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88
087
시커먼 피부에 쭉 찢어진 눈, 그리고 깡마른 체구.
거기에 더해 각종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세 개의 해골이 매달린 지팡이에다, 염소의 두개골로 만든 모자를 쓴 야만인은 누가 뭐래도 다호메이 부족의 족장 나시멘투였다.
“어서 와.”
지크가 나시멘투를 반가워하며 인사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올 생각을 다 했대? 기특해 죽겠네.”
“……?”
“그래, 용건이 뭐냐? 항복?”
나시멘투는 그런 지크의 반응이 어이가 없었다.
‘이 미친놈이 초원의 사신??’
그는 적이었다.
적을 만났는데 어째서 이렇게 해맑게 웃으며 반가워한단 말인가?
지크의 속을 까맣게 모르는 나시멘투로서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대가 초원의 사신이 맞는가?”
나시멘투가 지크를 향해 물었다.
“아마도…?”
애매모호한 대답.
스스로를 가리켜 ‘초원의 사신’이라 칭하기가 낯간지러운 지크였다.
“다시 묻는다. 그대가 초원의 사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맞는가? 저 대륙에서 넘어온 작은 나라의 군주가 맞느냐는 말이다.”
“맞아.”
“으음….”
“왜 왔냐니까? 항복하러?”
“그럴 리가.”
나시멘투가 히죽 웃었다.
“나는 너와 싸우러 왔다, 초원의 사신이여.”
“나랑 싸우러 왔다고? 일대일로?”
“그렇다.”
“아, 그렇구나.”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또 항복하러 온 줄 알고 좋아했는데. 쩝….”
“…….”
“항복이든 아니든 상관없겠지. 그래, 싸우자. 어떻게 붙을까? 지금 바로? 아, 잠깐.”
지크가 말에서 내리며 나시멘투를 향해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뭘 물어볼 건가, 초원의 사신이여.”
“너 혹시… 너희 부족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물건 같은 거 가지고는 온 거냐? 마인드 사파이어라고 파란색 보석인데….”
“혹시 이걸 말하는가…?”
지크의 설명을 들은 나시멘투가 자신의 두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망령의 통곡]귀신을 부르는 힘이 담긴 액세서리.
•타입 : 액세서리(귀걸이)
•등급 : 전설
지크가 을 통해 본 결과, 나시멘투의 귀에 걸린 귀걸이들은 누가 뭐래도 마인드 사파이어를 이용한 아티팩트가 맞았다.
“어, 맞아. 그거야.”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나.
“이야. 너 준비성 철저하다? 장난 아니다, 야.”
“준비성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안 그래도 그거 가지러 갈 거였거든. 내가 그게 좀 필요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크가 은근한 어조로 나시멘투에게 제안했다.
“그거, 그냥 나 주라.”
“뭣이?!”
“그럼 너랑 너희 부족은 살려줄게. 어때?”
“개소리가 지나치군.”
나시멘투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완전히 미쳐버린 모양이로군. 흐음. 미친놈이랑 더 이상 말을 섞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나시멘투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쥔 해골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네놈과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덤벼라, 초원의 사신. 나, 다호메이 부족의 족장 나시멘투가 너를 상대할 것이다.”
“굳이 싸우겠다면야.”
지크 역시 앞으로 나섰다.
‘여긴 쉽게 가는 놈들이 없네.’
벌써 네 개의 부족을 몰살시켜 버렸건만, 항복해 오는 부족이 단 하나도 없기에 든 생각이었다.
“그럼, 싸우는 거다?”
“덤벼라, 초원의 사신.”
“오케이.”
그렇게 대답한 지크가 나시멘투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
‘후후.’
나시멘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지크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초원의 사신… 네놈이 강한 것은 인정한다만….’
인신 공양을 통해 부족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금지된 주술을 완성한 나시멘투는 초원의 사신이라 불리는 지크를 상대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고오오오오오!!
