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직선에 가까운 포물선을 그리는 보라색 궤적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아주 먼 거리였지만.
쉬아아아-
루시아는 궤적을 만들어 내는 존재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분간할 수 있었다.
충격을 막으려는 듯 얼굴 앞으로 딱 붙여 치켜든 굵고 기다란 팔. 그 아래의 다리 역시 온통 불길한 보라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갈고리 같은 날카로운 발톱들.
“…….”
그보다 더 루시아의 시선을 잡아끈 건, 팔 사이가 벌어지면서 드러난 얼굴이었다.
왕관 같은 형상으로 돋아난 보라색 뿔들. 검보랏빛 안광이 이글대는, 흰자위 하나 없는 뾰족하고 커다란 눈.
관자놀이 아래까지 길게 찢어진 아가리에는 검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수많은 사선을 그리고 있었다.
양팔을 활짝 펼친 혼돈의 존재가 입을 쩍 벌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
저주파와 고주파가 뒤섞인 포효가 대기를 찢어발길 듯 터져 나왔다.
한순간 터져 나온 파장이 주위의 먼지들을 둥글게 밀어내는 가운데. 루시아는 이빨 사이로 넘실대는 연보라색의 굵은 혀를 볼 수 있었다. 끝이 두 갈래로 길게 갈라져 있어서, 뱀을 떠올리게 했다.
크르렁-!
고개를 치켜든 모로가 화답하듯 울부짖었다. 녀석의 전신에 번지는 보라색이 더 짙어지는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세렌 역시 발작적으로 기침을 토해냈다.
“경…! 이리 기대요…!”
루시아가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하지만 뒤에 앉은 디아나는 세렌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체.”
상공에서 포효 중인 존재에게 시선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존재의 등 뒤에서 여러 가닥의 촉수들이 좌우로 뻗어 나오고 있기까지 했다. 아주 불길하게 생긴 날개가 돋아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도 날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상승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세렌의 등을 두드리며 올려다보던 루시아의 눈매가 꿈틀댔다.
“저건…?”
촉수들의 형태가 묘하게 낯이 익어서였다. 검은 벽을 넘기 전 전투 사제들을 죽이던 화신체. 놈이 부리던 촉수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꿈틀대는 촉수를 활짝 펼친 존재의 안광이 뒤이어 자주색으로 물드는 가운데.
콰- 아아아아-
그 아래로 잿빛의 거대한 포물선이 드리웠다. 야나르 타쉬.
휘몰아치는 모래 먼지 사이로 놈의 몸체가 설핏 드러났다. 정확히는 놈의 일부라고 불러야 했다. 놈의 전신을 한눈에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
비현실적인 크기에 루시아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야나르 타쉬는 그녀가 평생 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놈의 검회색 가죽은 암석들을 마구잡이로 이어붙인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로 흐릿한 적갈색이 용암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 위, 전신에 자주색을 머금은 존재는 그런 크기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시 추락하기 시작한 다음 순간.
쿠확-!
촉수들을 일제히 뒤로 내뻗으며, 야나르 타쉬를 향해 화살처럼 뿜어져 나갔으니까. 뒤로 자주색의 궤적을 꼬리처럼 남기며, 궤적이 휘몰아치는 모래 먼지 사이로 사라졌다. 그 사이를 뚫고 한차례 보랏빛이 번뜩인 다음 순간.
부오- 오오오오-
야나르 타쉬가 울부짖었다.
지표면으로 떨어지고 있어서, 한순간 몸이 밀려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흩날리는 모래 사이로 비명을 토하는 거대한 머리가 설핏 드러났다. 암석으로 빚은 커다란 부리를 둥글게 이어 붙인 듯한 이빨들.
심연을 머금은 듯 뻥 뚫린 아가리가, 굉음과 함께 잿빛의 모래 바다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과과과과과-
잿빛 폭발이 다시 자욱하게 치솟았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혼돈 섞인 충격파가 또 한 번 일행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크르릉…!
