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0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3화
공중파 버라이어티쇼, 의 촬영장.
‘아 또 아이돌이네.’
고정 출연진은 미리 받은 게스트 라인업에 큰 감흥을 느끼진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게스트를 초청해서 같이 몸 쓰는 게임과 토크를 하는, 전형적인 가족 겨냥 주말 예능으로 출연 부담이 없다.
게다가 해외로도 쏠쏠히 수출되는 덕에 온갖 홍보용 출연이 성행했다.
‘그래도 이번 주는 이름값은 좀 있는 애들이잖아.’
요즘 제일 잘나가는 곡을 부른 대형 기획사 애들이었다. 이 정도면 나오겠다고 옆구리 찌른 건 아니고 섭외 급은 될 것 같다.
놀라운 것은 갑자기 추가 공지된 특급 게스트다.
‘와, 대박.’
발레리노 선아현!
시즌 오프라 광고라도 찍는 건지 갑자기 입국했는데, 제작진이 용케 물어온 모양이다.
원래라면 단독 특집이 나와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인물이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기획 문제로 인해 특별 게스트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이 기회를 좀 잡아볼까?
신인답게 대기실에 인사 온 위시즈 멤버의 인사를 받아준 뒤, 게스트는 슬쩍 일어났다.
“형님?”
“야야, 따라와.”
선아현이 인사를 올 리가 만무하니, 자신이 직접 가서 안면을 개척해볼 생각이었다.
‘운 좋으면 어디서 이야깃거리로라도 쓸 수 있….’
하지만 선아현의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비어 있었다.
“…??”
스탭이 귀띔한다.
“저… 그 걔네한테 찾아갔다는데요.”
“누구?”
“위시즈, 위시즈.”
MC도 아니고 그 신인들 대기실에 가 있다고? 아무리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해도 갓 데뷔한 신인인데….
“왜, 쟤네 무슨 서바이벌 했는데 거기서 멘토로 출연했었대요.”
“아.”
그거라면 납득은 됐다.
‘나름대로 안면이 있다, 이거지.’
물론 촬영이 순조로워질 거란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셀링 포인트 비슷한 예체능인들?
‘기 싸움이야, 기 싸움.’
출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카메라 돌아갈 때만 웃고 끝나면 분위기 X 되는 걸 또 봐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아니나 다를까, 촬영이 시작하고 시간이 좀 흐른 후 특별 게스트가 등장하자마자 다들 평가에 여념이 없다.
기존 게스트를 이용해 특별 게스트 띄워주기!
“너무너무 잘생기셨다, 정말~”
“아현 씨 완전 아이돌이신데요?”
“이렇게 보면… 이야, 같은 그룹 같다니까?”
흔한 띄워주기용 멘트였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정석 미인형 남성 셋이 나란히 있는 모습에 작가들까지 좋아한다.
‘여자들 엄청 좋아하겠네.’
출연진은 뻔한 사태를 심드렁히 보면서 입은 리액션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누가 봐도 특별 게스트가 기존 게스트를 제물로 득 보는 상황.
하지만 놀랍게도 기존 게스트 녀석들은 어색한 가식적 뉘앙스 없이 상황을 부드럽고 유쾌히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리를 비켜서 선아현에게 자신들 사이의 자리를 줘보기까지 한다.
“이렇게 서시면… 짠, 센터.”
“하하하!”
‘어쭈?’
신인치고는 배짱이 괜찮지 않은가.
게다가 촬영할수록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놈들 무슨 복인지 토크나 컨텐츠에 쓸 에피소드 거리도 수없이 많다.
“형 몰라요? 폭발한 빌딩에서 신문지 하나로 탈출한 그거! 이 방법도 그 멤버들한테 들었나 봐. 독특해.”
“재현 씨도 밧줄 좀 타시네~ 혹시 유진 차 다음으로 입대하실 생각 있습니까?”
“혹시! 래빈 씨 성대모사 되나요?”
게임할 때마다 아주 모든 멤버가 돌아가며 거론되는데, MC가 다 알고 맞장구를 쳐줄 지경이다.
게다가 본인들도 각자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있어서 본인들 위주로 술술 대화가 진행된다.
고정 출연자는 그제야 날카롭게 감지했다.
‘얘네… 말도 안 되게 판이 잘 짜였는데?’
곡 하나 잘된 원 히트 원더가 아닐 거란 느낌이 솔솔 올라온다.
멤버가 각자의 인지도를 다 가진 그룹은 티홀릭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런데 곡까지 이렇게 대박을 치다니.
티홀릭의 몇 달 남짓한 공백기를 절묘하게 타고 나온 이 그룹에게선 냄새가 났다.
아주 거대한 성공의 냄새가.
‘크으으음.’
그렇게 보니 지금 출연한 녀석들도 새롭게 더 잘 보인다.
일단 안 빼고 열심히 하고, 배짱도 충분하고, 센스도 좋다.
