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고오오….
야나르의 비명이 잦아드는 사이.
공중제비 돌듯 놈의 몸통 위를 지나친 이안은 그대로 허리를 비틀었다. 과부하 된 백금의 발톱이 허공에 샛노란 궤적을 어지럽게 흩뿌렸다.
카드드드드-
뒤이어 이안이 모래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처박혔다. 멀리 밀려나지 않은 건 모래사장이어서가 아니라, 미리 몸을 돌려 착지할 대비를 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자세를 낮춘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난 그의 몸이 이내 멈춰 섰다.
주먹 쥔 왼팔을 땅에 끌듯 대고, 검을 쥔 오른팔은 옆으로 내뻗은 채였다.
욱신한 충격이 뒤늦게 전신으로 번지는 가운데.
쿠구… 쿠구…
정수의 울림이 볼륨을 높인 것처럼 선명해졌다. 참고 있던 숨을 내쉰 이안이 비로소 백금의 발톱을 비활성화했다.
솨아아아-
그의 옆으로 폭발하듯 거칠게 뿜어져 나오던 샛노란 칼날이 눈부신 빛무리로 화하며 흩어졌다.
이안이 그 사이에서 비틀대며 일어섰다. 폭풍에 휩쓸려 불티처럼 흩어지는 용의 마력 너머. 널브러진 야나르를 잠시 응시한 그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꽤 질긴 놈인데….
요그의 비웃는 듯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야나르는 둘로 나뉜 채로도 여전히 펄떡대고 있었다.
머리가 위치한 위쪽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꼬리 쪽도 마찬가지였다.
카드득- 쿠웅-
하지만 놈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의미는 아닐 터였다.
펄떡댈수록 분리된 양쪽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몸통 곳곳에서 적갈색의 혼돈이 번지고 있었으니까.
광검에 잘려나간 단면은 끓어오르듯 적갈색으로 물들고 있기까지 했다.
쿠구…! 쿠구…!
다가갈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이안은 전신을 울리듯 번지는 정수의 공명을 가라앉히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쿠… 화아악-!
끓어오르던 단면에서 적갈색 혼돈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분출은 삽시에 야나르의 전신으로 번지며 치솟았다.
이안에게는 거대한 적갈색 폭발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시야를 가득 채운 폭발은 그에게도 자욱하게 밀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멈춰서지 않았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라고, 친구.
마주 다가가듯 걸음을 옮기며, 양팔만 좌우로 살짝 벌릴 뿐이었다.
물론 다소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이번 전투에서 소모한 혼돈을 단숨에 보충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콰- 아아아-
밀려든 적갈색 물결이 이안을 집어삼키듯 휩쓸었다. 해일에 전신이 쓸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이어졌다.
‘……!?’
착각이 아니었다. 이안은 자신의 의식이 혼돈의 폭발에 섞여 튕겨 나왔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한 느낌. 다른 감각들이 흐릿해지는 대신, 시야가 한층 더 넓고 선명해졌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내심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였다.
물론,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걸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보다는 이제부터 보게 될 것들에 집중하는 게 더 건설적이었다.
솨아아아-
그사이 그의 의식은, 바람에 휩쓸린 민들레 씨앗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계속 상승하고 있기도 했다.
발아래로 모래 폭풍에 휩쓸리고 있는 사막의 전경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이미 야나르나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 위치였다. 대신, 검은 모래의 바닷속에 일렁이는 적갈색 혼돈들이 선명해졌다.
‘……!’
이안은 그것들이 모래의 속에 몸을 숨긴 마물들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모래 폭풍에 섞인 혼돈이 불티처럼 반짝이며 놈들에게로 스며들고 있었다.
‘설마….’
시야가 모래 폭풍을 벗어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적갈색 불티들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중이기도 했다.
밤하늘에 불길한 별들이 가득 뒤덮인 것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그중 일부가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까지 확인한 순간.
‘그냥 날 쫓아내려고 만든 이동식 권역이었던 게 아니라….’
비로소 이안은 거대한 모래 폭풍의 진정한 용도를 깨달았다.
검은 사막의 마물들을 야나르 타쉬의 권속으로 만들어 버리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놈의 지배력이 강하게 작용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간단한 명령 정도는 충분히 내릴 수 있으리라.