모로는 주르륵 밀려나면서도 다리를 굳건하게 땅에 뿌리내린 채 버텨냈다.
세렌을 품에 안은 루시아는, 한 팔로 얼굴 앞을 가린 채로도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실루엣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흐릿하게 번지는 자줏빛 궤적이 딸려 들어가듯 함께 땅속으로 사라졌다.
콰드드드드드-
커다란 반원을 그리던 야나르 타쉬의 몸이 스르르 평평해지며 모래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잿빛 먼지가 자욱하게 휘날리는 가운데, 발아래에서 이어진 진동이 삽시에 멀어지듯 잦아들었다.
“제기랄…!”
세렌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있던 디아나가, 이윽고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마족?! 마족이 더 있다고?”
가면 너머의 눈을 부릅뜬 채 소리친 그녀가, 앞에 앉은 이들을 돌아보았다.
“저런 괴물이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이안은 대체 어디로 간 거고?!”
“방금 본 그 마족이에요.”
루시아가 내뱉었다. 멈칫한 디아나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뭐라고…?”
“그 보라색 마족이, 이안 님이라고요.”
루시아가 세렌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망토 자락을 늘어뜨리며 다시 대답했다. 멍하니 눈을 끔뻑인 디아나의 가면 너머에서, 이윽고 나지막한 탄식이 번졌다.
“말도 안 돼….”
“…사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덧붙인 건 세렌이었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힘겹게 들며 다시 허리를 펴는 채였다. 루시아가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경. 괜찮은 건가요…?”
“예. 덕분에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군요. 감사합니다.”
세렌이 창백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입가에 맺힌 핏물이 검푸른 연기가 되어 스멀스멀 증발하고 있었다. 왼손을 흉갑 한복판에 얹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성자 대행의 정확한 모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존재감만큼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흔에 엉킨 혼돈이 스스로 공명할 만큼 대단하시더군요….”
“…그럼, 이안 님 가까이로 다가가면 안 되는 건가요, 경?”
루시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세렌이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이제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성흔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성자 대행의 혼돈이 흘러들면서 다시 단단하게 엉켜버리긴 했습니다만….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이 이상의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일단은 다행… 이라고 해야겠지만. 조심해야 해요, 경.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사제님. 다시 한번 감사를-”
“아니… 그러니까….”
담담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둘을 바라보고 있던 디아나가, 이윽고 더듬대며 끼어들었다.
“그게 정말, 이안이라고?”
그녀를 돌아본 루시아와 세렌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낮게 그르렁대며 숨을 고르던 모로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선회하듯 방향을 바꾸고 있기까지 했다.
“……!”
홱 시선을 돌린 세렌이 고삐를 쥐었지만, 녀석은 고개만 짜증스럽게 털 뿐 멈춰 서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세렌이 곧 무언가 깨달은 듯 모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는 가운데, 굳어 있던 디아나가 말을 이었다.
“야나르 타쉬를 상대할 방법이라는 게… 마족으로 거듭나는 거였단 말이야?”
“필멸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신 건 아닐 거예요.”
루시아가 고개를 저으며 내뱉었다.
“이안 님은 전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신 적이 있거든요. 물론 그때는… 저렇게까지 완전하게 변이된 모습은 아니셨지만요.”
그녀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모래 소용돌이들이 넘실대는 가운데, 난장판이 된 일대의 전경이 모래 먼지 사이로 드러나고 있었다.
“분명, 요그가 뭔가 도움을 준 걸 거예요. 세렌 경이 알아듣지 못했던 속삭임이 그거였겠죠.”
“…그 뱀새끼가 무슨 도움을 줬건, 마족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디아나가 읊조렸다. 암담하다는 듯 눈을 감는 채였다. 당연했다.
어쩌면 새로운 대마족이 탄생한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이안이 혼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떠올린, 가장 두려운 결말이기도 했다.
“분명 본모습으로 돌아오실 거예요.”