‘사이도 좋은 것 같고.’
쉬는 시간만 되면 동생 쪽이 웃으며 계속 말을 붙이고 형 쪽이 받아주는데, 딱히 무시하는 투나 보여주기용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다.
‘겉멋이 안 들었잖아?’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 친분을 좀 만들어둘까 고민하는데, 어딘가에서 비슷한 시선이 느껴졌다.
힐끔 시선을 돌리자… 선아현이 보인다.
조용히 신인들을 보고 있는.
“…?”
응?
자신처럼 선아현도 쉬는 시간마다 그쪽을 보는 것 같… 다?
그 시선은 금방 사라졌지만, 출연자는 감이 왔다.
‘뭐여.’
설마 친해지고 싶은 건가?
하지만 저런 유명인에게 말 한 번 더 붙여볼 법도 한데, 신인 둘은 굉장히 조심하는 것처럼 선아현에게 먼저 말을 걸질 않는다.
그리고 왜 그런 건지 출연진은 내심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그도 선아현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니까.
‘그래도 눈치가 없네, 눈치가 없어.’
이건 나한테 빚 좀 지겠는데?
그는 기분 좋게 혀를 끌끌 차며, 데이터 카드 교체 시간을 틈타 냉큼 신인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는, 그나마 한 살 연장자인 쪽이 혼자 남았을 때.
“오… 어때? 촬영 괜찮아요?”
“배려해 주셔서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깍듯한 놈에게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다 선아현 화제를 슬쩍 꺼낸 뒤….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저분이 좀 쌀쌀 맞죠?”
“…?”
신인, 류건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도로 돌아온다.
의아한 척 좋은 반응을 해주려는 게 제법 신인답게 풋풋해서 고정 출연진은 내심 웃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좀 그렇더라구. 저렇게 잘생겼으니까 더 그런 가봐. 이게 우리 같은 엔터테이너들하고는 좀 느낌이 다르잖아.”
그렇다.
선아현은 방송가에서 ‘선 긋는다’라는 평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다.
사람이 정중하긴 한데, 그것뿐이다. 마치 사는 세계가 다른 것처럼 군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아주 자기는 숭고한 발레에 인생 바쳤다 이거냐고 비아냥거리는 놈들도 있고.’
나이 어린 애들이 느끼기에는 야속하거나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만한 태도였다. 그 점은 출연진도 충분히 이해했다.
물론 이 말을 듣고 있는 당사자의 생각은 이랬다.
‘이 새끼 뭔 개소리야.’
류건우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음. 친절하셨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이제 그 이상 친분을 만들고 싶어 하진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은 거잖아.”
“…….”
“근데 사실은 좀 너희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계속 우리… 어, 위시즈 쪽을 보고 있더라.”
“아…….”
류건우는 잠시 말을 흐렸다. 출연자는 은근한 미소로, 자신의 조언을 계속할 생각이었으나….
“안녕하세요.”
“어어.”
한 살 어린 멤버, 신재현이 돌아와서 출연자에게 말을 붙인다.
“아니, 촬영 불편한 점은 없나 한번 물어보려고 왔지.”
“역시. 선배님께서 매번 연말 시상식마다 신인분들 챙겨주신다고 들어서…….”
“아, 흠, 그걸 알아?”
“그럼요. 정말 유명한 이야기잖아요.”
이 시간대에 신재현이 세부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예능인은 없었다.
그가 순식간에 자신의 페이스로 쓱 끌어들인 출연자를 처리해 보내는 동안, 류건우는 생각했다.
‘급 나눠서 사람 자르는 선아현…?’
그렇게 괴상한 명제도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류건우는 순간 선아현을 돌아볼 뻔했으나, 그만두었다.
굳이 그럴 건 없지 않은가.
“쓰고 싶어요?”
출연자를 돌려보낸 신재현의 질문에, 류건우는 숨을 내쉬었다.
“아니.”
쓸데없이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고, 목표인 대상은 눈앞에 보였다.
‘앞만 보고 간다.’
그래서 그는 동요 없이 계속 촬영을 이어나갔다.
휴식 이후로 이어진 것은 노골적인 특별 게스트 홍보용 파트다.
간단한 발레 동작을 배우는 코너.
물론 여기서 기존 게스트에게도 홍보 기회를 준다. 코너의 끝에서 살짝.
“발레까지 해봤는데, 우리 그럼 아이돌 댄스도 한번 도전해 볼까?”
“오오~”
정해진 대본에 따라 신재현과 류건우가 앞으로 나왔다.
“이렇게 추시면 돼요. 어깨를 이렇게 움직이면서.”
“오호!”
일부러 손동작을 키치하게 만든 안무를 신재현이 시범 보이자, 출연진들이 붙여서 몸개그를 선보인다.
그리고 슬쩍 던져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아~ 혹시 아현 씨도?”
특별 게스트의 움직임을.
