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3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4화
배세진은 퀭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일부러 불안을 부추기는 기사들은 대부분 회사에 의해 내려갔다.
아니, 적어도 회사는 그렇게 주장 중이었으나, 배세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냥… 이미 올라올 만큼 올라와서 그런 거 아니야?’
회사에서 사고의 내막을 아예 막아버렸으니 더 우려먹을 게 없어서 기사도 시들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 회사는 전 매니저와 관련된 이야기를 언론에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기사에는 그냥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전 매니저의 운전 소홀로 인한 사고’로 보도되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배세진은 손을 꽉 쥐었다.
일부 멤버들이 이를 악물고 집요하게 실무진들을 추궁한 결과, 그들도 전 매니저가 침입한 경로를 알았다.
-공연 업체 쪽에서 매니저 바뀐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들어서… 낮에 다른 일 보고 온 줄 알고, 통과시킨 거래요.
-…!!
그러니까 이 사고는… 전 매니저를 해고했다는 사실을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고지 못한 회사의 탓도 있던 것이다!
본인들도 그걸 아니까, 본사에까지 요청해 필사적으로 언론 입단속 중이라는 걸 배세진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금도 회사는 관리인력 소홀이라며 전방위로 비난을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실관계가 더 명확해지면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테니, 최대한 사건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럴 시간에… 박문대 회복에나 신경 쓰라고.’
물론 기대도 없었다.
만일 몇몇 멤버들이 회사에 강력히 반발하지 않았다면, 슬금슬금 6인 체제 활동이나 언급했을 테니까.
‘역겨워….’
배세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배세진은 그룹을 사업 밑천으로만 보는 천민자본주의적 시선에 완전히 질렸다.
자기들 일이 아니니 소속 연예인의 일정에 대해 안전불감증처럼 구는 것도.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봐서 질릴 지경이다.
‘이 업계에서 이런 사고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왜 매번 똑같은 일이 반복된단 말인가.
이래서야, 제도권 안에 있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빼면…… 전 소속사와 다를 게 없다.
배세진은 입을 막은 손이 허옇게 되도록 힘을 주었다.
‘…더 제대로 된 소속사를 찾아야 해.’
분명 괜찮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인륜을 지키는 소속사도 있을 것이다.
그래야 했다.
‘3년만 버티면….’
배세진은 그대로 끝도 없는 의식의 흐름에 빠져들 뻔했다. 하지만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박문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
배세진은 힘없이 스마트폰을 든 손을 떨구었다.
어차피 무슨 계획을 세우든, 이런 일에서는 박문대가 있어야 제대로 돌아갈 거란 사실도 안다.
‘무슨… 한평생 그것만 하고 산 것처럼 처리하니까.’
배세진은 그런 초인적인 또래는 처음 보았다.
그 빛나는 재능, 자신감, 담대함. 그것만으로도 하늘이 내린 엔터테이너로 보이는데… 심지어 사회생활까지 능숙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당시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적도 있으나, 데뷔 후에는 그럴 것도 없었다.
비교할 마음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큰소리친 적도 있으나, 아득했던 것도 사실이다.
‘박문대가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기나 할까 싶었지.’
실제로 배세진이 도와주기 위해 했던 일도 마음만 앞서서 어설프기 그지없었다고, 본인은 스스로 냉정히 평가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배세진이 움직여야 했다. 뭔가를 해내야 했다.
박문대는 깨어나지 못하고, 다른 멤버들은 다쳤거나 심신이 지쳐서 평소와 같은 기량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그랬어.’
그는 과거, 언제나 심신이 고단하고 예민한 상태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건…….
배세진, 자신이었다.
“…….”
배세진은 입을 막던 손을 뗐다.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하자.’
배세진은 스마트폰을 들어서 어딘가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어!’
배세진은 이를 악물고 전송을 꾹 눌렀다.
이게 효과적인 선택일지는 그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옳았다.
“……후우.”
배세진은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리고 팬이 선물한 햄스터 무늬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며, 침착하려 애썼다.
그때였다.
[♬♪♩~ ♬♬♪♪]“…!”
전화가 왔다.
배세진은 허겁지겁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선아현 동생
배세진은 숨도 쉬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
전화기 너머에서 흥분한 목소리 여럿이 울렸다.
“…….”
침착하게 기다리던 배세진은, 결국 완성된 문장에 아연실색했다.
“…! 자, 잠깐, 잠깐! 금방…!”
