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화
선아현과 큰세진이 촬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뭐라도 먹고 가자고 조르기에 음식점에서 만났다.
“어, 문대 하이~”
“아, 아안녕….”
그러나 음식을 앞에 두고도 둘 다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한 놈은 사회생활용 리액션 자판기가 됐고, 한 놈은 금방이라도 질질 짤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마이너스 투표 때문에 이러나.’
가장 상식적인 추측이었다.
그냥 내버려 둘까 하다가, 밥 먹는데 무슨 짓인가 싶어서 한 번 물어봐 줬다.
“투표 걱정돼서 그래?”
“으, 으응?”
“둘 다 표정이 별론데.”
그러자 둘이서 반사적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아마 자기 상태가 메롱 해서 상대도 기분이 별로라는 걸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 문대 귀신이네~ 아니, 뭐…… 걱정 안 하기가 힘들지. 인터넷을 너무 봤네, 하하.”
큰세진이 영혼 없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에 선아현도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많이 싫어할까 봐…….”
어이고.
아무래도 볼 필요 없는 글까지 있는 대로 찾아본 모양이다. 분위기 보니 밤새 SNS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자기 이름을 검색한 게 분명했다.
이제 촬영장에 들어가면 누가 날 얼마나 싫어하는지 숫자로 확인하게 될 테니, 밥이 목구멍에 잘 안 넘어가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도 밥은 먹고 들어가야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니까 싫어서 찍는 사람보다 견제해서 찍는 사람이 많지 않겠어? 표가 많이 깎였다는 건 유망해 보인다는 뜻일 수도 있지.”
“…!”
당장 전 팀전만 해도 등수 높은 놈들이 모인 팀이 현장 투표 3위로 끝났지 않은가.
“어지간히 많이 나오는 거 아니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뜻이야.”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신승리할 구석이 있으면 좀 낫겠지.
예상대로 큰세진이 먼저 회복했다.
“그렇긴 하지.”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숟가락을 들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이번에는 정말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하거든. 연습생 기간도 너무 길었고……. 뭐, 아무튼, 잘 먹고 힘내서 가보자!”
놈은 무심코 튀어나오던 말을 얼른 갈무리해 버리고, 전투적으로 식사를 재개했다.
선아현은 여전히 걱정으로 초조한 표정이었지만, ‘밥은 먹고 가는 게 낫지 않냐’는 말에 전투적으로 식사는 했다.
‘밥 한 번 먹기 힘드네.’
나도 한숨을 참으며 식사를 재개했다.
후발주자라 좀 두들겨 맞기는 했지만, 인지도도 괜찮고, 편집으로 작살나 본 적 없는 애들까지 이러고 있으니 다른 참가자들은 뻔했다.
‘오늘 촬영 분위기 장난 아니겠군.’
그리고 이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
탈락 위기 참가자부터 등수 높은 참가자들까지, 모조리 초상집 분위기가 따로 없었다.
‘맘에 안 들면 퇴출하세요’ 투표가 도입된 후에 인터넷에서 참가자에 대한 비방과 루머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신난 놈은 차유진뿐이었다. 1위의 자신감은 아니고 그냥 성격문제인 것 같다.
“왜 같이 안 갔어요?”
심지어 나한테 와서 광고 보러간 날 썰을 혼자 신나서 풀고 가기까지 했다. 정말 대단한 성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 그 두 번째 순위 발표식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방송에서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순위 발표식은 어느 때보다 침체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새롭게 도입된 제도, 가 합산된 첫 등수가 오늘 발표됩니다. 얼마나 많은 분이 사고파셨는지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었습니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 기도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다 큰 어른들이 애들 데리고 참 못 할 짓 한다 싶다.
“그 전에 지난 팀전 최종 1위를 발표해야겠지요? 최종 1위 팀에게는 엄청난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MC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유쾌하게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바로, 무효입니다!”
“…네?!”
“헐.”
순간, 주변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1위를 하신 팀은 를 통한 마이너스 수치가 포함되지 않은 수치로 등수를 평가받게 됩니다!”
리액션은 더 커지지 않고, 오히려 힘없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작게 웅얼거렸다.
“너무해.”
확실히, 참가자를 존중한다면 할 수 없는 발상이기는 했다. 제작진들 마음대로 혜택을 뗐다 붙였다 하는 꼴이니까.
‘애초에 마이너스 투표도 사전 공지 없이 6화와 함께 때려 버린 놈들인데 뭘 바라겠냐.’
“1위는… 축하합니다! 를 재해석한 ‘기간틱’ 팀!”
최원길이 뽑았던 팀이 결국 최종 1위를 가져갔다.
아마도 이번 제도 때문에 탈락이 확실시됐던 최원길에게 구조신호가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원길은 울면서 안도했지만, 사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저놈 큰일 났네.’
만일 마이너스 투표 때문에 떨어지게 됐다면 동정여론이 치고 올라올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저렇게 운 좋게 붙어버리면, 다음 팀전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내지 않는 이상은 부정적인 여론이 폭주할 게 틀림없었다.
어쨌든, 적당한 소감과 함께 1위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순위 발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합격자 총수는 30명. 지난 순위 발표식처럼 2명을 남겨두고 28위부터 발표되기 시작했다.
“28위, 박준경 참가자입니다!”
사실 20위까지는 큰 변동이 없었다. 특출나게 표수가 깎인 놈도, 덜 깎인 놈도 없었다. 그냥 그 등수에서 붙을 만한 참가자들이 별 반전 없이 불렸다.
이변이 나타난 것은 20위 안에서부터였다.
“20위는… 최원길 참가자입니다!”
“와.”
“대박.”
