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97
1196
마지막으로 등장한 망령은 말이 없었다.
그는 펄럭펄럭거리는 긴 소맷자락이 달린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은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무리 고대인이라고는 하나, 결코 무인(武人)의 복장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얜 뭐 하는 애지?’
지크는 으로 이곳 의 보스 몬스터인 100번째 망령을 비추어보았다.
[살인 예술가 브레메니]검의 무덤에 잠들어 있는 망령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
살아생전에도 생명체가 아닌 악령으로 인식되던, 무시무시한 살인귀이다.
고대에 공포의 대상으로서, 수없이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다.
•존재 구분 : NPC
•타입 : 언데드
•레벨 : 650
•클래스 : 블러드 블레이드 퍼포먼서
•특이사항 : 특이한 이능력의 소유자이므로, 상대하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능력이기에?’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어차피 알게 될 텐데, 굳이 궁금해할 필요가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선제공격.’
지크는 즉시 을 움켜쥐고 브레메니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런데.
기우뚱~!
지크는 순간 중심을 잃고 거꾸러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자세를 다잡았다.
‘뭐지?’
지크는 자신이 왜 넘어질 뻔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왜….’
그때.
꽈아악!
무언가 지크의 오른팔을 강하게 압박하며, 바깥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꽉, 꽈악, 꽈아아악!
뒤이어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지크의 왼팔, 두 다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으윽… 으으으윽!”
지크는 그 힘에 저항해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지크의 근력은 초인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건만, 이 알 수 없는 힘은 그것보다 더욱 강했다.
‘도대체….’
그때.
끽, 끼익!
지크가 입고 있는 에 아주 가느다란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
지크는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는 고블린 자폭병들의 자폭 공격에도 약간의 그을림과 검댕만이 묻었을 뿐, 엄청난 내구력을 자랑하는 방어구였다.
그런 에 흠집이 났고, 점점 더 깊어진다?
이는 곧 엄청나게 예리한 무언가가 파고들었다는 걸 의미했다.
‘설마 그 실이 무기였던 건가?’
지크의 뇌리에 그 생각이 스칠 무렵.
스윽.
어느새 살인 예술가 브레메니가 지크의 등 뒤로 접근해왔다.
그리고는 아주 가느다란,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을 이용해 지크의 목을 감았다.
꽈아악!
뒤이어 강한 압박이 지크의 목을 졸랐다.
“크, 크윽!”
그와 동시에 지크의 목에 붉은색 실금이 생겨나며, 붉은 핏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예리함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인 지크의 피부는 유연하면서도 엄청나게 질겨서, 어지간한 명검에 베여도 상처가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방어력이 강한 지크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브레메니가 사용하는 실의 예리함과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꽈아악!
실이 지크의 목을 더 강하게 조였다.
“크, 크으으윽!”
이대로 있다가는 질식사가 아니라, 목이 뎅겅 썰려 나갈 판.
번쩍!
지크는 즉시 스킬을 사용해 극저온의 냉기를 뿜어내었다.
현재 브레메니와 지크가 매우 밀착해 있는 상태였기에 을 걸기 매우 쉬웠던 것이다.
– ……!
브레메니는 지크의 목을 조르다가 스킬을 뒤집어쓰고 흠칫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꽈악!
브레메니는 고대던전인 의 보스 몬스터답게 에서 매우 빠르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레벨 몬스터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게이머들이 거는 각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높아서, 뭔가를 걸었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 짧은 만으로도 지크에게는 매우 충분한 시간이었다.
팟!
지크는 재빨리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해 속박에서 벗어나고는 을 움켜쥐었다.
‘이 미친.’
지크는 시력을 증폭시켰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브레메니를 중심으로, 아주 가느다란 은빛 실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또 들어가면, 그땐 죽는다.’
지크는 저 은빛 실들이 마치 그물처럼 자신을 옥죌 것이라는 걸 알았다.
또한, 피부를 베고 들어와 몸을 절단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베어 버리면 그만.’
지크가 순간적으로 을 휘둘렀다.
촤락! 촤라락!
그러자 스킬이 터져나가면서 앞에 펼쳐진 은빛 거미줄을 열십자 형태로 갈랐다.
그런데.
캉! 카강!
놀랍게도 거미줄 형태의 은빛 실들은 도제 베텔규스의 비기인 의 날카로움조차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말인즉슨, 브레메니가 사용하는 실의 강도는 끊어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났던 것이다.
스윽.
뒤이어 브레메니가 고개를 왼쪽으로 45도쯤 꺾으며 지크를 응시했다.
오싹!
지크는 그런 브레메니의 행동에서, 오래간만에 공포란 걸 느꼈다.
브레메니의 무력에 놀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크를 대하는 브레메니의 행동이 마치 호러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꺼림칙한 자식이네….’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나풀나풀~!
브레메니를 중심으로, 은빛 실들이 뻗어나가 전체를 뒤덮었다.
