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7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8화
테스타의 룸메이트 배정.
‘이제 4번째인가?’
이 정도까지 오면 팬들도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컨텐츠로 인정해 준다.
‘지금까지는 주로 보드게임을 통해서 진행했었지.’
그러니 이번에도 비슷한 류의 게임으로 방 배정을 진행하면 좀 식상할 것 같아서 분야를 좀 바꿔보았다.
“안녕하세요~ 테스타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바로 전문가 섭외다.
지금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연구소의 사무실에 일곱 명이 빙 둘러앉아 있다.
왜 그… 정면만 비워둔 작위적인 일일 드라마 식탁 구도다. 정면에는 카메라와 제작진이 있으니까.
그래도 하도 이런 구도를 많이 해서 그런지 다들 자연스럽군.
나는 전문가를 기대감에 찬 얼굴로 쳐다보는 놈들을 확인했다.
전문가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 여러분은 룸메이트 배정을 위해 의뢰를 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말씀드린 게 맞을까요?”
“예!”
우렁차게 대답하는 배세진의 얼굴에 활기가 넘친다.
최근 한 달 중에 가장 기운찬 목소리인 것 같은데, 아마 독방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
‘거실 생활도 할 만하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방에 들어가기 껄끄러워서 거실에 있는 것과 거실이 좋아서 거기 있는 건 다르겠지.
큰세진이 떨떠름한 눈으로 힐끗 배세진을 본 것 같았지만, 촬영 중답게 순식간에 기색은 사라졌다.
전문가의 뒤에서 걸어 나온 소장은 싱글벙글 웃고 있는 놈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했다.
“저희 소통관계연구소는 그룹 구성원들의 퍼스널리티와 성향, 생활 습관을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 분석으로….”
이 PPL 소개 파트 빼고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이거다.
“행동 분석과 면담을 통해, 여러분 간의 가장 적합한 룸메이트를 찾아 매칭할 예정입니다.”
“와아아!”
일명 ‘룸메이트는 과학입니다’.
‘말은 그럴싸하군.’
솔직히 말하자면 기존 사업을 답습한 벤처 기업의 포장 같다만, 어쨌든 듣기는 근사하긴 했다.
‘팬들이 재밌어하겠어.’
여기서 내미는 분석을 기존 테스타의 생활과 버릇 컷과 함께 배치하면, 캐릭터성을 부각하기 더 좋을 테니까.
MBTI와 같은 원리다.
같은 특성에서 오는 동질감.
다른 특성에서 오는 이미지 강화.
큰세진이 분위기를 살리려는지 한 번 더 호들갑을 떤다.
“와 나 너무 설레는데?”
“…….”
알겠으니까 어깨 치지 말아라.
“그럼 그룹 활동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오오!”
곧 소장은 사라지고, 전문가만 남아서 그룹 면담이 진행되었다.
‘개인 면담은 아까 오프닝 따기 전에 미리 했고.’
이게 메인이라는 건데… 음.
일단 첫 문제라고 뜬 것 좀 봐라.
[여기 오리와 소를 키우는 농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 이 농부는 한 종류의 가축만을 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과연 어떤 가축일까요?]“자유롭게 답변 말씀 주시면 됩니다.”
“…?”
이거 IQ 테스트랍시고 인터넷에 떠도는 퀴즈 같은데.
아무리 좋게 봐줘도 기업 면접용 창의력 질의 아니냐고.
‘전문성… 어디 갔냐.’
개인 면담은 그래도 전문적이었다만… 이건 아무래도 방송용 그림 때문에 하는 것 같았다.
‘뭐, 상관없긴 하지.’
여기선 컨텐츠가 중요하니까.
나는 다른 놈들이 떠드는 것을 보며 참여할 타이밍이나 쟀다.
