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4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5화
류청우와 각 잡고 이야기해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깨어나고 나서 처음인가.’
아니지. 깨어나기 전에는 그 망할 놈의 진실 확인 덕분에 적정 거리를 유지 중이었다. 좀 더 기간을 길게 잡아도 되겠군.
‘…그 진실 확인, 또 하게 생겼긴 하다만.’
나는 짧게 팝업을 떠올렸다가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직 시간은 있다.
아무튼… 깨어나고 난 후에는 이놈이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에 일부러 좀 내버려 뒀다. 경험상 이럴 때 긁으면 빡치더라고.
그래서 콘서트가 끝나기 무섭게 류청우 쪽에서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무알콜이라도 줄까?”
“…음, 예.”
나는 놈이 건네는 무알콜 캔맥주를 받아들었다.
딸깍. 꿀꺽.
캔 여는 소리와 얼얼한 목 넘김이 시원했다.
“……잘 마시는구나.”
“좀 그렇죠.”
미친 듯이 마시고 싶은 건 아니지만, 간간이 술 생각이 안 난다곤 말할 수 없겠다.
류청우는 맞춰주려는 것인지 예의상인진 모르겠지만, 본인도 무알콜 맥주를 하나 땄다.
그렇게 제법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담소가 시작되어, 본론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혹시 소송은 생각해 봤어?”
그래, 갑자기 잡은 콘서트도 끝났으니까 이 화제가 돌아올 때도 됐지. 나는 솔직히 대꾸했다.
“생각은 해봤는데… 솔직히 지금 반년 이상은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기세가 무너질 테니까.”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야.”
류청우가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지금 1년과… 10년 후의 1년의 가치가 다르겠지.”
그렇다.
불확실한 전성기가 어릴 때 짧게 끝나는 직군이 가지는 고민이다.
-이 일이 최전성기 1년을 버리고 갈 가치가 있는가?
류청우는 본래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이 가치판단이 더 익숙할 것이다.
놈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진이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더라. 뭘 많이 알아보고 있던데. 변호사도 만나고.”
“…변호사요.”
“그래. 문자로 상담하는 것 같아.”
죽을 둥 살 둥 연습하면서 대체 그럴 시간은 언제 만들었냐.
나는 기가 막히면서도, 동시에 입맛이 좀 썼다.
그놈이야말로 콘서트가 아니라 소송 준비를 하고 싶었을 텐데, 나 살겠다고 눈이 뒤집혀서 뜬금없이 기부 콘서트나 했으니 답답했겠군.
죽었다 깨어난 놈 소원이라고 많이 참은 모양이다.
“…….”
나와 류청우는 말없이 맥주만 들이켰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세진 형을 부를까요.”
“그래.”
아무래도 소송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의견이 껴야 이야기가 진행될 테니까.
나는 배세진을 메시지 호출했다.
[형, 청우 형 방 좀 와주실래요 저희 이야기 중인데]1이 사라지더니, 답장도 없이 와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저기서부터 들리더니, 곧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울린다.
“…….”
거, 굉장히 알기 쉬운 놈이다.
“들어오세요.”
“어, 어어!”
나는 놈에게 문을 열어줬고, 그렇게 구도는 삼자대면으로 바뀌었다.
“소송 이야기 중이었는데요.”
“…! 그, 그래.”
“예. 형은 여전히 회사 소송을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시죠.”
“…그렇지.”
배세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으나, 대답은 제법 담담했다. 더 이상 얼굴 벌게져서 고함지를 일은 없….
“인권위 권고가 왔는데도 꼬리 자르기만 하고 본부장도 안 바뀌었잖아…! 이대로면 얼마 안 가서 원상 복귀될 거라니까!”
“…….”
“지금 조용해지기만 기다리는 거야!!”
아니다. 이미 충분히 열받았군.
뭐… 회사가 지금 몸을 바짝 낮추고 사리고는 있다만, 배세진 말도 맞긴 했다. 본부장도 안 바뀌긴 했지.
그런데 사실 안 바뀌는 편이 좋다.
“형, 그래도 그 본부장 계속 있는 편이 편할 것 같긴 한데요.”
“뭐?? 왜!”
나는 덤덤히 말했다.
“쫄았을 테니까.”
“……??”
“아마 아무 일도 못 벌이고 우리 눈치나 보게 될걸요. 사건이 하도 커져서 안 그럴 수가 없을 겁니다.”
