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30
131화
-다시 만난 차오름 (4)
착각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 거울은 몬스터의 스킬이었으니 당황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형의 얼굴을 보는 순간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형이 왜 여기서 나와.
가족은 건드리면 안 되지.
깊은 빡침이 올라오면서 거울을 강하게 내리쳤다.
쩡!!
작은 흠집이 났다. 그 흠집을 제외하고 거울은 새것처럼 너무 멀쩡했다.
“뭐로 만들었길래 이렇게 단단해?”
물론 거울의 재료 문제가 아니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몬스터의 스킬 문제였다.
이걸 어떻게 잡지?
그리고 가만히 있을 줄 알았던 거울 속의 형이 혼자서 움직였다.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말을 하듯 입을 뻐끔거리는 것이었다.
물론 몬스터가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입모양을 읽어볼까 하다가 나에게는 유용한 스킬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만물의 소리.
몬스터에게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잘될지 알 수는 없었으나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네가 제일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어서 몬스터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정말 되네.
놀란 것도 잠시 거울 속의 사람이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인물이라는 소리에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굳이 따지자면 예빈이와 더 닮은 얼굴에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키.
부드러운 인상이 특징인 한씨 가문의 S급 헌터, 한창우.
“눈뜨고 있는 모습은 7년만이네.”
괜히 손으로 형의 얼굴을 쓸었다. 맑은 올리브색의 눈동자가 제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내 힘이 돼. 그렇게 천천히 나에게 힘이 되다 죽어줘.’
다시 속마음이 들려왔다.
그 말에 멍하니 있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람. 이 녀석은 진짜 형도 아닌데.
처음에 들었던 분노가 다시 스멀 기어올랐다. 가만히 보니 아까보다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 드는 게, 녀석이 힘을 흡수하는 중인 것 같았다.
이번에 배웠던 마나 수련을 통해 기운을 느껴보니 거울 속으로 힘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체력’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만물의 소리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체력을 전부 빼앗겨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
거울에 손을 떼고 좋은 일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헌터가 된 것도 좋은 일이지. 나원명을 이긴 것도 좋았고. 물론 납치당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신애를 각성시킨 거랑…. 이건 나한테 좋은 일은 아니잖아. 음, 백이권한테 집 얻고 무기 얻은 건 좋은 일이겠지? 아니, 이건 대가가 필요한 거니까 좋은 일은 아닌가?’
계속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더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체력은 더욱 빠르게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나 이렇게 부정적인 인간이었나?
스스로를 잠시 돌아보게 됐다.
여차하면 소리 전달 스킬을 쓰면 되니 그렇게 크게 상황이 곤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몬스터를 처치할 방법이 안 보이는 것은 여전했다.
“일단 소리 전달을 쓰는 게 나으려나.”
내게 걸린 디버프나 스킬을 없애 달라고 하면 이 이상한 공간도 사라질 것이고, 몬스터의 본체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해 스킬을 외치려고 할 때였다.
투다다닥!!
“뭐야?”
미로의 끝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씨! 끝이 어디야!!”
퍽!
이 목소리는 차오름이었다. 제대로 앞도 보지 않고 달리던 오름은 그대로 나와 부딪히고 말았다.
“윽!”
왤케 단단해, 돌머리 아니야?
오름의 머리에 부딪혀 코가 얼얼했다. 어째 항상 차오름은 방해만 하는 것 같았다.
“뭐야, 너도 있었어?”
“아, 코 아파.”
오름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으니 몬스터의 스킬에 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오름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넌 왜 못 나가고 있냐?”
뭐라는 거야, 몬스터의 스킬 때문에 못 나가고 있는 건데.
그러다 문득 거울에 비친 오름의 모습이 보였다.
어…? 왜 오름은 자기 모습 그대로인 거지?
나는 형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지만 오름은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너야말로 자기애가 넘쳐흐르는 거 아니냐.”
“뭐라는 거야?”
오름은 거울에 비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면 이 녀석, 혹시 스킬이 통하지 않는 건가?
“너 혹시 거울 깰 수 있어?”
“이거 말이야? 아까 해 봤는데 금은 가는데 완전히 깨지진 않더라고. 그래서 너라면 금방 깨고 나간 줄 알았지. 그래도 너 힘은 세잖아.”
역시 오름은 지금 미로에 갇히긴 했어도 저 이상한 스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 체력도 그대로지? 막 기운 없고 그런 느낌 없지?”
“엥, 그런 것 같긴 한데…. 대체 뭔 질문이냐, 그건?”
그렇담 체력이 빼앗기는 스킬과 거울 미로는 별개의 능력이거나, 오름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나 칭호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름은 아까 물속에서 뱀장어의 스킬에도 멀쩡했다.
녀석의 반응을 보니 자신한테도 이런 스킬이 있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 모든 사실을 유추해 봤을 때 오름의 칭호의 영향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차오름 스스로도 모르는 칭호의 능력을 내가 다 알게 되네.
“지금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 보여?”
“당연히 너겠지, 무슨…. 어라?”
거울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오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누구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우리 형이야.”
