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3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5화
인권… 위?
갑자기 나온 인권위에 병실 분위기가 혼란스러워… 질 줄 알았으나 다른 놈들은 모두 담담한 걸 보니 나 빼고 다 합의된 사항이군.
‘최소한 제보 전후에 이야기는 했다는 건데.’
나는 미간을 누르려다가, 링거가 꽂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그… 국가인권위원회 말이죠.”
“…그래!”
그쪽이… 사법적 강제력은 없는 기관일 텐데?
기껏해야 회사에 윽박 좀 질러주고 끝일 것이다.
애초에 익명으로 들어온 아이돌 인권침해 제보를 진지하게 처리해 줄지도 모르겠다만.
그러나 내 설명에도 배세진은 당황한 기색이 없다.
“알아. …그 사람들이 이걸 다 해결해 줄 순 없겠지.”
“…….”
“그래도 언론에는 나올 거 아냐! 시, 시정 권고도 받고!”
“…?”
배세진은 여전히 주먹을 쥔 채로 열심히 자신의 행동 원리를 설명했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이놈의 판단은 이렇다.
“회사가 연예면 언론 보도를 막고 있으니, 사회면 기자 쪽으로 기사가 나가게 해보았다… 이 말씀인가요.”
“맞아.”
한마디로 노선 변경이다.
배세진에게… 이런 야심이 있었다니.
‘후…….’
담배… 아니, 됐다.
혀 깨물 뻔했으니 입안이나 가다듬자.
나는 빠르게 무슨 파장이 일어날지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익명이라면 배세진이 노리는 효과는 안 날 확률이 높지.’
모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아티스트 관련 사고를 은폐하려 든다?
인권위에서 자체적으로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정성스럽게 알아볼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여기서 소스 얻어들은 기자들한테 찌라시 도는 정도면 회사 성질만 긁고 끝날 수도 있다.’
다만 회사에서 초조해질 테니, 그게 ‘감히 제보를 해?’ 따위의 괘씸함보다 커지면 협상하기 쉬워지는 측면은 있….
“그리고 익명이라는 게… 그룹명을 말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야.”
“…그러면?”
“제보자의 익명성만… 지켰어. 어, 어머니 친구분 명의를 써서….”
“…….”
배세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러면, 우리라고 생각 못 할 테니까. 경쟁업체나… 퇴사자나,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알고 보니, 이놈이 지금까지 소속사에서 일어난 온갖 고용과 노동 관련 문제는 다 정리해서 보낸 것 같다.
야근수당 미지급부터 시작해서 산업스파이와 관련 불법 개인정보 수색까지 말이다.
‘판을 어디까지 키운 거냐.’
사실 이것도 백일몽인 건 아닐지 슬슬 의심이 든다.
“…….”
“나, 나도 이게 자랑스럽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
나는 쓴웃음을 참았다.
“아뇨. 잘하신 것 같은데요.”
“…!”
배세진이 눈이 둥그레졌다.
“지, 진짜??”
“예.”
일단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넘어갔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모기업인 T1이 테스타를 찍어서 족칠 상황은 넘어갔군.’
패로 못 쓰는 게 아쉽긴 하지만….
교통사고 나 혼자 당한 것도 아니고, 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이득 봐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저놈들도 그동안 쌓인 게 많았을 텐데.’
자기 나름대로 행동할 수도 있지.
‘스케일이 좀… 다른 방향으로 많이 커질 것 같긴 하다만.’
이건 오히려 좋다. 직장 내 갑질 등 사회적 문제로 튀는 순간 아랫사람들이 아니라 윗분들과 본사가 주도해 처리할 이슈로 변한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선 윗대가리가 무슨 고초를 겪든 실무진만 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룹 운신에 문제만 없다면 상관없단 거지.
‘잘하면 결재봇 상태를 또 보겠군.’
상상만 해도 편안하다.
나는 한결 편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결과가 기대되네요.”
“…그래!”
배세진은 안색이 밝아졌다. 멤버들도 고개나 끄덕이지 누구 하나 동요하는 놈이 없었다.
‘사고 이후로 소속사랑 거하게 싸우긴 했나 보군.’
나는 내심 혀를 찬 뒤, 아까 답변받지 못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졌다.
“그래서, 오늘이 며칠인가요.”
“…….”
그러자 놈들이 시선을 주고받는다.
‘뭐냐.’
지금까지 조용하던 류청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대야.”
“예.”
“오늘은 7월 6일이야.”
“…!!”
달이 다르잖아.
‘잠깐, 내가 정신을 잃었던 게 데뷔기념일, 6월 18일인데….’
그럼 내가 18일이나 혼수상태였단 뜻이다.
“…….”
아니… 6월이 그냥 살살 녹았네.
내가 잠시 망연해하는 사이, 류청우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쉬고 있어. 일이나 활동은 나중에 생각하고.”