한마디로, 서열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소속 가수가 회사 실수로 죽을 뻔했는데 그 가수들에게 고소 명분까지 있는 순간 끝이지.
아마 본사에 죽도록 깨졌을 텐데, 자리 보전하려면 앞으로 고생깨나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맥주 캔을 가볍게 분리수거용으로 찌그러뜨렸다.
“그러니까, 이 회사가 좀 쓰레기같이 느껴지더라도 앞으로 우리 운신은 더없이 편할 거란 뜻이죠.”
“쓰, 쓰레기까진….”
“음, 비도덕적이라고 수정하겠습니다.”
“…….”
배세진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말문이 막힌 것인지, 기가 막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곧 한풀 꺾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이러면 지난번 병실에서 소송 유예했던 때처럼, 배세진이 다수결에서 밀려서 포기해야 하는 구도가 반복되는 건가.
배세진은 잠깐 주저하는 것 같더니, 곧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좀 그런 생각을 했어. 이번 일로, 소송을 걸어서 이기면 좋은 선례가 남을 거라고….”
“…….”
거기까지 생각했나.
“그런데, 맞아. 그런 일 생각할 시간 있으면 팀에서 내 역할이나 제대로 해야지.”
배세진은 고개를 떨구었다.
“소송 포기할게.”
“아니….”
이렇게 압박을 주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좋게 설득해 보거나, 소송을 하더라도 최대한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방향으로 잡아보려고 했지.
나는 잠시 말을 고민했다. 하지만 류청우가 먼저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 세진아.”
“어?”
“나는 소송 괜찮은데?”
“…!”
뭐?
배세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 진짜??”
“응.”
너 이 새끼 아까는 소송 부담스럽다는 내 말에 동조하지 않았냐?
…잠깐.
나는 류청우가 맞장구친 문장을 떠올렸다.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야.
…‘그것도’였군.
나는 침음성을 참았다. 이놈은 중립이었다.
‘그러고 보니 병실에서도 그랬지.’
류청우는 여전히 평온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세진이 넌 충분히 팀에서 맏형으로서 역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
이건… 좀 더해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송은 그냥 제가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걱정 마세요.”
“너희…….”
배세진은 순간 감동한 것 같았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럼… 다, 다른 애들한테도 물어볼까? 혹시 마음 안 바뀌었는지!”
“예. 그러죠.”
“좋아.”
그리고 잠시 뒤.
“소송이요? 어…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하하.”
“소, 소송을 하면 다음 앨범은 무기한 연기입니까…?”
“저 활동 할래요! 활동 좋아요!”
“…….”
K.O였다.
심지어 찬성이었던 차유진도 콘서트 맛이 좋았던지 돌아섰다.
배세진은 쓸쓸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서 패배를 곱씹기 시작했다. 좀 측은하군.
그나마 중립으로 남은 선아현은 안절부절 못 했으나, 곧 한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저… 소, 소송을 하면, 쉬는 건가요…?”
“맞아, 아현아.”
류청우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선아현이 눈치를 보더니, 작게 대답했다.
“그, 그럼 너무 길지 않으면… 저는, 좋아요.”
“…!!”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당장 물었다.
“선아현, 너 쉬고 싶었어?”
“으? 으응…….”
선아현이 시선을 피했다. 이놈이…?
“잠깐잠깐, 아현이 그럼 쉬고 싶어서 소송하자는 거야~?”
“으응, 콘서트도 잘 끝났고, 바, 반응도 좋다니까. 조, 좀 쉬면서… 몸도 관리하고,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큰세진이 얼른 말을 낚아챘다.
“에이, 그럼 쉬면 되지~ 새 앨범 준비 전에 한 이삼 주 스케줄 빼고 어디 요양이라도 다녀오자!”
“오~”
“요양 뭐예요?”
“맛있는 거 먹고 놀기~”
“좋아요!”
찬성표가 쏟아진다. 배세진이 큰세진을 노려보려다 참는 게 보인다. 어차피 선아현이 소송에 찬성해도 다수결에선 못 이겼을 테니까.
문제는 나인가.
나는 짧게 고민한 뒤, 새 캔의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대답했다.
“요양 좋지.”
“오!”
“지, 진짜…?”
“그래.”
어차피 큰 고비는 끝났다.
진실 확인을 누를 때까지 아직 유예 기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은 좀 여유롭게 보내도 되겠지.
큰 사고긴 했으니까.
‘…내가 너무 무리하게 만든 것도 있고.’
나 말고, 이놈들한테 말이다.
