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4화
화면 속 김래빈은 침착하게 연유를 설명했다.
[김래빈 : 박문대 참가자님은 곡을 타지 않는 가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선곡의 측면에서 부담이 없습니다.] [김래빈 : 또 단체활동에서 다른 팀원을 유연하게 받아주시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1순위 팀원입니다.]직후, 김래빈이 순식간에 미니게임을 이기고 ‘박문대’를 지목하는 장면이 교차 되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의 박문대 인터뷰가 나왔다.
[박문대 : ……?] [박문대 : 고맙긴 했지만… (대체 왜?)]BGM과 추가 자막 덕에, 김래빈에게 합류하여 꾸벅 고개 인사를 하는 박문대는 굉장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김래빈이 두 주먹을 꾹 쥐고 작은 승리감을 표출하는 장면이 또 한 컷.
무슨 위튜브용 콩트 같았다.
“…….”
제작진이 리액션을 창조하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다만, 이렇게 속마음을 정확히 짚어낸 건 또 처음이다.
[김래빈 : 다음은 차유진 참가자입니다.] [김래빈 : 그리고 류청우 참가자님.]김래빈이 자기만의 논리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팀원들을 뽑아가고, 팀원들이 아리송해 하는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있는 연출이었다.
‘김래빈은 살려주려나 보군.’
1차에서의 살벌한 모습을 대놓고 중화시켜주는 편집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길게 가지 않았다.
‘하지만’이라는 시뻘건 자막이 화면에 뜬 뒤, 백색소음만 가득한 숨 막히는 분위기의 장면이 송출되었다.
[며칠 후 중간 평가] [영린 : 편곡 누가 했나요.]고개를 떨구는 김래빈과, 김래빈을 돌아보는 몇몇 팀원들의 모습이 교차 되었다.
커다란 자막이 다시 떴다.
[대체 무슨 일이?]그리고…….
중간광고가 들어갔다.
“……흠.”
나는 남은 맥주를 목에 털어 넣었다.
어떻게든 시청률을 뽑아내려는 저 모습이… 이젠 감탄이 나온다. 대단하다, 제작진 놈들.
막간을 이용해 확인한 인터넷에서는 온갖 추측이 판치고 있었다.
중론은 ‘김래빈 또 팀전 망한 거 아니냐’였다.
-박문대 뽑은 이유 나올 때부터 사람 보는 눈 존나 없구나 싶었음ㅋㅋㅋ
“아니…….”
여기서까지 박문대가 먼저 까이냐.
맥주가 들어가니 사람이 좀 풀어졌나, 평상시보다 좀 더 열 받았다.
나는 떨떠름하게 화면을 끄고, 다시 Tnet을 틀었다. 막 광고가 끝나고 있었다.
예상대로, 곡이 결정된 후 토의 장면부터 화면에 송출되었다.
대체로 사회성 떨어지는 팀원들까지 잘 챙겨가는 류청우를 부각하는 편집이었다.
특히 이세진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그대로 스크린을 탔다.
‘이세진도 텄고.’
이거 또 류청우가 다 먹는 그림으로 가나?
안무 짜는 차유진의 천재성을 매력 있게 조명해 주는 장면이 몇 컷 들어갔고, 김래빈이 편곡에 시간을 쏟는 장면이 몇 컷 들어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류청우의 판정승이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중간 평가 때부터였다.
[원곡을 이것저것 많이 건들긴 했는데, 원곡보다 못한 느낌이에요.]심사평은 본래의 미적지근했던 분위기보다 더 심각하게 편집되어 나왔다.
원곡자의 뜬금없는 뒷북 발언이 짜깁기되어 심사평 중간에 끼워진 효과였다.
[여러분의 무대에는… 곡이 가진 힘이 느껴지지 않았어요.]이 개소리가 촌철살인이라도 한 것처럼 방송을 탈 줄은 몰랐다.
어쨌든 심각한 분위기에서, 한 팀원이 편곡 당사자로 김래빈을 지목했다.
팀원들이 김래빈에게 시선을 휙휙 놀리는 것이 노골적으로 강조되어 방송을 탔다.
등골이 싸해지는 편집이었다
‘망할….’
이걸 커버치겠다고 그 쇼를 벌였는데, 설마 다 같이 나가리 되나?
