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3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3화
김래빈은 한 손에 든 상자를 고쳐 잡으며 병실 복도를 걸었다.
다른 쪽 팔은 아직 반깁스 중이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신중히 움직여야만 했다.
김래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상자를 놓치는 등의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 돼!’
그래도 사고 이후 병원 주변에서 바글바글 대기 중이던 수많은 언론 관계자들의 수가 제법 줄었기에, 여기까진 수월히 진입할 수 있었다.
충격적이던 교통사고 보도 이후 시간이 제법 흘렀기 때문이다.
‘혼수상태에서 수술 회복 중’이라는 타이틀이 열흘 이상 지속되자 그들은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났다.
하루걸러 하루꼴로 사건이 터지는 연예계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온갖 비관적인 추측 기사, 칼럼, 팬들의 걱정과 분노가 소용돌이치며 인터넷은 아직도 아비규환이었다.
그리고 김래빈은 이런 것을 어쩌다 가끔 검색엔진 메인에서만 확인할 뿐, 세세한 반응을 자세히 살펴볼 지식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팬들이 공식계정에 다는 댓글을 토대로 간단한 사실관계만을 이해했다.
‘다들 문대 형이 깨어나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어.’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김래빈!”
“…! 병원이잖아, 조용히 해!”
옆 병실에서 뛰쳐나온 차유진이 목발을 현란히 사용하며 무서운 속도로 김래빈을 쫓아왔다.
그는 김래빈보다 더 큰 뼈를 다쳐 부상이 심해 아직 입원 중이었다.
“문대 형 보러 가?”
“…응.”
“나도 갈래.”
차유진은 꿋꿋이 대답하며 김래빈을 따라 속도를 맞춰 걸었다.
수술 당시에 펑펑 울며 스페인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기도를 올렸던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평정심이었다.
‘차유진은 멍청해서 좋겠다.’
김래빈은 짧게 차유진을 부러워하다가, 다시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박문대의 병실은 바로 근처였다.
“형.”
“저희 왔습니다.”
“으응, 어, 어서 와….”
병실 안, 석상처럼 조용히 앉아 있던 선아현이 얼른 일어나더니 작게 대답했다.
“문대 형 편안해요?”
“…응, 불편한 곳은, 어, 없을 거라고 그러셨어.”
“알았어요!”
차유진은 씩씩하게 침대 옆에 앉더니, 의식 없는 박문대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열심히 근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팬들이 종이 확? 새 보낸다 해요. [신기해요. 어느 나라든 비슷한 이야기가 있나 봐요. 어쨌든, 형의 완쾌를 바란다니까 좋죠?]”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중론이었으나, 묘하게 희망을 주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멤버들은 차유진을 말리지 않았다.
“다른 형들께서는 이미 왔다 가신 모양입니다.”
“…아, 아까, 회사에 갔어.”
“그렇군요.”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유진의 차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가져온 것은 무척 중요한 소식이었기 때문에, 차유진의 말소리와 물리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끈질기게 오래 떠들어대는 차유진을 보며 ‘면회 시간을 중복된 이야기로 낭비하지 마!’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병실에선 정숙해야 하니까!’
그 대단한 문대 형 앞에서 양식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김래빈은 자신을 타일렀다.
그리고 결국 차유진과 투닥거리는 일 없이 조용히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형, 안녕하십니까…….”
물론 누워있는 박문대에게선 대답은 없었다.
김래빈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머니 때가 생각났기 때문일지도 몰랐으나, 어쨌든 본인은 그냥 꾹 참았다.
“제, 제가 준비해 온 것이 있습니다.”
그는 침착하려 애쓰며 상자를 들어 열었다.
상자 안은 꽉 차 있었다.
온갖 선과 음표가 그려진 종이 여러 장과 아이코닉한 소품들, 그리고… 노트북.
조용히 서 있던 선아현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건….”
“…다음 앨범 컨셉 자료입니다.”
김래빈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마시고 편하게 일어나주시면 됩니다!”
그가, 퇴원하자마자 한 일이었다.
“…….”
차유진까지 할 말을 잃고 김래빈을 보았다.
사실,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박문대가 당장 깨어난다고 해도 재활과 복귀가 당장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박문대가 의식을 되찾지 못한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본격적인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래빈은 마치 당장에라도 가능한 것처럼 다음 활동을 구체적으로 ‘준비’해 온 것이다.
잠들어서 보지도 못하는 박문대에게 보고하기 위해.
‘알아.’
김래빈은 생각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예상하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간 소비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어.’
할머니도 깨어났으니, 분명 문대 형도 곧 깨어날 것이다.