배세진은 더듬거리다가, 문장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심장이 뛰었다.
* * *
넥타르(S)를 활성화한 후.
갑자기 시야가 하얗게 변하더니, 어느새 정신이 아무것도 없는 허연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아니, 이건 부유라기보단… 어딘가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다.
‘꿈으로 들어올 때와 정반대인가.’
그때는 온통 시커멓게 변하더니.
대충 속 편히 생각하자면, 깨어나는 중이라고 짐작하고 싶다.
나는 팔짱을 끼려다가, 딱히 몸의 형태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꽤 오래되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 순간.
새하얀 공간에 색이 들어왔다.
‘…!’
아니, 색이라기보단 파동이다.
저 멀리서부터.
마치 감정이나 생각처럼 추상적인 것들을 감각화한 것 같은, 묘한 충격들은 다가와서 내 위를 덮쳐왔다.
피이잉-.
‘…!!’
전신이 울리는 듯, 강렬한 경험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처음 인지한 것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박문대의 홈마스터였다.
데뷔 전 프로그램 시절부터 박문대의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다.
그녀는 박문대의 교통사고에 대한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스마트폰만 계속 붙들고 있었다.
울지도 못했다.
그리고 새벽 3시.
스마트폰에 뜬 박문대의 수술 기사를 확인한 뒤에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
-많이 기도해주세요 제발
액정에 떨리는 손톱이 부딪혔다.
이게 대체 뭐지.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남매였다.
이미 눈이 시뻘겋게 퉁퉁 부은 누나 쪽은 인터넷에서 테스타의 교통사고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과 살벌하게 싸우고 있었다.
동생은 평소처럼 시비를 걸거나 장난을 치는 대신 누나의 옆에 앉아서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그리고 턱도 없는 인터넷발 의학지식을 주워섬기며, 박문대가 괜찮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이야기를 슬쩍 던졌다….
파동이 뜨거웠다.
속보를 본 대학원생은 랩실 한쪽에서 커피를 뽑다가 커피를 엎질렀다.
그리고 바닥이 엉망이 된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목놓아 엉엉 울었다.
주변에서 달려온 랩실 동료들은 당황했지만, 곧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걱정해 주었다.
내심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으나, 뒷담을 할지언정 지금은 무심코 위로할 만큼 강렬한 슬픔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질 않았다.
이세진과 박문대를 함께 찍는 한 직장인 홈마스터는 테스타의 교통사고 소식에 ‘아직도 배운 게 없다’며 업계의 관행에 혀를 찼다.
하지만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몸 상태를 핑계로 다음 날 직장에 연차를 낸 채 박문대의 소식을….
왜 이런 게 쏟아져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다.
인생 처음으로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왔던 사람.
다양한 아이돌을 거친 끝에 박문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 ‘5월의 신랑’을 좋아하던 사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박문대를 응원한 뒤 잠시 잊고 살던 사람. 테스타의 다른 멤버를 좋아하다 박문대도 호감으로 생각하게 된 사람.
박문대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걱정하는 사람, 앨범을 대량 구매해 박문대의 포토카드를 전부 모아 꾸며놓은 사람…….
피이잉-.
테스타의 박문대를 알고 있는 온갖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이 여름밤 시골 밤하늘 별처럼 사방에서 반짝였다.
수많은 걱정이, 슬픔이, 생각이, 그 복잡다단한 마음과 단순하고 강렬한 감정들이 심장을 꽉 채웠다.
그리고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
어떻게 직접 사귀지도 않은 사람들과 이토록 연결되어 있다는, 강렬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
나는 무심코 생각했다.
‘박문대는 나인가?’
아니, 이 질문은 맞지 않았다.
‘테스타의 박문대… 그 아이돌은 내가 맞는가.’
자신의 본명을, 자신의 살아온 신분과 생김새를 바꿔 활동하는 연예인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그 연예인은 TV 속 자신을 보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박문대는 ‘5월의 신랑’처럼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에 불과한 걸까.
‘…아니.’
그건 아니었다.
박문대가 나 자체, 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내 일부였다.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은… 전부 고스란히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나와 공유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정의는 맞았다.
이들은… 그거다.
-내가 깨어나길 바라는 사람들.
‘…….’
압도당할 것 같았다.
그 모든 감정, 생각이 파도처럼 내 머리 위를 덮고, 젖은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다.
새하얀 공간은 어느새 온갖 색으로 물들어 색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처럼 짠맛이 났다.
황홀했다.