하지만 루시아는 일말의 떨림도 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안 님이 저런 선택을 하실 리 없어요. 이안 님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목표가 있으시다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물은 건 세렌이었다. 그녀를 돌아본 루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저도 모르지만요.”
“한 번 굴레를 벗으면, 그렇게 쉽게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제님.”
모로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읊조린 세렌이, 이윽고 낮은 한숨과 함께 루시아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자력으로는 결코 인간으로 돌아오실 수 없으실 겁니다. 신들께 도움을 청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여긴 그분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지 않습니까.”
안타깝고 미안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말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루시아의 한쪽 눈썹이 슬며시 꿈틀대는 가운데, 세렌이 말을 이었다.
“저를 비롯한 흑사자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래서니까요. 아무리 요그가 특별하다 해도, 신의 파편이라도 되는 게 아닌 이상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사제님.”
“…….”
루시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물론 디아나의 말에 동의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세렌의 말에 더더욱 이안이 돌아올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됐다. 비록 고대신이긴 하지만, 요그는 정말 신의 파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요그의 정체를 발설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변이를 막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흑사자의 앞에서는 더더욱.
“그러니 어쩌면….”
그런 루시아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세렌은, 씁쓸한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돌렸다.
“성자 대행께선,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신 걸지도 모릅니다.”
“…희생?”
디아나가 한쪽 눈매를 찌푸리며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렌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굴레를 벗는 것만이, 저 대마족을 죽이고 우리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신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내뱉던 디아나가 멈칫했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이안은 요정보다 지독한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필요하다면 그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지 않던가.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이안 님께서 야나르 타쉬를 죽이는 데 성공하신다면 알게 되겠죠.”
루시아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점점 더 빠르게 걷는 모로의 뒤통수를 돌아본 그녀가 덧붙였다.
“그러려면 우리도 끝까지 살아 남아야 되겠고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사제님.”
세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가운데, 디아나도 비로소 새삼스럽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안은 그럼, 지금 땅속에서 싸우고 이는 건가.”
“아마도요. 모로가 지금 이안 님의 기척을 따라가는 중이니, 곧 알게될 겁니다.”
곧바로 이어진 세렌의 대답에 그녀의 고개가 홱 다시 돌아왔다.
“뭐라고요…? 멀어지는 게 아니라, 그쪽으로 다가간다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세렌이 손에 쥔 고삐를 살짝 흔들었다.
“지금 모로는 제 명령을 듣지도 않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네요.”
“미친….”
디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모로에서 뛰어내려 도망칠 수도 없었다. 언제 유사에 발을 들일지 알 수 없지 않던가.
루시아와 세렌이 따라올 리도 없으니, 유사에 한 번이라도 잘못 빠지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저도 느껴집니다.”
세렌의 목소리가 이어진 건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흉갑에 왼손을 얹은 그녀가 덧붙였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가까워집니다.”
루시아와 디아나는 더 묻지 않고, 각각 모로의 목과 세렌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땅 안에서 번지기 시작한 진동이 빠른 속도로 선명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쿠- 화아아아-
굉음과 함께 회색 사막 한복판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일행과 고작해야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회색 모래 폭발이 시야를 가득 뒤덮고, 뒤이어 혼돈 섞인 충격파가 일행을 휩쓸고 지나쳤다.
조금씩 휘청대면서도 너끈히 버텨낸 일행들은, 뒤이어 저마다 고개를 돌려 폭발을 올려다보았다.
콰아아아…
자욱하게 번지는 모래 너머로, 수직으로 솟은 거대한 그림자가 드러나고 있었다.
기둥처럼 보이는 하단에서 적갈색의 빛이 솟아오르듯 번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모로가 덜컥 멈춰서고 일행들의 눈이 커질 찰나.
부오- 오오오오-
대기를 울리는 포효와 함께, 적갈색의 동심원이 상공을 가르며 터져 나왔다. 휩쓸린 모래 먼지가 파도치듯 사방으로 번지는 가운데.
