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화
“어?”
심사위원 몇 명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티홀릭?”
몇 년 전, 3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던 초대형 남자아이돌 ‘티홀릭’은 공백기에 들어갔다. 군입대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인원 부족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신, 소속사는 아직 영장이 나오지 않은 막내 메인보컬의 솔로 활동을 밀어줬다. 강렬한 코러스의 타이틀곡을 내세운 미니앨범이었다.
그러나 이 앨범의 진가는 타이틀 곡이 아니라 커플링곡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밝혀냈다.
놀랍게도, 역주행으로 음원차트 3위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한 대세 여성 솔로가수의 SNS 추천 글에서부터 시작된 물결은 몇몇 예능을 거치며 작은 파도가 되었다.
그 커플링 곡이 다.
풍성한 밴드 사운드와 세련된 신스가 잘 조화된 이지리스닝 곡은 그 해 여러 대학축제에서 불리며, 결국 연간 100위 안에 안착했었다.
그리고 지금 촬영장에 흐르고 있는 것은, 명백히 그 전주였다.
특유의 아코디언풍 코러스 멜로디가 깔린 반주가 흐르는 아이코닉한 인트로.
물론 명곡은 맞았다. 잘 부르면 인상적인 곡도 맞았다.
그래서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걸… 뭣 모르는 상태에서 선곡할 수가 있나?’
이건 포지션이 아주 애매한 곡이기 때문이다.
유명 아이돌의 전성기 대표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성 가수의 유명곡도 아니다.
그렇기에 아이돌 서바이벌에서든 가수 서바이벌에서든, 첫 평가에서 곧바로 떠올리고 선곡할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둘 모두의 카테고리를 미묘하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곡이 유행한 지 몇 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는 더더욱.
뻔한 곡이 나올 줄 알고 따로 선곡을 지정하지 않았더니, 이런 변수가 생겼다.
물론, 제작진은 참가자가 제출한 음원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 그래도 참가자가 77명이나 됐다.
굳이 땜빵에게까지 시간을 쓸 가치가 없어 대충 넘긴 게 화근이었다.
‘이런 애매한 곡은 비교편집이 어려운데…….’
작가는 불만스럽게 펜을 탁탁 쳤다.
선곡에 놀랐던 심사위원들도 어느새 약간 방만한 태도로 전주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박문대가 입을 열었다.
-난 내가 알고 있던 나를 기억해
빛나고 눈부신 계절 너머
지치고 나약한 시절까지
끝도 없던 나날 끝에서도
깨진 나를 담아 주는 것, Oh-
오직 나
그래 It’s me
“…!”
좋다.
엇박으로 시작해 읊조리듯 이어지는 첫 번째 벌스부터 말끔했다.
귀에 편안하게 들리는 탓에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보통 이 곡을 부르면 그 미묘한 박자를 다 놓치고 부르기 쉬웠다.
어딘지 아마추어 같아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참가자는 자잘한 멜로디를 복잡한 박자마다 정확히 집어넣고 있었다.
‘단, 따단-, 딴, 단, 다안-, 따단.’
“…!”
무의식중에 탁자를 치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깜짝 놀랐다. 딱 맞아들어갔던 것이다.
이러면 쪼개진 박자니 뭐니 자세한 것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라도 ‘잘 부른다’는 인상을 받는다. 반주와 정확히 맞아 들어가게 부르니까.
게다가…….
‘발성이… 좋네?’
발성이 두드러지게 좋았다. 그냥 우렁찬 게 아니라, 좋은 음색이 입체감 있게 들린다.
‘노래방에서도 이랬던가?’
작가는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노래를 떠올려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불렀으면 섭외할 때 인터뷰를 더 땄을 것이다. 선곡도 좀 봐주고.
‘그럼 열흘 만에 이렇게 늘었다고?’
당황한 작가와는 상관없이, 노래는 벌스를 넘어 프리코러스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나
나는 나를 기념해야 해
다신 잊지 말아야만 해
자 기억해
지금까지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음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음이 플랫 되는 일이 없었다. 호흡이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없었다.
이쯤 되니 작가도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령 심사위원들의 놀란 표정 같은 것이.
-항상 오늘을 살아낸
놀라운 기적을
잊지 마, 지우지 마
그러니 축하해
지금을 기념해
That’s the party in me
매일이 PARTY인 것처럼, Ooh-
Let’s PARTY
고음이 쭉쭉 뻗어 나간다. 버거워 보이지도 않는다. 한 옥타브쯤 한계가 남은 것처럼 수월하고 깨끗하다.