스륵, 스르륵!
그러자 지크가 이미 처치해 땅에 다시 꽂혔던, 망령들이 깃들어 있는 모든 무기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 결과.
“헉?”
이미 처치된 망령들이 하나둘 되살아나서, 지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망령들의 몸 이곳저곳에는 은빛 실들이 달려 있었고, 그 실들은 최종적으로 브레메니에게로 연결되어 있었다.
실을 이용해 망자들을 부리는 이란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
한편 던전의 폭주로 인해 생성된 거대한 태풍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국토를 가로지르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우레키온 제국은 그야말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크고 작은 도시들이 태풍에 의해 싹 날아가면서, 수천만 명의 마우레키온 제국인들이 목숨을 잃은 건 물론이고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대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태풍이 도저히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단 점이었다.
보통 자연적으로 발생한 태풍은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사라지기 마련인데, 이 태풍은 아니었다.
애초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태풍이 아니었기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태풍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고, 이동 경로에 자리한 모든 걸 파괴해나갔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이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그저 손 놓고 지켜보아야만 했다.
제아무리 세계 최강 마우레키온 제국군이라고 한들, 이 거대한 태풍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외계 행성을 침공해 식민지를 만들 정도의 군대를 지녔어도, 자연재해를 막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심지어, 복구 작업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태풍은 그 위력이 엄청나서, 도시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 순식간에 유적지로 만들어버렸다.
즉, 복구 작업이 필요하지 않게끔 모든 걸 파괴한 것이다.
그렇듯 실체가 없는 적 앞에서,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무력하기만 했다.
“막을 방법이… 없는 건가.”
슈트카르트 황제는 보고를 받고 즉시 어전회의를 소집해 대소신료들에게 물었다.
태풍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그러니까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는지라 대책 회의에 나선 것이다.
“…….”
“…….”
“…….”
신하들은 그런 슈트카르트 황제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 거대한 태풍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제단을 쌓아서 하늘에 기도를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폐하.”
그때, 나이델베르크가 나섰다.
“그 태풍은 폭주한 고대던전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므로, 사라지게 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사옵니다.”
“그럼 수도를 포기하고 피난이라도 가야 한다는 건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사옵니다. 허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본국의 모든 마법사들을 불러 모아서, 태풍의 진로를 바꿔봄이 어떻겠사옵니까?”
“태풍의 진로를 바꾼다라….”
“시간이 없사옵니다. 저 태풍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북상해온다면, 1주일이면 이곳 황궁까지 도달할 것이옵니다. 빠르게 결정하셔야 하옵니다.”
“허가한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나이델베르크의 제안을 즉시 받아들였다.
태풍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북상해오고 있었기에,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안 되면 수도를 비우고 피난을 가야 할 상황이었으므로,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시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
마우레키온 제국은 태풍의 진로를 바꾸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그게 끝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수만 명의 마법사들이 태풍이 덮쳐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의 어느 평야에 모여들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대제국이었으므로, 인구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에 따라 마법사들의 숫자도 많았으니, 수만 명이 모여드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인 약 5만 명의 마법사들은, 힘을 합쳐 태풍의 진로를 바꾸는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한, 마법진 발동에 필요한 마나를 보충하기 위해 A등급 이상의 마정석 수천 개가 동원되었다.
파직! 파지직!
그렇게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시간에 불과했다.
그게 마우레키온 제국의 저력이었다.
다른 국가들 같았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규모가 큰 작전을 단 10시간만에 실행시키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이름하여 은 그렇게 준비가 완료되었고, 이내 곧 태풍이 닥쳐왔다.
“เยพยจำยำมกมดสเ….”
“เสสะสะงกขไชำวมเใอวดจ… เสววับุขพชลง๗ะขขถวัม้จบะ.”
“ฐบชขยศ?ธ๔ฑธฎปอ่!”
마우레키온 제국의 마법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문을 외우며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런 뒤에 다 같이 워프해 해당 지역을 탈출했다.
이윽고 태풍이 닥쳐왔다.
파직, 파지직!
그에 따라 마법진이 발동되었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다음 순간.
번쩍!!!
마법진이 섬광과 함께 빛의 기둥을 토해내었다.
그 빛의 기둥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구름을 뚫고 대기권을 돌파했으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관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발동된 마법진.
그리고….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북쪽으로 전진하던 태풍이 돌연 방향을 바꾸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그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덕분에 남에서 북으로 향하던 태풍은, 마법진에 의해 방향을 바꾸어 돌연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태풍은 서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터, 마우레키온 제국의 수도는 이제 안전했다.
물론 태풍이 사라진 게 아니고, 방향만 바뀐 것이기에 서쪽에 자리한 크고 작은 도시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마우레키온 제국은 수도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쪽으로 바뀐 태풍의 진로는 비단 마우레키온 제국의 영토만 파괴할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태풍이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프로아 제국과 그 수도인 프로이센을 덮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