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3
137화
다가온 전쟁
예상하지 못했던 부바레의 죽음.
힌드산 정상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가온 일행은 물론이거니와 유케의 슬픔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비탄에 잠긴 그들 말고도 부바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부바레가 남긴 생명의 결정은 그와 인연이 없는 자들까지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으므로.
특히 그의 잠재력을 공인했던 토즈스는 그 정도가 심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부바레의 그릇을 가장 정확하게 알아본 건 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슬픔은 슬픔이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뱀파이어와의 결전은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준비는 모든 게 순조롭네요.”
“이대로 준비에 차질이 없다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토즈스의 물음에 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한다고 해도 2주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에 맞춰 로아의 전 지역에 소집 명령을 내려야겠군요.”
로아 대평야에는 이미 전운이 맴돌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자신의 친우들을 잡아다가 만든 추종자로 대주술진을 넘나든다는 사실이 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행태에 분노해 힌드산에서 반격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려져 있었고.
“우선은 주술사들만 이곳으로 불러주시겠어요?”
“아무래도 그래야겠군요. 주술사들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토즈스는 켄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 또한 켄트와 함께 준비작업을 해온 사람이었기에 대략적인 준비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전사들에겐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하고요.”
“네. 그럼 될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사람들을 모아 주시겠어요?”
“그럼요.”
토즈스는 켄트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결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로아 대평야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실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주술사라면 모두가 힌드산으로 모이라는 지령이 하달되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마을에서 출발할 때는 한둘이던 주술사들이 힌드산에 가까워질수록 무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호출에 영문을 몰랐지만, 호출 자체에 의구심을 품지는 않았다.
관련한 내용이 딱히 언급되지 않은 호출이었기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지만, 전언을 보낸 사람이 토즈스라면 이야기는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토즈스는 종족 최고의 어르신이자, 모든 주술사의 존경을 받는 엄지손가락이었으니 말이다.
힌드산 아래는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로 왁자지껄 붐볐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앞에 선 건 토즈스가 아닌 켄트였다.
당연히 토즈스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이에 잠시 곁에 선 토즈스가 입을 열었다.
“대부분이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곧 뱀파이어들과 결전을 벌일 생각입니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투기가 그들에겐 단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걸 여기 모인 모든 이가 알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금방 켄트의 존재를 잊고 토즈스의 말에 집중했다.
“대주술진을 펼치고 수비적인 자세로 일관해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고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염지대의 확장을 막는 기능만 존재하던 대주술진.
이를 토즈스가 무리하게 힘을 써가며 강화했던 건 모두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이후 붉은 오크 사회에서 뱀파이어를 상대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대 이슈로 떠오른 건 당연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론을 강구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한 것 또한 사실이었고.
“해결책을 찾은 겁니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토즈스의 말을 끊고 와락! 소리쳐 물었다.
이에 토즈스도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했다.
“찾았습니다.”
“오오!”
“역시 토즈스 님!”
“토즈스 님께서 해결하실 줄 알았어!”
환호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토즈스는 고개를 저었을 따름이었다.
“제가 아닙니다.”
“……음?”
“뭐가 말입니까?”
“뱀파이어를 상대할 방법을 찾은 건 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그게 무슨……?”
대다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중 눈치가 빠른 몇 명의 소수가 토즈스가 한 말의 의도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설마……?!”
그들의 눈이 켄트를 향했다.
처음 단상에 올라선 사람이 토즈스가 아니었던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주변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얼핏 모두가 켄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을 무렵.
토즈스는 그를 다시 앞으로 끌었다.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라클이라는 존재를요.”
“오라클?”
“그게 뭐야?”
“잘 모르겠는데.”
수백 년간 로아 대평야에서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오라클에 대한 정보는 잊어도 무방한 것이었다.
대침공 전에나 있었던 존재.
그것도 맞닿은 인간의 왕국은 적대관계였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알기 힘든 정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오라클에 대해 묻느라 웅성거림이 번진다.
그런다고 없던 정보가 생겨날 리는 없었지만.
켄트가 단상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와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켄트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여신의 목소리를 따라 아무것도 모른 채 가온의 여정에 따랐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어엿이 성장한 것이다.
“오라클은 여신의 뜻을 대행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아. 그게 그런 의미였어?
신? 근데 그게 뭐.
붉은 오크들이 심드렁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켄트는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뱀파이어를 상대할 결정적인 역할은 자신의 몫.
결국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게 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더더욱 목소리를 단단하게 굳혔다.
