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8
28화
그래, 너라면
가온의 도움으로 한차례 위험을 넘길 수 있었지만, 그게 불리한 전황의 변화를 말함은 아니었다.
“큭.”
레이나는 샤키아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회피와 방어에 바람마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음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외려 어려움이 가중되어갔다.
부침을 겪는 건 비단 레이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베르 또한 그랬다.
레이나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샤키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기에 방해받지 않고 공세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하나도 닿질 않아.’
흑마법사 샤키아는 그런 그의 공격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어막을 펼쳐 손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전투에 아베르가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겨우 1레벨 차이일 뿐이다.
고작 1레벨 차이에 이렇게나 수준 차이가 난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계산미스다.
충분할 줄 알았던 거다.
아티팩트를 찾았으니까.
“으아아!”
아베르는 고함을 질렀다.
거칠게 뽑아낸 마나가 아티팩트를 통해 증폭된다.
평소보다 더 커다란 불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푸시식.
불꽃은 연기 한 번 제대로 피워내지 못하고 꺼져버린다.
일렁이는 마기에 잠식되어버린 탓이다.
“훗.”
흑마법사의 눈에 비웃음이 담긴다.
“컥!”
기습적으로 발현된 흑마법에 적중한 아베르가 충격에 몇 바퀴나 나뒹굴었다.
“쿨럭.”
한 차례 피를 토해낸 아베르.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펜던트를 꼭 쥐고 다시 주문을 외웠다.
아니, 외우려 할 때였다.
“이리 내.”
뒤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쟈올?”
워낙 많은 피를 흘렸던 탓에 기절했다 깼다를 반복하던 쟈올이 벽에 기댄 채 힘겹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거 달라고.”
“아티팩트?”
“그래.”
아베르의 시선이 흔들렸다.
“쓸데없는 생각 마. 안 돼.”
“닥쳐. 잔말 말고 이리 내.”
“…….”
쟈올은 대답 없는 아베르에게 동여맨 상처를 신경질적으로 가리켰다.
“이거 안 보여? 저놈이 내 몸에 구멍을 냈다고. 파고든 저주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다고! 그런데도 나보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아니, 난 절대로 그렇겐 못 해.”
쟈올의 목소리에 점차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놈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직성이 풀리겠어. 하다못해 나랑 똑같은 꼴이 된 걸 봐야겠다고. 그러니까 이리 내, 당장.”
“……각인 주문 쓸 생각은 절대 말고 가벼운 것만 해. 가벼운 것만.”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베르가 목에 건 펜던트를 벗어 그에게 건넸다.
“누가 죽으려고 이래? 잔소리 좀 그만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샤키아를 쓰러트려야 다음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쟈올은 펜던트를 가슴께에 툭, 떨어뜨리듯 올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나 쟈올이야. 같은 3레벨이라고 동급 취급하면 곤란하지. 너랑은 급이 다른데.”
아베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니까 가 빨리.”
아베르는 쟈올의 재촉에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돌려세웠다.
쟈올은 그제야 애써 짓던 덤덤한 표정을 지우곤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우웅.
펜던트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티팩트는 쟈올의 마나를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었다.
주변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며 공기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같잖은 수작을!”
이상징후를 눈치챈 샤키아가 흑마법을 쏘아냈지만, 아베르에게 막혔다.
아티팩트에 주입된 마나가 각인된 주문을 따라 형태를 갖춰간다.
증폭된 마나가 뱉어내는 열기는 이제 불긋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4레벨 마법이라고?”
기껏해야 3레벨 끝자락.
신중하게 파악했고 확신했기에 전투를 벌인 게 아니던가.
상황이 퍼뜩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법이 완성되지 못하도록 놈을 방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급하게 마기를 터트렸다.
화살, 칼날 등 온갖 모양으로 조형된 흑마법이 날아갔지만, 앞을 가로막고 선 아베르가 어찌어찌 막아냈다.
아티팩트의 부재로 마법의 위력은 다소 줄어있었지만, 급하게 만들어낸 흑마법들을 막기엔 썩 모자라지 않았다.
그 사이, 쟈올이 뿜어내는 마나는 더욱 붉고 뜨겁게 타올랐다.
주변으로 번지던 열기가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커다란 불덩이로,
주먹만 한 불꽃으로,
곧 작디작은 불빛으로 크기를 줄여갔다.
새빨간 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노란 듯 흰빛이 느껴지기도 하는,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집약된 느낌.