나시멘투를 중심으로 희뿌연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꺄아아아아아악!] [흑, 흐으으윽, 흑흑흑….] [끼이… 끼이이이…!!]회색빛 망령들이 나타나 나시멘투의 주변을 첩첩이 둘러쌌다.
망령, 소환!
그 망령들은 인신 공양으로 바쳐진 인간들이 나시멘투의 사악한 주술의 힘으로 망령화된 것들이었다.
“가라, 망령들이여!”
나시멘투가 망령들을 향해 명령했다.
“저 어리석은 자에게 들러붙어라!”
그러자 무려 1,000마리의 망령들이 일제히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
‘뭐야, 이거!’
지크는 나시멘투가 소환해낸 망령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망령들은 매우 빨랐고, 물리력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존재들이었기에 피할 수도 없었고 중간에 차단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의 역습]망령들이 들러붙습니다.
들러붙은 망령의 숫자에 비례해 능력치가 소폭 하락(망령 한 마리당 방어력과 항마력 0.1감소)합니다.
나시멘투가 소환한 망령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크에게 들러붙었다.
[알림 : 망령이 들러붙었습니다! 방어력과 항마력이 0.1 감소합니다!] [알림 : 망령이 들러붙었습니다! 방어력과 항마력이 0.1 감소합니다!] [알림 : 망령이 들러붙었습니다! 방어력과 항마력이 0.1 감소합니다!]지크의 눈앞에 1,000개의 알림창이 주르륵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후후. 이제 네놈은 약해졌다.”
나시멘투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약해진 네놈과 싸울 것이며,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나시멘투는 뒤이어 500마리의 망령 전사들을 소환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메뚜기 떼와 개구리 떼를 소환해 지크를 공격했다.
망령 전사들.
메뚜기 떼.
그리고 개구리 떼.
나시멘투가 소환해낸 것들은 개인의 공격력은 약할지언정, 그 압도적인 머릿수로 밀어붙여 적에게 엄청난 양의 누적 데미지를 안겨줄 수가 있었다.
“네놈은 곧 뼈만 남기게 될 것….”
바로 그때였다.
스으으!!
지크로부터 뿜어져 나온 방사능 에너지가 메뚜기 떼와 개구리 떼를 순식간에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네놈은 망령 전사들의….”
나시멘투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쩍!
명속성 에너지가 빗발쳤다.
스킬.
그리고 스킬.
이 두 개의 스킬들로부터 뿜어져 나온 전류가 지크에게 들러붙은 망령 모두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망령들은 기본적으로 암(暗)속성을 띠고 있었기에, 지크가 가진 명속성 에너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던 것이다.
“히, 히익?!”
나시멘투가 경악했다.
***
‘쯧쯧. 이것도 디버프라고.’
지크는 나시멘투가 가소로웠다.
1,000마리의 망령들이 의미하는 건 방어력과 항마력의 감소, 즉 디버프였다.
문제는 1,000마리나 되는 망령이 들러붙었음에도 지크는 그것들을 순식간에 제거함으로써, 자신에게 걸린 디버프를 모조리 풀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
나시멘투가 준비한 회심의 디버프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 디버프 마스터의 스킬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에 불과했다.
망령들을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디버프 효과 자체가 지크의 것에 비하면 빈약하기 이를 데 없기도 했고.
‘진짜 디버프가 뭔지 보여주지.’
지크가 나시멘투를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우웅!
디버프 필드가 전개되었다.
지크의 ‘진정한’ 디버프 필드가 전개된 직후.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순간 나시멘투는 자신을 덮쳐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에 크게 당황했다.
몸이 갑작스레 무거웠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온몸에서는 없던 근육통이 느껴졌으며, 두 발은 무겁기가 천근만근이었다.
오싹!
불현듯 감기라도 들었는지, 전신에 소름이 쫙 끼치며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내가… 약해진 것인가?’
나시멘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약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분명….
“야.”
“헉…!”
어느새 다가온 지크가 나시멘투를 향해 물었다.
“이제 누가 더 약할까?”
