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4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6화
예능 제작은 예상보다도 술술 풀렸다.
적당히 무인 카메라만 설치하고 위튜브에 에피소드 형식으로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본사가 이야기를 들었는지 바로 연락해 왔다.
-마침 CVN에 자리가 하나 났다는데 그쪽으로 가시는 건 어떠세요?
알음알음 알아보니 웬 드라마가 출연진 문제로 2주쯤 펑크가 난 것 같았다. 그 자리에 꽂아주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제안은 아니다.
“생각보다도 저자세던데요.”
“음.”
“그러게~ 눈치 좀 보시네!”
다른 놈들의 판단도 비슷했다.
누가 봐도 테스타와의 원활한 관계 회복을 위해 굽히고 들어오는 전략이다.
다만 배세진은 미끼성 회유책 같다며 탐탁지 않아 했다.
“이거 먹고 입 닦으라는 것 같잖아. 가수 활동도 아니고, 예능으로…!”
그것도 진실일 수 있겠지만, 그 의견을 강력히 주장하지는 못했다.
“물론… 소송 안 하기로 했으니까, 받아도 상관없겠지만.”
소송을 안 하기로 결론이 나왔으니까.
“아, 형. 그거 말인데요.”
“어?”
“소송용으로 각자 모은 자료, 취합해서 좀 정리해 보려는데 괜찮을까요.”
“그, 어! 상관은 없지만… 왜?”
“확인해 보고 싶은 점이 있어서요.”
“…?”
배세진은 의아한 눈치였으나 순순히 자료를 넘겼다.
그리고 나는 약간 놀랐다.
‘…판례를 다 찾아봤군.’
전 매니저와의 상황부터 법적 자문까지.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꼼꼼히 모은 흔적이 역력한 자료였다.
여기에 내가 녹음했던 통화 내역과 문자 내역을 더하면 정말 그럴싸한 소송자료가 될 만했다.
나는 인정했다.
‘대단한데.’
배세진에게 기회만 주어졌다면 진짜 승소했을 수도 있겠다.
최소 1년이 넘게 소요되고 승소하더라도 업계 분위기상 우릴 받아줄 소속사와 주류 방송이 없어서 문제겠지만.
정말 배세진 말대로 이런 승소 케이스가 쌓인다면 분위기도 바뀌겠지.
“어, 어때.”
나는 솔직한 답을 내놓았다. 이 노력과 집중력의 증거는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
“사실 다른 방향으로 소송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나 생각 중인데요.”
“…! 그런 게 가능해?”
“저도 고민 중이라 확신은 없는데… 형이 준비하신 자료가 워낙 좋아서요. 제 생각이 정리되면 형에게 좀 상담받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당연히 괜찮지!”
배세진은 말한 다음에 약간 머쓱 해하는 것 같았으나, 어쨌든 기분은 다소 나아진 것 같았다.
‘…정리를 더 해봐야겠군.’
나는 일단 그것을 스마트폰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소송 관련 이야기는 넘어가고, 어쨌든 본사의 제안은 냉큼 받았다. TV 편성 좋지.
그리고 전문 예능 인력들이 급속히 붙으면서 규모가 뻥튀기되었다는 점은… 무작정 긍정적인 일인지는 약간 모를 일이다만.
당장 급조된 첫 미팅에서 나온 말이 이거다.
“저희가 섬을 하나 섭외했는데요!”
“…예?”
“에이, 전국 어딜 가나 테스타 팬분들이 있잖아요~ 약간 극성스러운 분은 따라오실 수도 있고!”
제작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화면에 자료를 띄웠다.
“그래서 아예 다른 예능에서 쓰던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길 통째로 잡았어요.”
듣기로는 웬 부자의 개인 소유 섬인데, 별장을 제법 멋지게 지어뒀다고 하더라.
게다가 올해 초에 무슨 탈출 예능을 진행한 적이 있어서 방송 관련 시설도 제법 구색을 갖춘 곳이라고 한다.
덕분에 부족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딱 적당하죠? 테스타 분들끼리 자연환경에서 편하게 즐기는 그림에 어울릴 거에요.”
제작비 내에서 어렵게 해결 가능했다며 뿌듯해하는 제작진을 두고, 멤버들은 약간 당황했다.
‘이거 쉬는 분위기는 낼 수 있으려나.’
스케일이 너무 커져서 각 잡고 일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단호했다.
“노세요! 편하게 노세요!”
“어,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힐링 예능에서 스토리, 방송 분량 이런 건 편집에서 알아서 하는 거죠!”
굉장히 자기 주도적인 제작진이었다.
“하고 싶은 거 다 말해보세요! 요트? 마사지? 요가?”
“대게 먹어요!!”
“대게 좋다!”
그리고 제일 먼저 차유진이 넘어가더니, 어느새 한 놈 한 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성토하는 장이 된 것이다.
