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74
373
“음.”
지크는 아문센이 찾아왔단 소식에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름 중요한 사업적 파트너니까 일단 잘 모시라고 전하세요. 이따 저녁에 만날 생각이라고.”
“예, 전하.”
“왕비가 일어나면 저 잠깐 저쪽 세상에 간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지크는 아문센을 만나는 걸 저녁으로 미루고, 브륜힐트의 곁에 누운 뒤 로그아웃했다.
‘나도 잠 좀 자야지.’
지난 밤 오즈릭 교단의 비밀 기지를 습격하느라 날밤을 세웠던 탓에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깬 태성은 샤워를 한 뒤 페라리를 타고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람보르기니는 팔아 치우던가 해야지. 너무 불편하단 말야.’
람보르기니는 차체가 너무 낮은 데다가 승차감마저 불편해서, 운전 중 신호등을 볼 때도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물론 페라리도 일반적인 자동차와는 달라서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적어도 람보르기니보다는 나았다.
그래서 태성은 람보르기니를 처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태성 고객님! 어서 오시죠!”
태성이 페라리를 주차관리인에게 맡긴 후 사무실로 들어서자 부동산 중개법인의 대표가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태성은 무려 300억 원짜리 빌딩을 단 한 푼의 대출 없이 현찰 박치기로 구매한 부자였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아뇨.”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물 주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이사를 좀 할까 하는데요. 좋은 아파트 없을까요?”
“정확히 원하시는 옵션이?”
“밥 주는 집 없어요? 요즘 끼니마다 호텔식으로 차려 주는 데 많던데….”
“아하! 그런 고급 아파트라면 몇 개 있습니다! 매물 가격은 얼마 정도 예상하시는지….”
“한 50억 정도?”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태성 고객님께서는 쿨하시군요.”
“쿨하긴요. 그냥 마음에 들었을 뿐이죠.”
태성은 중개법인의 대표이사가 보여준 최고급 아파트를 당일 날 계약해 버렸다.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각종 병원, 호텔 뷔페식 식당, 기타 등등등….
내로라하는 5성급 호텔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운 아파트였기에, 태성은 망설이지 않았다.
게임도 게임이지만 외부 활동이 워낙 적은 태성인지라 편의 시설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계약금은 지금 바로….”
그때였다.
“야! 한태성!”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림과 동시에 천우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니가 웬일이냐?”
“하도 연락을 안 쳐 받아서 잡으러 왔다, 이 새꺄.”
“연락?”
태성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부재중 전화 11통.
천우진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무려 11통이나 와 있었다.
“어? 전화했었네?”
“전화했었네에?!”
“무음으로 해놓고 다녀서 몰랐지.”
“무음으로 해놓고 살 거면 핸드폰은 왜 들고 다니냐?”
“아니….”
태성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딱히 연락 오는 데가 없어서… 나 친구 같은 거 없잖아.”
“…….”
“김미영 팀장인가? 신용 대출 받으라고 전화 오기는 하던데….”
“아, 아니다.”
천우진은 태성의 무시무시한 아싸력에 더는 따지지 못하고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됐고. 요즘 얼굴 보기 힘들다?”
“좀 바빴어. 근데 왜? 무슨 일 있냐?”
“있지.”
“뭔데?”
“하던 거 마저 해라.”
“그래.”
태성은 하던 아파트 계약을 마저 끝마친 후 천우진과 함께 부동산 사무실을 나서 근처의 고급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방앗간 드나드는 참새마냥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다며? 땅부자로 전직하려고?”
“왜? 안 되냐?”
“안 될 건 없지. 부동산만큼 투자하기 좋은 투자처도 드무니까.”
“근데 왜?”
“퀘스트 하나 할래?”
“퀘스트?”
“이거 하면 3레벨.”
“헉!”
태성은 무려 3레벨이라는 말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안 그래도 레벨이 오를 기미가 없어서 죽을 맛이었는데, 퀘스트 하나만 깨면 3레벨이나 보상으로 준다니 놀랄 수밖에.
“야! 그런 좋은 퀘스트가 있으면 빨리 말을 했어야지!”
“전화 안 받은 게 누구더라?”
“그, 그건!”
“요즘은 프로아로 연락하기도 힘들던데? 니가 흥선대원군이냐? 쇄국 정책은 뭐야?”