“서, 설마…!”
“내가 약할까, 아니면 니가 더 약할까.”
그렇게 말하는 지크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 미소는 감히 디버프 마스터 앞에서 어설프게 디버프를 전개한 자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한번 시험해 보자고.”
지크가 나시멘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
털썩!
머리가 반쯤 으깨진 나시멘투의 시체가 초원을 나뒹굴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대가였다.
“어설프긴.”
나시멘투의 시체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해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알림 : 대장장이 크반트에게 아이템을 가져다주세요!]그러자 비로소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만약 나시멘투를 쫓아다녔다면 적어도 며칠은 더 걸렸어야 할 퀘스트를 이렇듯 손쉽게 클리어했기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오스칼이 그런 지크에게 다가와 축하해 주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프로아의 장병들 역시도 우렁찬 목소리로 지크의 승리를 축하했다.
“별말씀을.”
지크가 겸손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자, 그럼 계속 가볼까요?”
“예, 전하.”
지크는 야만 부족들을 결코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
그로부터 이틀 후.
‘지금 내 레벨이… 83레벨에 경험치가 80퍼센트 정도 쌓였으니까… 오늘도 놈들이 항복 안 하면 2업도 가능하겠는데?’
여느 때처럼 로그인한 지크는 오늘도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지를 궁금해 했다.
야만 부족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항복?
그들은 항복의 ‘ㅎ’자도 몰랐다.
굳이 학살을 자행할 이유가 없기에, 그렇게도 항복을 권하고 때로는 협박도 해보았건만….
벌써 몇 개의 부족이 몰살을 당하고 말았음에도, 오히려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오는 부족들도 상당수 있을 지경이었다.
지크는 그런 야만 부족들의 호전성 덕분에 근래 미처 하지 못했던 레벨 업을 몰아서 할 수가 있었던 것이고.
‘겨울 되면 골치 아파질 테니까, 내친김에 싹 정리해 놓자. 겸사겸사.’
게다가 야만 부족들은 겨울 무렵이면 그가 다스리는 프로아틴 지방을 침범, 수없이 많은 마을을 불태우고 식량을 약탈할 잠재적 위험 요소들이었기에 지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하!”
그때, 오스칼이 지크의 막사로 들어서며 보고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요, 오스칼 경.”
“야만 부족의 족장들이 전하를 찾아왔습니다.”
“줄 서 있으라고 전해주세요.”
지크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아니면 한꺼번에 덤벼도 좋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해줘요. 잠깐 스탯만 찍고 바로 갈….”
“전하, 저들은 감히 전하께 결투를 신청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요?”
“야만 부족의 족장들이 항복하겠답니다.”
“항복…이요?”
“예, 전하.”
“아, 무슨 항복이야.”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전하? 기쁘지 않으십니까?”
“안 기쁜데요.”
“어, 어찌하여….”
지크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오스칼은 당황했다.
적들이 항복하겠다는데 기뻐하지 않다니… 도대체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는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안 돼. 그냥 항복하지 말라고 해요.”
“저, 전하!”
“왜 이제 와서 항복한답니까? 좋게 말할 때는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절대로 안 받아줄 겁니다. 다 죽일 겁니다. 모조리.”
“전하! 부디 저 무지몽매한 야만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안 돼. 안 받아 줘. 받아줄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고 해요.”
“저, 전하!”
오스칼이 다시금 지크를 뜯어말리려 했다.
“…는 농담이고요.”
지크가 피식 웃었다.
“항복하겠다는데 안 받아줄 수야 없겠죠. 기회를 줬을 때 진작 항복들 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덜 죽었을 텐데. 쩝.”
“그, 그렇습니까? 소신은 전하께서 진짜로 야만 부족들의 항복을 안 받아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저들을 죽임으로써 성장의 동력을 얻을 수 있긴 하지만….”
지크가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항복하겠다는데 일단 얘기나 들어보는 게 우선이겠죠. 자, 갑시다.”
지크가 족장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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