캠프파이어, 수영, 명상, 등산까지 나오더니, 결국 나한테도 질문이 돌아왔다.
“문대 씨는요?”
“저는… 글쎄요. 요리를 해볼까 하는데.”
대중 컨텐츠로도 적당하고, 실제로도 못하는 편은 아니니까 볼만 할 것이다.
다만 제작진 입장에서도 요리는 당연히 기본으로 넣을 생각이었나 보다.
“그건 자연스럽게 하게 되니까~ 뭐 쉬시면서 특별히 하고 싶으신 건 또 있을까요?”
차유진이 끼어들었다.
“문대 형 사진 잘 찍어요! 최고예요!”
“오~ 그럼 같이 사진 찍으러 섬 돌아다니시는 것도 좋겠네요!”
활동량이 절찬리에 늘어나고 있군.
나는 최대한도의 실내 생활을 기획하던 마음을 접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일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촬영 첫날.
“……?”
“진짜 이게 끝이야?”
제작진은 우리를 무인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된 근사한 별장에 방사했다.
말 그대로, 어떤 지시도 터치도 없이.
“어… 음, 게임 같은 거 없나?”
“미, 미션이라도 주실 줄 알았는데….”
없었다.
그냥 해변과 산, 들꽃길이 절경인 섬의 큼직한 3층짜리 별장에 7명이 들어갔을 뿐이다.
“…….”
“…….”
거실에 슬그머니 앉아 있던 놈들은, 곧 상황을 이해했다.
“진짜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구나.”
“와, 이런 거 처음인데요?”
그리고 곧 본분대로 신나서 별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와, 여기 방 좋다!”
“2인 1실이 기본… 아, 여기는 3인이 함께 잘 수 있는 방 같습니다!”
“정말 커요!”
“…문대야 뭐 하니?”
“수압 확인이요.”
별장 건물은 좋았다. 이 외딴 섬에 대체 이걸 어떻게 지어서 유지 중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가스와 수도관이 완비되어 있었다.
‘옥상에 물탱크라도 있나.’
어쨌든, 방송이라 1인 1실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정말로 요양하기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테스타를 위한 웰컴 푸드 *^^*]주방에는 심지어 꽃목걸이와 이런 카드가 올라간 간식 바구니까지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식재료도 완비 상태.
‘대단하긴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영상은 하나도 재미없을 것 같았다. 나는 큼직한 삼계탕용 오골계가 들어 있는 냉장고를 조용히 닫았다.
“저는 까만 닭 먹고 싶어요! 같이 요리해서 먹어요!”
“그래.”
“Yeeeees!”
차유진이 제일 신났군.
어쨌든, 한바탕 집구경을 마치고 나니 이젠 이 별장 밖이 궁금한 놈들이 밖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설마 축사야?”
“맞는 것 같은데요.”
“문대문대, 저거 봐! 그 탈출 예능! 거기서 썼던 세트장 틀인가 봐~”
“신기하네.”
컨테이너를 아직 철거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주인이 놔두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송 로고가 달린 벽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뭐, 한 사흘째 즈음에 할 일 없으면 구경삼아 들어가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같은 방송사니 홍보도 되고 좋아하겠지.
‘솔직히 사흘만 버텨도 신기할 것 같은데.’
여기서 세끼 밥 말고는 뭐 할 게 있냔 말이다. 하루 이틀 섬 탐방하고 나면 할 게 없어질….
“형. 그건?”
“아, 등산하기 좋을 것 같아서.”
“…….”
저건… 요리 담당으로 회피해야겠군.
나는 이런 산길이 제대로 닦이지 않은 곳은 위험하다는 등의 설득 논리를 떠올리며, 류청우가 챙겨온 7켤레의 등산화에서 시선을 뗐다.
“추, 축사에 병아리 있어…!”
“헐, 너무 귀여운데?”
그 후로는 대충 탐험 비슷한 분위기였다.
가장 먼저 가본 별장 바로 옆 축사는 닭과 병아리가 차 있었다. 모양새를 보니 이번에 지어둔 것 같았다.
병아리 보고 눈이 뒤집혀서 귀엽다고 소리 지르는 놈들은 됐고, 대충 역할은 짐작됐다.
‘계란 서리하라고 넣어둔 것 같군.’
이런 예능에 국룰 아닌가.
그리고 바닷가 좀 구경하고, 근처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좀 산책 겸 걷다 와서 간단히 식사 좀 했다.
메뉴는 제일 쉬운 김치찌개.
“밥이 미리 되어 있더라. 햄 통조림도 있고.”
“…찌개 맛있다.”
“음, 닭장에서 계란 좀 가져와 볼까요?”
이때쯤 되면 슬슬 감이 온다.
‘진짜 시골 요양이랑 다를 게 없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카메라의 존재도 거의 잊고 있었다. 심지어 산책하러 외출할 때도 사람이 아니라 드론으로 카메라가 따라왔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그림을 뽑으려고 이러나 싶긴 한데, 역시 컨텐츠는 별것 없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점심 먹고 적당히 식곤증이 올쯤.