“제 생각에는 오리일 것 같은데요? 오리가 케어하기 더 편하지 않나? 겨울이라니까, 여차하면 실내에 들일 수도 있구요~”
“그러네. 그런데 머릿수가 많아지면 키우기 힘들지 않을까?”
“저 알아요! 소가 만드는 음식 더 많아요! 소예요. Go Cow!”
다들 적극적이군.
나는 손을 들고 전문가를 쳐다보았다.
“이 질문은 정답이 있을까요.”
“아뇨. 자유롭게 선생님들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발휘해 주시면 됩니다~”
“오~”
전문가의 말이 기폭제라도 된 것처럼 멤버들이 한마디씩 더 떠든다.
“으응, 겨울이니까…. 아! 오리털 이불 같은 걸 만드시려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아~ 똑똑하십니다, 아현 님~”
“아현이 발상이 좋은데?”
…아니, 자세히 보니 진짜 신난 놈이 반, 컨텐츠를 살려보겠다는 놈이 반이군.
아무래도 이 형식의 허점을 발견한 놈들 같다.
‘구성이 허무하다.’
모범 답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무작정 브레인스토밍하라는 게 컨텐츠로 매력이 있나?
“나는 닭.”
“엉??”
“오리랑 소 중에 고르라는 말은 없으니까 가장 경제성이 좋은 가축을 골라봤습니다.”
“헐.”
“이야 문대 머리 봐.”
적절히 대답하면서도 어째 흐름이 썩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문가가 이렇게 질문을 클로즈했거든.
“해주시는 말씀들 잘 들었습니다. 좋은 의견과 답변 감사해요.”
“히히.”
“아이고, 저희가 감사합니다~”
정리가 없다.
어차피 이 파트에선 전문성 대신 단편적인 질문만 던질 거라면, 차라리 접근법에 따라 유형이라도 나눠줬다면 보기 편했을 것이다.
뭐 요새 나도는 유형 테스트 많지 않은가. 드라마 캐릭터부터 나무까지 온갖 거에 다 비유하던데.
[당신은 ‘굳건한 소나무’ 유형!]이런 거 말이다.
‘하다못해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느끼기 쉬운 자극이 없으니 심심한데.
나는 힐끔 제작진을 보았다. 외국에서 호떡 만드는 예능할 때 같이 일했던 인원도 좀 보인다.
‘설마 슬슬 매너리즘에 빠졌나.’
이건 섭외 미스 같다 이놈들아.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몇 번의 비슷한 질의응답이 반복된 끝에, 중간 브리핑에서 리뷰가 나오긴 했다는 것이다.
“자, 제가 선생님들의 답변 태도를 약간 살펴보았는데요.”
전문가는 종이를 들고 능수능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 선아현 선생님! 의사결정을 하실 때 신중하고 생각이 깊기 때문에, 답변 시간이 다른 그룹원들보다 약간 오래 걸리는 편이세요.”
“네….”
“단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많이 배려하시면서도 자기만의 주관을 찾아가시는 중이시라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 현명한 리더가 되시지 않을까요?”
“그, 네…! 감사합니다….”
“오오~”
선아현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주변 놈들이 손바닥을 쳤다.
“그리고 배세진 선생님.”
“…! 예!!”
선아현을 보고 슬쩍 웃던 배세진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의사가 분명하시고, 조금 낯설거나 불편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의지가 보이는데요.”
“그….”
이번엔 배세진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특히 ‘누가 열쇠를 가졌는가’ 문제에서 굉장히 적극적이셨는데….”
이런 식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일곱 명의 행동 리뷰가 한 바퀴를 돌았다.
막내 둘과 내 옆의 큰세진을 지나….
“우리 류청우 선생님은 좀 뒤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백업해 주시는 타입이신데, 아마도 직책이 리더셔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음. 그럴 수도 있겠어요.”
류청우는 씩 웃으며 적당히 반응했다. 이런데 별 관심 있는 놈은 아니라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나였다.
