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58
657
“크윽!”
지크는 저 멀리서 들려온 포효를 듣고 그만 제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찌릿찌릿!
온몸의 근육이 미친 듯 떨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큭! 시, 심장이….”
심지어, 근육 덩어리인 심장마저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알림 : 상태 이상!] [알림 : 에 걸리셨습니다!] [알림 : 전신 근육이 경련을 일으킵니다!] [알림 : 당신의 육체와 본능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게 무슨….”
지크는 망치 형태의 를 지팡이 삼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뀨우… 주인 놈아… 뀨우우….”
햄찌 역시 엄청나게 힘든지, 쓰러진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죽은 디젤과 함께 지크를 포위했던 길드의 운영진들은 더했다.
“커헉!”
“윽! 모, 몸이….”
“으으으윽!”
길드원들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거나, 혹은 아예 심장마비로 죽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크윽!”
“뀨우… 주인 놈아… 이거….”
햄찌가 지크에게 말했다.
“드래곤 피어다… 뀨우….”
“드래곤 피어라고? 크윽!”
“그, 그렇다… 저쪽에서 들린다….”
햄찌가 저 너머 능선을 가리켰다.
“야 이! 여기 드래곤이 왜 있어!”
지크는 그렇게 소리치며 햄찌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
“지, 진짜 있잖아?!”
정말이지 거대한, 몸길이가 족히 1.5킬로미터 정도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그것도 온몸에 시뻘건 불이 붙은 화염의 드래곤이….
“저거… 정체가 뭐야.”
지크는 저 멀리 레드 드래곤을 향해 을 비추어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홍염의 불카누스]태초의 드래곤.
창세기에 태어난 열세 드래곤 중 하나이며, 최초의 레드 드래곤이자 모든 레드 드래곤들의 조상이다.
최초로 불을 드워프들에게 전해 주었으며, 이때 불을 이용해 쇠를 녹이는 방법 또한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진다.
훗날 대장장이들의 신(神)으로서 숭배를 받았다.
•존재 구분 : 네임드 중립 생명체
•종족 :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나이 : 112,123
•레벨 : 998
•클래스 : 반신 (Demigod)
•칭호 : 대장장이의 신 / 연로한 드래곤 / 살아 있는 화석 / 불붙은 드래곤 / 타오르는 창조자 / 졸린 드래곤
“11만 살이 넘었어?! 레벨은 998레벨이라고?!”
지크는 의 레벨이 사부보다 1 모자란 998레벨인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부가 999레벨의 히든 NPC이니, 여태껏 만나본 존재 중 사부 다음으로 레벨이 높았다.
“미친… 이게 갑자기 뭔….”
지크가 놀라던 때.
저 멀리 로부터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내 잠을 깨웠는가.]***
[누가 내 잠을 깨웠는가.]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길드?
아니면 길드?
혹은 이번 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한 제3자?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왜?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는 그 자리에서 한 줌 재가 되어버릴 테니까.
어쩌면 끔찍하게 산 채로 꿀꺽 삼켜질 수도 있었다.
불카누스가 재차 게이머들을 다그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감히 하찮은 인간들 주제에….]바로 그때였다.
“싸우면 되잖아!”
채형석이 눈이 시퍼래져서 크게 소리쳤다.
“드래곤이라고! 드래곤! 잡으면 인생 역전이야! 에인션트 드래곤 하나 잡아서 나눠 먹어도 평생 먹고살 만큼 벌 텐데! 뭣들 하냐고! 전투 준비해!”
놀랍게도, 채형석이 길드원들에게 광역 버프를 돌리며 사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 그래!”
“X발! 드래곤이라고 별거 있냐! 우리 숫자가 몇인데!”
“까짓것 에인션트 드래곤 레이드도 해봐야지!”
길드원들 역시 그런 채형석의 의견에 동조하며 불카누스를 돌아보았다.
“태풍이 아저씨!”
채형석은 용태풍에게도 소리쳤다.
“저거 잡죠!”
“잡자고? 저걸?”
“생명의 간헐천이고 나발이고! 저거 하나 잡아서 양쪽이 나눠 가지면 되잖습니까!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왜 버립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같이 합심해서 잡아봅시다!”
“으음.”
용태풍은 채형석의 말에 아주 살짝 고민했다.
상대는 998레벨의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레이드하기 쉬운 상대일 리 없었다.
하지만 용태풍이 조금이라도 고민했던 이유는, 그가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일반 NPC들 같았으면 사냥은커녕, 무조건 엎드려 빌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달랐다.
게이머들이란 신조차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족속들.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이라면 군침을 줄줄 흘릴 만도 했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있는 길드원들과 길드원들의 전력을 합친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에인션트 등급의 드래곤이 얼마나 강한지 알려진 바가 없기도 해서,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하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태풍 아저씨! 망설일 땝니까! 지금! 지금이 기회란 말입니다!”
“그게….”
용태풍이 내적 갈등을 겪을 무렵.
[흐음. 흥미로운 족속들이로군.]불카누스는 그런 게이머들을 바라보며 매우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잠들었던 5만 년 전에는 이런 인간들이 없었다.
그런데 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존재-드래곤의 입장에서 게이머들이 그렇게 보였다-는 신기하게도 자신을 사냥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감히 태초의 드래곤인 나를 사냥하려 한단 말인가?’
불카누스는 게이머들에게 호기심을 느꼈지만, 불행히도 그 호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깐. 감히 날?’
불카누스가 서서히 분노하는 사이.
쌔앵!
지크는 황급히 용태풍에게로 달려갔다.
“삼촌!”
“응?”
“다 뒈집니다!”
“다 죽는다고?”
