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5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9화
덜컹.
“…경치 좋네.”
“저, 저쪽에 소가 있어요…!”
창문에 붙어서 코멘트 던지는 놈들 너머로 목가적인 도로 풍경이 지나간다.
그렇다. 우리는 전형적인 관광용 대절 버스에 실려서 시골로 향하는 중이다.
물론 버스 안에는 카메라가 쫙 깔렸다. 즉, 이것도 방송에 나올 테니 허투루 보낼 순 없다는 뜻.
“와~ 여기 노래방 기계도 있는데요?”
“아, 그건 오랜만에 보네.”
“저 부를래요! 마이크 주세요!”
“오케이! 우리 점수 내기할까?”
큰세진이 웃으며 노래방 마이크를 들더니 분위기를 띄웠다. 거의 필사적으로까지 보이는 예능형 태세다.
이해한다.
이 평화롭고 뽑을 컷 없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겠지.
“자자~ 우리 메인보컬님이 여기서 딱 한 곡 해줘야지!”
일 참 열심히 하는군.
“줘봐.”
“오오오!”
나는 적당히 10년쯤 묵은 유행가 선곡해 최대한 신나게 부르면서도 최상의 수를 그려보았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필사적이다.
‘도착해 보니 다짜고짜 원양 어선행일 가능성… 없진 않다.’
제작진 놈들아 제발 잘하던 걸 해라.
“저 푸른 바다~ 시원한 바람~”
“오오! 오오!”
제발 출연진 엿 먹이는 메타 그대로 가자!
하지만 마침내 도착해서 본 광경은…… 안락하고 따스한 시골 농가다.
“…….”
파란 지붕에 툇마루가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그림 같은 시골집.
멤버들이 흥분한다.
“우와아!”
“굉장히 포근한 느낌이 드는 멋진 집입니다!”
“…….”
아니… 외관은 페이크일 수도 있지. 그래, 안이 중요하다.
그러나 입장 후.
“여기… 바닥이 따뜻해.”
“생활감이 있어서 더욱 정다운 느낌이 듭니다.”
“정말, 그렇네…!”
깔끔히 정리된 온돌방들은 자개장과 백자, 고전적으로 알록달록한 사탕통과 수석까지 예스러운 멋이 살아 있었다.
“냉장고 봤어?”
“…네, 뭐가 많더라고요.”
주방에는 각종 양념과 쌀, 밑반찬이 구비되어 있다.
창문으로 햇빛이 비치니 아주 공기까지 훈훈하다. 나는 침을 삼켰다.
‘…안이 더 좋잖아.’
소위 말하는 시골 전원생활의 로망과 그리움이 꽉꽉 집약된 집이다.
‘미술감독이 대체 무슨 헛바람이 들었냐.’
같은 제목을 달아놓고선 왜 이렇게 쓸데없이 숙소를 근사하게 만들었냐고.
감히 출연진을 엿 먹이지 않다니 이거야말로 배신이다.
“우와~ 진짜 대박! 어떻게 이러지?”
큰세진은 분위기 보고 벌써 집들이 리액션으로 컨텐츠를 바꿨다.
애쓴다.
그 와중에 감독도 슬쩍 말을 얹는다.
“하하, 여러분 이거 다 주민분께 빌린 거라 기간 끝나면 돌려드려야 하니 소중히 써주세요~”
“넵!”
뭘 훈훈한 표정으로 그런 말이나 지껄이고 있냐.
나는 혹시 싶어 입을 열었다.
“혹시 저희가 갚아야 하는….”
“어, 그럴 리가요~ 당연히 저희가 대여로 다 냈죠!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래, 참 고맙기도 하다.
‘진짜 망하게 생겼군.’
잠시 후, 우리는 툇마루에 모여달라는 말에 리액션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테스타 손자 여러분 여기 앉아주세요~”
“네넵~”
그리고 가볍게 컨텐츠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진다.
미팅 때 들었던 것과 별로 다를 건 없다. 전원생활 하면서 어르신들의 일 잠깐 돕고 밥해 먹기.
‘노잼….’
차라리 본격적인 하드코어 봉사활동이면 모를까, 순 우리가 날로 얻어먹는 구조다.