띵-동!
뜬금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오~”
“드디어 미션이야?”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명상 클래스 신청하신 분들이시죠?”
“헉!”
“네, 네…!”
미팅에서 툭툭 요청한 것들이 실제로 입안에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명상 수업부터 아로마 마사지까지.
전문가들과 장비가 때마다 별장 앞으로 도착했다.
“선베드에 엎드려 누워주세요~”
“넵!”
“으허헉.”
이때 배세진이 안마받으며 죽는소리 내는 건 좀 웃겼을 것 같다.
어쨌든, 진정한 ‘테스타 하고 싶은 거 다 해’의 실현.
남이 호의호식하는 걸 또 방송에서 보는 게 지겹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대리만족은 될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안심은 된다.
게다가 최소한 선은 지키려는지, 집안일은 건 우리가 직접 해야 했다.
이건 그럴 만했다. 아무리 그래도 놀고 휙 나가는 그림만 나오면 보기 안 좋으니까.
7명이나 있으니 금방 끝나서 별로 거슬릴 것도 없었다. 생활력 없는 놈들도 열심히 하려고 하니 나쁘게 보이진 않겠지.
“저 요리 잘해요!”
“아니, 넌 요리는 못하고 짐을 잘 옮기니까 차라리 빨래를….”
“김래빈이 요리 못해요.”
“아냐! 난 지난 몇 차례의 요리 영상들에서 인정받았….”
이런 것도 컨텐츠로 써줄지는 모르겠는데, 뭐, 나온다고 해도 매번 저러니 불화설은 안 나올 것이다.
그렇게 꿀이 달달한 사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후암.”
“네 맘에~ 파팡파팡….”
슬슬 풀어진 놈들이 푹 늦잠을 자거나, 집 안을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등 카메라 없을 때나 할 법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제작진에게 연락이 왔다.
이것도 방송 그림을 생각한 건지 전화가 아니라 문자로 오긴 했지만.
“어? PD님이세요?”
“응.”
류청우의 스마트폰으로 온 문자에는 이랬다.
[기상환경이 악화된다고 합니다. 실내활동 위주로 안전에 유의해 주세요!]육성으로 그걸 한번 읽어준 큰세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흘간 쨍쨍했으니까.”
“그러게. 축사를 좀 보강해 둘까?”
검색해 보니 강풍 동반 비바람이라고 하기에, 우리는 축사를 보강하는 소일거리를 하며 그날 오전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콰콰콰과과광!!!
“와 씨!”
“소리 진짜 크네.”
실제로 들이닥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에, 혀를 내두른 놈들은 얌전히 실내에서 보드게임을 하며 보냈다.
그러나 다음 날.
콰과광!! 콰과과광!!
“…….”
“…여전히 오네?”
비와 강풍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거세졌다.
“문대문대, 저거 봐.”
창밖을 보자 해변에서 미친 듯이 파도가 들이닥치는 꼴이 보였다.
조금만 더 앞에 별장을 지었다면 이 안까지 물이 들어찼을 기세다.
[여러분 지금 도저히 배를 띄우거나 섬에서 도보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만 대기 부탁드립니다. 곧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PD의 문자에서는 웃음기가 쪽 빠졌다.
“으으음.”
“원래 오늘은 갠다고 했는데 일기예보가 틀렸나 봐요. 아이고야.”
그리고 수정된 일기예보 첨부를 보니, 적어도 모레까지는 이 꼴일 것 같았다.
‘망했군.’
벌써 이 방송의 미래가 보인다. 날 밝을 때 찍은 걸 어떻게든 많이 살리느라 루즈해질 꼴이.
물론, 방송 외의 다른 걱정도 튀어나왔다.
“다, 닭들에게 모이는 줘야 할 텐데….”
선아현의 그 말에, 차유진이 질문했다.
“우리 밥은 괜찮아요??”
“…!!”
“잠깐.”
나는 당장 계산했다.
원래 신선 재료를 보급해 주겠다던 텀이… 오늘이었다.
즉, 슬슬 물량이 달린다는 소리다.
“즉석 밥이랑 통조림은 있어. 그렇게 굶진 않아.”
“우우.”
차유진이 축 처졌다.
‘아니, 먹을 것뿐만 아니야.’
카메라의 녹화 용량을 갈아줘야 하기 때문에 가끔 방문하던 스탭의 방문도 끊긴 상태다. 전체적으로 모든 게 올스탑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이틀은 우리끼리 이 상태로 이대로 있어야겠는데.”
“…….”
“오…….”
할 말을 잃은 사람들 사이로, 김래빈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럼 저희… 사실상 무인도에 조난당한 거 아닙니까?”
“…!”
상상도 못 한 컨텐츠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