“저는 여신의 대행자로서 그분께서 하사하신 기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운을 4대륙에선 신성력이라고 부르고요.”
켄트는 새하얀 순백의 기운을 뽑아냈다.
그때까지도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섰던 사람들은 신성력이 존재를 드러내자 눈빛이 달라졌다.
투기와는 다르지만, 신성이 넘치는 생명의 기운에 절로 시선이 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신기한 걸 봤다는 호기심.
딱 그 정도의 감정이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도 켄트의 다음 말에 완전히 반전되었다.
“신성력은 마왕군이 사용하는 마기에 정반대되는 기운입니다. 저들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이죠.”
켄트는 다믈을 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주술사들은 신성력이 뱀파이어의 형태변환을 막았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렇단 말은 그 신성력이란 기운이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데 핵심이 된다는 소리 같은데…….”
“함께 왔다던 일행은? 그들 모두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요?”
사람들이 신성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데 난항을 겪던 차에 생겨난 해결책이었으니까.
“아니요, 여신을 모시는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사람들은 켄트의 대답에 눈에 띄게 실망했다.
“당신 하나론 이 넓은 로아 대평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켄트가 반박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혼자서 저 많은 뱀파이어를 상대할 수 있다고? 그 정도로 실력이 고강해 보이진 않는데…….”
그 의문은 일견 합당했다.
그 대단한 토즈스조차 뱀파이어의 진입을 막기 위해 대주술진을 강화하는 일에 많은 심력을 쏟아야 했다.
그런 까닭에 종족의 영산인 힌드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물론 대주술진을 거두어들인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제가 뱀파이어를 모두 상대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요.”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일견 비슷해 보일지라도 완전히 다른 뜻을 지닌 문장인 경우가 많았다.
켄트도 그랬다.
켄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 모든 뱀파이어를 상대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느껴질뿐더러 초면에 말장난이나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종족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순간이 아니던가.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러나 켄트는 이를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차분하게 해결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리던 사람들도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눈가에 난 주름이 곧게 펴졌다.
그리곤 곧 기연가미연가 아리송한 표정이 되어 가능 여부를 가늠했다.
그리고 그때, 조용히 물러서 있던 토즈스가 말했다.
“모두 실현 가능하다네. 나와 함께 실험해보았고, 전장에서 활용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지.”
“그렇습니까.”
“역시, 토즈스 님께서 그렇다 하신다면야.”
사람들은 켄트의 이야기가 아무리 혹하는 것일지라도 토즈스가 짧게 한 마디 이야기하는 것만 못했다.
켄트는 이를 서운해하지 않았다.
다른 종족, 초면의 사람보다 토즈스의 말에 더 신뢰가 가는 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선…….”
켄트는 열의를 가지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인 자세였으니까.
***
붉은 오크들이 대주술진의 경계와 가까운 마을들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통일성이 없고 즉각적인 움직임 같아 보였지만, 그들은 모두 수립된 계획하에 이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는 사람들.
모여드는 군중은 뱀파이어와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따금 대주술진을 뚫고 출현한 뱀파이어들은 붉은 오크의 압도적인 수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속속들이 소멸을 맞았다.
행여나 그들이 대주술진 너머로 도망이라도 쳤다간 종족 전체가 이동하고 있다는 걸 고스란히 들킬 수밖에 없는 상황.
경계가 평소보다 훨씬 더 강화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시각, 힌드산에서도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온 일행과 유케, 아흐랍으로 대표되는 힌드산의 전사들과 그 외 주술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무사히 다녀오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토즈스 님.”
아흐랍은 배웅하는 토즈스에게 제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토즈스는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제일 걱정되는 건 내 착각일까?”
“토즈스 님? 서운합니다!”
“흠흠. 종족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걸 잊지 마시게, 아흐랍.”
아흐랍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옆으로 비켜섰다.
7레벨과 8레벨이 나누기엔 다소 유치한 말장난.
하지만 알고 보면 전쟁을 앞두고 내려앉은 묵직한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덕분에 사람들도 딱딱한 표정을 풀고 옅은 미소를 머금었으니 그 의도는 적중했다 할 수 있었다.
토즈스는 다른 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라주앙.”
“예, 토즈스 님.”
“당신에게 큰 짐을 안겨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아닙니다, 제가 토즈스 님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입니다.”
라주앙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빈자리를 채울 순 없겠지만, 그러기 맡은 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라주앙.”
토즈스는 하나하나 시선을 맞춰가며 사람들을 둘러보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무운을 빕니다.”
간결한 한 마디였지만, 그 무엇보다 묵직한 한마디였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