마침내 준비를 마친 쟈올이 입술을 달싹였다.
“「선-레이 Sun-ray」”
────!
한 점으로 집약된 열기가 쏘아졌다.
마치 누군가 자를 대고 여기서 저기까지 주욱, 빨간펜을 그은 것처럼.
뿜어진 열기에 대기가 일렁이다 못해 일그러진다.
“쿨럭!”
마법이 발현됨과 동시에 쟈올이 피를 토해냈다.
겨우 봉해두었던 상처가 터져나간 것도 동시였다.
베스트 컨디션으로도 힘들었을 마법을 피폐한 몸 상태로 운용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쟈올!”
쟈올은 뿌옇게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아베르의 실루엣을 향해 말없이 미소를 그렸다.
“쟈올? 쟈올!”
놀란 아베르가 쟈올의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미약한 호흡이 느껴졌다.
“…….”
아베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무표정으로 쟈올의 손에서 펜던트를 빼 들었다.
***
“이익!”
마법이 완성되는 걸 끝내 방해하지 못한 샤키아는 미리 펼쳐둔 방어막에 마기를 쏟아부었다.
한층 두꺼워진 방어막.
선-레이가 쏟아진다.
지글지글.
압축된 열기가 방어막을 날카롭게 찔러댄다.
샤키아는 선-레이가 집중된 곳으로 마기를 집중했다.
이글거리는 열기가 방어막 너머의 샤키아에게도 전해진다.
이를 악문 샤키아가 마기를 더욱 뿜어냈다.
선-레이의 열기와 방어막의 마기가 상잔하고 있었다.
열기는 점점 흐릿해졌고, 샤키아의 안색도 파리해져 갔다.
용호상박.
“크흐흐.”
3레벨의 쟈올이 아티팩트에 기대 만든 4레벨의 마법과, 원래의 경지는 4레벨이나 다소 다급하게 보강한 방어막의 대결.
두 싸움의 결과는 샤키아의 미세한 승리였다.
아니, 거의 승리에 이른 듯했다.
쩍!
불현듯 손에 든 오베이 오브에서 불안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뭐?”
샤키아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내렸다.
쩌적-!
금이 가기 시작한 오브는 순식간에 파편이 되어 흩날렸다.
방어막에 투영했던 마기의 일부가 흩어진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브의 부서짐은 샤키아의 평정심도 흩트려 놓았다.
덕분에 선-레이가 방어막을 부수며 그를 불태울 수 있었고.
“끄으아악!”
샤키아가 비명을 토했다.
다급히 마기를 몸에 둘러 진화를 시도했다.
마나로 구현된 불은 마기에 뒤덮여 금방 꺼졌다.
그러나 남겨진 흔적은 참혹했다.
타오른 머리칼, 부글부글 기포가 차오른 피부, 흘러내린 눈꺼풀.
열기에 고스란히 노출된 왼편과 비교적 성한 오른편이 대비되어 더더욱 눈살을 찡그리게 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샤키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각인한 마수가 모두 죽음을 맞았고 그로 인해 오베이 오브가 기능을 잃었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쥐새끼이이!”
열기를 일부 들이킨 탓일까.
쇳소리 가득한 샤키아의 울부짖음이 퍽 섬뜩했다.
가온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살기가 가득했다.
폭발적으로 마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샤키아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몸이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마기를 끌어모았다.
쾅! 쾅! 콰앙!
무자비한 폭격이 이어졌다.
완전히 분노에 몸을 맡긴 것 같은 움직임.
아베르, 레이나, 그리고 가온.
샤키아는 세 갈래로 공격을 나누었다.
공격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격이 가온에게 쏟아지는 모양새다.
비율로 따지자면 2:2:6 정도랄까.
생각해보면, 가온에게 공격이 집중될 여지는 충분했다.
야금야금 마수를 줄였던 게릴라부터 오브를 부숴놓은 것까지.
물론 가온은 자신이 오브를 부쉈다는 걸 알지 못했기에 샤키아가 자신에게만 유독 분노를 토해내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가온은 빡빡한 공격에 눈을 찡그렸다.
대부분의 공격이 집중된 상황.
상대적으로 아베르와 레이나는 여유로워야 정상이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정도의 공격만을 감당하기에도 벅차 보였다.
‘결국 내 몫인가.’
가온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게 두 사람을 탓함을 뜻하진 않았다.