퇴원하자마자 기부 콘서트 기획, 그것도 이 판에서 제일 잘나가는 선배를 게스트로 끼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나야 절박했지, 이놈들은 그냥 생떼 들어준 거나 다름없어.’
그래도 설득할 때 만든 논리는 유효하게 먹히긴 했었다만.
나는 당시 대화를 짧게 회상했다.
-화제성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화제성?
-예. 사고나 회사에 난리 난 거 말고, 원래 아이돌이 소비되는 방향대로요. 그리고 갈등이 동반돼야 더 뜨거울 테니까.
-음.
그 방법에 라이벌 포지셔닝만큼 잘 먹히는 게 드물다, 이 말이었다.
그리고 이건 얼추 멤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준 모양이다. 그건 다행이었다. 결과가 좋았으니까.
‘콘서트 끝나고 후속 조치도 잘 들어갔고.’
기부랑 사진을 선방으로 날렸으니 한동안은 여론도 괜찮을 것이다.
VTIC도 이득을 좀 본 것 같아서 떨떠름하긴 하다만, 대중과 당사자들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챔피언과 도전자 구도는 괜찮게 잡힌 것 같다.
‘어차피 테스타가 더 커지면 자연스럽게 잡힐 구도를 좀 당겨온 거지만.’
그렇게 이 콘서트로 뽑아먹을 건 다 뽑아먹었으니, 이제는 나도 양심이 있으면 좀 양보해야겠지.
소송까지는 못 하더라도 쉬고 싶다는데 방해할 생각은 그만두자.
‘소송도… 보고, 배세진이 원하는 효과는 어떻게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뇌를 굴렸다. 맞은편의 류청우가 빙긋 웃었다.
“나도 좋아. 회복기를 좀 가져야지. 세진이는?”
“…그런 건 괜찮지.”
“좋아, 다들 찬성이네.”
분위기는 화목해졌다. 큰세진이 내 앞에 있던 맥주를 가로채 하나 뜯었다. 참자.
“아~ 마침 얼마 안 가서 추석이니까, 그때 본가 가기 전에 모여서 푹 쉬는 걸로 할까요?”
“조, 좋아…!”
어디를 갈지 신나서 떠들려는 놈들 사이로, 이번엔 김래빈의 손이 슬쩍 올라왔다.
“어, 래빈이 왜?”
“아, 다름이 아니라… 그럼 회사에는 모든 스케줄과 다음 활동 준비를 중단한다는 뜻을 전하는 겁니까?”
그건 괜찮았다.
“어차피 우리 스케줄 한동안은 거의 없어. 팬들 보여드릴 영상만 몇 가지 찍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군요! 그럼 팬들이 보실 영상만 취소…… 음.”
그래, 그렇게 만드니 문장 뜻이 오묘해지긴 하는군.
다행히 그럴싸한 의견이 나왔다.
“그럼 우리 쉬는 모습 보여드릴까? 좀 편하게~ 무인 카메라 설치해달라고 말씀드려서!”
“…그런 걸 보고 싶어 하실지 모르겠는데.”
“뭐, 좀 노잼일 수도 있지만… 뭐 어때요! 힐링 여행 예능이 다 그렇지 뭐~ 기부 콘서트도 한 방 쳐놨으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휴식기용 컨텐츠로는 나쁘지 않지.
여기저기서 비슷한 찬성 의사가 나왔다.
다만 테마는 좀 바꿔야겠다. 나는 캔을 비우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행은 좀 컨셉이 겹치지 않나. 우리 전 리얼리티에서도 여행했잖아.”
“아, 그렇지.”
“훌륭한 지적이십니다.”
아이돌 워킹홀리데이. 호떡을 만들어 팔고 다녔던 추억에 다들 오묘한 표정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그거 말고, 뭐 대표적인 힐링 예능 없나. 요양이랑 맞는 걸로.’
여행 말고, 날로 먹을 만한 게… 아, 그거.
닭발.
“먹방으로 테마 잡는 건 어때요.”
“먹방?”
증명된 컨텐츠 아닌가. 나는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떠올린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큰세진이 폭소했다.
“역시 닭발 티벳 문대네~ 아, 티벳? 그렇지, 우리 거기 동물도 섞자! 뭐 다른 키워드 없나??”
“자, 자연 풍경…?”
“…그거 좋네.”
그렇게 엉겁결에 온갖 힐링 키워드가 조합되어서, 급조한 예능이 긴급 편성되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때까지는 이 즉석에서 막 만든 예능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