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22
321
“형수님? 브륜힐트?”
“예!”
“뭐야! 뭔 일 있는 거야?”
“형수님께서 아프십니다!”
“아파? 브륜힐트가? 그럴 리가 없는데?”
게임 BNW의 공식 설정 자료집에 따르면, 엘프의 유전 인자는 인간보다 월등하게 우월했다.
잔병치레?
엘프 사전에 그런 자질구레한 건 없었다.
그렇다면 큰 병?
절대로!
공식 설정 자료집에 따르면, 엘프의 DNA는 결코 스스로 변형을 일으키지 않기에 아무리 담배를 피워도 폐암-암은 세포의 이상 변형에 의한 종양이다-에 걸리지 않았다.
또, 각종 희귀병이나 유전병 또한 엘프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었다.
게다가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도 높아 엘프들은 감기는 물론이요 온갖 바이러스성 질환에도 안 걸렸다.
심지어, 이레디에이트와 같이 아주 강한 방사능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방사능 오염에도 견딜 수 있는 종족이 바로 엘프였다.
그런데도 엘프인 브륜힐트가 아프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다못해 감기에 걸린 엘프는 상상할 수조차 없지 않은가?
“어디가 아픈데?”
“그, 그게… 점점 말라가고 계십니다.”
“말라?”
“어의가 재봤는데, 지금 체중이 39킬로그램밖에 안 나가십니다.”
“뭐?!”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브륜힐트의 본래 몸무게는 적어도 55킬로그램은 넘었다.
브륜힐트는 겉보기와 다르게 몸무게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답게 적당한 체지방과 많은 근육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39킬로그램이라는 건 거의 기아 수준으로 말라갔다는 뜻.
지크로서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왜 갑자기 그렇게 마른 건데?”
“저, 저도 모릅니다. 궁중 치료사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답니다.”
“…….”
“형님. 일단 빨리 가시죠. 이대로 가다가는 며칠 내로 위독해질지도 모른답니다.”
“당장 가자! 빨리!”
지크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지크야! 무슨 큰일이라도 있어?”
타이칸이 지크에게 물었다.
“아내가 아프대.”
“아, 아내? 너 유부남이었냐?”
“어.”
“그래. 얼른 가봐. 반가웠다. 나중에 또 보자. 연락할게.”
“그래.”
그렇게 지크는 타이칸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할 여유도 없이 프로아 왕국으로 향했다.
***
“여보… 오셨어요?”
다시 찾은 브륜힐트의 얼굴은 너무나도 수척해서, 마치 몇 달은 굶은 사람처럼 보였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 같다고나 할까?
울컥!
그 모습을 본 지크는 가슴이 철렁 아파와 그만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어디가… 아픈 거예요? 이게 뭐예요. 고작 열흘 만에 왜 이렇게 된 거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말라 간다는 것 외에는… 헤에….”
브륜힐트는 지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러나 지크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비쩍 마른 채 힘없이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할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지크는 브륜힐트의 메마른 손을 꼬옥 잡아주고는 즉시 궁중 치료사, 즉 어의를 만났다.
“이유가 뭡니까?”
“소, 소신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모른다고요?”
“왕비마마께서 보이고 계신 증상은 소신으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옵니다. 소신 한평생 의료인으로서 살아왔사오나,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이옵니다. 이 무능한 어의를 죽여 주시옵소서!”
어의는 지크에게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 납작 엎드린 채 죽여 달라 말했다.
“진짜 죽여 드려요?”
“저, 전하?”
“모를 수도 있지.”
지크는 어의를 탓할 정도로 미개하지 않았다.
엘프인 브륜힐트가 갑작스레 말라간다는 건 매우 특수한 케이스였으므로, 괜한 어의를 닦달해봤자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전 대소신료, 어전으로 모이라고 하세요.”
지크는 즉시 어전 회의를 소집했다.
“소신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소신이 아는 바가 없어….”
“워낙 희귀한 케이스이다 보니….”
대소신료 중에서는 누구도 브륜힐트의 증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전하. 엘론델에 문의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비마마께서는 엘프이십니다. 엘프 어의에게 여쭤보시는 것이….”
“아! 그 방법이 있었네!”
지크는 미켈레의 조언을 듣고는 곧바로 엘론델에 통신을 걸어 증세를 문의해 보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후.
“내 딸이 아프다고?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건가! 어의! 당장 가세!”
“예! 왕이시여!”
딸바보병신인 로엔그린은 부리나케 엘론델의 어의를 데려와 브륜힐트를 진료했다.
“의료인으로서 수백 년을 살았지만 공주마마의 증상은 도저히….”
그러나 엘프 어의 역시도 브륜힐트의 증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지크는 이 상황에 분노했다.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세요. 무조건. 이건 왕으로서 하는 명령입니다. 누구든 이 증세에 대한 걸 아는 사람을 찾아오세요. 당장.”
지크는 그렇게 명령을 내린 후 브륜힐트의 곁에 딱 붙어 그녀를 간호했다.
“여기 죽이라도 좀 먹어요. 자꾸 말라 가잖아요.”
“네, 여보.”
지크가 숟가락으로 죽을 떠 브륜힐트에게 먹여주려 했다.
그런데.