그 순간, 화면은 갑자기 ‘박문대’를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어?”
‘설마.’
화면의 박문대는 어쩐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갑자기 회상 컷이 들어갔다.
[키를 낮춘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랩도 좀 넣으면 어때요?] [편곡은 응원단 컨셉에 어울리게.] […예.]김래빈에게 몇몇 팀원들이 안 어울리는 편곡 요소들을 넣어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박문대가 그것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처럼, 시선이 연출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중간 평가 시점의 화면.
박문대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네. 래빈이가 편곡이 가능하니까 편곡자님과 상의해 줬고, 편곡 방향은 저희가 다 같이 의견 내서 정했습니다.]놀란 표정의 김래빈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그리고 박문대의 인터뷰가 들어갔다.
[Q : 왜 김래빈 참가자를 감싸줬나요?] [박문대 : (의아함) 그냥 사실대로 말했던 거라서요.]저건… 1차 팀전 때 했던 편곡 관련 인터뷰를 잘라 넣은 컷이다.
“…허.”
‘자연스럽게 말 돌려 버리려고 일부러 덤덤히 이야기했었는데.’
편집의 마법을 거치고 나니, 남 눈치 안 보는 박문대가 그냥 사실을 말해버린 것처럼 방송에 나왔다.
‘아무리 겪어도 황당하군.’
내가 그렇게 떨떠름하든 말든, 방송은 계속 진행되었다.
팀원이 김래빈에게 사과를 한 뒤에는 분위기가 급격히 희망차고 훈훈하게 바뀌었고, 김래빈의 감동 인터뷰로 방점을 찍었다.
[김래빈 : 팀원분들을 잘 모은 것 같습니다.]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는 김래빈의 얼굴은 의외로 성격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편곡은… 어처구니없게도, 김래빈과 박문대가 잡담 중에 갑자기 자기들끼리 신나서 후다닥 만든 것처럼 나왔다.
[류청우 : 둘이서 쉬는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건 봤어요.] [류청우 : 그런데 돌아가 보니까… 래빈이는 이미 건반에 가 있고, 문대는 우리 (삐-)할 거라면서 신나 있던데요?]류청우의 인터뷰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며 배속 처리된 편곡 의논 과정은 정말 그렇게 보여서 더 어이가 없었다.
[류청우 : 천재들은 원래 그런가? 하하.]이후, 마치 류청우가 비사교적인 두 천재를 귀여워하며 팀이 잘 융합된 것처럼 짧은 컷들이 이어지며 무대준비 분량은 끝났다.
“…….”
이걸 이렇게 풀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어쨌든 악편은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 먹힌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게다가 무대는 원래도 개중 제일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제작진에서 대놓고 신경 써서 편집해 준 덕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엔딩도 괜찮았다.
이 팀의 3위를 중간광고까지 넣어가며, 굉장히 의아하고 충격적인 것처럼 조명해 줬기 때문이다.
뽑을 건 다 뽑았다고 볼 수 있다.
깔끔한 이득이었다.
“괜찮네.”
나는 곧바로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긴장이 풀리니 피로가 몰려왔다.
‘인터넷 모니터링은 내일 해도 되겠지.’
이때 곧바로 반응을 살펴보지 않은 탓에, 7화에서 내 분량이 가져온 여파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다음 날 점심 즈음이었다.
* * *
-박문대 품기로 했음. 개빻은 1차 팀전 놈들하고 비교하니 선녀였다
-문대 다시 보니 얼굴도 괜찮네 래빈이랑 합 괜찮은 듯 계속 같이 팀 해라
-토끼와 댕댕이는 환상의 조합인데 중세 토끼와 시고르자브종이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야ㅠㅠ
-오이오이, 이 조합 떡상할 날이 올 줄 알았다구? (으쓱)
-의외다 싸울 줄 알았는데 친해졌네;;
“……오.”
놀랍게도 7화가 방영되자마자, 김래빈의 팬들 사이에서 박문대의 여론이 급격히 돌아섰다.
다른 참가자를 비방하지 않던 정상적인 팬 계정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부는 어제까지만 해도 ‘박문대’를 멸칭으로 부르며 낄낄거리던 계정도 있었다.
정말 태세전환이 대단했다.