“시발…!? 모로! 달려! 모로오!”
눈을 치켜뜬 디아나가 소리쳤다.
주문을 토해낸 야나르 타쉬의 실루엣이 스르륵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서였다. 심지어, 이쪽으로.
크르렁-!
앞발을 치켜들며 울부짖은 모로가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려 착지하며 달려나갔다.
능숙하게 균형을 잡는 와중에도, 디아나의 시선은 기울어지고 있는 실루엣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휩쓸린 주위의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밀려나고, 크고 작은 암석이 뒤덮인 듯한 거대한 몸통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채였다.
“시발….”
느리게 느껴지는 건 착시일 뿐, 실제로는 아주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일행의 뒤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지점에 떨어질 터였다.
물론 체감상의 거리였다. 야나르 타쉬는 디아나의 원근감을 아주 손쉽게 고장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
야나르 타쉬의 몸통이 채찍처럼 지표면을 때렸다. 잿빛 모래가 해일처럼 치솟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혼돈을 머금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크르렁-!
이번에는 모로도 버텨내지 못했다. 모로의 뒷다리가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고, 디아나가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녀석의 등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
허공에서 한 바퀴 핑글 몸을 돌린 그녀가, 이내 눈을 치켜뜨며 양팔을 펼쳤다. 망토 자락을 펄럭이는 루시아가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르르르르-
루시아를 끌어안은 디아나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뒤이어 그녀의 좌측으로 추락한 모로가 나뒹굴며 멀어지고, 그보다 앞서 떨어진 세렌이 홀로 바닥을 굴렀다.
“안으로… 디아나… 빨리요…!”
멈춰선 디아나가 대자로 널브러지는 가운데, 힘겹게 한 팔로 망토 자락을 치켜든 루시아가 속삭였다.
그제야 눈을 치켜뜬 디아나가 그녀의 품에 안기듯 굴러들었다.
콰아아아-
망토 위로 모래가 잔뜩 섞인 돌풍이 휩쓸고 지나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치솟은 모래 해일이 만들어 낸 돌풍이었다.
크르릉…!
모로가 울부짖고 세렌의 기침 소리가 번지는 가운데, 이윽고 루시아가 몸을 가리고 있던 망토 자락을 떨치듯 휘둘렀다.
망토 안으로는 한 줌의 모래도 흘러들지 않았다.
푸스스-
그들의 몸 위에 덮여 있던 모래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루시아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디아나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잿빛 안개에 뒤덮인 듯한 일대가 드러났다. 저 너머에 드리운 거대한 장벽 같은 그림자는, 아마도 야나르 타쉬일 터였다.
“……!?”
그 위로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빗금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진 건 그때였다.
콰과과과과-
폭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검붉은 반짝임이 모래 안개 사이로 번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부오- 오오오-
축 널브러진 그림자가 꿈틀대고, 명백한 고통이 담긴 비명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디아나는 이미 그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천천히 몸을 일으킨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쒸아악-
붉은 빗금들을 지상으로 쏟아낸 자주색 궤적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우웅-!
자주색 궤적이 둔중하게 착지하자, 주위로 잿빛 모래 먼지가 치솟았다. 일행과 야나르 타쉬 사이를 가로막는 듯한 위치였다.
모래 섞인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지만, 디아나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맙소사….”
그 한복판에서 자줏빛을 머금은 존재가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3미터는 족히 될 듯한 거구였다. 매끄럽게 돋아난 뿔들. 질겨 보이는 보라색 가죽 아래로 비대해진 근육이 터질 듯이 꿈틀댔다. 척추 좌우를 따라 줄지어 돋아난 기다란 촉수들은 곡선을 그리며 위로 솟아 저마다 흔들렸다.
“…….”
끝이 뾰족한 손가락에 맺힌 불길한 암녹색까지 눈에 담던 디아나가 불현듯 숨을 멈췄다.
“크르르….”
저주파 섞인 숨소리와 함께, 마족 이안 호프가 그들을 돌아보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