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35
035화
골목을 지키던 패튼과 용병들은, 약속된 시간이 되자 브래들리의 판잣집으로 돌아왔다.
“도련님. 일은 다 끝내셨…….”
장내로 들어선 패튼이 굳어졌다.
뒤따라 들어온 육손이와 패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함께, 살풍경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막 난 거대한 시체. 피와 내장, 살점이 사방이 흥건했다.
누가 이런 광경을 만들어 낸 건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장내의 세 사람 중 유독 이안만 피범벅이 되어 있었으니까.
데클란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마침 잘 왔어. 여길 좀 수습해 주겠어?”
안색은 다소 창백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말투.
재빨리 문을 닫은 패튼이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게 다 뭡니까? …브래들리 경은 어디 있죠?”
“이 시체가 브래들리야.”
데클란의 대답에, 패튼과 용병들이 어리둥절하게 시체를 돌아보았다.
“이게… 브래들리 경이라고?”
비대해지고 뒤틀린 근육과 징그럽게 생긴 돌기들. 거대한 덩치까지.
인간이라기보단 마수의 시체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타락자.”
육손이 불쑥 내뱉었다.
그가 떨리는 입술로 덧붙였다.
“브래들리 경이 타락자였던 거야. 내 말이 맞습니까?”
이안의 눈치를 슬쩍 살핀 데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명확한 실체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칼밥을 먹고 살다 보면 한 번쯤은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게 마련이었다.
검은 벽의 광기를 전염시킨다거나.
죽지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든가.
제국의 눈에 띄면 신성기사단이나 감찰단을 파견해, 주위의 모든 것들을 말살한다는 등의,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소문들.
그런데 오른델에. 그것도 지휘관 중 하나가 타락자라니.
“그럼 난 이만 돌아가겠소.”
이안이 툭 내뱉은 건 그때였다.
용병들이 왔으니,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데클란의 심문까지 끝마친 참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온몸이 너무 찝찝했다.
“잠깐만.”
데클란이 황급히 그를 잡았다.
“시간을 조금 더 내주지 않겠어?”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았소?”
“이제 나를 의심하진 않는댔지.”
“당장은 그렇소.”
“그럼 알려 주지 않겠나? 이제부터 어쩔 건지.”
“놈이 한 말을 들으셨잖소. 남은 타락자가 있으니, 처리해야지.”
술렁이던 용병들이 얼어붙었다.
지하 수로의 마물에 이어 타락자까지 죽인 자가 내뱉은 말이 거짓일 리 없었다.
“아버지와 형님을, 모두?”
“……?!”
이어진 데클란의 말에는, 다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
저마다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들으면 안 될 얘기를 듣고 있다고.
누군가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어느새 필립이 그 앞을 막고 서 있었다.
불신 가득한 눈빛을 한 채로.
“그렇소만.”
“그렇다면… 며칠만 말미를 주지 않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과 데클란은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말미?”
“말리려는 게 아니야. 다만, 하루아침에 영주와 후계자가 다 죽어 버리면, 영지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거란 얘기지.”
“그건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오만.”
“자네의 일이 조금 편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면, 신경을 써 주겠나?”
“흐음….”
침음한 이안이 턱을 까딱였다.
“일단, 들어는 보겠소.”
“내성에 잠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야. 물론 너희들의 실력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만. 옳은 일을 하는데 도둑이나 암살자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 오명을 뒤집어쓸 필요도 없고.”
“그래서?”
“정문으로 들어가자. 당당하게.”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단 거요?”
“반란이라니.”
데클란이 미소 지었다.
“타락자를 심판하는 걸 어떻게 반란이라고 하겠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지.”
“귀하가 영주 자리에 앉으시고?”
“그게 순리라면, 해야겠지. 나는 어둠에 손을 뻗을 생각도, 왕국에 반기를 들 생각도 없어.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은데.”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군.
피식한 이안이 말했다.
“왕국의 미래에는 관심 없소. 중요한 건, 귀하를 도와주면 내가 무엇을 얻게 되느냐지. 내가 저들을 죽이려는 것도, 그게 의뢰이기 때문일 뿐이오.”
“아, 그래. 실리적인 걸 제시하란 거군. 내가 내리는 직위 따위엔 관심도 없을 테고….”
잠시 고민한 데클란이 말했다.
“무기는 이미 훌륭하니, 어울리는 방어구를 주는 건 어떤가? 성을 뒤지면 분명 좋은 게 있을 거야. 물론 돈도 주겠네. 넉넉하진 못해도 합당한 수준으로.”
이안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퀘스트 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서자의 복수.
이안은 수락을 선택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내뱉었다.
