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8
142화
규칙 선포
“모두 내 뒤로!”
가온은 일행에게 소리쳐 말하며 검에 투기를 모아 피의 파도를 베었다.
핏!
피의 파도에 작은 틈이 생겼다.
레이나가 지젤을 통해 바람으로 틈을 벌렸고, 켄트가 신성력을 일으켜 뒤를 받쳤다.
푸확!
피의 파도가 좌우로 갈라져 옆으로 빠져나갔다.
핑─ 핑─
그 사이 유케는 링크를 완성했다.
신성력으로 구현한 회복주문이나, 마나로 구현한 보조마법에선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었던 가온.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투기로 만든 주술은 통했다.
아티제는 다시 핏물을 움직였다.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 보거라!”
둥실 떠오른 핏덩이에서 아주 얇은 실가닥이 수없이 뽑아져 나왔다.
실 길이가 한 뼘 정도에 다다르면 뚝, 하고 끊어지고 또 새로운 실가닥을 뽑고 또 뚝, 잘랐다.
곧 아티제의 눈앞에는 수많은 한 뼘 크기의 수많은 실가닥이 떠 있었다.
딱!
아티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흐물거리던 실가닥이 단숨에 경질되어 바늘이 되었다.
퓨퓨퓻──!
완성된 바늘이 허공을 날아 가온 일행에게 쏟아졌다.
이 모든 건 눈 한번 깜빡할 정도의 시간 만에 일어났다.
빠르게 날아오는 바늘은 육안으로 관찰하기도 힘들 만큼 가늘었지만, 그 안에 든 힘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뱀파이어들이 지난 5년간 로아 대평야 앞에서 모아온 피의 정수가 이곳에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티제는 힘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가온은 쏟아지는 바늘 세례에 방패를 꺼내들었다.
후우욱!
방패를 따라 투영된 투기는 곧장 넓게 퍼져 커다란 방어막을 만들었다.
가온이 투기를 다루는 솜씨는 섬세함이 떨어지고 다소 투박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방어막을 넓게 퍼트리거나 검기를 만드는 것 정도는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지젤!”
레이나가 지젤을 부려 가온 앞에 바람의 방벽을 세웠다.
켄트는 품에서 미리 만들어 둔 성수를 꺼냈다.
가진 기운의 순수함은 그 어떤 신관보다 특별하지만, 아직 다룰 수 있는 힘의 총량이 부족했다.
물론 성물 데이지로 인해 다량의 신성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결국 그건 같은 레벨을 놓고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6레벨의 뱀파이어를 상대하기엔 당연히 모자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켄트는 신성력을 담아 만든 성수를 활용하는 것으로 모자란 힘의 크기를 메우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성취에 반해 다룰 수 있는 신성력이 많았던 켄트에게 성수에 저장해뒀던 신성력까지 더해지자 그 힘이 일시적으로 5레벨에 준할 정도가 되었다.
켄트는 그 힘을 어렵지 않게 컨트롤해냈다.
성물 데이지를 통해 이미 많은 신성력을 다루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씨실과 날실로 천을 짜듯 방어막을 세웠다.
섬세하게 짜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랬다간 다량의 신성력을 방어막으로 전환하는 데 과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해서 켄트는 다소 짜임새가 부족하더라도 두세 겹으로 겹쳐 방어막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푹! 푸부북─!
바늘은 바람 장벽을 파고든 뒤.
펑! 퍼엉!
폭발을 일으켰다.
비록 바늘같이 매우 얇은 형태였지만, 거기서 촉발된 폭발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연이은 폭발에 출렁이던 바람 장벽이 결국 산산조각으로 찢어지고 말았다.
바늘은 곧장 다음 방어막인 켄트의 신성보호막을 노렸다.
치이익!
신성보호막은 보다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상극인 힘의 충돌이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격렬한 싸움의 승자는 혈마법이었다.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신성보호막까지 뚫어낸 피의 바늘.
하지만 두 가지의 방어막을 부수느라 힘을 많이 잃은 피의 바늘은 가온의 방어를 넘지 못하고 곧 소멸을 맞았다.
“…….”
아티제는 자신의 공격이 무효화로 돌아갔음에도 달리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바늘 세례만으로 가온 일행을 쓰러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공격은 견제의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아티제는 바늘을 쏘아낸 후, 곧장 다음 혈마법을 준비했다.
그가 손짓하자 바닥과 벽에 들러붙은 혈관에서 둥그런 구멍이 생겨났다.
콸콸! 쏟아지는 찐득한 피.