그리고 제작진의 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보수 받으시는 방법입니다~”
툇마루에 배치된 탁자에는 어느새 복주머니가 올라가 있다.
류청우가 집어 들어 열었다.
“뭐예요? WOW~”
“…신기하네. 병뚜껑인가?”
그 안에는 음각으로 무늬가 새겨진 동그라미가 반짝거린다.
“여러분은 여기서 오직 하나의 화폐만을 쓰실 수 있고요, 이건 각종 일감을 통해 더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감독이 복주머니를 가리킨다.
“바로~ !”
“오오!”
왠지 불건전할 것 같은 명칭이군.
그러나 그 병뚜껑을 눌러 만든 장난감 같은 동전에도 멤버들이 눈을 빛낸다.
“왜 이름 당근이에요?”
“이게 또 실물 당근이랑 일대일 교환이 돼서 그래요~”
“하하하!”
아무 소리를 지껄이는 제작진에게도 후한 리액션이 쏟아진다.
“잘 알겠습니다~ 당근당근!”
“신박한데요?”
“이건 공금으로 쓰자.”
그리고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지.’
이 약 빤 제작진이 이렇게 자유롭고 풍족하게 출연진을 방목할 리가 없다.
‘저 코인으로 장난질 쳤겠군.’
분명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나, 코인이 턱없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그림을 만들 것이다.
‘그럼 임팩트를 위해서는….’
대대적 소비부터 해야겠다.
드디어 머리가 돌아간다. 나는 의욕적으로 슬쩍 운을 띄웠다.
“일단 식사를 위해 이걸로 장부터 보고 올까요.”
“좋지.”
“구매해야 할 리스트를 작성하겠습니다!”
가격을 보고 까무러치는 그림부터 노려서 뽑아볼까.
나는 밑밥 겸 마트로 들어가며 류청우에게 받은 코인 하나를 들고 제작진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것도 빌려주시는 건가요.”
그러나 제작진은 단호히 대답했다.
“아뇨. 그냥 드리는 거예요~ 초기자금!”
“…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음, 그럴 수 있지. 그렇다면 말도 안 되게 물가가 세서 코인이 부족한 느낌인가.
우리는 장을 보기 시작했다.
“이거 얼만가요?”
수건은 필수품이다. 분명 이런 종류의 물건에서 엄청난 가격을 부르는 식으로 사람을 놀라게….
“아~ 청년들이 그… 아무튼 요거는 당근코인 두 개! 고렇게만 줘!”
“감사합니다. 주세요.”
“…?”
잠깐.
“저거 사주세요!”
“유진이 달고나 먹고 싶어? 오케이~ 이모님 이거 얼마인가요?”
“어휴, 참 잘생겼어. 어? 참 잘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모님도 너무 미인이셔~”
“그래? 그럼 요거 7개에 그 동전 하나만 딱 됐어!”
“…이야~ 대박! 감사합니다!!”
“…?”
뭘 고르든 말도 안 되게 싸다.
‘거저 주고 있잖아.’
뭐냐 이게.
나는 큰세진에게 달고나를 받다 놓칠 뻔한 뒤, 바로 제작진을 돌아보며 운을 띄웠다.
“…굉장히 싸네요.”
“주민분들이 다 인심이 좋으세요~”
그건 주민들이 자의적으로 물건 가격을 책정한다는 뜻이잖아.
그렇다면 카메라 돌아가고 진짜 돈도 아닌데 당연히 퍼주지!
‘대가리에 나사가 빠졌나.’
이 허술하다 못해 의미 없는 공짜 룰은 제정신으로 만든 건가.
“그럼 우리 들어가서 밥을 얼른 해볼까요~?”
“무, 문대야. 이번에는 내가, 해볼까…? 고기 굽는 정도는….”
“…좋지.”
-공짜나 다름없는 물가, 쉬운 일, 좋은 집, 해결할 난관 전무.
나는 종합적으로 재판결을 내렸다.
‘망했네.’
안 그래도 더럽게 잘나가는 아이돌이 마음껏 소박한 힐링하는 걸 X발 누가 보고 싶겠냐고.
아니, 물론 팬분들이야 보고 싶으실 수도 있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흥미 생길 만한 자극은 있어야지.
‘굴곡이 없잖아.’
