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0
089
크반트로부터 피나비의 춤 표창 세트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지크는 곧바로 카제인 성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뭐야 저게.”
한창 복구 공사-드래곤이 행패를 부린 덕택에 무너졌으므로-가 진행 중인 군주의 홀에 뭔가 이상한 것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왜 저걸 저기다가….”
“형님! 저게 다 권위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크핫핫핫핫!!”
공사 현장을 감독하고 있던 승구가 슥 하고 나타나 호탕하게 웃었다.
“앞으로 랭커가 되실 분인데 저런 지리는 옥좌 하나 정도는 있으셔야지 않겠습니까?”
“아니….”
“캬! 위엄 지리고요! 오지고요! 황제 각이고요!”
승구가 저 멀리 거대한 구조물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 내가 못 살아. 저게 얼마짜린데.’
지크가 안면을 감쌌다.
왜냐하면….
‘아니 뭔 옥좌를 드래곤 두개골로 만들어….’
그냥 평범한 철제 의자였던 그의 옥좌가 어느새 드래곤의 두개골로 이루어진 사치품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 공사 현장을 함께 감독하던 미켈레가 나타나 의견을 더했다.
“그냥 두자고? 저걸?”
“예, 전하.”
“저게 돈이 얼만데. 저 돈이면….”
“재화의 가치는 단순히 가격 대비 성능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음?”
“사치품이란 실용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기 마련이지만, 때때로 어떠한 메시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유용합니다. 상징성. 드래곤의 두개골로 만든 옥좌라면 전하의 위엄을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너무….”
“국무대신으로서 추진한 일이니 전하께서는 부디 헤아려 주시기를….”
미켈레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빌어먹을!’
지크는 속으로 드래곤의 두개골이 아까워 분통을 터뜨렸지만, 자신이 직접 국무대신으로 임명한 미켈레의 의견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직은 사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가치관을 가진 지크였다.
***
다음 날 오전.
“그럼, 잘 부탁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지크는 미켈레에게 모든 업무를 떠넘기고는 카제인 성을 나섰다.
한동안 영지에 짱박혀 있었으니 이제는 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모험에 나설 때가 되었던 것이다.
우웅!
카제인 성에 설치된 워프 게이트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지크는 행선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내 레벨이 83레벨. 이 레벨이면 거기가 제일 좋겠지.’
미리 생각해둔 사냥터가 있었으므로, 그저 워프 게이트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
번쩍!
공용 워프 게이트가 빛을 내뿜었다.
[뉘르부르크 대륙 서쪽 끝 :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파티원 구합니다!”
“150레벨 이상 힐러 없나요!”
“1인 쩔 갑니다!”
“변이 괴수의 심장 개당 3골드에 삽니다!”
“물딜팟 대기 중!! 물딜 전문 버퍼 구해요!”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 앞에는 거의 수만 단위의 모험가들이 한데 뒤섞여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여전하네.’
지크는 과거에도 이곳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
매우 강력한 변이 생명체들의 서식지인 이곳은, 전 대륙을 통틀어 가장 모험가들이 북적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왜?
사냥감이 넘쳐났으니까.
이른바 ‘크립티드(Cryptid)’라고 부르는 이곳의 변이 생명체들은, 어느 날 군집을 이루는가 싶더니 자기들끼리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조합하는 등 도저히 ‘변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진화를 이룩한 존재들이었다.
덕분에 과거 번영을 누렸던 아라크니드 영지는 순식간에 크립티드들에게 점령을 당해 이제는 그들의 서식처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일단 퀘스트부터 받으러 가볼까.’
지크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지크가 도착한 곳은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를 관리하는 대륙 연합군의 모병소였다.
“크립티드 토벌 작전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여기 신청서 있으니까 작성하시고요. 배치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니까 그런 줄 아세요.”
모병소의 창구 직원이 기계적으로 답했다.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는 이런 식이었다.
용병 길드를 통한 주먹구구식 사냥은 이곳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크립티드들은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부터 많게는 몇만 마리씩 무리를 이루어 활동하기에, 그것들을 상대하려거든 모험가들 역시도 군대와 같이 통제된 환경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파티원들을 모아 공대를 구성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대륙 연합군에서 배정한 지휘관(NPC)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입대 신청서]•이름 : 지크
•출신 : 이세계 (모험가)
•성별 : 남
•용병 길드 등급 : 실버Ⅲ
•소속 : 없음
•직위 : 없음
•지원 동기 : 세계 평화
상기 본인은 위 신청서에 기입한 내용에 일체의 거짓이 없음을 맹세합니다.
신청자 : 지크 (인)
지크는 자신의 신분을 대충 숨긴 채 신청서를 작성했다.
들킬 염려는 없었다.
[지크]•존재 구분 : 모험가
•클래스 : 포이즌 메이지
•레벨 : 83
•용병 길드 등급 : 실버Ⅲ
•칭호 : 없음
현재의 지크는 천우진으로부터 받은 퀘스트의 보상인 를 통해 을 속일 수 있게끔 위장을 한 상태였다.
“실버 등급이시네요?”
창구 직원이 뭐 이런 약해빠진 놈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예, 뭐. 그렇습니다.”
“용병 길드 등급이 많이 낮으신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원하시는 지역만 말씀해 주세요. 소속은 자동으로 배정됩니다.”
“C등급 위험 지역 정도면 적당하겠네요.”
“네? C등급 위험 지역요?!”
창구 직원이 놀랐다.
