 될 겁니다.”
필립이 맹세라도 하듯 말했다.
술잔을 드는 아르케아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너와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테니, 사이좋게 지내 주렴. 벗이라는 걸 가져 본 적 없는 아이란다.”
“그렇습니까…? 제 동생이다 생각하고 보살피겠습니다.”
“그 반대란다.”
“…아, 그렇군요. 그럼, 누님이요.”
필립이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이종족의 나이를 겉모습만으로 유추하는 건, 아직 이안도 잘하지는 못하는 부분이었다.
자리에 앉은 이안이 덧붙였다.
“그래서, 망토는 어떻게 해 주실 거요?”
“아, 그렇지. 답을 주자면, 그 표식은 지울 수 없단다.”
만족스럽게 술을 꼴깍대던 아르케아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이안의 시선에 그가 미소 지었다.
“당연하잖니? 그건 대교회에서 축성을 받은 천이란다. 그래서 더 튼튼한 거야. 거기 새겨진 문양을 지우는 건 정말 신성모독이지.”
“이런….”
“그러니, 그냥 뒤집어 입으렴.”
“……?!”
이안은 물론 다른 일행들도 순간 멍한 표정이 되어 아르케아스를 바라보았다. 아르케아스가 태연하게 덧붙였다.
“진언 회로는 평소에는 거의 티가 나지 않잖니. 차라리 그편이 덜 눈에 띌 거야.”
“…하.”
그런 간단한 방법이.
실소를 흘린 이안이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말 그대로 사고의 빈틈을 찔린 것이다. 하긴. 갑옷도 아니고. 겉과 속을 뒤집어 입는다 해서 그리 티가 나지도 않을 터였다. 어떻게 만든 건지, 이 두건 망토에는 재봉선조차 없었다.
“어차피 이안, 네 전투 방식으로는 그리 오래 쓰지도 못할 거란다. 보기보다 잘 찢어지고, 수선도 불가능하거든.”
아르케아스가 덧붙인 말에, 이안이 그를 바라보았다.
“자가 수복 주문 같은 건 없소?”
“비슷한 건 알고 있지. 하지만 교단에서 거부했단다. 그건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덕분에 나는 매년 두 벌씩 새로운 걸 만들어 주고 있단다.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
하여간 교단 놈들이란.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내심 고위층의 의중을 이해했다. 백금룡이 신과 같거나 더 위대해 보이는 건 원치 않는 것이리라. 게다가 교단의 성기사들이 파괴되지 않는 장비로 무장하는 것도 원치 않을 터였다. 어쨌건 내부적으로도 파가 나뉘어 있지 않던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는 그때, 술잔을 내려놓은 아르케아스가 샬롯을 돌아보았다.
불현듯 용의 시선을 받은 샬롯이 순간 굳어졌다가, 이내 진중한 눈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용의 조언이 다시 시작됐다는 걸 깨달은 것이리라.
“고뇌하는 전사야. 그 고뇌를 멈추지 말렴.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기를 바라겠다. 너는 야성에 몸을 맡기지 않아도, 이미 위대한 전사란다. 투쟁의 신이 인정할 만큼.”
“……!”
샬롯의 주황색 눈에 파장이 번졌다. 백금룡이 계시라도 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물론 이안이 보기에 저건 그저 오래 산 존재의 통찰력에 가까웠다.
그의 기억에서 본 것과 직접 샬롯을 마주하며 느낀 것들을 조합해 건네는 조언이리라.
아르케아스의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고뇌와 이성, 그리고 섬세함이 네 동족에게도 필요할 거란다. 끝내 다시 야성에 몸을 맡기고 싶은 순간이 오거든, 여기 이 벗들을 떠올리렴. 본래 위대한 전사가 가는 길은, 가시밭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법이니.”
“명심… 하겠습니다. 위대한 백금룡이여.”
샬롯이 고개를 숙였다. 이안 이외의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진심에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한 건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마 아르케아스가 한 말들이 와닿은 것이리라.
이안이 소리 없이 웃음 지으며 술만 홀짝이는 가운데, 아르케아스의 시선이 나세르에게로 향했다.
미소 지은 채로 굳어진 나세르가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럴 필요 없단다. 나는 이미 너를 용서했으니.”
“……!”
나세르의 눈매가 움찔 떨렸다. 그의 시선에 아르케아스가 말을 이었다.
“여신께 감사하렴. 네가 완전히 눈멀기 전에 먼저 너를 내치셨으니. 오히려 너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생긴 셈이란다. 네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없었을 기회지. 그러니 속죄의 길을 겸허히 걷길 바라마. 곁에 훌륭한 길잡이가 있으니, 그 뒤를 잘 따른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거란다.”
아르케아스의 시선을 받은 메브가 받아들이듯 고개를 숙였다. 잠시 굳어져 있던 나세르도 이윽고 명심하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다시 이안을 마주 본 아르케아스가 빙긋 미소 지었다.
이만하면 만족스럽지 않냐고 묻는듯한 시선에, 풀썩 웃음 지은 이안이 입을 열었다.
“고맙소. 다들, 큰 도움이 되었을 거요.”
“그래… 네게 그 한마디를 듣는 게 쉽지는 않구나. 아주 표현에 인색한 대행자를 두었어.”
말과 달리, 아르케아스의 얼굴에 맺힌 미소는 한층 짙어져 있었다.
그가 빈 잔을 내려놓았다.
“덕분에, 아주 알찬 시간을 보냈구나. 이안.”
가시려고? 생각하며 이안은 슬쩍 술병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술이 조금 남아 있건만. 아무래도 일행들을 위해 양보하려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고생하셨소.”
이아진 대답에 더 짙게 미소 지은 아르케아스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가 테이블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덧붙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으니, 작별 인사는 길게 하지 않으마.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주리라, 그리고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겠다. 이안.”
“노력해 보겠소. 또 봅시다.”
고개를 끄덕이며 멈춰 선 아르케아스가 일행을 돌아보았다.
“어쩌면 너희들 중 몇몇은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더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 늘 무사하고 건강하길 바라마. 그리고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조금 더 편하게 대해 주렴. 여기 이, 내 대행자처럼.”
벌떡 일어난 메브를 시작으로, 이안을 제외한 모두가 일어나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르케아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안을 돌아보았다.
“떠나며 작은 선물을 하나 더 주마. 내가 떠나고 나면, 이 아이를 잘 붙잡아 안아 주렴.”
“……? 그러겠소.”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안이 대답했다. 아르케아스가 덧붙였다.
“그럼, 다들 손을 들어 눈을 가리렴.”
왜 그래야 하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아르케아스의 눈동자에 새하얀 빛이 맺히더니, 삽시에 그의 전신으로 번지기 시작했으니까.
이안은 재빨리 손으로 눈을 가렸다. 뇌리를 지끈 울리는 듯한 두통이 번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