한 차례 가공을 거쳐 마기를 머금은 혈액은 보랏빛에 가까운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아티제는 마기를 움직여 이 피를 조종했다.
눅진한 핏덩이들을 하나둘 모아 채찍을 만든다.
이번에는 강직도가 아닌 유연성이 극대화한 마법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채찍 몇 가닥.
완성된 채찍의 모습은 중간중간에 뾰족한 가시가 솟아나 있었다.
아티제는 바늘 세례가 완전히 힘을 잃기 전에 채찍 마법을 완성했다.
“어디 여기에도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아티제는 양팔을 쭉 뻗었다.
쏘아내고 나면 그 이후론 별다른 조종이 필요하지 않았던 피의 바늘과 달리 이번 마법은 섬세한 움직임이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바닥과 벽의 혈관은 여전히 커다란 구멍을 열고 채찍에 혈액을 공급하고 있었다.
가온은 얼른 검을 빼 들고 날카롭게 투기를 벼렸다.
투기를 다루는 게 아직 투박한 탓에 한기가 어릴 만큼 날카롭게 벼리긴 힘들었지만, 특유의 파괴력은 잘 살아있었다.
콰아앙!
검과 채찍이 출동하며 강한 소리를 동반했다.
투기와 마기는 첨예하게 대립하며 강한 돌풍을 동반했다.
하지만 검을 든 가온이 모든 채찍을 다 담당하긴 힘들었다.
아티제는 능숙하게 채찍을 움직였다.
가온을 몰아붙이면서도 다른 채찍을 뻗어 나머지 일행들을 압박한 것이다.
“지젤, 이제부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
레이나가 지젤에게 말하며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바람으로 만든 갑옷.
움직임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보조 마법.
바람을 덧씌워 검의 날카로움을 극대화시키는 마법까지.
바람 계열의 보조마법으로 스스로를 강화한 레이나의 머리 위로 새하얀 신성력이 떨어져 내렸다.
“고마워, 켄트.”
레이나는 켄트의 신성주문까지 모두 받은 다음 채찍을 향해 움직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크게 소리친 유케가 말라비틀어진 넝쿨을 한 묶음 던졌다.
그러자 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커다란 토템 위, 새빨간 보석이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부바레가 남긴 생명의 결정이었다.
비쩍 말라 조금만 힘을 줘도 바사삭! 부서질 거 같던 넝쿨이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가닥마다 초록빛 이파리가 고개를 내밀었고, 줄기는 여름날 소나기를 듬뿍 빨아들인 듯 탄력을 되찾았다.
꾸득.
일부는 땅을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다.
주위의 살점 바닥이 쪼그라들며 힘을 빼앗겼다.
살점 바닥은 마계의 환경이었기에 그것으로부터 힘을 빼앗는다는 건, 마기로의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뜻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이미 부바레가 살아생전 모두 고려해 주술 체계를 조직한바.
마기를 배제하고 생장에 필요한 힘만을 정확하게 흡수할 수 있었다.
그랬다.
이건 정통의 주술이 아닌, 부바레류(流)로 대표되는 새로운 주술 체계에 속한 주술이었다.
“핫!”
유케는 완성한 넝쿨을 움직여 채찍에 맞섰다.
“붉은 오크의 주술이라고 하기엔 제법 신기한 방식이군?”
붉은 오크와 전쟁을 겪은 아티제도 유케의 주술이 색다른 방식이라는 걸 눈치채고 관심을 보였다.
찰나의 방심.
레이나가 이채를 띠었다.
슈아악──!
준비한 피어싱이 출렁거리는 피의 채찍을 피해 아티제를 노렸다.
퍽!
하지만 아티제의 발밑에서 일어난 핏물이 제3의 손이라도 된 듯 피어싱을 꽉 붙들어 잡았다.
매서운 관통력을 지닌 피어싱도 아티제의 굳건한 피의 지배력을 꿰뚫을 순 없었다.
“제법 좋은 시도였-”
쾅!!
여유롭게 레이나의 기습을 평하던 아티제가 돌연 피떡이 되어 허공을 날았다.
아티제의 얼굴을 뭉갠 공격은 가장 많은 채찍을 상대하던 가온이 부지불식간에 던진 손도끼였다.
뭉개졌던 얼굴은 핏방울이 알알이 모여들어 복구되었다.
마치 시간이 되감긴 듯한 모양새였다.
“-……네놈들이 감히!”
어울려주니 밑도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구나!
아티제는 분노로 눈썹을 들썩거리며 마기를 쏟아냈다.
