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93
94화
-작전회의 (3)
굳이 지금 알려주는 의도가 뭐지?
한두 번 대항전을 여는 것도 아니고, 경기 종목을 알려주는 시간이나 방법도 다 계획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제는 하루 걸려서 알려주더니 오늘은 바로 알려준다.
미리 알려주는 만큼 머리를 써야 하는 종목일지도 몰랐다.
“세 번째 경기는 바로, 꼬리잡기입니다!”
꼬리잡기? 무슨 경기 종목이 죄다 운동회 종목 같은 것밖에 없어?
물론 이름만 운동회 종목 같은 것일 뿐, 내용물은 전혀 달랐지만 네이밍 센스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룰은 간단합니다. 선수들은 모두 각자 천을 팔목에 매고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한시간이 끝나고 천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팀이 승리합니다! 이번 경기는 전원 참가입니다!”
이번에도 시간제한이 있었다.
몬스터 사냥처럼 1시간이 아니라 8시간 동안 진행된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오랜 시간 진행되니 더 전략적으로 행동해야겠네.
우리는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빨리 돌아가서 회의부터 해야겠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뭐야?”
숙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 다른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스킬이 사용되었습니다.]‘드디어 천존이 왔군’
‘저게 그 토끼탈인가?’
그냥 착각인 줄 알았는데 진짜 숨어 있었잖아? 우리도 곧바로 들어온 건데 언제 숨어 있었던 거지?
‘만물의 소리’를 쓰니 어떻게 숨어 있든 다 속마음이 들렸다.
다른 길드에는 팬들이 여럿 깔려 있었는데 천존은 텅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만물의 소리를 써도 의미가 없었는데 이렇게 고요하니 선명히 잘 들렸다.
이럴 때는 참 유용하단 말이야.
“저는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어어, 그래.”
무리에서 슬쩍 다른 길로 빠지고 만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이동했다.
그러고는 아직 빼지 않은 이어폰으로 무전을 쳤다.
“여러분, 말은 하지 말고 들으세요. 지금 숙소 근처에 다른 길드 사람들이 깔려 있어요.”
”말 한 마디 모두 정보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그, 그래!]말하지 말라니까 말하고 있네.
다들 내 얘기를 듣고 당황했는지 어색하게 대답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도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아이고…. 이래서는 나 미행당하는 거 다 알아요, 광고하는 거랑 뭐가 달라?
숙소에 들어가서도 다들 크게 한숨을 쉬며 바닥에 스러졌다.
“다들 경기 처음 해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초짜처럼 굴어요?”
천존이면 그래도 대형 길드였다. 항상 4등을 놓치지 않았던 길드였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한 명만 그랬다면 이해라도 했을 텐데, 다들 어리바리한 모습이었다.
“…그게 사실.”
그러자 천존 선수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했다.
“…우리는 처음 출전하는 거야.”
긴 망설임 끝에 나온 말은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처음이라고?
“전부요?”
어쩐지 처음부터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고 처음 참가하는 나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성과가 없었다고 매년 참가하던 선수들을 모두 퇴출시켰거든.”
“길드에서요?”
진중권이 그럴 인물로 보이진 않았는데….
문득 진중권이 모든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존을 먹은 대기업 회사에게 있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회사가 퇴출시킨 거구나.
“우리도 권한이 없었어. 그건 길드장님도 마찬가지지.”
“그놈들만 없었다면 우리도 다른 길드들처럼 활개치고 다녔을 텐데….”
“길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과만 원하는 놈들!”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불만을 토로했다.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어요. 앞으로가 중요한 거죠. 음, 대형 길드들 중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낮은 길드인데도 잠입이 있는 걸로 봐선 다른 쪽도 심할 거예요.”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다른 길드의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굳이 잠입같이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됐다.
심지어 우리에겐 스파이도 있었다. 물론 신혈 길드 한정이긴 하지만.
“다른 길드들도 잠입에 대해 금방 눈치챘을 테니 길드 정보를 쉽게 얻어가진 못할 거예요. 저희는 전략이나 짜죠.”
“다들 잠입을 심어놨는데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짓 안 하려고 우리가 이번 경기를 포기한 거잖아요.”
나는 숙소로 들어오기 전 받아둔 지도를 식탁 위에 펼쳤다.
다들 펼친 지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들 무슨 경기인진 들으셨죠? 너무 간단한 룰이라 오히려 다양한 전략이 나올 수 있어요.”
내일 있을 경기는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다.
떠오르는 사람은 매화의 희나와 대안의 신애, 신혈의 서현이 있었다.
일단 신애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유리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었기에 멀뚱히 그 스킬에 당하고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특히 신혈같이 노련한 선수들은 이미 그런 스킬들에 대해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대형 길드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걸로 가죠.”
“그럼 그 아래 길드들만 노리게?”
“근데 이건 우리 길드뿐 아니라 다른 길드에서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다른 대형 길드와의 마주칠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는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잠깐, 근데 그러고 보니 전원 참가라고 했지? 그럼 현지도 참가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거 골치 아파졌다.
분명 녀석들은 자신들한테 도움이 되는 버프를 달라고 요구할 텐데, 현지는 버프를 쓸 줄 몰랐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잠깐이라도 바꿔야 하나?