전문가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박문대 선생님은 시야가 굉장히 넓은 분이세요. 사람들이 말버릇처럼 ‘큰 그림을 본다’고 말하기도 하죠?”
“하하하! 맞아요! 딱 그거네~”
“문대 형은 과연 그런 분이십니다!”
무슨 입 잘 터는 사기꾼에게 홀라당 낚인 것처럼 몇 놈이 열렬히 호응한다.
특히 한 놈은 진짜 이 전문가를 신뢰하게 된 것 같다.
‘김래빈은… 사업하겠다면 말려야겠군.’
내 심정이야 어쨌든, 전문가는 또 좋게좋게 말을 끝냈다.
“허를 찌르는 발상을 자주 생각해 내시는 모습이 그룹에 꼭 필요한 아이디어 뱅크 역할처럼 보여요.”
“감사합니다.”
꽤 말을 잘 엮는다. 그리고 쓸데없이 감정 건드리지 않고 온화하게 말해주는 게 괜찮았다.
아마 이것만 보고 말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받아놓은 자료 기반으로 말을 맞춘 거겠지.
‘그래도 싱겁군.’
전문 용어나 분석적인 설명 없이 이야기로 푸는 것만 들으니, 말에 포인트가 없다.
‘아까는 반쯤 농담이었는데, 진짜 인터넷 유형 테스트로 나누는 게 더 재밌었을지도 모르겠어.’
그건 명쾌한 병맛이라도 있지 않은가.
나는 좀 허망한 심정으로 전문가를 쳐다보았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아, 잠시 휴식하고 가겠습니다.”
“넵~”
제작진의 신호를 받은 전문가가 적당히 컷을 끊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긴장을 푼다.
나도 마찬가지다.
“후.”
‘아쉬운데.’
약하다.
나는 이번 컨텐츠의 흥망을 예상해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됐다.’
이미 촬영에 들어갔겠다, 이제 와서 고민해도 별수 없다. 일단 촬영이나 열심히 하자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하여 더 깊게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저 이거 설명 필요해요! ‘심지가 굳건’? 무슨 뜻이에요?”
…저기 진짜로 신난 놈들도 있으니, 팬들이 훈훈하게라도 봐주긴 할 것이다.
팬 서비스 컨텐츠가 그 정도면 평타는 된 거지 뭐.
“잠시만요….”
그때, 제작진들이 쉬는 시간을 틈타 슬그머니 일어나서, 카메라맨과 소수 인원만을 남기고 이동했다.
“엉?”
“소장님 만나러 가신대.”
그렇군. 제작진과 가까이 앉아 있던 류청우가 깔끔히 상황을 정리했다.
‘제작진 쪽도 촬영하면서 좀 별로라고 느꼈나 본데.’
그리고 우리 앞에 서 있던 전문가도 웃으며 일어나서 복도로 향했다.
“선생님들, 저 잠시 화장실 좀.”
“네네!”
갑자기 인구밀도가 확 낮아지는군.
“예, 그럼….”
그 순간이었다.
“어억!”
뒷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던 전문가는… 자신의 목 뒤를 잡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쓰러졌다.
쿵.
…끼익.
문 사이로 전문가의 흰 가운이 밀려와 반쯤 끼었다.
“…??”
“서, 선생님??”
“뭐야.”
심정지?
나는 당장 달려가려는 놈들을 따라 이동하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 뒷문의 바로 위에서 철문이 쾅 내려온다.
투퉁!
“헐?”
갑자기, 길이 막혔다.
‘X발 뭐야.’
거기뿐만이 아니었다.
제작진이 나간 쪽 큰 문 위에서도 철문이 내려왔다.
쾅!
콰콰쾅!
“뭐야.”
화재? 테러?
나는 바로 창문을 확인하려 했으나… 거기도 이미 철판이 내려왔다.
그리고 불이 바뀐다.
위잉-! 위이이잉-!