골드 2보다도 높은 등수였다.
아마도 마이너스 투표를 의식한 팬들이 결집해서 투표를 몰아준 탓에 오히려 올라간 것 같았다.
최원길은 주절주절 긴 소감의 끝에 사과를 붙였다.
“…또, 제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깊이 반성합니다……. 아, 앞으로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흑.”
그리고 울먹거리며 자신의 등수 자리에 앉았다.
‘차라리 골드 2 집어서 사과하는 게 낫지 않았나?’
뭐, 내가 걱정해 줄 문제는 아니었다. 내 등수나 걱정하도록 하자.
그 후 순위를 요약하자면… 이세진은 폭락했고, 김래빈은 회생에 성공해 6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큰세진 등 최원길의 팀이었던 참가자들은 상승했다. 애초에 상승세였던 분위기에 마이너스 투표를 제하니 등수가 확 오른 것이다.
흐름을 보니 아마 나도 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르게 불려도 즉각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등수가 올랐다.
“4위는… 박문대 참가자입니다!”
“…?”
이 아수라장에서 기대도 안 한 선방이었다.
5위까지 안 부르기에 설마 28위 아래로 폭락했나 싶었는데, 설마 4위에서 부를 줄은 몰랐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니, 더 당황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한다!”
류청우가 일어나서 다가오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등을 두드린 것이다. 차유진도 다가와서 류청우를 따라 하며 축하 인사를 했다.
“축하합니다!”
‘가는 길에 대충 아는 척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대 반응이 워낙 좋다 보니 마음의 거리를 마음대로 좁힌 모양이었다.
특히 류청우는 지난 팀전 사람들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별로 친한 참가자가 없는 것도 한몫한 것 같고.
나는 대충 인사를 받아주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선아현과 하이파이브까지 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무슨 희대의 인싸라도 된 기분이었다. 굉장히 낯설다.
“…우선, 주식을 사주신 주주님들께 감사합니다. 실력에 비해 과분한 등수인 것을 명심하고, 투자해 주신 만큼 성과를 내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정석적인 감상이 끝나기 무섭게 MC가 치고 들어왔다.
“박문대 참가자, 매번 무대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주주님들을 즐겁게 해드리고 있는데요. 혹시 다음으로 써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나요?”
더럽게 어려운 질문이었다. 차라리 애교 좀 부려보라는 게 쉬울 것 같다.
그냥 적당히 포괄적으로 말해버리자.
“…다음은, 좀 유쾌한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하하, 이 슬슬 그리워지는 건가요? 박문대 참가자, 다음 무대 기대 하겠습니다.”
유쾌를 팝콘으로 엮어버리는 MC가 있다?
물론 MC를 노려볼 수는 없으니,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올라갔다.
4위에게 주는 화려한 쇼파는 솔직히 민망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허리는 솔직했기에, 나는 한결 편안하게 남은 순위발표를 기다렸다.
“3위는~ 차유진 참가자입니다!”
“헐.”
“1위였잖아.”
지난 순위 발표식 1위였던 차유진은 2계단 떨어졌다.
그러나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높은 등수 받아서 좋아요’라는 해맑은 소감과 함께 올라와서 소파에 안착했다.
그리고 대망의 1, 2위 결전.
결승전에 올라온 건 류청우와, 선아현이었다.
‘쟤 쓰러지는 거 아니냐?’
선아현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단상에 섰다. 1위를 하면 당장에라도 혼절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 영광의 1위는… 축하합니다! 류청우 참가자입니다!”
“감사합니다!”
1위는 류청우였다. 사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럴 줄 알았다.
국대 출신에 방송 이미지도 호감이니, 마이너스 투표 영향도 별로 안 받았겠지.
류청우와 선아현의 소감이 끝난 후, 진 빠지는 29위, 30위 참가자 발표가 이어졌다. 하도 시간을 끌어서 소파에서도 등이 배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그다음에 나왔다.
“만일 여러분이 제도가 없었더라면, 받게 되었을 등수입니다!”
제작진 놈들이 득표수와 깎인 표수를 다 공개하고 재정렬해서 스크린에 띄워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탄식 소리가 이어졌다.
“못 보겠어.”
나도 얼른 ‘박문대’를 스크린에서 찾아냈다.
[매수 : 893,452 / 매도 : 12,257] [합산등수 : 4위 / 매수등수 : 3위]3위라고?
원래 내 등수였던 4위를 확인해 보니, 선아현이었다.
아무래도 최상위권의 투표수가 유사한 탓에 마이너스 투표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까움보다는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거 의외로… 꺼림칙하다.’
[매도 : 12,257]그렇다. 분명 결과가 좋았는데도, ‘박문대’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의지의 만 단위 숫자를 보는 것은…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타격감이…….’
…잠깐!
‘개소리 그만하자.’
내 목표는 데뷔해서 돌연사를 피하는 것이다.
X발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해도 모자랄 마당에 90표 중 하나꼴로 싫다는 놈이 나오는 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돌연사를 막아줄 89만 표에 감사나 하자,’
나는 상황을 정의하고 생각을 종료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은 등수가 어떻게 나왔든 간에 ‘나 미치게 신경 쓰여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 팀전 꼴 아주 잘 돌아가겠다.’
벌써 눈물콧물 짜는 애들 몰골이 눈에 선했다.
* * *
“잠시 대기하고 계세요!”
제작진들도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 당황한 모양인지, 원래라면 순위 발표식이 끝나자마자 이뤄졌어야 할 다음 팀전 촬영이 잠시 중지되었다.
대신 제작진들은 무슨 이상한 미니 기획을 들고 나왔다.
…급조한 기획답게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