“준비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김래빈은 논리적이지 않은 확신을 되새기며 상자를 들고 씩씩하게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옆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아요!”
“…!”
“형 일어나서 우리 또 콘서트 해요! 많이 해요!”
“그, 그래! 문대야, 준비할게…!”
차유진에 이어, 풀이 죽어 있던 선아현까지 자극을 받았는지 뜨던 털실을 꾹 부여잡고 외쳤다.
다른 누군가가 여기 있었다면, 이게 무슨 청승인가 싶어 혀를 찼거나 안쓰럽게 보았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들은 꿋꿋했다.
“…….”
물론, 여전히 박문대는 대답이 없었다.
현실은 만화가 아니었기에 혼수상태에 빠진 이가 동료의 부름으로 깨어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박문대가 없는 미래 계획을 세우는 대신, 그렇게 선택했다.
그리고 잠든 박문대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오고 있었다.
* * *
내가 연타한 상태창의 ‘Click’ 문구는, 현실에서처럼 번쩍 빛나며 새로운 팝업을 불러왔다.
이제 익숙해진 슬롯머신 그림.
레버를 당기자… 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칸들 사이사이, 간혹 보이는 백금빛 칸들.
그러나 그 칸들은 현실에서처럼 온갖 낯부끄러운 문구들로 채워지지 않았다.
모든 칸은 비어 있었다.
“…….”
하지만 나는 그냥 칸이 멈추길 기다렸다. 턱 끝에서 식은땀이 떨어졌다.
천천히 돌아가던 슬롯이, 정지하는 순간.
파팡!
[슬롯머신 대성공!]: 전설 특성을 뽑습니다!
백금빛 빈칸에 도착했다.
[특성 : ______________ 획득!]팝업의 공란이 적나라했다. 마치 아무거나 채울 수 있다는 듯이.
‘꿈이라서 그런 건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백금빛, 전설 특성.
‘A등급이다.’
내가 아는 A등급은… 뭐가 있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번뜩이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바쿠스… 1000으로.”
나는 손을 들어 예를 쳤다.
A등급으로 올라간 바쿠스1000에 붙은 추가 효과는….
-모든 피로 회복 속도 +100%
그렇다면, S등급으로 올라간다면?
[동일 특성 확인!]‘바쿠스1000(A)’를 합성하시겠습니까?
그래.
그 순간, 눈앞에서 폭죽처럼 색색의 빛이 터졌다.
그리고 팝업이 번뜩이는 무지갯빛으로 갱신되었다.
[합성 성공!]‘넥타르(S)’ 획득!
감미로운 삶의 맛
-생명력 완전 회복 (1회용)
“…!”
이거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해냈다.’
맞는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어느새 일어서 있었던 몸이 휴식을 달게 빨아먹는다.
긴장이 풀리며 사지가 후들거리는데, 풀리지 않은 의문들 때문에 머릿속까지 진탕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돌아갈 수 있다.’
저걸 활성화하는 순간, 내 몸이 완전 회복을 진행하며 깨어난다는 건 딱 틀이 맞아 들었다.
현실 대신 이 꿈속 ‘류건우’ 몸이 회복될지 모르는 가능성… 아니, 닥쳐라. 그럴 일은 없다.
‘여긴 상태창이 애초에 안 먹혔어.’
게다가 원래 내가 ‘박문대’의 몸으로 현실에서 가지고 있던 특성과 합성되었지 않은가.
이건 무조건 현실 몸 대상이다.
머릿속이 짜릿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초조해졌다.
‘상태창이 다시 비활성화되기 전에 얼른 해야 해.’
이 망할 꿈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나는 팝업에 떠 있는 특성, ‘넥타르(S)’를 곧바로 활성화하려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돌아가자.”
“벌써?”
“…!!”
…고개를 돌리자, 스케줄이 있다며 돌아갔던 놈이 연습실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청려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기 태세를 갖추었다. 변명은 많았다.
“더 연습이 될 것 같지도 않으니 돌아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거짓말.”
놈이 연습실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지금 바로 누르면….’
잠깐, 허공을 누르는 동작에서 위화감이 들면 이 미친 새끼가 공격할 수도 있나?
내가 빠르게 손익을 따지는 사이, 청려는 내 맞은편에 섰다.
그리고…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연다.
“음, 생각보다 근성이 없는데.”
“뭐라고?”
“3번째라면서요? 이 시기에 겨우 이런 일로 재시작하려는 건 다소 섣부른 선택 아닌가 해서요.”
“…….”
아, 그 이야기였나.