“네가 볼 땐 어떠냐, 필립? 이게 이치에 맞는 제안인가?”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에는 반드시 영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죠. 버차드 후작과 그의 적자가 타락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국왕 폐하께서도 정당성을 인정하실 겁니다.”
“그렇다는데. 후작과 대공자의 목까지 넘겨주시겠소?”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내 손으로 죽이게 해 준다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거든.”
혈육을 죽이리란 말을 하면서도, 데클란에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바라 마지않던 일을 앞둔 것처럼 눈을 빛냈다.
물론, 이안은 그 속사정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계약은 성사되었소. 단, 완벽하게 준비하셔야 할 거요. 상황이 지저분하게 돌아가면, 나는 언제라도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돌아갈 거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나저나, 이제 여기 이 친구는 나를 돕겠다는데….”
데클란의 시선이,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는 용병들에게로 돌아갔다.
“너희들도 나와 함께해야지? 오른델의 타락한 영주와 가신들을 심판하고, 그 공로로 한 자리씩 꿰찰 기회인데 말이야.”
그가 부드럽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용병들을 응시하는 눈만큼은 묘한 한기를 머금은 채였다.
몇몇이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전 도련님을 모시기로 한 순간부터, 그런 미래를 항상 꿈꿨습니다.”
“거, 재미있겠네. 손가락이 여섯 개밖에 없는 귀족이 될 기회잖아.”
패튼과 육손이가 차례로 입을 열었다.
껄껄 웃은 패튼이 패거리들을 돌아보았다.
“뭘 쫄아 있어? 혼자서 타락자까지 쳐죽인 실력자가 함께 싸우겠다는데. 출세할 길을 병신같이 걷어찰 거냐?”
“그, 그럴 리가! 좋아, 해 보자고.”
“까짓거, 그래! 해 봅시다!”
용병들이 그제야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어차피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합류하지 않는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되리란 것을.
고개를 끄덕인 데클란이 이안을 바라보았다.
“좋아. 이안, 푹 쉬게. 준비는 나와 이 친구들이 할 거야. 자네는 자네가 하려는 일만 잘해 주면 돼. 계약 내용도, 잊지 말고.”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덧붙였다.
“만전을 기하시오. 귀하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을 테니까.”
데클란의 미소가 짙어졌다.
“걱정 마. 난 평생,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가져 본 적 없었으니까.”
***
이틀이 지났다.
변화는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3할에 가까운 용병들이 소리소문없이 도시 밖으로 사라졌고, 판자촌 주민들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오갔다.
물론 저들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면 눈치채기 힘든 변화였다.
용병들은 여전히 많았고.
표면적으로는 모든 게 일상적이었으니까.
이안의 일과도 그랬다.
낮에는 소소한 의뢰들을 해결하고, 밤에는 식사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이들과 다른 부분은, 그의 여유는 연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정말 서두르거나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종자의 입장은 또 달랐다.
“도련님은 오늘도 코빼기도 안 보이시는군요.”
필립이 불만스럽게 읊조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심드렁하게 대꾸한 이안이 소시지를 입에 물었다.
놀랍게도 이 맛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서자이니 명분과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 돌파는 무리입니다. 나리가 계시니 타락자는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해도… 영주군과 용병, 양쪽 다 타격이 클 겁니다.”
“뭔가 생각이 있겠지. 도련님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
“짐작 가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짐작해서 뭐 하게? 때 되면 알게 될 텐데. 그리고 우리한테 중요한 부분도 아니야.”
이안이 맥주잔을 들었다.
“우린 우리 일을 끝마치기만 하면 돼. 도련님의 계획이 뭐건, 원래 하려던 것보단 쉽고 편하겠지.”
“…그러고 보니, 여쭤본 적이 없었군요. 원래 나리의 계획은 뭐였습니까?”
“하나는 외성 성벽을 기어 올라가서 내성까지 잠입하는 거였지. 경비병들과 다른 거주민들의 눈을 잘 피해서.”
“…또 하나는요?”
“우리가 전에 가 본 길이 있잖아?”
멈칫한 필립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설마, 지하 수로요?”
“그래. 내성 안쪽까지 이어져 있을 테니까. 냄새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지은 필립이, 비장하게 덧붙였다.
“도련님의 계획을 믿어야겠군요.”
“그러는 게 좋을 거다. 수틀리면 당장 오늘 밤이라도 내 계획대로 움직일 거니까.”
“루 솔라시여, 부디….”
필립이 읊조리는 가운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인파를 뚫고, 데클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빈자리에 앉은 데클란이 미소 지었다.
