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90
91화
-토끼탈을 쓴 남자
뒤로 넘어가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다행히 정신을 잃진 않았다.
그대로 달려온 힐러들에게 끌려 나가 치료를 받으니 금방 상태가 좋아졌다.
현재는 치료를 마치고 배정된 숙소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마디 해 달라는 MC의 요청에 힐러를 불러 달라는 대사를 남기고 쓰러진 것이 대중들에겐 임팩트 있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혹시 ‘한설’에 대한 기사나 가족력 같은 것이 떠돌까 봐 들어가 본 인터넷에는 온통 토끼남 ‘천설원’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였다.
-오늘 경기 본사람? 토끼남 대체 누구냐ㅋㅋㅋ
-모르긴 몰라도 이번 길드대항전 ㄹㅇ꿀잼인 듯ㅋ
-힐러 불러 달래ㅋㅋㅋ그치ㅋㅋ 한마디고 나발이고 당장 죽게 생겼는데 힐러 불러야지ㅋㅋ
-천설원 개멋있음!! 오늘부로 천존 응원한다!
“그게 그렇게 웃긴가? 남은 죽기 직전이었는데.”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어이없어하며 다른 반응도 살펴봤다.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중에는 간혹 부정적인 의견도 껴 있었다.
-얜 뭔데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냐? 제대로 보여준 거 없이 이겼잖아.
-ㅇㅈ. 솔직히 운 좋아서 이긴 거지, 이건ㅋㅋㅋㅋ
-토끼탈 쓰고 나온 것도 어그로 끌려고 하는 의도 뻔히 보여서 역겨움ㅋ
-내비 둬~ 관심 받고 싶다잖아~
관심 받기 싫어서 탈을 쓴 건데 어느새 어그로 끄는 관종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역시 미디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 신경써 봤자 내 손해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현지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궁금해 천존 숙소를 벗어나 신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팀원들 콧대가 꺾인 모습도 확인할 겸 현지 녀석에게 다음 경기에 대한 언질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 거대한 초승달 경기장에는 멀리서 오는 헌터들을 위한 숙소가 있다.
원래는 상대 진영 숙소에 다른 길드 사람이 들어가는 건 금지지만 몰래 스파이를 심어 놓는 일이야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들켜도 적당히 주의만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라?”
숙소까지 들어갈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로비에서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신혈 길드 녀석들이 보였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목소리 줄여. 사람들 듣겠어.”
“들으라지!”
김은아가 잔득 뿔이 났는지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디서 듣보잡이 나타나서 물을 흐리는 거야! 대체 걘 뭐야?!”
“진정해,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앞으로 남은 경기가 중요하지.”
태경이 화내는 은아를 진정시키려고 말을 돌렸다.
“너는 왜 말이 없어? 한 명이 아쉬운데 빠진 이유가 뭐냐고!”
“그, 그만!”
태경이 말을 무시하며 타겟을 바꾼 은아는 말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현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추궁했다.
아씨, 쟤는 태경 말대로 넘어가고 다음 경기나 잘 준비할 것이지, 갑자기 왜 타겟을 돌려?
현지가 함부로 말을 꺼냈다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들키면 곤란했다.
제발 이번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뱉길 바랐다.
“자기도 진 주제에 말은 많군.”
현지는 조용히 있다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최대한 말을 골라서 꺼냈다는 게 느껴져서 뭐라 말하진 못하겠다.
게다가 팩트였으니까.
그걸 김은아도 알았는지 얼굴이 붉어지며 뭐라 말하려고 손가락질을 하다 소리 나게 고개를 돌리고 숙소 안으로 올라가 버렸다.
“센스가 좋은 녀석이야. 그 상황에서 신발을 던질 줄은 몰랐지만. …조심해야겠어.”
서현은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확실히 녀석들에게 경계는 된 것 같네.
두 번째 경기는 바로 다음 날이었다. 아직 무슨 경기가 나오는지 밝혀진 바는 없었지만 현지에게 미리 말해둘 것이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둘러싸여 있으면 따로 불러낼 수가 없잖아.
언제 현지를 불러내야 할지 몰라서 계속 벽 뒤에 숨어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신혈 길드 선수들이 숙소로 돌아가려고 할 때를 노리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게 현지에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쟤네는 뭔 할 말이 많다고 사람을 저렇게 잡아놔?”
다들 한숨을 푹 쉬더니 숙소로 올라가려는 신혈 길드 녀석들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어? 근데 길현지 쟤는 왜 같이 가?
분명 1차전이 끝나고 남으라고 전언을 남겼는데 왜 쟤네를 따라가고 난리야?
내가 말했던 거 잊은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이 나는 신혈의 숙소까지 쫓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혹시 알아볼까 토끼탈은 이미 인벤토리에 넣어둔 상태였다.
“빨리 말만 전하고 나가야지.”
뒤를 쫓으며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한설?”
뒤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러왔다. 긴장하며 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에는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설마 또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 정현준이다.”
아, 맞다. 근데 얘 대안 길드 사람 아니야?
“너 뭔데 이렇게 당당히 돌아다녀?”
현준은 내 말에 눈가를 찌푸리며 움찔거렸지만 다시 당당한 태도로 대꾸했다.
“신혈과 얘기할 것이 있어서 온 거야. 그러는 넌 본인 숙소면서 왜 숨어 다니는 거야?”