공간 모서리마다 있던 빨간색, 초록색 등이 미친 듯이 번쩍이고 사이렌이 울린다.
“얘들아, 이쪽으로!”
류청우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멤버들이 벽에서 떨어져서 뭉친다.
‘비상 상황?’
당장 스마트폰부터 확보해야….
“야! 저기!”
나는 배세진의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렸다.
아까까지 질문이 뜨던 거대한 화면.
그게… 바뀌었다.
“미친.”
[! AREA CLEAR !] [봉쇄 완료]시뻘건 글자 뒤로 CCTV 화면처럼 보이는 것들이 우수수 분할 화면으로 뜬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문이 닫히는 영상.
그리고… 쓰러졌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것까지.
[연구소 내 좀비 바이러스 유출] [시설 폭파까지 02:00:00]“…….”
뭐?
순간, 할 말을 잃은 놈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길게 가진 못했다.
[01:59:57]…카운트다운까지 시작해서 말이다.
“…….”
순식간에 동공을 떠는 놈들이 당황스러운 시선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이거 뭐야!’
그리고 몇 초 후.
우리는 구석에 일부러 숨어 있던 몇 놈을 발견했다.
…웃음을 참고 있는 제작진이다.
“저기요.”
“설마.”
“카메라 감독님 나와보세요. 이거 뭐예요.”
그러나 두셋뿐인 제작진은 진술을 거부하며 구석에 완강히 앉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
그리고 그 꼴을 보고서야 제대로 사태를 깨닫는 놈들이 속출했다.
“으아아아!”
“또! 속았네!”
이거 다 연출된 상황이다.
“으흐흐흡.”
그 와중에 제작진이 마이크에 자신의 웃음소리를 넣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문다.
배세진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세차게 가리킨다.
“좀비라니!!”
‘알겠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는… 돌발상황 대처 능력으로 성향을 파악하나 보지.
‘왜 연구소가 이렇게 거창한가 했다.’
그리고 거기에 ‘좀비’ 같은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 요소를 섞어서 PTSD 등의 위험 요소를 건드는 상황을 교묘히 빗겨 간 거고.
동시에 재밌게도 만든 것이다.
‘신박하네 X발.’
직전의 싱거운 그룹 면담은 이걸 터뜨리기 위한 빌드업이었단 말이다.
‘진짜 상상도 못 했다.’
뻔하다고 했던 말은 취소하겠다.
아주… 제작진이 왜 섭외한 건지 알겠다.
머리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Wait, wait!! 여기 뒤에 문 있어요!”
“뭐??”
“문이야?”
마침, 차유진이 뭔가 발견했는지 제작진 뒤를 가리키며 황급히 외친다.
“잠시만요~ 아, 솔직히 양심 있으면 살짝 비켜주세요, 누나!”
큰세진이 솜씨 좋게 작가가 비키도록 유도하고선, 한쪽 구석에 손을 댄다.
“으차~”
놈의 오른손이 사각 철판을 드러냈다.
그러자 붉게 빛나는 등 아래로, 큼직한 환풍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헐.”
“와, 전형적이야.”
“여기로 이동하는 게 옮은 방법일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벌써 몰입한 놈들이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음.’
컨텐츠는 재밌게 뽑힐 것 같았다.
근데 지금 상황 보니까 제한 시간 아슬아슬하게 줬을 것 같단 말이지. ‘재난 상황’ 대처 능력이니까.
[1:56:23]벌써 4분 지났다.
하지만 그림상, 여기서 테스타가 탈출을 못 하면 얼마나 김이 빠지는가.
‘안 봐주고 깨끗한 상태에서 나가야 베스트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방금 전문가가 했던 소리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말버릇처럼 ‘큰 그림을 본다’고 말하기도 하죠?
‘그래 맞다. 내가 큰 그림에 집착을 좀 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털었다.
“가보죠.”
잘 만들어보자.
이번 룸메이트 컨텐츠는 기념할 만한 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