하긴, 이 새끼가 이게 내가 혼수상태에서 꾸는 꿈이라는 걸 알 턱이 없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식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한결 수위를 낮추어 대꾸했다.
“재시작 안 합니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 말이 심각하게 나왔는데, 진짜 숙소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들어요.”
씨알도 안 먹히는군.
놈은 내가 재시작을 마음먹었다고 확신하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일단 지금 후배님이 모은 둘은… 다루기 애매한 상태던데. 매번 협조적이진 않을걸요. 이번에도 봤죠?”
“…….”
“앞으로는 한 달 정도 두고 본 후에 합류를 결정하는 게 좋겠어요. 이번엔 좀 성급했던 것 같아요. 직전에 제법 좋았나.”
“맞아요.”
나는 웃었다.
“그냥 같이하고 싶어서 고른 겁니다.”
“…!”
청려는… 오묘한 얼굴이 되었다.
까마득한 과거가 불쑥 치고 나오기라도 했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뭐, 초반이니까 한두 번은 그래도 상관없나.”
“…….”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뒤, 일부러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래도 만일 제가 재시작하면, 애들 데뷔는 시켜주시죠. 좋은 정보 여럿 드리고 가겠습니다.”
“음, 저 둘을요?”
“영 별로라면서요. VTIC에 위협이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청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긍정이란 뜻이군. 이러면 별문제 없을 시, 내키면 해줄 확률이 꽤 된다.
나는 차분해진 놈을 내보내다시피 하며 배웅했다.
그리고 놈에게 몇 가지 예약 메일을 걸었다.
[202X년 8월.txt]2주 간격으로 도착할 미래지식.
그리고… 배세진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도박장을 검찰에 찔렀다.
-마약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불법 도박장입니다. 반드시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여기 더 있을 것도 아니니, 신고자가 나로 밝혀져도 상관없으니까.
‘…이걸로 조금은 나아지겠지.’
마지막으로는 선아현 부모님께 현실에서 선아현의 현재 담당일 상담사의 병원 연락처를 검색해 보냈다.
-제가 상담받았던 선생님인데, 크게 도움받았습니다.
탁.
다 끝낸 뒤 스마트폰을 닫으니, 어쩐지 개운했다.
‘…남은 건 없나.’
그때였다.
“오~ 청려 선배님이랑 친해?”
고개를 돌리니, 스마트폰 보며 나갔던 녀석이 도로 연습실에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팝업을 잠깐 돌아보다가, 이세진에게 대꾸했다.
“…없진 않지.”
“그래?”
“어, 근데 널 소개해 줄 일은 없어.”
“…!”
“저 새끼 미친놈이거든. 앞으로 조심해라.”
“…뭐?”
놈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이었다. 간만에 보는 인간적인 얼굴이다.
“…….”
아마 내가 나가는 순간 이 망할 꿈은 다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다 자기만족일 뿐이지만, 뭐 어떤가.
나는 닫았던 스마트폰을 다시 열고, 놈에게 빠르게 말했다.
“그 새끼 대신 작곡가 소개해 줄 테니까, 잘 들어라. 데뷔하면 유용하게 쓰고.”
“뭐라고?”
나는 다짜고짜 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 무명일 한 작곡가의 연락처였다.
지이이잉!
진동이 요란했으나, 이세진은 얼빠진 얼굴이다.
“자, 여기로 연락해서… 샘플을 쭉 들어본 뒤에, 3번이나 7번을 골라. 그게 잘 될 테니까.”
“…갑자기 무슨,”
나는 피식 웃었다.
“사실 그냥 들어도 너도 그걸 고를 것 같긴 한데. 한번 말해본 거야.”
“…!”
현실의 네가 그랬으니까.
이세진의 눈은 당황이 역력했다. 그리고 말을 고르듯이 얼굴을 한 손으로 문지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 고맙긴 한데,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거든. 좀 진정한 다음에 이야기하지? 아니, 선배님은 왜 미친놈이고….”
한 꺼풀 벗겨진 꼴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풀어졌을지도 모르겠군.’
어쩐지 좀 유쾌했다.
나는 놈을 잠깐 보다가, 등을 돌려 문을 향했다.
“저기, 잠깐.”
“또 보자.”
현실에서.
여기서 할 일은 이제 없다.
나는 한 손을 뒤로 흔든 뒤, 거침없이 연습실을 돌아 나왔다.
팝업은 여전히 내 시야에 떠 있다.
[‘넥타르(S)’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경고※ : 소모형 특성 / 1회용)]“그래.”
그리고, 시야가 새하얗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