그러나 출연진들이 놀란 것은, 꺼릴 줄 알았던 선아현이 냉큼 바로 나왔다는 점이다.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하면….”
“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소화한다.
“…!”
단순히 비슷하게 몸 움직이는 일을 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 반복 훈련받은 사람 특유의 느낌이.
신재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남아 있는 건가.’
물론 그 기색은 순간으로 지나갔고, 출연진들은 감탄했다.
“잘하신다~ 진짜 아이돌하셨어도 되겠는데?”
“그러게. 어떻게 생각해요, 두 분?”
‘설마 못했을 거라고 하겠냐?’
류건우는 뻔한 걸 묻는다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대세를 따랐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역시! 아현 씨, 혹시 정식으로 아이돌 댄스 도전해 보실 생각은요?”
선아현은 잠시 주저하는 것 같았으나, 그 기색은 순간 사라졌다.
“칭찬은 정말 감사하지만… 그래도 저는 발레리노니까요.”
“아~ 단호하셔.”
“이게 그 장인정신이지!”
선아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서 류건우는 무심코 물었다.
“발레를 굉장히 좋아하시나 봅니다. 언제나 거기에만 집중하시는 건가요.”
“…….”
선아현은 살짝 시선을 내리고 담담히 말한다.
“제 전부니까요. 다른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
박문대는 그 대답에 납득했다.
‘저런 외골수 같은 소리 때문에 그런 괴상한 소문이 돌았나.’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출연자는 자기 조언이 먹혔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인맥 만드는 거지. 후.’
그리고 촬영은 마지막, 메인 코너로 접어들었다.
* * *
나는 한숨을 참았다.
‘거의 끝이군.’
이제 이런 류의 예능은 눈 감고도 성의 있는 것처럼 할 정도로 쉽다.
게다가 마지막 메인 코너는 더 쉽다.
-바로바로~ 보물찾기~!
뭐 폐건물에 지뢰랑 보물 숨겨두고 보물을 찾아내되 지뢰 몇 개 이상 가지면 망하는 그런 거 있지 않나.
이런 프로그램 나올 때마다 하는 것 같군.
‘하도 해서 뇌 빼고 해도 할 수 있겠어.’
물론 진짜 그러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나는 손에 잔뜩 쥔 서너 개의 선물 상자들을 카메라 앞에서 흔들었다.
“저기, 이거 다 진짜 보물 맞을까요. 확률상 다 지뢰일 것도 같은데….”
“저희도 모르죠~~”
“……네.”
어, 보물인 거 알아. 너희 동선 다 계산해 봤어.
일부러 카메라맨에게 한번 물어보기까지 하면서 알리바이도 만들었으니, 나는 불안한 척 다음 행동에 나섰다.
적당히 교환하고선 폭사하고 나중에 전부 보물이었다는 걸 알고 억울해하는 쪽으로 가면 웃기겠지.
‘MC 찾아야 하나.’
그래서 교환 장면을 잘 받아줄 만한 놈을 찾아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건우 씨?”
“…!”
마침 계단을 올라오는 놈이 보인다.
뛰어다니던 선아현.
손에는 고동색 박스가 하나 들려 있다.
‘…음.’
…저놈이 이기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특별 게스트고… 연장자에, 국위 선양하는 놈이니까.
나는 달려가서 가지고 있던 선물 박스를 내밀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형 저희 이거 바꾸실래요? 왠지 형이 찾으신 게 기운이 좋을 것 같아서….”
“네?”
[딩-동!] [종료까지 10분, 10분 남았습니다~]마침 분위기 조성도 좋고.
나는 다급한 척 선물들을 흔들었다.
“저… 2 대 1로 교환 어떠세요? 제가 두 개 드리겠습니다.”
“…….”
“형 거는 하나만 주시면….”
선아현이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뭐야.’
그래도 방송이라는 자각은 있지 않나.
내가 죽죽 빠지는 텐션에 의아해하며 놈을 볼 때.
놈이 입을 다시 연다.
“나, 나한테…….”
“……?”
“줬었는데.”
녀석이 우그러질 정도로 강하게 자기 박스를 쥐더니, 작게 중얼거린다.
“금색 공.”
“…!”
“벨이 울리기 직전에… 받았거든요.”
뭐라고.
거의 무아지경인 것처럼 말하던 놈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뭐가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말했네요.”
“…….”
“교환이 필요하시면, 많이 주시겠다는 건 감사하지만… 역시 일대일로 해요, 우리.”
[형. 지금…?]안 불러도 눈치챘다.
방금 선아현이 말한 금색 공.
‘내가… 저놈한테 에서 줬던 거잖아.’
개인 방송 키워드가 든 볼을 찾는 보물찾기 코너.
지금과 똑같이…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랜덤.
거기서 ‘냉동식품’이 든 놈의 브론즈 볼과 교환해 줬던 것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여기 발레리노 선아현에겐 저런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근데 방금 말했잖아요!]어.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이지.