‘잠시만, 현지랑 나랑 바꾸는 거…. 이거 잘만 이용하면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을지도.’
번뜩 떠오른 생각에 바로 현지에게 무전을 날렸다.
오늘 경기를 통해 나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천존 선수들은 아무렇지 않게 무전을 날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여러분 저한테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무전을 끝내고 사람들을 보며 씩 웃었다. 다들 이번엔 무슨 일이냐며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아빠 이거 봐!”
독열은 한기가 TV를 붙잡으며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나왔다.
그리고 한기가 가리킨 곳에는 한설의 모습이 생생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설이 아니냐? 얘가 TV엔 어떻게 나왔지?”
“아빠, 이번에 길드대항전 열리는 거 몰라? 한설 님도 여기 나갔나 봐! 대박이다,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한기가 시시덕대며 웃고 있을 때 독열은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잠시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래서 잠시 동안은 레슨 못 받겠다고 한 거구만?”
뚱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억지로 끌려 나간 것이 분명했다.
독열은 오랜 시간동안 한설과 함께했기에 저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금방 알아챘다.
“바드인데 참여한 것 자체가 기적이야! 최초일걸? 아빠랑 연습한다더니, 실력은 어때? 항상 리코더로만 버프를 주셨는데 이번엔 노래 부르시려나?”
독열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계속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프는 아직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한 곡 정도는 틀리지 않고 칠 수 있어.”
“하프? 하프를 친단 말이야? 와, 좀 멋있다. 그럼 노래는 어때?”
한기의 질문에 독열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투가 날 정도로 배우는 속도가 빨라. …천재야.”
한기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어 보이는 독열의 얼굴을 보며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빠, 언제는 헌터니 뭐니 다 싫다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네?”
“이놈아, 그런 녀석은 헌터가 아니더라도 가르쳤을 거야. 썩히기엔 아까운 재능이야. 뭐…. 박치인 거는 노력을 좀 해야겠지만.”
“그 정도로 재능충이야?”
한기는 독열이 이 정도로 반응한 사람이 없었기에 조금 한설에게 질투가 났다.
한기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징징댔을 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독열이었다.
‘그래도 한설 님이니까 뭐….’
질투심이 나려다가도 한설을 떠올리면 고개를 들이밀던 감정도 사그라졌다.
항상 뚱한 표정으로 세상만사에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돈과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천사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 뒤에 사악한 악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 한설에게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떠오르지 않게 됐다.
‘내가 만약 아빠 아들이 아니었으면 던전에서 갚지 못한 돈 내놓으라고 닦달했겠지.’
아직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한기는 한설에게 갚아야 하는 돈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아빠 덕에 천천히 갚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기는 콧노래를 부르는 독열에게 다가가며 고무장갑을 뺏어들었다.
“이리 줘요, 내가 할게.”
“이놈이 갑자기 왜이래?”
“아니, 그냥 고마워서….”
한기는 실실 웃으며 설거지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실없는 녀석.”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독열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독열은 한설의 모습이 지나가고 다른 헌터들을 비추고 있는 TV를 들여다봤다.
“한설 이놈, TV에서 노래하면 아주 난리 날 텐데, 괜찮나?”
한설의 과거를 알고 있던 독열은 한설의 노래를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걱정되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 * *
효원은 첫 개막식 이후로 경기를 한 번 더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티켓을 열심히 구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안 되는 일인 것을 알지만 효원은 암표 판매도 알아봤다.
하지만 예년보다 인기가 많은 이번 년도 길드대항전으로 인해 암표의 가격은 몇 배나 치솟아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효원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영상의 댓글을 읽어봤다.
‘다들 신애랑 신혈 길드 얘기뿐이네.’
신애가 이번 대항전의 주역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이외에도 간간히 들려오는 인물은 천존의 토끼탈이었다.
“신애 님 옆에 있던 남자는 죄다 부정적인 이야기네.”
그리고 신혈 선수들 중에 가장 비중이 없지만 꾸준히 욕을 먹고 있는 한설이 눈에 띄었다.
다들 신혈 선수들의 외모와 실력에 찬양하고 있을 때 한설은 열심히 욕을 먹었다.
-저 E급 헌터는 왜 들어간 거임?
-뭐 2차전까지 한 것도 없던데ㅋㅋ
-근데 서포터라 2차전까지는 나갈 수 없었던 게 맞지.
-ㅋㅋㅋ전투 계열이었어도 E급이 뭘 할 수 있어.
간혹 한설을 두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안 좋게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신애 님과 친해 보여서 조금 관심이 갔는데 이렇게 욕을 먹으니 마음이 안 좋네.’
진행자들도 한설이 인기 없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단 한 번도 카메라에 비춰주지 않았다.
가끔 신혈 선수들을 찍으려고 할 때 조그마하게 나오는 게 전부였다.
어쩌다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자꾸 한설의 이름을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효원은 작게 찍힌 사진을 크게 확대를 해보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생각보다 눈이 예쁜데?”
앞머리에 머리가 가려져 정말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효원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효원은 신애보다 한설의 이름을 더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