마구 지르는 대신 말하는 것처럼 조곤조곤 아름답게 들려야 하는 곡에 딱 맞는 방식이었다.
이제 작가는 차라리 허허 웃고 싶어졌다.
‘그래 잘됐네…, 아주 메인보컬감이네……. 안 그래도 보컬 포지션 부족했는데 우와, 잘된 거 아니겠어? 내 안목 진짜 대단하다. 그냥 길가다 섭외해도 이런 게 굴러들어오다니.’
다시 2절 벌스가 나왔다.
박문대는 1절과 멜로디는 같으면서 박자가 달라지는 복잡함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브릿지를 지나 마지막 후렴구에서 한번 전조되는 부분까지 당연한 것처럼 훌쩍 목소리가 올라갔다.
뒷목이 짜릿해지는 고음이 기분 좋게 치고 지나갔다. 과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설렁 넘어가지도 않은, 훌륭한 클라이맥스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건네듯 벌스 첫마디로 돌아오며, 곡이 끝났다.
-…난, 내가 알고 있던 나를 기억해
참가자는 마지막 음까지 좋은 소리를 냈다.
반주가 끝나자마자, 박문대는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약간 멀뚱히 말을 덧붙인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게 정적이 흘렀다. 작가는 펜을 움켜쥐었다.
‘그래. 보내 버리지 말고 킵해두자.’
그녀가 박문대의 위치를 재조정할 때, 심사위원들은 흥분해서 마이크를 들었다.
“와, 문대 씨!!”
“예.”
“본인 잘한 거 아시죠!?”
“……잘 부르려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심사위원이 휙 말을 채 갔다.
“아냐, 이런 건 그냥 타고나는 거야. 재능 있네요.”
직설적인 것으로 유명한 안무가였다.
그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송이라 일부러 좀 과하게 말하는 것도 있겠지만, 맘에 없는 소리를 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박문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계속해서 심사위원들의 호평이 쏟아진다.
특히 보컬 코치로 출연한 여성 솔로가수, 뮤디가 눈을 빛내며 극찬했다.
“우선 음색이 참 시원해요. 그리고 발성이 좋아서 그게 더 잘 들려요.”
“그쵸? 진짜 막 귀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맞아맞아.”
동의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그러자 뮤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또 목소리가 장르를 안 타고 어울릴 것 같은데, 이게 아이돌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괜히 때 탄 것 같은 쿠세(버릇)도 없고, 앞으로가 굉장히 기대돼요. 정말.”
“감사합니다.”
“문대 씨는 아직 소속사 들어가 본 적 없죠? 아까 경력 없다고 그러던데, 여기 보니까 진짜 딱히 이력이 없더라구요.”
“예. 아직은….”
그러자 젊은 남자 심사위원이 치고 들어온다. 얼마 전 재계약 시즌에 멤버가 2명 유출된 유명 남자 아이돌의 멤버다.
“그럼 특별히 레슨받은 적도 없어요?”
“네.”
“전혀? 그러니까 학원도요?”
박문대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물어본 심사위원은 약간의 의심이 섞인 표정으로 감탄했다. 그러자 뮤디가 활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막 아무 소속사하고 하는 것보다 진국인 한 방을 기다리는 게 좋을 수도 있어. 분명 좋은 데서 제안이 올 것 같아요!”
“덕담 감사합니다.”
작가는 뮤디의 소속사가 남자 아이돌 런칭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문득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쟤 자기 소속사에 지분 있었지.’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예의 바르게, 그러나 대단히 감명받은 것 같지도 않게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 참가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다시 한번 호평 일색인 심사위원석을 보곤,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뭔가… 은근히 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분명 실력 좋은 참가자를 발굴한 건 방송에 이득일 텐데, 찝찝했다.
작가는 턱을 괴다가, 박문대가 잡고 있는 핸드 마이크를 보고 번뜩 떠올렸다.
‘쟤 결국 춤은 제대로 안 췄잖아!’
물론, 박문대도 안무 같은 동작은 했다.
하지만 이 곡 자체가 활동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 동작은 어디까지나 율동 수준이었다.