아라크니드 임시 주둔지는 U, S, A, B, C, D, E, F의 위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중 C등급이라면 100~120레벨의 모험가들이 주로 투입되는 사냥터였기 때문이다.
“괜찮으시겠어요? 실버Ⅲ 등급의 모험가한테는….”
“괜찮습니다. 그냥 그쪽으로 배치해 주세요.”
“하긴. 당신들은 죽지 않으니까.”
창구 직원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지크의 신청서에 도장을 쾅! 하고 찍어주었다.
***
[알림 : 대륙 연합군 모병소에서 당신을 C-21 구역의 로 배정했습니다!] [알림 : C-21 구역에서 의 중대장을 찾아가세요!]신청서를 낸 지크는 C등급 위험 지역인 C-21 구역으로 가 자신이 배정된 중대를 찾아 나섰다.
“악어, 악어….”
지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없이 많이 설치된 천막 막사 중에서 악어 중대의 것을 찾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다!”
그때, 오가던 병사들 중 누군가 저 멀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NPC들과 모험가들이 그곳을 바라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을 떠들어댔다.
“푸하하하하!”
“와, 징하다. 징해.”
“또 전멸인가?”
“중대장은 또 살았네? 불사신이여 뭐여.”
“쯧쯧.”
아무리 좋게 들어도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기에, 지크는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았다.
‘알 만하네.’
그리고 이내 곧 술렁거림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패잔병들.
딱 봐도 패잔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막사로 복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소속.
패잔병들의 선봉에 선 기수가 든 깃발에 새겨진 문양은 누가 봐도 악어였다.
즉,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복귀한 이들이 앞으로 지크가 함께하게 될 악어 중대원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악어 중대의 지휘관은….
[카렐 데 비어만]•존재 구분 : NPC
•레벨 : 71
•클래스 : 나이트 (Knight)
•티어 : 최하급 소드 익스퍼트
•소속 : 대륙 연합군 제3군단 8사단 제2보병대대 악어 중대
•계급 : 대위
•직위 : 중대장
•칭호 : 죽지 않는 패잔병 / 시골뜨기 / 무능한 지휘관 / 죽음을 부르는 지휘관 / 패전의 달인
놀랍게도, 악어 중대의 중대장은 왕립 기사 아카데미에서 기사 수업을 받고 있다던 비어만 영지의 영주 베그만 남작의 아들이었다.
***
30분 후.
“모험가 지크는 현 시간부로 대륙 연합군 제3군단 8사단 제2보병대대 악어 중대로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지크가 베그만 남작의 아들 카렐을 향해 거수경례했다.
“충성. 쉬어.”
“쉬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크. 저는 이 악어 중대의 중대장인 카렐 데 비어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카렐의 말투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심각한데.’
지크는 그런 카렐의 모습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명색이 기사에다 한 개의 중대를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인 카렐의 모습은 휘하에 있는 병사들이나 모험가들보다 형편없기가 이를 데 없었다.
퀭한 눈, 헝클어진 머리, 찢어진 군복, 이가 다 빠져버린 검, 초췌한 피부, 흔들리는 동공 등등.
카렐의 모습은 패잔병 그 자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부디 그대와 함께 오래도록 싸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그때였다.
“중대장님 저희 갑니다.”
“수고하십쇼.”
“너 언제까지 살아 있나 두고 본다, 내가.”
“저런 무능한 놈도 지휘관이라고. 아, 파티원 다 전멸했네.”
“어쩐지 냄새가 나더라니.”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나타나 카렐에게 일방적으로 전출을 통보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딱 봐도 중대가 패전하는 바람에 파티원을 잃고, 경험치도 손해를 보았기에 잔뜩 화가 난 것이 분명한 모습이었다.
“…하아.”
카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이… 지크라고 했던가요? 차라리 지금 당장 전출을 신청하는 게 나을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 곁에 있으면 오래 살지 못합니다.”
“…….”
“누구도 내 곁을 오래 지킨 이가 없습니다. 병사들은 죽고, 모험가들은 떠나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대도 내게 실망하기 전에 차라리 전출을 신청하는 편이….”
“아닙니다.”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전입 첫날인데 벌써부터 전출을 신청할 리가요.”
“후회할 겁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그럼, 저는 대기하겠습니다. 충성.”
“충성….”
지크의 경례를 받는 카렐은 절도 있는 모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지크는 NPC들과 같은 중대에 소속된 모험가들에게 카렐에 대해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 진짜.”
“맘 같아선 당장에라도 전출을 가고 싶은데… 하아! 모험가들이야 정식 군인도 아니니 얼마든지 전출을 신청할 수 있지만 우린 아니지 않은가. 빌어먹을. 난 오래 살지 못할 게야.”
“그 새끼를 믿고 전투에 나서느니 그냥 우리끼리 싸우는 게 나을걸?”
“살다 살다 저렇게 무능한 NPC는 처음 봄.”
“아, 다음 렙 업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전투 한 번만 더 참가하고 그냥 전출 신청하려고요.”
“탈영이라도 해야지, 원….”
카렐에 대한 중대원들의 평가는 하나같이 ‘무능함’ 혹은 ‘최악’이었다.
특히, NPC들인 병사들의 평판은 더욱 나빴다.
왜냐하면, 모험가들은 불사의 존재에다 원할 땐 언제든지 전출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NPC인 병사들은 좋든 싫든 카렐의 지휘에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무능한 거야?’
지크는 문득 카렐의 무능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