“설마 그사이에, 우리의 계약이 없던 일이 된 건 아니겠지?”
“아직은. 귀하가 어떤 소식을 들고 왔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잘 됐군. 모든 준비가 끝났거든.”
이안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빠르시군. 미리부터 준비해 오셨던 것처럼.”
데클란이 어깨를 으쓱였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두기만 했었지. 공교롭게도 그게 이번에 도움이 된 거고.”
“그래서, 언제 시작하실 거요?”
“내일.”
“내일 밤이요? 자정입니까?”
눈을 빛낸 필립이 물었다.
데클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밤이 아니라, 낮에 할 거다. 내일 정오. 종이 칠 때가 신호야.”
“엥…? 밤이 아니라, 낮이라고요?”
“그래. 떳떳한 일이니, 루 솔라께서 지켜보시는 아래에서 해야지.”
“허어….”
필립의 탄식이 길어졌다.
대낮의 반란이라니.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피식한 이안이 물었다.
“우리 역할은 무엇이오?”
“자네들은 그냥 내 옆에 잘 붙어 있어 주기만 하면 돼. 자네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전까진.”
“정말 그거면 되겠소?”
“그래. 만약 내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결전의 날을 앞둔 자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데클란이 미소 지었다.
“우리는 결국, 정문을 통해서 내성에 들어가게 될 거야.”
***
데엥-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던 이안은, 필립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그가 식당으로 나오자 무장한 용병들이 벌떡 일어섰다.
흥분과 두려움을 억누른, 번들거리는 눈빛들.
이안은 그들의 목례나 눈인사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하지만 용병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재빨리 달려간 필립이 여관 문을 열었다.
뭐 이렇게들 비장해?
이안은 내심 코웃음 치며 문을 나섰다.
“오. 딱 맞춰 나왔군.”
데클란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 직후였다.
그가 패튼을 비롯한 심복들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사슬 갑옷은 물론, 원형 방패와 검까지 착용한 채였다.
고개를 까딱인 이안은 무리 맨 뒤편, 육손이가 몰고 있는 짐 마차를 돌아보며 데클란의 곁에 섰다.
“…이게 전부입니까?”
필립이 나지막이 물었다.
데클란을 따라온 자들과 여관의 용병들은, 다 합쳐도 서른 명 남짓에 불과했다.
평소보다도 더 적은 숫자.
데클란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곧 지원군들이 더 합류할 거야. 아주 많이.”
판자촌의 골목을 지난 그가 외성의 정문으로 향하는 대로로 나섰다.
“……!”
필립의 눈이 커진 건 그때였다.
대로로 이어지는 거의 모든 골목에서 인파가 몰려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용병들을 필두로 한, 판자촌의 주민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지원군입니까?”
데클란이 미소 지었다.
“그래. 대단하지?”
“고생 좀 하셨겠소. 이들을 합류시키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이안이 말했다.
현대인인 그는 신분 따위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지만.
이 세계의 인간들은 아니었다.
신분의 고하는 당연했고. 영주쯤 되는 귀족들은 신의 축복과 가호를 받는다고 여겼으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반하는 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주동자가 데클란이 아니었다면, 이건 성립조차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만큼 어렵진 않았어. 대부분 강제로 이곳에 이주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친우나 가족을 잃었고. 난 계기만 마련해 줬을 뿐이야.”
태연하게 말한 데클란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행렬이 그를 따라 오른델 성으로 향했다.
성벽이 가까워지면서, 본래 오른델의 주민이었던 자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성벽 안쪽에 사는 이들이나, 문을 걸어 잠그고 숨은 자들도 물론 있었지만.
어쨌거나 오른델의 백성 과반수가 동조하고 있는 셈이었다.
“브래들리가 한 짓을 알리셨군.”
“저들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지. 내 형제와 친우에게 생긴 일이라면 특히.”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도 데클란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정말 모든 걸 거셨군.”
“그럴 만한 기회니까.”
“그건 곧, 저들이 이번만 넘기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오.”
이만한 인원이 두 번 집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그전에 피바람이 먼저 불리라.
“그럴 일은 없지. 자네가 있으니까. 내 계획이 망해도, 자네는 자네가 할 일을 할 것 아닌가?”
“그건 그렇소만.”
“그래서 자네의 성공이 내 성공이 되도록 준비했지. 그러니까 나는, 자네한테 완벽한 판을 깔아 주기만 하면 돼.”
“호오.”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그 부분에 방점을 찍다니.
훌륭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어차피 이건, 자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하니까.”
그를 돌아본 데클란이 미소 짓는 가운데.
“저, 정지! 멈추시오!”
성벽 위에서 외침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