이 싸움은 그들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싸움이기도 했으니까.
앞으로 있을 무수한 전투를 위해서도 첫 단추를 잘 끼울 필요가 있었다.
“요리조리 잘도 도망치는 게 역시 쥐새끼답구나.”
“글쎄. 공격이 매섭지가 않아서 그런지 맞아주기가 영 쉽지 않네.”
“……뚫린 입이라고 주둥이만 나불대기는.”
“그런 말도 맞추고 나서 하지 그래?”
“죽여주마!”
“지키지도 못할 약속 남발하는 타입인가 봐?”
한 번도 지지 않는 가온의 대꾸에 샤키아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입을 닫았다.
말을 섞어봤자 화만 날 뿐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행동으로 옮겼다.
즉각적으로 가온을 향한 공격이 더 늘었다.
하지만 가온은 외려 더 짙게 미소를 그렸으면 그렸지, 얼굴 한 번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게 더 샤키아를 자극할 수 있음을 알아서였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포커스가 자신에게 더 집중되는 만큼 아베르와 레이나에게 더 여유가 생길 거라는.
물론 그렇다고 두 사람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란 건 아니다.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비교적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이 싸움을 결착 짓는 게 제 몫이라는 것도.
기실 그리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한 번. 딱 한 번이면 돼.’
잠시라도 시선을 돌릴 수 있을 만한 움직임.
그거면 족했다.
가온은 샤키아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폭발에 시야가 잠시 가려진 틈을 타 근처에 떨어진 손도끼를 주워 재빨리 등허리에 찔러넣었다.
가온은 눈빛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기회를 엿봤다.
샤키아의 신경이 반대쪽을 향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레이나의 검에서 피어오른 바람이 샤키아의 방어막을 두드리자 자연히 그의 시선이 돌아간 것이다.
‘지금!’
가온이 눈을 빛내며 바닥을 박찼다.
쿠득.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바닥이 비명을 지른다.
탁, 탁, 탁.
다만 이어진 발걸음은 묵직하지 않고 가볍다.
덕분에 샤키아가 가온의 기척을 눈치챈 건 그가 지척에 다다르고 나서였다.
마치 뒤로 고개를 돌리는 샤키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느낌.
가온은 경악에 찬 그 얼굴을 향해 도끼를 내려찍었다.
쿠득!
도끼가 얇아진 방어막을 찢어발겼고,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샤키아의 머리통마저 탐했다.
“너……!”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무언가를 말하려던 샤키아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
“…….”
전장에 일순 침묵이 찾아들었다.
일거에 찾아든 것이다.
호흡조차 제대로 가다듬지 못하고 전투를 속행해야 했기에 애써 무시해야만 했던 피로감이.
어쩌면, 치열하고 긴박했던 전투 과정과 달리 그 끝이 허무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의 방어에 의지한 채 공격을 퍼붓던 샤키아의 선택은 사실 틀리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상처투성이인데다 겨우겨우 몸을 가누는 상태.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다만 그 판단엔 심대한 변수가 존재했을 뿐.
무한회복이라는 변수 말이다.
그 기이한 회복력은 상처 가득한, 피로에 찌든 몸을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기형적인 전투 지속력.
샤키아는 이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죽음을 맞았다.
푸슉.
손도끼를 뽑아 든 자리로 핏물이 튀어 오른다.
가온은 완전히 방전된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반쯤은 초점이 나간 레이나도 검을 축 늘어뜨린 채 걸었다.
행여나 폭발에 휘말릴 걸 저어해 쟈올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벌렸던 아베르도.
끝이 났음을 실감했다.
외면했던 피로가 몰려든다.
가온도 레이나도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태는 어때?”
“……별로. 안 좋아.”
곧장 쟈올의 상태를 확인한 레이나의 안색이 더더욱 흐려졌다.
가온은 다 쓰러져가는 기둥에 등을 기대곤 눈을 감았다.
“유감이군.”
그렇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네던 가온이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느슨하게 풀어두었던 행동은 더 기민했다.
펑!
폭발이 가온이 있던 자리를 덮친다.
옆구르기로 빠져나간 가온의 머리 위로 후드득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휙!
샤키아의 머리통에서 뽑아낸 손도끼가 가온의 손을 떠났다.
“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그래, 너라면 이럴 거라 생각했어.”
착 가라앉은 비웃음이 흘러나온 건 그 이후였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