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9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8화
테스타가 본격적인 앵콜 콘서트 준비를 위해 국내에 돌아온 지 며칠 뒤.
“서울 오랜만이구만!”
테스타의 첫 번째 매니저, 아니, 이제 유일한 매니저는 싱글벙글 웃으며 회사로 향했다.
본래 둘이 처리했던 업무를 혼자 처리하게 되어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럭저럭 수월했다.
어차피 테스타는 그렇게 까다로운 그룹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새 좀 대드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애들이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기가 안 세단 말이야.’
게다가 웬만한 일은 새롭게 계약한 투어 인력이 다 배분받아 갔기 때문에 매니저는 도리어 국내에 있을 때보다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는 개개인의 컨디션 체크나 관리가 그의 소관이었으나, 슬금슬금 관성적으로 놓게 되었다.
그마저도 원래 이런 일이 익숙한 운동선수 출신인 리더가 자진해서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우야, 뭐 아프거나 하다는 애 없지?
-네. 문대 상체 안마만 따로 일정 빼면 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약간의 직무 태만이었다.
이 업계에서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될 정도의 꿀이었으나, 원래 사람은 앉은 자리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애들 전성기 동안 잘 버티다가 경력 좀 땡겨서 이직하면 되겠지.’
안 그래도 요새 회사가 새로 런칭하는 여자 아이돌에 신경을 쏟느라 테스타에 쏟는 관심이 덜했다.
통상적으로 남자 아이돌보다 대중성이 좋은 여자 아이돌 쪽이 지금 본부장의 입맛에 맞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번에 좀 해 먹은 것 같던데?’
매니저는 며칠 전 테스타의 반응을 회상했다.
-형, 팬들이 너무 안 좋아하는데… 회사에서 다른 이야기 없었나요?
-너무 대놓고 마법소년이라 저희 보기에도 좀 그래요~
-어? 에이, 같은 소속사끼리 원래 약간씩 이런 레퍼런스 쓰지 않나? 팬들 금방 잊을 거야! 이런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이미 회사에서 ‘혹시 반발하면 적당히 넘겨 달라’는 언질은 받은 상태였다.
회사에 반론을 내는 것보다는 테스타를 어르는 게 쉬운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는 것을 매니저는 이미 확신했었다.
‘예상대로 그렇게 흐지부지됐고~’
뭐, 테스타가 이런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고 딱 봐도 계속 잘나갈 놈들 아닌가. 매니저 본인의 커리어엔 문제없다.
그러니 살살 달래면서 쓸데없이 피곤한 일 안 만드는 게 최고였다.
“아, 다 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회사에 도착한 방문한 매니저는, 주차장에서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둘째 매니저였다. 아니, 이제는 후배 그룹 미리내의 매니저로 배치를 옮기긴 했지만 말이다.
얼빠진 놈이라 생각하면서도 매니저는 잡담을 이었다.
“누구 기다려?”
“아, 미리내가 지금 실장님 만나고 있어서요. 기다리는 중입니다!”
“오~ 그래? 어떤 실장이야? 왜 만난데?”
“어, 다른 팀에 말씀드리면 안 된다는데… 되나요?”
이런 어버버한 부분이 아주 짜증 나는 놈이었다.
자고로 사회생활은 눈치 아닌가!
‘오래 못 버티겠지?’
답답했는데 보내 버려서 속이 시원했지만, 그래도 잡일 시킬 놈이 그립긴 했다.
‘다음 놈은 좀 고분고분하고 빠릿빠릿한 놈으로 왔으면 좋겠구만.’
매니저는 곧 충원될 인력을 생각하며 커피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회사에서 형식적인 보고 후 이야기를 들은 뒤, 천천히 테스타의 숙소로 귀가했다.
‘스케줄 적당히 브리핑하고 으쌰으쌰 스타일로 파이팅 좀 외치고~’
이 정도가 매니저의 오늘 예상이었다.
그러나, 숙소에 들어가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 형 오셨구나~”
“어서 오세요!”
숙소에는 웬 도넛과 음료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낯선 놈이 식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뭐야??’
“얘들아, 저분 누구….”
“어, 안녕하세요. 새로 온 매니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앉아 있던 놈은 그제야 느리게 일어나더니, 첫 번째 매니저에게 건성으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이 자식 뭐야?’