“…….”
“앞으로는… 네 몸부터 생각하고.”
아.
나는 류청우를 올려다보았다.
놈은 답지 않게 어두운 안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놈 머리에 철근 꽂힐 뻔한 걸 내가 대신 가슴에 처맞았지.’
솔직히 누구 뒤지는 것보단 교환비 괜찮지 않나?
내가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옆자리 놈이 대가리 뚫리는데 그냥 보고 있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상당히 떨떠름히 놈을 쳐다보았으나, 대충 심정은 이해했다.
‘자기 대신 혼수상태 빠졌다고 생각했나.’
뭐, 시스템의 농간일 수도 있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만… 빚으로 생각한다면 나중에 의견 동조나 잘해줬으면 좋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일으켰다.
“잘 챙기겠습니다. 사실 지금도 몸은 멀쩡한 것 같은데… 그냥 피로가 쌓여서 못 깬 거 아닐까요.”
“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
“박문대, 앉아!”
“아무래도 재검사를 받아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거참… 유난들이군.
그리고 잠시 뒤.
의료진들이 놈들의 열렬한 요청 때문에 병실에 계획보다 빠르게 재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환자가 보름 이상의 혼수상태에서 회복하자마자 신나게 과일을 까먹었단 소식에 기겁했다.
“멜론을요?? 환자분, 지금 배 안쪽 감각 어떤지 말씀해 보세요!”
“…!!”
“전 멀쩡합니다만.”
“선생님! 여기 환자분이….”
그리고 온갖 호출이 이어졌다.
‘…그렇지.’
18일이나 누워 있던 놈이 당도 최고 멜론을 까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군.
멜론을 권했던 큰세진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긴 했으나,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애초에 평범한 상태였다면 삼키자마자 통증에 시달렸지 않을까.
“내가 먹을걸요!”
차유진이 멜론을 그냥 다 자기 입에 넣어야 했다고 아쉬워하는 건 넘어가고.
‘이거 아무래도 넥타르 약발 같은데.’
‘생명력 완전 회복’이란 특성 덕에 내 소화기관도 급속 회복한 게 아닐까 싶다.
‘말 나온 김에 확인해 볼까.’
한바탕 난리 통이 끝난 뒤, 나는 상태창의 특성 항목을 불러왔다.
[특성 : 잠재력 무한, 탐닉의 시간(S), 넥타르(S)-활성화, 잡아채는 귀(A)]역시 활성화 표기가 되어 있군.
아무래도 현재 급속 회복 중이고, 가슴에 난 상처까지 다 치료되면 사라질 모양이다.
‘…그럼 이제 바쿠스빨은 끝인가.’
입맛 다시게 된다. 아깝군.
물론 다음 뽑기에서 다시 바쿠스를 뽑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워낙 활동에 요긴히 쓰니까.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상태창을 껐다.
‘그나저나… 18일이라.’
낭비가 심하긴 했지만, 투어 일정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한 달이면 충분히 회복되겠지.’
나도 그렇고, 저기 아직 보호대 찬 놈들도 3주 내로 회복한다고 했던 것 같다.
한 달 더 준비해서 출발하면… 대충 일본 몇 회 빼고는 다 챙기겠군.
‘됐네.’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의료진이 전부 나간 뒤, 멤버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신을 차렸다.
“문대야… 진짜, 미안하다.”
“아니, 맛있었는데.”
“앞으로는 꼭 허락을 받자….”
그리고 잠시 뒤.
드디어 내가 좀 더 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이놈들 머릿속에 떠오른 모양이다.
“내일 또 방문하겠습니다!”
“무, 문제 있으면, 언제든 부르면… 우, 우리 집 근처야…!”
“저 퇴원 안 해요.”
“어쭈 차유진 까분다, 나가자!”
“힝.”
“…쉬어, 문대야. 정말…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는 것 같더니, 이내 그 기색도 사라졌다.
‘영 기운 없어 뵈는데.’
내 예상보다도 고민이 컸나보군.
한번 잡아두고 캐보려던 순간.
“…박문대.”
“…? 예.”
배세진이 나가기 직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인권위 조사 들어오면… 그걸 바탕으로 T1 Stars에 소송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
“…예?”
“그래서 성공하면, 새 소속사로 가는 거야…!”
“…?!”
무슨 미친 소리야.
뒤통수를 후려맞은 것 같다.
‘설마 사회면으로 띄운 뒤에… 공권력을 이용해서 재판까지 들고 가보겠다는 발상이었나!’
그게 통할지 안 통할지를 떠나서, 왜 방송사와 스튜디오를 가진 대기업에 시비를 걸려고 하냐.
너희 거대 플랫폼 하나를 걷어찰 생각이냐고.
나는 도저히 이걸 동의했다고 믿을 수 없는 놈부터 찍어서 쳐다보았다.
큰세진이 눈을 피했다.