이 밍밍한 구조론 감동도 웃음도 매운맛도 잡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다 아는 맹탕.
차라리 어디 대단한 곳에서 플렉스를 하게 만들든가, 지금은 컨셉이 뭐 이도 저도 아니다.
‘돌겠네.’
나는 달고나를 입에 처넣으며 침음을 참았다.
당연하지만, 사실 출발하기 전에 몇 번이나 이 프로그램의 경로를 틀어보려는 시도를 했었다.
강행군 농활 컨셉부터 공포 특집까지 뭐든 좋았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놀랍도록 통하지 않았다.
-앗 그건 좀…. 그렇죠?
-네, 안 될 것 같아요.
모두 입구 컷.
제작진은 이미 소속사와 이야기 끝났다며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이 새끼들 입을 그렇게 잘 털면서 왜 힐링에 꽂혔어.’
바로 직전 프로그램도 배우들 골탕 먹이는 퀴즈쇼나 해놓고 왜 우리한테 이러냔 말이냐.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너무 떴나.’
테스타가 너무 잘나가다 보니, 이제 막 굴리면 우리가 다른 소리 하거나 팬들이 화를 낼까 봐 사리는 것 같다.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라 그냥 입맛이 쓰군. 달고나가 쓰다 X발.
“헉~ 문대문대 이것 좀 봐봐, 여기 장어도 있어!”
“기다려 봐.”
나는 일단 일이나 찾아서 더 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미지에서 이득이라도 보게 화목한 일 중독자 모습이나 각인시켜야지 뭐 별수 있겠는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
덕분에 온갖 쓸데없는 단계를 다 포함해가며 저녁으로 만든 탕수육이 기가 막히게 잘 나오긴 했다.
…이걸로 대충 먹방으로라도 쳐주면 좋겠다. 제발 좀.
* * *
어떻게든 컨텐츠를 엮어보려는 시도는 계속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각이 안 나왔다.
놀랍도록 평화롭다.
‘조졌다.’
그래도 첫날 저녁 식사 후에 뭐가 하나 오긴 했다.
아랫집에 다녀온 놈들이 뭐 하나를 끼고 왔거든.
“짜잔!”
“우와…….”
싱글벙글 웃는 류청우가 코가 까맣고 털이 하얀 개 한 마리를 툇마루 위로 놓는다.
녀석이 기운차게 네 발을 놀린다.
“왕!”
“…….”
나는 무심코 손을 뻗을 뻔하다가, 다시 거뒀다.
바로 잡아서 들 수 있을 만큼 작은 털 뭉치.
“카메라 감독님 할머님을 만났는데, 그 집 강아지가 낳은 새끼들 중에 한 마리래.”
“자꾸 따라와서 Okay하고 데려왔어요!”
“이, 이름은 뭉게, 래.”
“왕!”
개는 나와 배세진 사이에 끼어들어 버둥거린다. 배세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드, 들어도 되려나?”
“여기, 옆구리 잡으면 될 거야.”
나는 멍청하니 생각 없어 보이는 개의 얼굴과 눈 돌아가게 퍼덕거리는 꼬리를 지켜보았다.
‘이건… 괜찮을 수도 있겠는데.’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니까.
게다가 딱 보니 품종도 없는 놈이라 쓸데없는 논란 소지도 없다. 흠. 좋아.
나는 꽤 기꺼운 마음으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강아지도 테스타네에 왔으니 활동명을 받아야겠는데~ 문댕댕 어때요?”
“야.”
그리고 큰세진의 개소리에 일부러 과민하게 반응하며 큰세진과 개를 끼고 마당을 질주했다.
“하하하!”
웃음의 역치가 너무 낮아진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쨌든 멤버와 스탭들이 웃었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날부터 개는 온돌방 한가운데서 같이 잠을 잤다.
그 후로도 계속 소소한 일감이 이어진다.
감자 캐기, 작물에 물 주기, 오리에게 먹이 주기, 주민분 안마해 드리기.
그리고 지금 하는 건 식료품 배달하기다.
“으차!”
“거의 끝났네요.”
좀 먼 곳에 떨어진 농가까지 물건을 나눠주는 것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시골길을 이동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하기 딱 좋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어, 우리 저기서 쉬었다 갈까?”