신혈과 말할 게 있다고? 무슨 얘기지? 설마 다음 경기에 대한 얘기인가?
“대안이랑 만나서 얘기할 게 있나? 리더한테 들은 게 없는데.”
현준의 질문을 살며시 무시해 버리고 궁금한 점을 물었다.
태경에게 들은 게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당당히 물어보자 현준이 조금 망설이다가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 쪽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다음 경기는 작년에 나왔던 ‘3인조 사냥’일 가능성이 커. 이번에 참여하는 길드들이 많아서 협력 요청을 하러 왔다.”
뭐? 3인조 사냥? 이런 정보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현준은 내가 당연히 신혈 쪽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아무 의심 없이 정보를 줄줄 말하고 있었다.
현준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되면 더더욱 현지를 만나야겠는데?
“내가 불러올게. 넌 여기서 기다려.”
내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고개를 끄덕이는 현준을 보며 다시 현지를 찾아 숙소를 헤맸다.
꺄악-!!
한참을 헤맬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숙소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일반인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숙소 앞을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비켜주세요.”
뭐야, 사생도 있어? 근데 이렇게 보안이 허술해도 되는 거야?
꽃과 선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헌터라는 직업의 인기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 사람들이 열심히 SNS에 그들을 만난 후기를 전달할 테고, 자연스럽게 신혈이 홍보되겠지.
이쯤 되면 그들이 일부러 저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일종의 마케팅인 것이다.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녀석들 속에 현지가 멀뚱히 껴 있는 것을 보고 팬인 척 다가가 몰래 뒷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다행히 나는 인기랄 게 없어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현지를 이끌고 사람들이 없는 비상구로 갔다.
“너 왜 그냥 들어가냐? 남으라고 했잖아.”
“나는 빠져나오려고 했다. 근데 태경이라는 놈이 팬들에게 얼굴을 비쳐야 한다고 했다. 이것도 일의 일부라고.”
역시 일부러 그런 거구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만큼 행동 하나, 작은 사건 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것이었다.
신혈은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 안에 두고 행동하고 있었다.
무서운 놈들.
“어쨌든, 이거 받아.”
나는 용건을 꺼내며 작은 이어폰을 현지에게 건넸다.
“이게 뭐지?”
대항전에 참여하기 전 거금을 들여 사놓은 무전기였다. 인터넷을 뒤져 가장 작은 사이즈로 찾아냈다.
“항상 끼고 있어. 돌발 상황이 생기면 이 버튼을 누르고 말하면 돼.”
“이 세계에는 참 신기한 물건들이 많군. 마법을 쓰지 않고도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혹시 모를 때를 위해서 마력은 최대한 아껴두라고.”
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용건이 끝난 나는 현준의 말을 전하지 않은 채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토끼탈을 착용하고 천존 길드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찔한 경험을 해야 했다.
“어? 저기다!!”
“천설원 씨!! 한 마디만 해주시죠!”
“오늘 승리한 소감이 어떠십니까?!”
아…. 뒤로 돌아갈걸.
신혈 숙소엔 팬들이 점령하고 있었다면 천존에는 기자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기자들을 보자마자 몸이 굳어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PTSD였다.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인파 속에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엇, 도망간다!”
“따라가!!”
그렇게 전력질주를 하며 도착한 곳은 숙소 안이었다. 팔을 잡고 끌어준 사람은 천존의 리더였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내가 들어오자마자 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리더는 숨을 고르고 나를 노려보는 것 같더니 이내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것 같아 긴장했다.
말도 없이 이탈한 거 가지고 한 소리 하려고 그러나? 뭐라고 변명하지?
“너 쩔더라!”
“네?”
하지만 리더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다른 녀석들도 눈을 빛내고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요?”
“나는 길드장님이 직접 데리고 왔다고 했을 때부터 믿고 있었다고!”
“뻥치지 마! 너 이상한 놈 데리고 왔다고 툴툴댔잖아!”
무섭게 압박하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왁자지껄 수다 떠는 사람들을 보니 긴장했던 것이 민망해지기까지 했다.
“너 진짜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천존 리더는 어깨를 흔들며 눈물을 글썽였다. 당연히 천존은 조기 탈락할 줄 알았던 것인지 감격에 겨워하고 있었다.
분명 초반에 우울하고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으면서 틱틱거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우리 이러다가 1등 하는 거 아니야?”
“설원이만 있으면 1등도 가능하지!”
‘이번 경기 때문에 희망을 본 거네.’
정신 차려, 이 사람들아.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희망에 부풀어 올라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시켜 줘야겠다.
“이번 한 번으로 이렇게 좋아하시면 안 되죠. 다음 경기부터는 어려워질 거예요.”
“그,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어디서 이런 머리 꽃밭인 녀석들을 모아왔지? 이번에는 꼭 1등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중권의 진지했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다들 등급은 어떻게 되세요?”
신혈 길드의 연습에 참여하느라 천존 선수들에 대해서 제대로 소개받지 못했다.
몇 번 보기는 했는데 내가 토끼탈을 쓰고 등장하니 이상한 놈 취급하고 다들 피하기 바빴던 것이 진짜 이유였다.
중권은 너무 바빠 제대로 이 사태를 알지 못했고, 리더가 알아서 잘하겠다는 말을 믿고 신경을 꺼 버렸다.
이러니까 매번 길드대항전에서 죽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