‘야.’
“음~ T1도 이렇게 되면 소속사를 개편하려고 할 텐데, 그때 소송 가능성까지 나오면 좀 더 딜이 좋아질 것 같아서~”
“…….”
“꼭 새 소속사 아니라도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그래서 이 새끼까지 넘어갔군…….
“지금 당장 할 일은 아니고 차차 의논해 볼 거니까… 일단 문대는 좀 더 쉬게 두자.”
“그럼요~”
“…가라.”
나 혼자 좀 생각해 봐야겠다.
나는 복잡한 머리로 손을 저었고, 멤버들은 웃거나 손을 마주 흔들며 병실을 나갔다.
달칵.
나는 순식간에 조용해진 병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소송이라.
내가 웬만한 건 다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건 이 업계에서 오래 해 먹기 좋은 판단은 아니다.
지금까지 소송 걸었다가 커리어가 괜찮게 풀린 케이스를 거의 못 봤거든.
승소든 아니든, 업계에 찍히는 것이다.
‘대중성 챙기려면 최대한 좋게 좋게 푸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긴 한데.’
무엇보다 최선의 경우라도 승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그때까지 활동이 거의 전면 중단….
‘잠깐.’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쭉 올라온다.
‘……그럼 투어는?’
못 한다.
“…….”
야, 이 새끼들아…!
투어 못 하면 난 뒈질 수도 있다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더니, 졸지에 돌연사 위협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 * *
박문대가 혼란에 빠진 사이, 인터넷에서는 그가 의식을 차렸다는 속보가 속속들이 뜨는 중이었다.
[(속보) 테스타 박문대, 의식 되찾아] [박문대 의식 돌아와… “팬들의 간절함이 닿아”] [교통사고 테스타, 18일 만의 혼수상태 회복]-방금 기사들 뭐야
-진짜야?
-이거 정말이에요? (링크)
-제발 아 제발
팬들은 혹시 또 다른 오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진정하려 했으나, 다행히 첫 속보 이후 30분 만에 소속사에서 인정 기사가 떴다.
[T1 스타즈 “테스타 박문대 오후 2시경 의식 회복 맞다”]그리고 나서야 온갖 SNS와 커뮤니티, 댓글 창에서 축하와 안도, 눈물의 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꿈일까 봐 무섭다
-어떡해 진짜 눈물이 안 멈춤
-문대야 18일을 싸워서 돌아와 줘서 고마워 네가 뭘 하든 응원할게 정말로
-이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2주년 기념일 박문대 사진)
-사랑해 문대야! 24살의 너를 30살의 너를 40살의 너를 계속 응원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ㅠㅠ
안타까운 사고로 죽을 뻔한 어린 연예인이 살아 돌아온 것이기에, 당장은 대중들의 반응도 따듯하기 그지없었다.
-이대로 떠나긴 참 아까운 청년이라 새 기회를 받았나 봅니다 건강히 회복하여 멋진 노래로 한국을 빛내길~~
-진짜 잘 됐다 팬도 아닌데 너무 안타까웠음ㅠㅠㅠ
-ㅊㅋㅊㅋ 잘 살길
-18일 만에 의식 회복한 거임?ㄷㄷㄷ 대박
이런 극적인 순간에는 악플도 도저히 기를 못 폈다.
-이것도 곰머님 설계 아니냐 사실 첫날 정신 차렸는데 언플 했을 확률은?ㅋㅋㅋ
└까질에 정신이 나갔지
└이런 걸 두고 선 넘는다고 하는 거임
-그래도 한동안은 활동 못 하겠지 그걸로 만족해야겠다
└놀라운 인성
└18일 혼수상태였던 23살짜리도 까는 K-악플러
-ㅋㅋ난 얘 별로던데 인터넷만 난리네 내 주변은 언급도 없음
└죄송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긴 하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분위기가 잦아든 다음에는 무슨 꼬투리를 잡을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은 다들 행복하게 가수와 팬을 축하했다.
그래서 며칠 후, 배세진이 인권위에 제출한 내용은 감동과 훈훈함 속에서 갑자기 터졌다.
[엔터테인먼트사의 그늘… 테스타 교통사고의 진실 밝혀지나] [‘사내 인권침해 사례 잇단 접수’ T1 스타즈 인권위 진정]-???? 이거 뭐임
-와우
-ㅋㅋㅋㅋㅋㅋㅋㅋ와 티원 미쳤나
그래서 사태는 상당히 재밌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더없이 행복한 소식 뒤에 터진 폭로였기에, 얼결에 연달아 좋은 소식으로 취급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X소 다 털리네ㅋㅋㅋㅋ
-정의 구현 가자!
결국 여론은 피로해지기 쉬운 울분 대신, 완벽한 해피엔딩에 대한 열망 쪽으로 감정 노선을 잡았다.
일명 사이다 메타.
배세진의 1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