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짧은 만남
세계수는 정말 갑자기 나타났다.
크기로 보아선 가리는 것 없이 시야만 트여 있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 보아도 거대했음에도 말이다.
“결계야. 출입의 제한이 없는 걸 보면, 시야만 제한적으로 차단하는 그런 종류의 결계인 듯한데.”
마법사들은 즉각 현상을 파악하고 두리번거렸다.
거대한 크기의 세계수를 가리기 위해 어떤 결계가 사용된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원정대는 결계의 다른 기능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멈춰라.”
별안간 나타난 엘프들을 보면, 알람 기능은 분명 존재하는 듯했다.
호기심으로 주변을 살피던 원정대에 곧장 긴장감이 어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활을 겨눈 상대로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
덕분에 원정대는 멸족했다고 알려진 엘프들과의 조우에도 소회를 남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엘프들은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대수림을 가로질러서.”
가온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대표로 나선 엘프는 가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가당치도 않는 소리. 어머님의 힘이 작용하는 대수림을 가로질렀다고?”
“하지만 사실인걸.”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정령?”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하던 엘프의 눈이 떨린다.
그의 눈은 가온을 지나쳐 레이나를 향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레이나의 어깨에 걸터앉은 지젤을 향해서였지만.
[나?]지젤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이 왜 거기에 앉아있는 겁니까?”
[그야 레이나가 내 계약자니까. 와! 근데 너 내 말이 들리는 구나?]지젤은 엘프가 물은 것엔 설렁설렁 말해놓고, 정작 자신의 말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 당연히 나도 정령사니……대체 어떻게 정령사가 된 거지? 대수림을 제외하면 정령계와 연결된 곳은 없을 텐데?”
엘프는 지젤의 물음에 무심결에 대답하다 말고 시선을 돌렸다.
혼잣말을 하듯 말했지만, 레이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질문이라는 것을.
“……정령계로 돌아가지 못한 지젤이 차선책으로 바람이 힘이 담긴 약초에 몸을 의탁했어. 그 덕분에 나와의 인연도 시작된 거고.”
레이나는 협조적이지 못한 엘프의 모습에 굳이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가 마음을 고치고 대답했다.
어쨌든 원정대는 엘프를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굳이 반감을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반쪽짜리 정령이란 말이군.”
엘프는 레이나의 대답에 제멋대로 결론지어 말했다.
그 말을 뻔히 듣고 있던 당사자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뭐? 뭐라고 했어? 너 지금 나한테 반쪽짜리라고 한 거야?]지젤은 잔뜩 골이나 날카롭게 말했지만, 엘프는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보아하니 저 녀석을 따라 이곳까지 들어온 모양인데…….”
더는 정령이라고도 불러주지 않는 엘프.
‘녀석’이라는 호칭은 지젤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다.
[니가 뭔데!]휘이잉──!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날 판단하는 건데?!]지젤의 힘이 투영된 바람은 순식간에 작은 폭풍이 되어 엘프를 덮쳤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나마 가온이 뭉치는 바람을 빠르게 눈치채긴 했지만,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제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콰콰콰!
엘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바람을 보며 경악했다.
“폭풍?!”
본디 폭풍은 바람의 상위 속성으로 분류되는 바.
이 짧은 시간에 폭풍을 만들어내는 건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충분한 바람을 모아야 했고, 그에 상응하는 힘이 투영되어야 했다.
그러니 아무리 레벨이 높은 바람의 정령이라도 폭풍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시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젤은 딜레이라곤 느껴지지 않을 만큼 즉각적으로 폭풍을 만들어냈고.
이런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지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레이나가 지젤을 불러세웠다.
하지만 지젤도 충분히 할 말이 있었다.
[레이나도 들었잖아! 저 녀석이 나더러 반쪽짜리라고 했다고!]지젤은 입술을 비쭉 세우고는 팔짱을 끼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젤, 우린 저들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레이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젤을 달랬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인데 왜 내가 참아야 해?]지젤의 입술이 더 비쭉 튀어나왔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지젤.
덕분에 레이나는 진땀 나게 지젤을 달래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젤도 경고의 의미로 날린 공격이었기에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 공격으로 인해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상위……정령이라고?”
엘프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문제 삼기보다는, 지젤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더 혼란스러운 듯했다.
‘정신이 팔린 게 다행이군.’
가온은 얼른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인류를 대표해서 당신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인류?”
“예. 이 세상의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말이지요.”
“허! 웃기는군.”
지젤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던 엘프는 가온의 말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 인간은 이 세상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어. 그때 다른 종족들은 어땠지?”
엘프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싸늘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날이 서 있었다.