“뭐?! 네 형이 이렇게 잘생겼었어? 근데 넌 왜….”
안타까워하는 표정에 깊은 분노가 밀려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 거울에 왜 내 모습이 안 비춰지고 형 모습이 뜬 건지 궁금해해야 하는 거 아니야?”
“딱 보니 뭔 스킬을 쓴 거겠지. 그게 나한텐 안 통하는 것 같고.”
뭐야, 알고 있었어?
“말했잖아. 여기 들어오고 나서부터 기분이 이상하다고. 아까 뱀장어가 스킬 쓰는데 나만 멀쩡한 거 보면 뭔가 있는 거겠지. 아님 칭호의 영향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똑똑하잖아? 아니, 원래 얜 좀 똑똑했지.
음, 생각해 보면 차오름은 컴퓨터도 수준급이고 애가 똑똑하기도 하고, 사기 같은 것도 잘 치잖아. 센터를 상대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형광등이 켜진 것처럼 오름을 영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이 녀석을 믿기는 어렵지만 헌터 계약서를 작성해 둔다면 상관없을 것이다. 지완에게 행정 업무를 다 맡기기엔 너무 인력 낭비였다.
S급 헌터인데 던전도 들어가고 힘도 좀 쓰게 만들어야지.
“윽.”
오름을 영입하자고 생각하고 있을 때 또다시 체력이 깎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일단 모든 일은 여길 빠져나가고 나서 처리하자.
체력을 많이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메시지가 떴다.
[체력이 50%가 남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발동합니다.]체력이 50%로 떨어질 정도로 빼앗겼다고?
심지어 이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체력이 오르기는커녕 점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몬스터는 삶과 죽음의 경계의 천적이었다.
잴 것도 없이 오름이 갑자기 등장해서 사용하지 못했던 소리 전달을 사용했다.
“나는 스킬이나 디버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스킬을 1명의 존재에게 사용하셨습니다. 형태변화의 지속시간은 1시간입니다.]생각보다 더 지속시간이 짧잖아?
내 등급과 같은 B급 던전이기 때문에 스킬 효과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소리 전달이 1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몬스터가 강하다는 소리였다.
골치 아픈 스킬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으나 직접적인 공격을 안 하는 몬스터는 대개 공격력과 방어력이 약한 경우가 많았기에 강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승급을 했는데도 1시간이라는 시간이 뜬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환각에 관한 스킬 말고도 공격이나 방어도 높다는 얘기가 될 수 있었으니까.
“방금 무슨 스킬 쓴 거야? 저번에 썼던 사기 스킬 맞지?”
오름은 내가 소리 전달 스킬을 쓴 걸 저번에도 봐서 그런가, 놀라지도 않았다.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놀라는 것이 먼저였는데 오름은 바로 저번과 같은 스킬인 것을 눈치챈 것이다.
진짜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맞아.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끝내야 해.”
전투가 그리 길 것 같지는 않았으나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몬스터의 전력을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전투를 빨리 끝내는 게 좋았다.
소리 전달이 사용되자마자 거울에 비치던 형의 모습과 미로가 사라지고 다시 텅 빈 지하실로 돌아오게 됐다.
그제야 몬스터의 진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형태는 인간형에, 얼굴이 없는 달걀귀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손에 커다란 거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옆에 아까 몬스터가 변한 헌터가 쓰러져 있었다.
“방금 스킬…. 정말 네가 말한 대로 되는 거야?”
“대충 비슷해.”
“와, 이게 말이 되나? 그런 사기 스킬이 존재한다고?”
그러는 자기도 비슷한 스킬이 있으면서 그러네.
그런데 이 녀석은 그 스킬을 왜 안 쓰는 거지? 확률이 반반이라고 해도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스킬이면 지금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기분인데.
“너 지금 내가 스킬 안 쓰고 버팅기고 있다 생각했지?”
버팅 긴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독심술을 쓰나 싶을 정도로 귀신같은 녀석을 보고 잠시 뜨끔했다. 하지만 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변명 따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름이 이유를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기까지 했다.
“부정도 안 하네. 뭐, 별거 아니야. 지금 스킬이 전부 막혀 있어. 여기 들어온 뒤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단 소리지.”
이것도 칭호의 영향인가? 아니면 그 이상한 존재의 영향일까.
다시 놈을 불러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오늘은 끝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제 이 던전에 남은 것은 몬스터들뿐이었다.
“그럼 넌 아무 스킬도 못 쓴다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오름을 보고 한숨을 잠시 쉰 다음 인벤토리에서 드럼채를 꺼냈다.
리코더로 버프를 걸고 싶었지만 몬스터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덤빌지 알 수 없었기에 함부로 연주를 할 수 없었다.
오름이 잠시라도 방패막이가 되어준다면 모를까, 스킬이 봉인된 오름은 오히려 지켜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조심해, 아까 뱀장어도 그렇고, 다들 준보스급이야.”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던전은 특이하게 여러 명의 준보스급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던전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슬슬 걱정되기도 했다. 심지어 저기 쓰러져 있는 헌터는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생사를 확인하려면 빨리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근데 그럼 이 던전은 어떻게 닫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