들은 적도 없는 두 번째 매니저라니? 그리고 이 성의 없는 태도는 뭐란 말인가.
첫 매니저는 의심과 짜증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혹시 진짜 새 매니저라도 한 소리 해줘야 할 상황 아닌가!
“새 매니저 이야기 들은 적이 없는데 누구냐? 아니, 진짜 매니저 맞아요? 누구세요?”
“정식 근무는 다음 주인데, 오늘 인사라도 하라고 형이 그래서. 오늘 못 들으셨어요?”
“형??”
박문대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끼어들었다.
“매니지먼트실장님 사촌 동생이시라던데요.”
“…!!”
“아, 못 믿으셔서 이러시나.”
두 번째 매니저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삐딱한 태도로 스마트폰을 들어 내밀었다.
“뭐, 통화라도 하실래요?”
스마트폰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사촌 형’이란 수식어와 함께 떠 있었다.
매니지먼트실장이 맞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첫 번째 매니저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 * *
“잘 들어가세요~”
“네, 다음 주에 봐요.”
두 번째 매니저가 될 놈은 적당히 인사를 돌려주고 곧 떠났다.
날백수로 사는 놈을 꽂은 거라더니 일에 별 열정은 없어 보인다만, 상관없었다. 기대도 안 한다.
애초에 첫 매니저도 기본만 하는 놈이다.
‘중요한 건 매니지먼트실장의 생각이지.’
그 이름만 있는 놈이 ‘자기 라인’을 회사에 만들기 시작했다는 제스처가 중요했다.
‘잘 먹혔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현관에서 돌아섰다.
“형, 도넛 하나 더 드시겠습니까?”
마침 김래빈이 식탁에서 도넛 박스를 들었다.
“아니, 배불러. 너 많이 먹어라.”
“알겠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어차피 그 도넛을 사 온 놈은 네 덕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다.
나는 입국 첫날의 일정을 회상했다.
그건 앵콜 콘서트에 쓸 새로운 곡을 위한 녹음실 일정이었다.
연습 전에 미리 음원을 맞추는 걸 더 선호하는 팀원들 스타일상 가장 빨리 진행되었다.
당연하지만, AR팀과 직접 같이 일하는 자리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A&R 팀 직원들과 인사한 뒤 유닛별로 녹음을 진행하던 때.
나는 녹음을 기다리던 김래빈에게 말을 붙였다.
녹음 부스 주변 여기저기에 있는 직원들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많이 신경 쓰여?
-예?
-‘마법소년’이 다른 그룹 티저에서 나온 거 말이야.
-아…….
김래빈은 단번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회사에서 결정하신 사안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먼저 양해를 구해주셨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좀 억울하지.
-…예.
툭툭 모는 곳으로 알아서 잘 가준다.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무룩하게 어깨를 굽혔다.
‘훌륭하다.’
나는 지난번, 후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김래빈이 했던 말의 뉘앙스를 그대로 따와서 다시 한번 운을 뗐다.
-사실 그때 편곡이나 컨셉에 워낙 네 의견이 많이 들어갔잖아. 나도… 우린 몰라도 네 의견은 물어보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 아뇨! 컨셉 전반은 문대 형이 이미지와 상징물까지 정하셨는데, 오히려 형과 상의하셨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고맙다. 그래도 네 노력이 더 크지.
여기서 좀 더 감정적으로 틀자.
나는 약간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때, 우리 정말 열심히 하긴 했는데 말이야. 잠도 거의 못 자고.
-예……. 열심히 했는데….
김래빈은 이제 거의 울상이다. 당시를 떠올리니 더 몰입한 모양이었다.
좋아.
나는 일부러 근처의 AR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 여기 휴지 있을까요.
-아, 여기…!
역시 듣고 있었는지, 직원은 영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서 얼른 곽 휴지를 찾아 내밀었다.
더 가열 차게 안타까워할 수 있도록, 나는 김래빈의 얼굴에 휴지를 뽑아 내밀었다.
당연히 진짜 우는 건 아니던 김래빈은 솔직하게 대답하려 했고.
-…? 저는 괜찮….
-그냥 써.