“으으윽!”
브륜힐트는 헛구역질만을 할 뿐 죽을 단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입덧.
그녀는 입덧이 너무 심해서, 허여멀건 한 흰죽조차도 먹을 수가 없었다.
“머, 먹어야 하는데… 우리 아가가 배고플 텐데….”
브륜힐트는 어느새 솟아오른 배-사부의 말대로라면 출산까지 고작 100일밖에 걸리지 않을 테니까-를 어루만지며 어떻게든 죽을 먹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으으으! 미치겠네!’
그 처량한 광경을 보는 지크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아서, 이게 게임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이대로라면 브륜힐트뿐만이 아냐. 뱃속 아기도 위험해진다. 내 딸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지크는 아내와 딸을 동시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절대 안 돼. 절대로.’
지크는 브륜힐트와 뱃속 아기를 절대로 잃을 생각이 없었다.
“걱정 말아요.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조금만 힘내요.”
지크는 브륜힐트의 손을 꼭 잡아주는 한편, 이 알 수 없는 병을 진단해낼 수 있는 능력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용하다는 치료사, 의사, 사제 등등 내로라하는 이들 수십 명이 다녀갔지만 브륜힐트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을 때.
브륜힐트는 더더욱 말라가서, 몸무게가 36킬로그램을 찍게 되었다.
뼈와 장기의 무게를 뺀 거의 모든 지방과 근육들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여보….”
브륜힐트가 메마른 목소리로 지크를 불렀다.
“우리 아기… 지킬 수 있겠죠? 그렇겠죠? 저는… 죽어도 좋아요. 그러니 제발 아이만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죽긴 누가 죽어! 조금만 참아요! 지금 방법을 알아보고 있으니까!”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병명을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해야 최상급 생명력 포션과 스태미나 포션으로 말라 죽어가는 브륜힐트를 간신히 버티게만 해줄 수 있었을 뿐….
‘사부님께 여쭤봐야 하는 건가?’
결국, 보다 못한 지크는 쿤룬산으로 돌아간 사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브륜힐트의 병명을 알지도, 치료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기대해볼 만한 사람이라고는 오직 사부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지크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전하. 이렇게 된 이상….”
미켈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부님?”
“예?”
“사부님께 여쭤보자는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미켈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신성 콘스탄틴 제국의 섭정 자네트 성녀에게 의뢰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성녀?”
“그녀의 초고위급 회복 마법이라면 왕비마마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맞아! 그랬지!”
지크는 미켈레의 조언으로 이 최악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성녀 자네트.
지크에게 무한한 버프와 힐을 주었던 그녀의 능력이라면, 브륜힐트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 당장 연락해 봐! 당장!”
“예! 전하!”
미켈레가 서둘러 통신실로 향했다.
***
지크는 피곤한 와중에도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채 브륜힐트의 곁을 지켰다.
브륜힐트가 걱정되어 도저히 로그아웃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걱정 마요. 성녀에게 부탁했으니까, 그녀가 금방 와서 치료해줄 겁니다.”
“여보….”
그러던 중.
“전하!”
미켈레가 병실을 찾아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왕비마마가 아프시단 소식을 듣고 성녀께서 직접 달려오셨습니다!”
“오오!”
지크의 얼굴이 환해졌다.
의 성녀 자네트.
마스터급 힐러이자 버퍼인 그녀라면 브륜힐트를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이름 없는 신의 성녀이시자 신성 콘스탄틴 제국의 섭정 전하께서 드십니다!”
시종의 외침과 동시에 성녀 자네트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전하, 오래간만입니다.”
“예, 오래간만입니다.”
“결혼식 때는 미처 찾아뵙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국의 사정이 워낙에 바빠서….”
최근 콘스탄틴 제국은 내전 후 타락한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숙청 작업이 한창이었기에 성녀가 바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기 계신 분이….”
자네트가 고개를 돌려 브륜힐트를 바라보았다.
“왕비마마이시겠군요. 콘스탄틴 제국의 섭정 자네트가 프로아 왕국의 왕비마마를 뵙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일어나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걸 부디 이해해 주셔요.”
브륜힐트가 힘없는 목소리로 자네트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보. 성녀께서 오셨으니까 이제 걱정 말아요. 알겠죠?”
“네. 고마워요.”
지크가 브륜힐트의 손을 잡아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금슬이 좋으시구나.’
자네트는 지크와 브륜힐트를 바라보며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왕비마마에 비해 전하의 인물이 좀 떨어지긴 하시지만, 워낙 능력이 좋으신 분이시니….’
물론 엘프인 브륜힐트에 비해 지크의 외모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둘은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일단 뱃속 공주마마를 생각해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흐음. 생명의 그릇에 균열이 가셨군요.”
자네트가 브륜힐트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생명의 그릇이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생명의 그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크의 물음에 자네트가 답했다.
“왕비마마께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생명의 그릇에 균열이 가셨고, 자꾸만 말라 가시는 것 같군요.”
“그럼 어떻게?”
“생명의 그릇에 생긴 균열, 제가 다시 메꿔 드리겠습니다.”
“오오!”
“그럼….”
그렇게 말한 자네트가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신성력을 끌어올려 브륜힐트에게 주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