‘…이를테면, 침입자들을 찾아 죽이라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놈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한 선택이었다. 모래 폭풍은 전초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시야에 다시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주어지는 단서들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솨아아아-
그리고 곧 그는, 적갈색 별들이 반짝이는 사막 한복판에 텅 빈 공간이 길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의식은 그 위를 역행하듯 흐르는 중이었다.
‘야나르의… 이동 경로인건가.’
이안은 이게 방금 죽인 마족과 놈의 새끼들이 만든 흔적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놈들은 말 그대로 앞에 마주친 모든 것들을 먹어치우며 이동한 것이다.
고- 오오오-
그리고 삽시에, 드넓은 회색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잿가루가 뒤덮인 듯한. 검은 사막과 대비되어 오히려 밝은 것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사막이었다.
‘죽음의 사막…?’
이안이 이곳이 야나르 타쉬의 권역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찰나, 마침내 그의 의식이 속도를 줄였다.
사… 아아아…
회색 사막 전체가 기름 덮인 바다처럼 끈적하게 넘실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안의 의식이 그 한복판으로 추락했다.
부- 오오- 오-
땅을 울리는 듯한 굉음이 가까워졌다. 뒤이어 넘실대는 잿빛 모래 한복판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고래처럼 솟구쳐 올랐다.
아가리를 쩍 벌린 또 다른 야나르.
그 너머에 펼쳐진 거대한 심연이,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는 이안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심연이 그를 집어삼킨 순간, 의식이 빛의 속도로 튕겨 나갔다.
부- 오오오…
환청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감각이 되돌아왔다. 순간 휘청대는 이안의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선명해졌다.
사막의 불청객.
쿠구… 쿠구…
안정된 정수의 울림이 번지는 가운데, 나풀대는 적갈색의 선들이 어두운 시야에 번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또 혼자 재미있는 걸 본 모양이네. 친구.
요그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이어지는 사이, 이안의 눈매가 순간 꿈틀댔다.
폭풍의 권역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만은 아니었다. 왼손에 움켜쥐고 있던 마력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난 잠깐 눈 좀 붙일게. 친구. 방금 먹은 혼돈을 소화 시킬 시간이 필요해서 말이야….
퀘스트 창을 닫아버린 이안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려 엉겨 붙은 모래를 대충 털어내며 눈을 뜨는 채였다.
“…….”
미간을 찌푸린 채 몇 번 눈을 깜빡인 것도 잠시. 토막 나 널브러진 거대한 사막 지렁이의 형상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야나르. 미동도 하지 않는 놈의 검회색 몸통은, 이미 곳곳이 모래에 뒤덮인 상태였다.
이안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놈의 잔해 사이를 지나쳤다.
솨아아아-
드넓게 펼쳐진 먹구름의 장막은 이지 저 너머로 멀어지고 있었다. 사막 전체를 뒤덮고 지나가기 전까지는 잦아들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 그게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
그의 걸음이 조금 느려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드넓은 모래사장 한복판.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모래 감옥이, 반쯤 파묻힌 듯한 형태로 여전히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솨아아아….
바람에 흩날리듯 위에서부터 천천히 흩어지고 있긴 했지만.
“하….”
윗부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 눈에 담은 이안이, 비로소 참고 있던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따끔대는 눈을 감아버렸다.
물론, 동시에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정보창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하는 채였다.
‘내구도는 정말…’
…착실하게도 줄어드네.
진은 강철 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언 회로의 마력이 거의 다 소모된 건 물론이고, 내구도도 한 번의 전투치고는 꽤 많이 떨어졌다.
과부하를 유발한 대가일 터였다.
덕분에 큰 부상 없이 살아남았으니 소득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조금 더 커진 혼돈의 정수도 혼돈력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경험치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올랐다.
‘새 퀘스트도 받았고….’
진은 강철 검을 허리로 회수한 이안은, 비로소 새로운 퀘스트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얼굴과 머리에 이어, 몸 곳곳의 모래들을 툭툭 털어내는 채였다.
푸스스스….