“시끄러!”
“아무튼, 할 거냐 말 거냐.”
“당연히 해야지.”
“그럼 이따 저녁에 프로아로 갈 테니까 그때 퀘스트 받아라.”
“오케이! 땡큐!”
“땡큐는 무슨.”
천우진이 피식 웃었다.
“이번 퀘스트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걸?”
“그래? 뭔데?”
“이따 저녁에 얘기해. 그 퀘스트 생각하면 아주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건 진짜 중요한 퀘스트야. 이거 실패하면 게임이 망해버릴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그때였다.
“뭐,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천우진은 태성이 사라진 걸 깨닫고 당황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부와앙!
태성이 탄 페라리가 재빨리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돈.
태성과 천우진이 대화를 나누던 카페는 선결제 방식이 아닌 후불제였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한 잔에 무려 18,000원이나 하는 비싼 커피값을 천우진이 내야만 하는 것이다.
“한태서어어어엉! 야 이 양아치 같은 새끼야아아아아!”
천우진이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지만, 태성이 탄 페라리는 어느새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린 뒤였다.
***
그날 저녁.
“그 짜릿한 맛… 잊을 수 없어….”
지크는 어전에서 아문센을 기다리며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찌릿찌릿!
천우진을 코앞에 두고 커피값을 먹튀 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전하! 탐험가 아문센이 전하를 뵙고자 하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이윽고 오지 탐험가 아문센이 어전으로 들어섰다.
“소인 아문센이 프로아 왕국의 국왕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를 뵙습니다.”
아문센이 공손하게 지크에게 예를 갖추었다.
“오랜만이네요? 한 한 달 만인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때 국무대신을 찾아가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좀 늦으셨네요?”
“소인이 다른 업무가 있어 좀 늦었사옵니다.”
“그렇군요. 어떻게… 마음에 드세요?”
“예?”
“아문센 씨를 후원할 만한 왕국인 거 같습니까?”
“무, 물론이옵니다!”
지크의 물음에 아문센이 황급히 대답했다.
“프로아 왕국은 소인을 후원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라이옵니다!”
“정말로요?”
“예! 전하!”
아문센은 진심이었다.
처음 프로아 왕국의 후원을 받기로 했을 때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최소한의 경비라도 좀 벌어볼 생각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프로아 왕국을 직접 본 후에 아문센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오늘 오전.
[이, 이게 약소국의 모습이란 말인가? 맙소사! 말도 안 돼! 이건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어지간한 경제력으로는 이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없어!]아문센은 진짜 프로아 왕국에 도착한 직후 일종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
진짜 프로아 왕국의 모습이 알려진 것과는 180도 달랐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잘 정리된 도로.
24시간 공급되는 마정석 에너지 공급 시스템.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럽기 짝이 없는 디자인의 건물들.
그리고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시민들의 얼굴까지.
프로아 왕국의 수도 프로이센의 모습은 어지간한 강대국조차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발전을 이룩해 놓고 있었다.
이런 수도를 가진 국가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약소국이다?
빈곤 국가다?
그럴 리가!
아문센은 프로아 왕국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물론 그 규모가 워낙에 작은 탓에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기는 힘들겠지만, 어지간한 도시 국가와 소규모 왕국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국력을 지닌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전하! 소인 프로아 왕국의 진면목을 보았사옵니다! 후원을 약속해주신 전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또 아문센 씨를 실망시켰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하하하!”
“어쨌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망극하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지크가 아문센에게 물었다.
“뭐 괜찮은 건수라도 있나요?”
“물론이옵니다!”
“진짜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뭔데요? 그 건수라는 게?”
“소인 이번에 천공의 탑에 입장할 수 있는 열쇠를 입수하여 이렇듯 전하를 찾아뵈었사옵니다!”
“천공의 탑이라면… 혹시 제가 아는 그 천공의 탑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크는 아문센이 말한 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란 게임 BNW의 주 무대가 되는 뉘르부르크 대륙 동부에 자리한 거대한 건축물로써, 하늘을 뚫고 솟아올라 있을 정도로 높은 탑이었다.
얼마나 높았느냐 하면, 지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보다 족히 두 배는 높을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문제는 그 이라는 건축물이 현재 알 수 없는 고대의 마법에 의해 봉인되어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필드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에 들어갈 열쇠라니?