댄서들이 주변에서 제대로 된 안무를 하면, 박자 맞춰서 비슷하게 손을 뻗고 다리 몇 번 움직이도록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에는 댄서가 포함된 본래의 무대가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저 빈약한 손발짓을 봐도 멋대로 주변에 댄서를 채워서 생각하고는 ‘원래 무대도 그랬으니까’ 하고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특히나 노래를 기갈나게 잘 부른 경우라면 더욱!
게다가 탑티어 아이돌의 컨셉추얼한 곡을 한 건 맞으니, 거의 보컬 능력치만으로 비벼놓고서도 ‘문대 씨는 아이돌이 하고 싶은 게 맞나요?’ 같은 질문도 피해갈 수 있다.
결국, 박문대의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였던 셈이다.
‘이건 센스를 넘어서서, 노련함까지 느껴지는데…….’
작가는 어쩐지 속은 느낌이 들어 탐탁잖은 눈으로 박문대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조용히 다른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지켜보던 한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들었다.
무명 시절, 장마 빗속에서 웃으며 아크로바틱을 하는 직캠으로 역주행에 성공했던 여자아이돌 그룹, ‘세인트유’의 영린이었다.
“지금 안무 난이도가 거의 없는 무대였는데, 춤을 따로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작가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 * *
‘됐다.’
요 며칠 질리도록 이 곡만 부르며 레벨업에 집중한 보람이 있었다.
포인트란 포인트는 다 가창에 부은 결과, 현재 내 상태창의 ‘가창’ 항목은 A-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일단 한국에서 가수가 노래를 못한다는 건 아이돌이고 뭐고 아웃이었다.
춤 못 추는 건 연습량으로 커버할 수라도 있지, 노래를 못하는 건 사전녹음을 틀어도 티가 났다.
게다가 아이돌 지망생 풀에서는 통상적으로 메인보컬 지망생이 메인댄서 지망생보다 적었다.
그러니 초기에 메인보컬 포지션을 한번 각인시켜 두면, 데뷔조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다음은 평가곡 선정 방식.
이것도 부정적 피드백이 현저히 적은 것으로 보아 내 접근 방식이 맞았던 것 같다.
내 약점을 토대로 심사위원들이 할 만한 비판을 예상한 뒤, 그 반응이 나올만한 곡을 다 제외하는 여과법 말이다.
‘춤이 왜 그래요?’
-본격적인 안무가 있는 곡 삭제.
‘춤은 아예 안 추시네요?’
-발라드 삭제.
‘노래는 잘하시네요. 근데 아이돌 같은 느낌은 아닌데?’
-아이돌 곡만 남기고 다 삭제.
‘이 곡을 혼자 소화하시는 건 무리가 아니셨나.’
-편곡도 못 하는 마당에 괜한 모험 말고 3명 이상이 부른 곡 다 삭제.
‘아무래도 원곡자하고 비교돼요!’
-최근 3년 이내 발매 곡 다 삭제.
그리고 남은 곡 중에 가장 음원차트 기록이 좋은 곡을 골랐다.
흠, 다시 생각해도 좋은 전략이었다.
이대로 슬쩍 넘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분위기에 안 휩쓸리는 인간이 하나쯤은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심사위원과 눈을 마주쳤다.
아는 얼굴이었다.
나한테 아이돌을 찍는 것이 돈이 된다는 걸 알려준 첫 번째 아이돌이다. 덕분에 1학년 2학기 등록금을 충당했었다.
‘저쪽도 그 물난리 아크로바틱 직캠으로 노력파 이미지를 얻어서 제법 화제가 됐던 것 같으니 윈윈이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다지 서로 이득이 되는 만남은 아닌 것 같다.
“트레이닝받지 않으셨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첫 번째 심사를 하는 자리니까 기본 상태라도 체크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디션 프로에 참가하셨다면 한 곡 정도는 준비해 오셨을 것 같아서.”
여기서 ‘준비해 온 게 없어서요’ 같은 소리는 미친 짓이다. 차라리 입 닥치고 있느니만 못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예. 그럼 이 곡 가능할까요.”
스텝 한 사람이 얼른 무대 아래 가까이로 다가와 내게 손짓했다. 나는 다가가서 생각해 둔 곡을 말했다.
그러자 카메라가 따라와서 스텝이 움찔거리는 것까지 찍는다.
이러는 걸 보니 웬만하면 통편집은 피할 것 같다. 노력한 보람이 있군.
그리고 곧바로 경쾌한 반주가 촬영장을 채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