“예! 사냥하긴 뭘 사냥해요! 살고 싶으면 엎드려야죠!”
“하지만….”
“한 대 때리지도 못하고 죽을 거 뭐 하러 덤빕니까? 그냥 납작 엎드려 빌어야죠!”
지크는 용태풍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재빠르게 납작 엎드려 불카누스를 향해 절했다.
999레벨의 히든 NPC인 사부의 능력을 잘 아는 지크로서는, 998레벨의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덤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천한 자가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용태풍은 그런 지크의 행동에 의아해했다.
‘이 녀석이 처음부터 포기를?’
용태풍은 지크가 투지를 불태울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먼저 엎드려 절하고 아부까지 할 줄이야?
‘에라 모르겠다! 이 녀석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용태풍은 솔직히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이 욕심이 났지만, 지크를 따라서 넙죽 엎드려 불카누스를 향해 절했다.
“미천한 자가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길드원들 역시 얼떨결에 지크와 용태풍을 따라 불카누스를 향해 납작 엎드려 절했다.
“미천한 자가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미천한 자가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미천한 자가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채형석은 지크와 용태풍, 그리고 길드원들이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레이드를 포기해버린 것을 보고 기막혀했다.
“이런 X발. 저런 것들도 남자라고.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를 그냥 포기해 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채형석이 지크와 용태풍을 머저리들이라고 생각할 무렵.
[타올라라, 미천한 것들이여.]화가 난 불카누스가 그렇게 말하고.
화륵, 화르륵!
전장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악!”
“내, 내 몸이… 내 몸이 타고 있어! 내 몸이 탄다고!”
“뜨거워! 뜨겁다고! 으아아아악!”
길드원들의 몸이 일제히 했다.
그건 채형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뭐야! 으악! 왜 타! 으악! 으아아아아악!”
채형석은 자신의 육체가 스스로 불타오르자 경악했다.
불이 옮겨 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피부가 스스로 타올랐던 것이다.
마치 자연 발화처럼 말이다.
“으악! 이게 무슨! 으악!”
그렇게 채형석을 포함해 불카누스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게이머들은 불카누스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 발화해 한 줌 잿더미가 되어 스러졌다.
주제 파악을 못 한 대가는 그토록 참혹하기만 했다.
“저, 저게 뭐야….”
용태풍은 바짝 엎드린 채 곁눈질을 하다가 길드원들이 자연 발화하는 걸 보고 경악했다.
고작 말 한마디에 수많은 고레벨 게이머들이 마치 기름을 끼얹은 장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타버릴 줄이야….
“그러니까 제가 뭐랬습니까. 개기면 바로 사망이라니까요.”
지크가 용태풍에게 속삭였다.
“덤빌 게 따로 있죠.”
“그, 그렇군.”
용태풍은 지크의 말을 듣길 매우 잘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객기를 부렸었다간….
오싹!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 근데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제가 총대 메고 살살 달래 보겠습니다.”
“으응?”
“제가 무서운 양반 비위 맞추는 데에는 도가 텄거든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지크의 말은 옳았다.
왜?
지크는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불카누스보다 더욱 레벨이 높은 사부의 비위도 잘 맞추곤 했으니까.
***
“위대하신 존재시여.”
지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불카누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 미천한 자가 위대하신 존재를 뵙게 되어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불카누스에게 넙죽 엎드려 절했다.
그런 지크의 행동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흐음. 예의를 아는 놈이로다.]불카누스의 그 거대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너는 누구냐.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 같지는 않은데.]“예, 위대하신 존재시여. 저는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하옵니다. 또한,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이옵니다.”
[그래? 차원 이동 마법은 그리 쉬운 게 아닌데?]“예, 그렇사옵니다. 저희 모험가들은 차원을 넘어오는 게 아니라, 이 세계에 아바타를 만들어 현신한 존재이옵니다.”
[흠. 그렇군.]“저는 비록 다른 세계에서 온 자입니다만, 위대하신 불카누스 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하옵니다.”
[껄껄! 위대하긴! 그냥 드래곤일 뿐이거늘! 껄껄껄!]불카누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크가 자신을 라고 계속해서 치켜세워 주자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래, 이계에서 온 모험가여. 너희는 도대체 왜 나의 잠을 깨운 것인가?]“저도 자초지종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저희는 그저 이곳에서 서로 전투를 치렀을 뿐이옵니다.”
[그래?]“저희는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방금 도착한 것이라, 그 불경한 무리들 중에서 감히 누가 위대하신 분의 잠을 깨웠는지는 모르옵니다. 하지만….”
지크가 덧붙였다.
“저희 모두가 죄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옵니다. 본의 아니게 위대하신 분께서 잠들어 계신 줄도 모르고, 감히 이곳에서 전투를 벌인 점에 대해서는 죽을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옵니다.”
[으음!]“위대하신 존재시여!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번 넙죽 엎드려 절하며 불카누스에게 석고대죄 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그러자 살아 있는 게이머들이 눈치껏 지크를 따라 불카누스에게 석고대죄 했다.
[으음!]“미천한 저희를 응징하시어 위대하신 분의 분노가 풀린다면, 골백번도 못 죽겠습니까? 기꺼이 따르겠사옵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죽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지크와 게이머들은 필사적으로 불카누스에게 아부를 하며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다.
효과는 확실했다.
[으음! 나의 단잠을 깨운 건 괘씸하지만, 너희가 이토록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는데 어찌 벌을 줄 수가 있겠느냐? 내 다 용서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세계에서 온 인간들이여.]불카누스가 미소를 지으며 지크와 게이머들을 용서해 주었다.
지크의 아부가 확실하게 먹혀 들어갔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