‘이거 게이머 최초로 천공의 탑 공략하게 되는 건가?!’
순간 지크는 가슴이 너무나도 두근거려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게이머로서 잠겨 있던 필드를 최초로 공략한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전하께서 탐사대를 구성할 예산만 지원해 주신다면, 기꺼이 천공의 탑으로 들어갈 열쇠를 바치겠사옵니다!”
“지원하다마다요.”
지크가 아문센의 제안을 냉큼 수락했다.
이런 꿀 같은 기회를 놓칠 지크가 아니었다.
‘그때 후원 약속하길 잘했네.’
지크는 아문센에게 후원을 해주기로 한 것을 뿌듯해하며, 아문센에게 말했다.
“최대한 지원할 테니 걱정 마시죠.”
“저, 정말이시옵니까?”
“물론이죠.”
“그러시면 소인이 지원해주신 예산으로 탐험대를 꾸리겠사옵니다. 일단 강력한 모험가들을 섭외해….”
“그러실 필요는 없고요.”
“예?”
“제가 직접 갈 생각이거든요.”
“저, 전하께서 직접 가십니까?”
“저도 모험가인걸요. 굳이 비싼 돈 들여서 고용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직접 발로 뛰면 되는데.”
그 순간.
‘그 후원이라는 게 몸으로 때우려고 했다는 말인가? 설마 자린고비?’
아문센은 지크가 말한 후원의 의미가 어쩌면 금전적인 지원이 아닌 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요. 제가 싫어요?”
“그, 그것은 아니옵니다만….”
“천공의 탑 건은 제가 직접 맡는 걸로 하고 계획서 제출하세요.”
“아, 알겠사옵니다.”
아문센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어전을 나섰다.
‘이, 이게 아닌데….’
왠지 모르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
아문센이 어전을 나선 직후.
“뭐 하냐?”
“아오! 깜짝이야!”
지크는 천우진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대체 어느 틈에 온 걸까?
천우진이 옥좌 팔걸이에 걸터앉아 지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놀랄 필요는 없었다.
천우진은 과거 천하제일생존대회가 열리던 섬조차 제집 드나들 듯 오갔던 능력자였으니까.
“야! 인기척은 좀 내지?”
“커피값 먹튀 하니까 좋냐?”
“내, 내가? 커피값을? 에이! 그럴 리가!”
지크는 딱 잡아뗐다.
‘좋지. 좋았지. 아주 짜릿했다고.’
사실 지크는 천우진으로부터 무언가를 먹튀 할 때마다 어떠한 쾌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먹튀를 할 때의 죄의식과 어떻게든 도망치는 데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야 이 쓰레기야. 돈을 얼마나 버는데 그게 아깝냐?”
“아, 아깝긴! 바빠서 그랬지! 바빠서! 내가 오늘 업무가 바빴어! 니가 왕국 운영해봐라! 서류 작업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응!”
“저기요.”
천우진이 고개를 돌려 시종장에게 물었다.
“얘 오늘 언제 강림했어요?”
“전하께선 30분 전에 강림하셨습니다.”
지크가 재빨리 수신호를 보내 보았지만, 눈치 없는 시종장은 천우진에게 지크가 낮에 바쁘지 않았다는 걸 증언해주고 말았다.
“30분 전에 로그인했다는데?”
“그, 그건….”
“이 쓰레기 새끼.”
“헤헤헤….”
결국, 지크는 멋쩍게 웃으며 딴청을 피워야만 했다.
“그, 그건 그렇고! 퀘스트 있다며? 뭔데?”
“너 같은 쓰레기한테는 못 맡기겠는데?”
“아! 진짜! 미안! 다음에 내가 진짜로 밥 살게!”
“구라치네.”
“진짜로! 내가 선불로 낸다! 선불로!”
“선불?”
“어! 선불로 카드 먼저 긁을게!”
“흐음….”
“그러니까 나 퀘스트 좀 주라. 요즘 안 그래도 레벨이 안 올라서 미치겠다고.”
지크가 죽는 소리를 하며 매달리자 천우진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퀘스트 창을 띄워 올렸다.
“대신 이 퀘스트는 진짜 진지하게 해야 된다. 알겠냐? 이 퀘스트 못 깨면 이 게임이 폭삭 망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데?”
“일단 봐라.”
지크는 천우진의 말에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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