“좋은 판단이십니다!”
제한이 없으니,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래서 노을이 지기 직전 늦은 낮에, 자전거 매단 달구지를 세워놓고 정자에 대충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전 누울래요~”
“저도요!”
그리고 아예 대자로 뻗을 수도 있고.
‘별짓을 다 하는군.’
그림상 같이 눕긴 했는데, 이것도 대체 분량이 나오기나 할지 의문이다.
그때, 옆에 누워 있던 선아현이 짧게 중얼거렸다.
“이, 이런 것도, 좋은 것 같아.”
“…….”
“고민 없이, 이렇게… 시간 보내는 거, 오랜만이야.”
“…그러게.”
그동안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달리긴 했다. 멈춰 서면 넘어지는 직업이라서 말이지.
‘쉴 때도 효율적으로 쉬려고 계획까지 짤 정도니까.’
…이런 시간이 오랜만일 수밖에 없긴 하다.
목적 없이 지나는 시간 말이다.
“인당 하나야. 더는 안 돼.”
“우우….”
마침 슈퍼에 뛰어갔다 온 배세진이 가져온 하드를 하나 물었다.
과일 맛이다.
스르르- 스르륵-
바람에 풀밭이 흔들린다.
“냄새 좋다.”
“응.”
고요하다.
나는 정자에 누워, 내가 꽤 이완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
어쩌면…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힐링 예능이 계속 나오는 건가.’
다시 돌아보니 또 은근히 인기가 있으니까 공급이 쏟아지는 것 같은데, 이런 긴장 풀리는 느낌에 수요가 있을지도 모르지.
‘박 터지는 성적 싸움에서 멀어지는 느낌은 확실하겠어.’
나는 고개를 고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냥 둘까.’
예능 하나 다른 생각 없이 좀 즐겨도, 미션 클리어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이번만 제작진의 편집 실력을 믿고 컨텐츠를 위임해 보도록 할까.
‘내가 로 첫 예능 발걸음 떼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만 찾아다닌 걸 수도 있지.’
유기농의 맛을 모르고 말이다.
나는 천천히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즐기며, 머리를 바닥에 댔다.
이 좁은 정자가 복작거리는 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 * *
그렇게 평화로운 이틀이 흘렀다.
멤버들과 내가 전부 이 별것 없는 생활에 드디어 익숙해질 무렵.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침마다 칼 같이 찾아오는 제작진이 또 나타나서 우리를 불렀다.
‘또 소소한 할 일을 나눠주겠군.’
다만 오늘은 일감 브리핑 전에 먼저 진행한 것이 있었다.
“여러분 잠깐 미니게임 좀 진행할까요?”
“미니게임이요?”
“네. 오늘 아침에 잠깐 이벤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니 게임으로 정해봅시다!”
“오오오.”
미니 게임은 제작진을 상대로 하는 간단한 놀이였다.
지금까지도 종종 해서 이기면 간식이나 불꽃놀이 도구 따위를 땄었지.
그래서 다들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참여했다.
“와~ 우리 뭉게는 맨날 문대한테 가 있는 것 같네.”
“하하, 아무래도 강아지라 비슷한 느낌을 받나 봐.”
“…형.”
류청우 이놈까지 이러나.
나는 큰 긴장감 없이 개나 쓰다듬으며 참여했고, 졌다.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요! 우리 일 더 해요!”
다들 별 동요는 없다. 그냥 웃으며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
“그럼 저희 이벤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페널티 쪽지를 뽑아볼게요.”
“넵~”
지금까지 경향상 페널티 쪽지에는 ‘오늘 봉사활동 1회’, ‘옥수수 사 오기’ 따위의 소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남은 건 쪽지 두 개뿐.
“래빈이가 뽑아보자.”
“알겠습니다!”
오늘의 타자인 김래빈은 남은 페널티 쪽지 둘 중 하나를 힘차게 뽑았다.
그리고 굳었다.
“…??”
“래빈아?”
“왜 그래?”
“래빈 씨, 읽어주세요~”
제작진의 호명에, 김래빈이 동공을 떨며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정체불명의 밤손님이 들어서… 테스타의 소중한 을 다 털어갔습니다?”
“…!”
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