나는 직접 놈의 물기 없는 얼굴을 꾹꾹 찍어 주었다. 김래빈은 물음표로 머리가 가득 찬 것 같았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저쪽에서 직원들이 ‘어쩌면 좋냐’는 식의 시선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AR팀은 김래빈을 은근히 제일 좋아하지.’
말이 잘 통하는 데다가 작곡하는 놈이라 교류가 제일 많으니까. 게다가 성정이 순하니 거의 팀 게스트 막내처럼 생각하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저 팀은 직원 중 많은 수가 테스타가 데뷔 때 생고생하는 걸 보며 함께 갈렸었다.
이번에 그 데뷔곡 컨셉을 마음대로 따와서 쓴 윗선을 결정에 황당해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목소리 낼 사람이 없다.’
진짜배기 경력직을 모아두다 보니, 도리어 윗선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거나 인맥이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다음으로는 인맥이 있는 놈을 부추긴다.’
그래서 연락한 것이 매니지먼트실이다.
일단 가볍게 선물과 함께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다름이 아니라 최근 투어 중에 테스타가 매니지먼트실에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의 의미로…….
실제로 투어 중에는 매니지먼트실 사람들을 주로 만나게 되니 얼추 명분은 괜찮다.
그쪽 직원 숫자에 맞춰서 적당히 비타민제나 보내면, 당연히 실장한테서 고맙다는 제스처라도 돌아온다.
보통은 전화로.
-아, 비타민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문대 씨.
-멤버들이 다 같이 상의해서 보낸 건데요 뭘. 매니지먼트실 분들이 케어해 주셔서 이번 투어 내내 덕분에 저희 무사히 스케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 타이밍에 떡밥을 던지는 거지.
그리고 이 떡밥은 제법 그럴싸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한다.
‘매니지먼트실은 일찌감치 현 본부장의 눈 밖에 났다.’
이번 본부장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이 이곳에 온 결정적 사유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
매니지먼트실에서 산업스파이라는 대형 사고가 났던 것 말이다.
본사와 끈이 있으니 매니지먼트실장 자리 유지에는 문제없겠지만, 영향력은 좀 다른 문제다.
‘일선 의사결정에서 좀 소외당하겠지.’
그래도 산업스파이 건 이후로 제법 긴장한 채로 일하는 것 같던데, 설설 기려니 모르긴 몰라도 열받아서 속 좀 탈 것이다.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일할 정도면 평생 무시당한 경험 드물었을 텐데, 지금 상황이 더 참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걸 살살 긁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대리님 건 때도 저희 말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다른 회사 분 중에 모른 척하셨던 분도 계셔서, 별일 아닌데 제가 예민한 건가 고민했거든요.
산업스파이 건을 ‘실장인 내가 잘 알아차려서 대처가 빨랐던 건데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스스로 왜곡 및 미화할 수 있는 단서를 주자.
-실장님 덕분에 안심하고 지금도 활동 중입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이거 봐라. 겸양도 없이 날름 먹었다.
여기다가 AR팀에서 ‘본부장이 이번에 무리수 뒀네’, ‘테스타 애들한테 너무 했다’ 같은 여론을 실무진에 퍼뜨려 주면, 실장은 더 확실한 합리화가 가능하다.
‘일 못하는 본부장이 자신을 견제한다’는 대단한 착각 말이다.
그 상태가 며칠간 잘 숙성되면 본부장에게 한번 들이받을 동력으로 작용해 줄 걸 알았다.
‘낙하산이라 일 잘못되면 잘릴 거란 공포도 없으니, 자신감과 충동대로 지르겠지.’
그리고 다행히 실장이 제대로 뽕이 찼는지, 당장 오늘 아침에 자기 사촌동생을 테스타 새 매니저로 꽂았다… 까지 온 것이다.
‘개판 나겠군.’
나는 소파에 누워서 차유진이 남은 도넛을 다 해치우는 것을 구경했다.
“그만 먹어! 너 돼지야?”
“나 호랑이야!”
“호랑이는 밀가루를 섭취하지 않는 육식동물인데, 너는 지금 설탕과 밀가루를….”
흠, 평화롭다.
‘슬슬 다음 것도 터졌을 텐데.’
당연하지만, 불발로 끝날 수도 있는데 지뢰는 여럿 깔아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 후배가 말 괜찮게 하는 것 같던데.’
나는 다음 폭탄을 맘 편히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