그 사이에도 점점 더 빠르게 허물어지던 모래 감옥이, 이윽고 신기루처럼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맙소사….”
그 너머에서 일행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로의 곁에 선 세렌이, 이빨이 날카롭게 돋아난 입을 멍하니 벌리며 읊조렸다.
“정말 그 야나르를… 모래 폭풍 속에서 혼자….”
저만치에 널브러진 야나르를 바라보고 있는 건 모로와 그녀뿐이었다.
“…….”
디아나는 품에 안고 있던 가죽 수통을 비로소 왼손으로 고쳐 쥐며, 오른손으로는 손목을 묶은 줄의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진작 매듭을 풀어버린 루시아는 그녀를 남겨둔 채 성큼성큼 구덩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안을 바라본 그녀의 눈이 이내 커졌다.
“이안 님…! 괜찮으신 거예요?”
“보다시피, 전혀.”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 이안이 손바닥으로 귀를 탁탁 치며 내뱉었다. 모래가 귓구멍 속에서도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 그는 모래 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괜찮으신 거군요… 다행이에요.”
물론 루시아가 놀란 건, 그의 얼굴과 머리 곳곳에 남은 출혈의 흔적 때문일 터였다. 모래에 갈린 듯한 상처가 남은 얼굴은 물론이고, 뒤통수와 목덜미에도 피딱지가 잔뜩 엉겨 붙어있었다. 야나르의 충격파에 휩쓸린 여파이리라.
물론 출혈은 진작 멎었고, 이미 아물고 있기까지 했다.
“너희는?”
루시아가 멈춰서자 비로소 비틀대며 일어선 이안이 물었다.
“보시다시피, 전혀요.”
루시아가 얼굴의 반을 가린 복면을 그 아래의 철 가면과 함께 벗어버리며 대답했다. 물론 그 아래에도 얇은 복면 하나가 더 덧대져 있었다. 뒤따라 끌어내리자 푸스스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그래 보이네. 꾀죄죄한 게.”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얼굴을 가렸던 복면은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사라진 상태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또다시 살아남은 건 다행인데 말야….”
루시아의 뒤편에서 디아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죽 수통을 손에 든 그녀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지형이 완전히 변했어. 방향은, 당연히 전혀 모르겠고.”
이안을 돌아본 그녀가 손에 든 수통을 가볍게 던졌다. 이안이 받아드는 사이,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시간을 조금만 줘. 이안. 어디로 가야 이 끔찍한 사막을 벗어날 수 있는지, 금방 알아낼 테니까.”
“그전에 선택부터 해야 돼.”
수통의 마개를 열며, 이안이 대답했다. 디아나의 한쪽 눈매가 절로 좁아졌다.
“무슨 선택.”
“곧 사막의 모든 마물들이 우리를 죽이려 몰려오게 될 거거든. 어쩌면 이미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 이안이 수통을 입으로 가져갔다. 물론 머리를 털던 루시아는 물론 디아나를 굳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목젖을 꿀떡대는 이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디아나가, 이윽고 더듬더듬 내뱉었다.
“그건 또 무슨… 수인 똥 같은… 소리야…?”
“저 모래 폭풍에 휩쓸린 것들은 죄다 야나르 타쉬의 권속이 된단 얘기지.”
비로소 수통에서 입을 뗀 이안이,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디아나의 눈매가 일그러지는 가운데, 수통에게 수통을 내민 그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선택해야 돼. 사방에서 몰려드는 마물들을 상대하면서 사막을 지나갈 건지. 아니면….”
그의 시선이 좌측으로 돌아갔다.
“이대로 죽음의 사막으로 가서,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제거할지. 참고로 이쪽은 길이 활짝 열려 있어.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
“…….”
수통을 받아드는 루시아는 물론, 디아나의 고개도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다.
기다랗게 널브러진 야나르. 어느새 그 옆으로 다가간 모로는 놈의 시신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턱을 열심히 움직이는 채였다.
“정말 크네….”
녀석의 옆. 여전히 줄로 팔목을 고정한 세렌은 감탄과 경외가 섞인 눈으로 시신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반 마족의 얼빠진 표정을 눈에 담던 이안의 시선이, 이윽고 다시 루시아와 디아나 쪽으로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