감미로운, 삶의 맛이었다.
나는 그대로 빛깔 속으로 빨려들어 상승했다.
저 위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넥타르(S)]-활성화 성공!
* * *
“허억!”
나는 숨을 토해내듯 뱉었다.
진흙에 빠진 것처럼 사지가 둔했다.
하지만 공기가 죽이도록 달았다.
‘…낮인가.’
너무 오래 눈을 뜨지 않았던 탓인지 시야가 흐릿했다.
하지만 귀는 멀쩡했나 보다.
“박문대!!”
“무, 문대…!!”
이 목소리들은 잘 알아듣겠다.
이놈들은 자기들 치료나 제대로 받을 것이지, 대체 남의 병실에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래도, 고맙긴 하군.’
나는 귀가 떨어질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어깨와 머리에 쏟아지는 손들을 감내했다.
아주 기꺼웠다.
내가 시야를 회복하며 의료진들이 내 몸에 부착한 장치들을 제거한 것은 잠시 후였다.
놀랍게도 여섯 놈이 다 병실에 있었다.
‘1인실이 좋긴 하군.’
다 큰 놈들 7명이 다 들어오고도 운신할 구석이 남아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 상황의 이유는… 마침 문병을 왔던 놈들이 뭘 목격했던 모양이고.
“무, 문대가 자, 잠깐, 눈을 떴던 것 같아서… 호, 혹시 모르니까 불렀어. 으응, 의료진분들께도 연락, 연락하고….”
“그래…. 고마워.”
“아, 아냐…!”
그러다 내가 안 깨어났으면 어쩌려고 그랬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나도 대가리가 있지.’
눈물 콧물 짜는 감동과 축하의 도가니탕에서 산통 깰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니까.
대신 최대한 온화하게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던 중이었다.
코가 벌게진 놈이 외쳤다.
“문대문대, 멜론 먹을래?? 당도 최고잖아~”
“어, 그래.”
역시 눈이 다르군. 나는 새삼스럽게 큰세진 놈을 훑어보았다.
“…어, 문대 설마 새삼 참 진실한 친구를 둬서 감탄 중인 거야~?”
“비슷해.”
“…!”
저 개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군.
현실로 돌아온 느낌 말이다.
큰세진은 얼떨떨한 얼굴로 날 보다가, 이내 한 팔을 극적으로 치켜들어 얼굴을 가리고 흑흑 소리를 냈다.
“너무 감동적이야!”
저거 진짜 울면서 일부러 우는 척하는 중인 것 같은데, 내 상태가 정말 심각하긴 했었나 보군.
‘일단 아까 봤던 장면들을 생각하면, 수술은 확정이고….’
의료진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뻔한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특별히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사실 몸 상태가 그렇게 쓰레기 같지도 않다. 그래서 혹시 ‘넥타르’를 활성화한 덕에 이렇게 멀쩡한 건가 싶었는데 말이다.
‘…설마 그냥 가만히 있었어도 회복할 상처였나?’
어쩌면 내가 괜히 오버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돌아왔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난 지금 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환자 특식으로 제일 먼저 받은 멜론을 먹으며 상황을 파악하려 머리를 굴렸다.
아직 의식을 회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좀 둔했다.
그러다가 보았다. 멜론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릴 것 같은 차유진을.
“……줘?”
“괜찮아요! 형 많이 먹고 힘내야 해요!”
씩씩하군. 처음에 내 목을 거의 조를 듯이 환영해 주더니 여전한 모양이다.
그리고 김래빈은 참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일단 우느라 바빠 보였으니 내버려 두고.
지금 대화할 건….
“그러고 보니, 지금 며칠인가요. 사고 낸 전 매니저는 어떻게 됐고.”
“…!”
이걸 대답해 줄 사람인데.
“…박문대.”
“아, 네.”
의외로 배세진이 굳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일단… 그 전에 이 이야기부터 들어.”
“예.”
배세진은 심호흡을 하더니,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회사가… 그, 전 매니저 이야기를… 제대로 말 안 하려고 했거든.”
“아.”
거기까진 대충 예상했다.
‘그건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고.’
중요한 건 운전대 앉았던 그 새끼가 지금 콩밥 처먹을 준비가 끝났냐는 점이다.
하지만 배세진은 한 손을 불끈 쥔 채 상상도 못 한 말을 꺼냈다.
“그래서 인권위에 익명 제보했어…!”
“…??”
“지금까지 일을 전부!”
“…?!”
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