“드워프는 좁고 험준한 골짜기에 모여 살아야 했고, 산맥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수인족을 볼 수도 없었지. 그러면 엘프는?”
엘프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큰 고통을 참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노예로 사로잡혀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어! 그래놓고 뭐? 인류?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말?”
엘프는 잔뜩 난 화를 고함치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한 어린 말투로 잘근잘근 씹어 내뱉듯 서릿발이 내린 듯 차갑게 말했을 따름이었다.
“적어도 그런 말은 인간이 내뱉기엔 너무 염치가 없지 않나?”
‘틀렸군.’
가온은 엘프의 반응에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보시다시피 저희들에겐 다른 종족들도 있습니다. 대화상대로 내가 내키지 않는다면, 다른 이와 대화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엘프는 가온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필요 없다. 너희들과 하는 대화는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는 지젤을 향해 흘끔 시선을 던진 다음, 다시 말했다.
“만일 너희에게 정령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대화하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건 결계를 넘었을 때 바로 공격했을 거라는 뜻이었다.
“경계를 나가라. 마음 같아서는 아예 대수림을 떠나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까진 참아주마. 그곳을 거니는 건 정령이라면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니.”
그 말을 끝으로 엘프들은 겨눴던 활을 거두며 넓게 퍼져있던 포위망을 거두고 한곳으로 모였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축객령.
하지만 그건 엘프의 일방적인 입장일 뿐.
어떻게든 엘프를 설득해 도시로 데려가는 것이 목적인 원정대 입장에서는 대화가 더 필요했다.
‘어쩔 수 없군.’
귀를 닫아버린 엘프들.
때문에 그런 이들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그들을 다소 자극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마왕군을 상대하는 게 버겁지 않습니까?”
때문에 가온은 강수를 던졌다.
마음 같아서는 세계수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대화가 아니라 전투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게 무슨 소리지?”
엘프는 잔뜩 인상을 구기며 반문했다.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던 가온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를 언급하지 않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입니다. 마왕군을 상대로 곤경을 겪고 있지 않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가온은 태연하게 어투로 대답했다.
사실 가온은 엘프들이 마왕군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왕군을 언급한 건, 놈들이 이처럼 거대한 영역을 지금까지 가만히 뒀을 리가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땅 크기로만 따지면, 대수림은 도시보다 훨씬 더 넓어.’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존재들이 그런 땅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않겠는가.
공격 대상이 되어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 되었어야 함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곳의 현상이 설명되지 않아.’
아무리 위협적인 일이라도 오래도록 지속됐다면, 관성적으로 변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보니 환계며 정령계며 텅텅 비어 있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건데-”
엘프는 가온의 말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럴 만한 일이라는 건 마왕군밖에 없을 테니까.”
엘프는 다소 짜증난다는 듯 대꾸했다.
“외부인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일도 없다.”
엘프는 단언하듯 가온의 말을 부정했다.
“게다가 설령 마왕군을 상대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해도 해답을 찾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그걸 너희가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군.”
엘프는 불쾌하다는 듯 가온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 같잖은 말을 더 늘어놓을 생각이라면, 여기까지다.”
그는 팔을 들어 원정대가 온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라. 더 이상은 참아주기 힘드니.”
“……그러지.”
가온은 축객령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할 마음이 없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가온은 원정대를 향해 조용히 고개짓을 해 보였다.
원정대는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스르륵──
그렇게 모두가 결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짧은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 * *
“어쩔 생각이지?”
원정대가 결계를 벗어나 조금 더 물러났을 때쯤, 빈시스가 물었다.
입을 연 건 빈시스 하나였지만, 그건 사실 모든 원정대원이 가온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기다려야겠지.”
“기다린다고?”
빈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까지? 설마 그 기다림이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아니겠지?”
“흠.”
“저렇게 적의가 가득한데, 엘프들이 다시 대화창구를 열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면 나는 반대다.”
빈시스는 계속해서 부정적인 말을 꺼내놓더니 기어코 고개를 흔들었다.
“계속해서 기다리는 건 안 돼.”
“맞아. 이러는 와중에도 도시는 마왕군의 침공에 계속해서 맞서 싸우고 있다고.”
“아니 애초에 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맞아? 저들도 마왕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며?”
“그래. 가온이 내놓은 추측 같았지만, 엘프의 반응을 보면 영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어.”
“단서들을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가온의 추측은 꽤 신뢰할 만하긴 하지.”
내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원정대원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묻어가는 사람 하나 없이 저마다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혔다.
초인의 경지에 이른 이들답게 모호한 의견 없이 확실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대원들의 의견은 다 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의견을 내놓는 건.
“지금이라도 빨리 결정해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바로 빈시스였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