숨을 쉬기 힘들 만큼 진해진 마기의 농도.
“규칙 선포!”
기어코 아티제는 규칙을 선포했다.
「규칙 선포: 폭발의 미학Aesthetics of Explosion」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폭발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나, 그중 가장 아름다운 폭발은 피의 폭발일지어다.」
* * *
규칙을 선포한 아티제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쾅! 쾅! 콰앙!
휘두르는 채찍이 연신 폭발을 일으켰다.
그는 이 내부공간이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행동했다.
가온이 피한 채찍은 바닥이고 벽이고 할 것 없이 날아가 부딪히며 부쉈다.
“쥐새끼 같은 놈!”
아티제는 피의 제단으로부터 공급받은 혈액을 푸화악! 흩뿌렸다.
방울진 핏물은 이미 허공에서부터 폭발하며 가온에게 향했다.
쾅! 콰아아앙!!
크고 작은 폭발이 연이어 일어나며, 가온을 감쌌다.
“가온 님!”
켄트가 놀라 소리쳤다.
유케가 그런 켄트를 안심시켰다.
“가온 님은……괜찮습니다!”
링크를 통해 가온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물론 완벽히 성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가온은 자신을 향하는 핏물을 보자마자 투기를 휘돌려 앞서 폭발에 대비했다.
하지만 피의 폭발은 아티제의 규칙 선포.
6레벨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필살기가 고작 그런 가벼운 방어에 막힐 리 없었다.
폭발은 투기를 둘러 만든 방어막을 박살내고 가온을 직접 타격했다.
“큭!”
살점이 터지고 뼈가 울렸어야 할 공격이었지만, 전투불능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가온은 곧바로 자신의 피해 정도를 파악해내고 다시 투기를 끌어모았다.
무한회복은 계속해서 투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했다.
링크로 인해 피해가 분산된 까닭에 생각보다 몸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까닭이다.
“합!”
가온은 크게 기합을 넣고 다시 전투에 임했다.
쾅! 쾅쾅!
폭발이 계속해서 가온을 덮쳤다.
“지젤!”
레이나는 지젤에게 서포트를 부탁하고 새롭게 사역한 5레벨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켄트는 가용 가능한 모든 성수를 사용하며 신성력을 쥐어짰다.
방어막을 펼쳐 폭발의 여파를 줄였다.
시위를 건 활에 신성화살을 만들어 아티제를 향해 쏘기도 했다.
유케도 부바레의 결정을 박아넣은 토템을 활용해 주술에 힘을 밀어 넣었다.
두 배는 굵어진 넝쿨은 아티제가 조종하는 채찍이 활약하지 못하게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런다고 막을 수 있을 거 같으냐!”
아티제가 피로 만든 채찍에 마기를 쏟아 부었다.
펑! 퍼벙!
채찍과 맞닿은 넝쿨이 폭발하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큭!”
유케는 다급한 표정으로 다시 주술을 준비했다.
아티제는 자유가 된 피의 채찍을 움직여 레이나와 켄트 그리고 유케가 모여있는 후위를 향해 내려찍었다.
전장을 날아다니며 상황을 엿보던 지젤이 때마침 힘을 사용했다.
휘이이잉!
바닥에서 생겨난 작은 바람이 곧 토네이도가 되어 채찍을 흔들었다.
크게 출렁거리기 시작한 채찍은 목표했던 그들을 타격하지 못하고 동떨어진 애먼 바닥을 내리쳤다.
“같잖은 것들이! 그리 반항한다고 결과가 달라질 거 같으냐!”
아티제가 소리쳤다.
맞는 말이었다.
일견하기에 전투는 동등한 듯 치열해 보였지만, 이대로라면 사실 끝이 보이는 문제이기도 했다.
무한정 피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 규칙을 선포한 6레벨의 뱀파이어를 이기기란 요원한 일일 테니 말이다.
“규칙을 선포할 수 있는 초인이 없는 한 너희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분하지만, 아티제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서걱─!
그래, 아티제의 말은 맞았다.
“컥!!!”
똑같이 규칙을 선포할 6레벨만 있다면 이 전투는 할 만한 것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 있다, 네가 찾던 초인.”
아티제는 자신을 가르고 지나간 초월적인 공격에 눈을 부릅뜨고 공격의 주체를 좇았다.
“뭐……?”
그리고 그곳엔 붉은 오크의 전유물인 투기를 사용하던 인간이 서 있었다.
아티제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말도 안 되는……!”
저 인간이 규칙 선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