박문대의 팬 계정들은 마이너스 투표 걱정을 덜어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화가 난 사람들도 몇 분 보였다.
-그렇게 욕할 때는 언제고 입 싹 닦고 저러는 걸 보면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 와중에 안도한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ㅠㅠ
-둘 다 데뷔하면 저런 애들이랑 같이 덕질할 걸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옴… 문1대만 보고 가야지 뭐…
-문대가 멋진 태도를 보여주고 멋진 아이디어를 내고 멋진 무대까지 했는데, 왜 내가 다른 걸 신경 써야 하냐구요ㅋㅋ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돈 쓰면 재밌어야 하는데, 이분들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이 프로로 데뷔를 하게 된다면 같은 팀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오디션 중인 참가자들은 다 경쟁 관계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부분은 무대가 잘 뽑힌 것을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본방이 끝난 직후 자정부터 오늘 아침, 점심까지 내내 7화가 하나 걸러 하나꼴로 방송 스케줄에 편성되어 있는 덕분에 유입 효과도 보고 있었다.
무대 영상은 위튜브 실시간 인기 순위에도 곧바로 진입했다.
-이런 미친 컨셉을 이렇게 잘 소화하다니 이런 미친 놈들;;;
-내 학점을 조지러 온 히어로들이지만 사랑합니다
-야구장 응원가를 히어로물 테마곡처럼 바꾸다니. 무대는 물론이요 그 발상과 편곡 능력까지 모두 비상하기 짝이 없다.
-아아아 애들 자기 색깔도 맞췄나봐요 깔별로 아이템 하나씩 끼고 있네! 이런 디테일에 덕후 심장이 뛴다ㅠㅠ
-이 무대가 3위? 견제표 부끄럽지 않나요?ㅋㅋ
-정리글입니다. 0:06 차유진(레드), 0:16 민정훈(그린), 0:24 류청우(블루) … [더보기]
새벽에 공개된 개인 직캠들도 무섭게 조회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1차 팀전보다 판이 커진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박문대’ 직캠의 조회수는 메인보컬치고 엄청나게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댓글도 1차보다 호의적이고, ‘싫어요’ 비율이 낮아졌다.
-천재인 건 부정 못함
-문대야 금발 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누나가 힘내서 사직서를 참았다 우리 문대 주식 많이 살게ㅠㅠ 꼭 데뷔해서 은발도 하고 핑발도 하자ㅠㅠ
-호러에 이어서 히어로 컨셉까지 떠올리다니, 이 친구 대단하네요! 많이 응원합니다. 데뷔하시길! ㅎㅎ
-왜 볼 때마다 더 잘생기고 더 잘하지? 이러다가 데뷔하면 승천하는 거 아니야?ㅠㅠ
쑥스러웠지만 좀 뿌듯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긴 하지만, 성취감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지막 베스트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 어리고 외모 귀여운데 춤도 괜찮은 메보는 좌완 파이어볼러 같은 거임. 지옥에서라도 잡아 와야 하는데 자기 발로 돌판에 걸어 들어 와줘서 너무 고맙다 문대야 이제 못나감^^
“…….”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설마 데뷔하면 ‘은퇴 못 함’ 같은 상태이상이 걸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하등 이득도 없는 불길한 망상을 얼른 털어내고, 마음을 정리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다음 순위 발표식 때도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이제 남은 건 두 단계인가.’
앞으로 두 번의 팀전을 더 거치면 이 프로그램이 끝나는 것이다.
벌써 중후반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 쓰레기 같은 상태이상을 떼어낼 날이 가까워지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 내 예상보다도 훨씬 성적이 좋아서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공시생으로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 아무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성공의 맛이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물론 기 빨려서 피곤한 게 더 크긴 하지만.’
돌연사를 피하고… 한 몇 년 뒤에 돌아보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건 뒤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니, 일단 생존부터 생각하자.
지이이잉.
다짐하는 순간, 메시지가 들어왔다.
[큰세진 : 문대문대 잘 지냄? 촬영날 같이 가쉴? 아현이 포함ㅎㅎ]* * *
그래서 촬영 날 만난 놈들의 얼굴이 완전 죽상이었다.
아니 트롤짓을 일삼던 최원길도 보내 버렸는데 왜 죽상이냐. 누가 꼴 받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